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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꼭 알아야 할 유용하고 세상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차원 높은 정보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본 블로그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을 잘 간파하셔서 끊임없이

황제헌원12

환단고기에 기록된 치우천왕(황) 관련 내용들 『환단고기』에 기록된 치우천왕(황) 관련 내용들 환단고기 역주본을 통해서 치우천황에 대한 역사의 진실을 제대로 알아봅시다.​ 『환단고기』에서 말하는 치우천황과 청구국 -청동기 문화와 철기문화 치우천황의 신하였던 한족의 시조 헌원 『사기』에서 왜곡된 치우천황 -역사 .. 2016. 6. 7.
치우를 모독하는 자 치우을 모독하는 자 한 놈도 살아남지 못하리로다. 요즘 어떤 이들이 치우천황을 모독하고 있다. 절대 모독해서도 안 되고 시도해서도 안 되는 분이 바로 치우임을 모르는 것이니 참으로 무지가 죄인 것이다. 치우蚩尤가 작란作亂하여 큰 안개를 지으므로 황제가 지남거指南車로써 정定.. 2016. 3. 23.
한국역사의 뿌리는 이렇게 잘려 나갔다. 한국역사의 뿌리는 이렇게 잘려 나갔다. 한국사 왜곡의 현주소 : 한국사의 뿌리 이렇게 잘려 나갔다 창세 역사와 문화를 잃은 한국인은, 고대 동북아 문명의 주인공이었던 본연의 모습을 전혀 기억하지도, 알지도 못하는 정신적 불구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한국인의 원형질을 형성하는 .. 2013. 3. 29.
환단고기의 진실14-중국 한족의 뿌리까지 밝혀주는 환단고기 환단고기의 진실14-중국 한족의 뿌리까지 밝혀주는 환단고기 환단고기는 중국 한족의 뿌리를 밝혀준다 전설 속의 중국 한족의 시조, 반고는 실존인물 時 有盤固者 好奇術 欲分道而往 請 乃許之 遂積財寶 率十干十二支之神將 與共工.有巢.有苗.有燧 偕至三危山拉林洞窟 而立爲君 謂之諸&.. 2012. 9. 5.
신교로부터 분파된 도교의 본질과 사명 신교로부터 분파된 도교의 본질과 사명 선천 유.불.선.기독교는 시대와 지역, 가르침의 전공분야를 달리해서 출현하여 중생들을 가르쳐 새 사람으로 변화시키라는, 우주의 주재자이신 상제님으로 부터 교화의 사명을 받고 나온 우주의 여름철 시대의 성자들의 진리입니다. 도교의 나들.. 2012. 6. 7.
神敎(신교)로부터 분파된 儒敎(유교)의 본질과 사명 神敎(신교)로부터 분파된 儒敎(유교)의 본질과 사명 선천 유.불.선.기독교는 시대와 지역, 가르침의 전공분야를 달리해서 출현하여 중생들을 가르쳐 새 사람으로 변화시키라는, 우주의 주재자이신 상제님으로 부터 교화의 사명을 받고 나온 우주의 여름철 시대의 성자들의 진리입니다. .. 2012. 6. 7.
한민족의 신교(神敎)가 유불선(儒佛仙)의 뿌리 한민족의 신교(神敎)가 유불선(儒佛仙)의 뿌리 신교는 7,500년 동안 우리 한민족의 국교였고 지금까지도 면면히 흘러 내려오고 있는데 그 맥을 보면 유, 불, 선의 모체가 된다는 사실이 최치원 선생이 쓴 난랑비서문(鸞郞碑序文)에 있습니다. 난랑이라는 화랑에게 지은 글인데 그 내용을 먼.. 2011. 11. 13.
삼황오제(三皇五帝)는 동이족(東夷族) 삼황오제(三皇五帝)는 동이족(東夷族) 고대로부터 중국인들은 우리 한민족을 동이東夷족 이라 한다. 중국인들은 고대 중국의 임금이라 하여 <삼황 오제>를 받들고 있다. <삼황 오제>는 <삼황> 즉 <태호 복희씨> <염제 신농씨> < 황제헌원씨> 와 <오제> 즉 <소호금천씨> &.. 2010. 4. 15.
치우천황(蚩雨天皇)과 황제헌원(黃帝軒轅) 치우천황(蚩雨天皇)과 황제헌원(黃帝軒轅) 고조선의 망국 이후 동양사에서는 이 사실이 고조선과의 대전쟁에서 크게 패한 한무제(漢武帝, 서기전 159~서기전 87)와 그의 사관인 사마천의 역사 왜곡 조작에 의해 거꾸로 알려져 있다. 치우(蚩尤)는 세속에서 부르는 별칭이다. 또 중국 고대사 관련 기록에 .. 2009. 12. 14.
(2) 배달국(倍達國) 환웅(桓雄) 천황(天皇) 계표 -일만년 한민족사 황,제,왕 계표 (2) 배달국(倍達國) 환웅(桓雄) 천황(天皇) 계표 -18대 1565년 (환기 3301 ~ 4866, BC3898 ∼ BC2333) 대 왕 명 즉위년도 (환기-B.C) 재위 기간 약 사 1 거발한(居發桓) 3301-BC3898 94 환인의 명을 받고 한웅께서 풍백 우사 운사와 함께 무리 3,000을 이끌고 태백산의 신단의 나무아래 내려오시니 이를 신시라 .. 2007. 10.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