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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태백일사에 나오는 표훈천사와 경덕왕 이야기

by 바로요거 2016. 11. 4.

환단고기 태백일사에 나오는 표훈천사와 경덕왕 이야기


천상을 넘나들은 표훈천사와 경덕왕

▶표훈 : 생몰년 미상. 신라 경덕왕 때의 승려.

화엄종(華嚴宗)의 고승이다. 의상(義湘)의 10대제자 중 1인이며, 신라10성(新羅十聖) 중 1인이다.

674년(문무왕 14)에 황복사(皇福寺)에서 의상으로부터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와 『화엄경』을 배운 다음, 의상에게 “나는 여러 연(緣)으로 이루어진 존재, 여러 연은 나로써 연을 이루었네. 연으로 이루어진 나이기에 체(體)가 없고, 나를 이룬 연에도 성(性)이 없네(我是諸緣所成法 諸緣以我得成緣 以緣成我我無體 以我成緣緣無性).”라는 시를 지어 바쳤다. 이 시를 「오관석(五觀釋)」이라고 하는데, 이로써 스승으로부터 법(法)을 인가(認可)받았다고 한다.

그 뒤 김대성(金大城)이 창건한 불국사(佛國寺)에 머무르면서 『화엄경』을 강하였고, 동문인 능인(能仁)·신림(神琳) 등과 함께 금강산에 표훈사(表訓寺)를 창건하여 초대 주지가 되었다.

특히, 그는 천궁(天宮)을 자유롭게 내왕하였다고도 하는데, 경덕왕의 청을 받고 천제(天帝)에게 태자를 낳게 하여 달라고 부탁한 설화는 유명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표훈 [表訓]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천상을 넘나들은 표훈천사와 경덕왕

경덕왕(景德王)은 옥경(玉莖)의 길이가 여덟 치나 되었다. 아들이 없어 왕비(王妃)를 폐하고 사량부인(沙梁夫人)에 봉했다. 후비(後妃) 만월부인(滿月夫人)의 시호(諡號)는 경수태후(景垂太后)이니 의충(依忠) 각간(角干)의 딸이었다.

어느 날 왕은 표훈대덕(表訓大德)에게 명했다. "내가 복이 없어서 아들을 두지 못했으니 바라건대 대덕은 상제(上帝)께 청하여 아들을 두게 해 주오." 표훈은 명령을 받아 천제(天帝)에게 올라가 고하고 돌아와 왕께 아뢰었다. "상제께서 말씀하시기를, 딸을 구한다면 될 수 있지만 아들은 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왕은 다시 말한다. "원컨대 딸을 바꾸어 아들로 만들어 주시오." 표훈은 다시 하늘로 올라가 천제께 청하자 천제는 말한다. "될 수는 있지만 그러나 아들이면 나라가 위태로울 것이다." 표훈이 내려오려고 하자 천제는 또 불러 말한다. "하늘과 사람 사이를 어지럽게 할 수는 없는 일인데 지금 대사(大師)는 마치 이웃 마을을 왕래하듯이 하여 천기(天機)를 누설했으니 이제부터는 아예 다니지 말도록 하라." 표훈은 돌아와서 천제의 말대로 왕께 알아듣도록 말했건만 왕은 다시 말한다. "나라는 비록 위태롭더라도 아들을 얻어서 대를 잇게 하면 만족하겠소." 이리하여 만월왕후(滿月王后)가 태자를 낳으니 왕은 무척 기뻐했다.

8세 때에 왕이 죽어서 태자가 왕위에 오르니 이가 혜공대왕(惠恭大王)이다. 나이가 매우 어린 때문에 태후(太后)가 임조(臨朝)하였는데 정사가 다스려지지 못하고 도둑이 벌떼처럼 일어나 이루 막을 수가 없다. 표훈 대사의 말이 맞은 것이다.

혜공왕은 이미 여자로서 남자가 되었기 때문에 돌날부터 왕위에 오르는 날까지 항상 여자의 놀이를 하고 자랐다. 비단 주머니 차기를 좋아하고 도류(道流)와 어울려 희롱하고 노니 나라가 크게 어지러워 졌다. 혜공왕 3년(767년)에는 천구(혜성)가 동루 남쪽에 떨어졌다. 그 머리는 마치 항아리 같았고 꼬리는 3자쯤 되고 빛깔은 타오르는 불꽃 같았고, 천지가 진동하였다. 혜공왕(惠恭王) 4년 7월 3일에 대공(大恭) 각간(角干)의 적도(賊徒)가 일어나자 왕도(王都) 및 5도(道)·주군(州郡)의 도합 96각간들이 서로 싸우게 되어 크게 어지러워졌다. 대공 각간의 집이 망하매 그 집에 있던 보물과 비단 등 가재(家財)를 왕궁(王宮)으로 옮겼다. 신성(新城)의 장창(長倉)이 불에 탔으므로 역당(逆黨)의 보물과 곡식 중 사량리(沙梁里)·모량리(牟梁里) 등에 있던 것을 또한 왕궁으로 실어 날랐다. 난리는 석달이 지나서야 그쳤다.

혜공왕 16년 2월, 왕이 어려서 즉위하여 장성하면서 음악과 여색에 지나치게 빠져 수없이 돌아다니며 놀매 기강이 문란하고 재이(災異)가 거듭 나타나자 인심이 이반하고 사직(社稷)이 위태롭게 되자, 이찬 김지정(金志貞)이 반란을 일으켜서 무리를 모아 궁궐을 에워싸고 공격하였다. 4월에, 상대등(上大等) 김양상(金良相)과 이찬 김경신(金敬信)이 병력을 일으켜 김지정 등을 죽였으나, 왕과 후비(后妃)는 난병에게 해를 입었다. 표훈 이후에는 신라에 성인이 나지 않았다.

출처 : 삼국유사

▶수서령대상이 된 <표훈삼성밀기> : 조선왕조실록

세조 7권 3년 5월 26일 (무자)
/ 팔도 관찰사에게 고조선비사 등의 문서를 사처에서 간직하지 말 것을 명하다

○諭八道觀察使曰 古朝鮮秘詞, 大辯說, 朝代記, 周南逸士記, 誌公記, 表訓三聖密記, 安含老元董仲三聖記, 道證記智異聖母河沙良訓, 文泰山王居仁薛業等三人記錄 修撰企所 一百餘卷 動天錄, 磨蝨錄, 通天錄, 壺中錄, 地華錄, 道詵 漢都讖記 等文書 不宜藏於私處 如有藏者 許令進上 以自願書冊回賜 其廣諭公私及寺社 팔도 관찰사에게 유시하기를, “고조선 비사,·대변설,·조대기,·주남일사기,·지공기,·표훈삼성밀기,·안함노.원동중 삼성기,·도증기, 지리성모, 하사량훈, 문태산.왕거인.설업 등 삼인 기록 수찬기소의 1백여권과 동천록,·마슬록,·통천록,·호중록,·지화록,·도선 한도참기 등의 문서는 마땅히 사처에 간직해서는 안되니, 만약 간직한 사람이 있으면 진상하도록 허가하고, 자원하는 서책을 가지고 회사할 것이니, 그것을 관청·민간 및 사사에 널리 효유하라.”하였다.



☞천상을 넘나들은 표훈천사와 경덕왕 이야기, 태백일사에 나오는 표훈천사 http://band.us/#!/band/59634353/post/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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