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꼭 알아야 할 유용하고 세상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차원 높은 정보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본 블로그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을 잘 간파하셔서 끊임없이
한민족 역사문화/한민족사 바로알기

[安含老元董仲三聖記]를 [安含, 老元, 董仲 3 성인의 기록]이라고?

by 바로요거 2016. 11. 4.

세조실록 3년조에 나오는 [安含老元董仲三聖記] 문구를 [安含, 老元, 董仲 3 성인의 기록]이라고 한 희한한 해석에 대하여.

<소설가 이문영의 허황된 주장>
"환단고기 중 '삼성기'의 지은이라고 주장한 안함로(安含老), 원동중(元董仲)은 안함(安含), 노원(老元), 동중(董仲)을 잘못 읽은 것이다. 삼성기는 세조실록에 나오는 책 이름이기도 하다. 그런데 처음 세조실록을 번역할 때 '삼성기'의 지은이 안함, 노원, 동중을 잘못 읽어서 안함로, 원동중이라고 해놓았고 이것을 본 이유립은 위작을 할 때 그대로 가져다 쓴 것뿐이다. '삼성기'의 삼성은 안함, 노원, 동중을 가리킨 것이다." (매일경제 10월 17일자 )

<위의 허황된 주장에 대한 올바른 답변>

▶조선왕조실록과 신증동국여지승람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어떤 책인가?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조선시대 인문지리서다. 저자는 李荇, 洪彦弼이고 조선 중기(1530년)에 만들어 졌으며, 목판본으로 55권 25책이다. 세종의 명에 따라 맹사성 ·申檣 등이 세종 14년(1432년)에 新撰八道地理志를 撰進하였고, 그 후 성종 12년(1481년)에 성종의 명으로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 체제를 본따 梁誠之, 盧思愼, 姜希孟, 徐居正 등이 新撰八道地理志를 저본으로 하여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50권을 완성하였고, 이를 다시 1486년에 증편, 수정하여 동국여지승람 35권을 간행하였고, 연산군 5년(1499년)에 개수를 거쳐 중종 5년(1530년)에 李荇, 洪彦弼의 증보에 의하여 완성을 보게 되었다. 역대 지리지 중 가장 종합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신증동북여지승람 황해도 해주목海州牧 부분

위 동국여지승람의 수양산성首陽山城 부분에는이렇게 적혀있다.
"세간에 전해 오기를 안함, 원노, 동중 3인이 산 중에 땅을 택하여 수양산성을 쌓았다고 한다. 또 옛 고죽군의 터가 남아 있다.(世傳昔有安含元老董仲三人卜地以築之山中又有孤竹郡遺基"



조선왕조실록 세조실록 7권 세조 4년 기록에는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있다. (1457년)

팔도 관찰사(八道觀察使)에게 유시(諭示)하기를,
"《고조선 비사(古朝鮮秘詞)》·《대변설(大辯說)》·《조대기(朝代記)》·《주남일사기(周南逸士記)》·《지공기(誌公記)》·《표훈삼성밀기(表訓三聖密記)》·《안함노원동중 삼성기(安含老元董仲三聖記)》·《도증기 지리성모하사량훈(道證記智異聖母河沙良訓)》, 문태산(文泰山)·왕거인(王居人)·설업(薛業) 등 《삼인 기록(三人記錄)》, 《수찬기소(修撰企所)》의 1백여 권(卷)과 《동천록(動天錄)》·《마슬록(磨蝨錄)》·《통천록(通天錄)》·《호중록(壺中錄)》·《지화록(地華錄)》·《도선 한도참기(道詵漢都讖記)》 등의 문서(文書)는 마땅히 사처(私處)에 간직해서는 안되니, 만약 간직한 사람이 있으면 진상(進上)하도록 허가하고, 자원(自願)하는 서책(書冊)을 가지고 회사(回賜)할 것이니, 그것을 관청·민간 및 사사(寺社)에 널리 효유(曉諭)하라." - 세조실록 7권, 세조 3년 5월 26일 무자 3번째기사 1457년 명 천순(天順) 1년

그럼 이제 두 기록을 비교해보도록 하죠

▶신증동북여지승람 VS 조선왕조실록 신빙성

사학을 조금이라도 공부한 분이라면 당장 이 문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왜냐하면 황해도 해주목 관내는 백이,숙제가 굶어죽은 수양산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옛 고죽군孤竹郡 자리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보면 위 동국여지승람 문구는 단지 전해오는 이야기를 적어 놓은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동국여지승람에 수양산성에 관한 내용으로 적혀 있는 ""세간에 전해 오기를 安含, 元老, 董仲 3인이 산 중에 땅을 택하여 수양산성을 쌓았다고 한다. 또 옛 고죽군의 터가 남아 있다." 문구와 조선왕조실록 세조 3년(1457년) 5월 26일자에 팔도관찰사에게 내린 어명에 나오는 "安含老,元董竣의 三聖記" 문구는 어느 것이 더 신빙성이 있을까?
물어보나 마나이다.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휘황한 이야기를 적은 내용과 조선왕조 사관들이 적은 내용 중 어느 것이 더 신빙성이 있는지는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다.

▶세조의 어명 VS 세간에 전해오는 말의 신뢰성

세조실록에 나오는 세조의 어명은 민간에 이미 安含老, 元董仲이 지은 三聖記가 돌아다니고 있으니 수거하라는 것이고, 수양산성을 쌓았다고 구전에 나오는 安含, 元老, 董仲은 정체불명의 단지 구전에 나오는 사람일뿐이다. 만약 세조실록의 [安含老元董仲三聖記] 문구가 정말로 [安含, 老元, 董仲 3聖人의 기록]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을 수거하라고 어명을 내린 세조나 그 어명을 받은 승정원이나 예조의 관원들은 한자도 읽을 줄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게 말이 되는가? 결론은 명백하다. 安含老, 元董仲이 지은 三聖記는 조선시대에 현존하고 있었다. 이에 대하여는 더 이상 왈가왈부 할 것이 없다.

▶70년이나 후에 쓰인 신증동국여지승람

- 세조실록 7권, 세조 3년 5월 26일 무자 3번째기사 (1457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중종(中宗) 25년(1530년)

위서론자들의 핵심 논점은 '환단고기'가 최근에 저술된 책이라는 것이며 위서라는 주장인데, '세조실록'의 기록은 '삼성기'가 그 당시에 이미 존재하였음을 확인해 주고 있다. 더욱이 다른 어떤 역사 기록보다 신뢰도가 높은 조선왕조실록 '세조실록'의 기록을 부정하고 70년이나 후에 쓰인 '신증동국여지승람'을 근거로 하여 위서 운운하는 것은 결코 성립할 수 없다.

▶세 성인의 기록이라면 그 일을 알려야지 왜 금지시키나?

만약 세조실록 3년조에 나오는 [安含老元董仲 三聖記] 문구가 정말로 [安含, 老元, 董仲 3 聖人의 기록]이라는 뜻이라면 安含, 老元, 董仲 3 聖人의 기록은 마땅히 민간에 전파하여 그들의 위대함을 알리고 그런 위대한 성인에 관한 서책을 민간이 많이 읽고 본받도록 권장해야지 "마땅히 사처에 간직해서는 안되니, 만약 간직한 사람이 있으면 진상하도록 허가하고, 자원하는 서편을 가지고 回賜할 것이니, 그것을 관청 민간 및 사사寺社에 널리 효유하라." 이런 문구의 어명이 내릴 일이 아니다.



▶혼동이 생길 여지가 있으면 몇 사람이라고 명시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안함, 원로, 동중'이라는 인명이 있고, '세조실록'에 '안함로원동중삼성기'라는 기록이 있다. '세조실록'에서는 '문태, 왕거인, 설업 등 세 사람이 쓴 책'이라는 구절처럼 이름을 나열할 때 몇 사람인지 혼동이 생길 여지가 있다면, 몇 사람이라고 명시하였다. 따라서 '안함로원동중삼성기'라는 기록은 '삼성기'의 저자가 안함로와 원동중이라는 것을 나타낸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표훈과 안함은 신라십성,세조실록의 그 나열



표훈과 안함은 신라 십성이다. 신라 때 이름난 승려 10사람을 일컫는 말로 아도(阿道/我道) ·염촉(厭觸) ·혜숙(惠宿) ·안함(安含) ·의상(義湘) ·표훈(表訓) ·원효(元曉) ·혜공(惠空) ·자장(慈藏) ·사파(蛇巴)를 일컫는다

환단고기에는 표훈(表訓)과 안함(安含)이 나온다. 안함은 안함로로써 삼성기를 지었고 표훈은 태백일사에서 인용하고 있다. 당연히 세조실록에 나오는 표훈과 안함은 바로 '신사 십성' 두분을 나열한 것이다. 안함이 안함로老다. 老는 나이든 분들에게 붙이는 호칭으로 추정가능하다.


출처: http://band.us/#!/band/59634353/post/7270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만 되는 고급정보-서적, 자료 무료 증정무료 대여합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셔서 내용을 잘 살펴보신 후에,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http://blog.daum.net/ilsimsycheonzoo/15978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