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역사의 현주소[한민족역사찾기]
월간개벽 2010.03월호
1, 여는 글
대한大韓의 비전
great Corea 깨어나라 대한의 혼이여!
앞으로 우주의 질서가 바뀐다. 한마디로 우주의 가을이 온다!
그 변화의 중심에 가을의 정신,
곧 뿌리로 돌아가 열매문화를 여는 원시반본原始返本의 이념이 있다.
가을에는 뿌리 기운을 받아야 생명의 순환을 지속할 수 있다.
잃어버린 우리 역사와 문화의 혼을 되찾아야
세계일가 통일문화를 여는 세계시민으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
“그대가 어떤 종교를 신앙하고 어떤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하든지,
반드시 자기 존재의 근본인 조상의 뿌리와 민족의 시원,
그리고 그들이 어떤 정신세계에서 살다 갔는가 하는
민족의 정통성을 명백하게 알아야만 한다.
그것이 자기 존재의 본질을 알고,
자신을 완성시키기 위해 무엇보다 선결해야 할 요건이다.
역사의 근본을 알면 아무리 작은 개인이라도
자신이‘역사적인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제 한민족의 역사개벽을 앞두고
인류역사의 정의를 총체적으로 바로잡아
그 원형을 되찾고 민족의 국통을 바로 세워야 한다.”
(안경전 지음, 『개벽 실제상황』중에서)
역사의 정의가 바로서는 그날을 바라보며
나라는 망해도 겨레는 망하지 않아야 하며 겨레가 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역사를 잃지 말아야 한다.(박은식)
나라는 형체와 같고 역사는 혼과 같으니 그 혼을 잃고서 형체가 보존될 수 있겠는가!(행촌 이암)
동방 한국은 이 지구촌에서 가장 오래되고 경이로운 역사를 간직해온 나라다. 그와 동시에 전대미문의 과거단절도 경험한 나라다. 애석하게도 그것은 능동적 역사발전이나 역사혁명에 의한 단절이 아니라 외세의 침탈과 인위적인 역사말살에 의한 비정상적 단절의 악순환이었다. 그러한 까닭에 우리 민족에게는 그 어느 민족보다도 역사에 대한 강렬한 애착과 열정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국사교육을 포기한 한국정부
역사는 우리 사회에서 관심이 높은 분야지만 정부정책은 국민의 기대와 달리 퇴보하고 있다. 그 단편적인 예가 국사교육이다. 2009년 개정 교육과정에서 고등학교 국사를 선택과목으로 전환함에 따라 역사교육을 안 해도 되는 지경이 되었다. 가뜩이나 중국과 일본에 의한 역사왜곡으로 한중일 3국의 역사전쟁이 치열한 이때에 국사교육을 포기한다는 것은 무장해제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국민에게 역사교육을 하지 않는 것은 마치 부모가 자식을 낳아 놓고 성을 안 가르쳐 주는 것과 같다. 역사를 모르는 것은 우리들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어떻게 해서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며, 집단적 기억상실증에 걸린 환자들이 암흑 속을 헤매며 자신들의 신원을 찾는 것과 같다.
역사는 민족 형성과 존립의 기본요건이다. 세계사 속에 우리 역사가 자리 잡지 못하면 세계무대에서 우리의 존재 가치가 축소되고 부정될 수밖에 없다. 이는 다른 어느 민족도 마찬가지다.
역사의식 없는 미래비전이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이런 첨단과학 세상에 우리가 왜 케케묵은 고대 역사를 알아야 되느냐? 그것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데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역사를 모르면 미래가 없다.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은 과거의 역사에서 비롯된 유산이다. 과거를 모르고서는 현재를 제대로 진단할 수 없으며 미래를 준비할 수도 없다. 아무리 지구촌 정세를 잘 아는 국제정치의 대가라 할지라도, 우리 한민족의 과거 역사를 모르고서는 이 땅의 현실 문제를 제대로 끌러낼 수 없다.
고대 뿌리역사를 찾아야 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근본정신과 미래 가치가 그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의 현실을 극복하고 복되고 희망찬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본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만 한다.
국통을 말살당한 대한
이제 한민족사의 체계를 바르게 세우기 위해서는 역사를 잃어버리게 된 경위를 낱낱이 밝혀 단절된 국통國統과 민족의 정기를 바로잡아야 한다. 우리 역사가 미궁에 갇혀버린 근본적인 이유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외적의 침입이다. 역사상의 수많은 전란과 병화로 인하여 고유사서들이 소실되었다.
둘째, 발해 망국 이후에 사대주의에 빠진 유학자들이 자기 역사를 부정하고 왜곡을 자행했으며, 김부식이 신라 중심의 삼한 정통론을 세우면서 대륙의 역사가 축소되고 역사인식이 한반도로 갇혀버리고 말았다. 그 뒤를 이어 이황이나 율곡 같은 내로라하는 유학자들마저 있지도 않았던 기자조선의 역사를 창조하기까지 하였다.
셋째, 근대사학이란 허울 좋은 슬로건으로 우리역사를 뿌리부터 말살한 일제와 이에 협력하여 부화뇌동한 강단사학의 심각한 폐해 때문이다.
조선총독부의 조선사편수회에서 수사관보修史官補로 부일附日하던 이병도와 신석호 같은 인물들이 광복 후 역사학계의 핵심이 되면서 한국사는 부정적 시각으로 점철된 일제식민사학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이들은 주체성이 결여된 역사편찬으로 우리 상고사를 폐허로 만들었다. 이뿐 아니라 주체적 역사정립을 위해 평생을 몸 바친 애국선열과 일부 양심적인 역사가들을 사문난적, 국수주의자, 아마추어 역사가로 매도하며 제도권 밖으로 밀어내었다. 최근에 와서 왜곡된 내용이 부분적으로 고쳐지긴 했지만 일제의 식민사관의 독소가 여전히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자
광복 이후 우리나라 교육을 맡은 핵심 구성원은 일제강점기에 사범교육을 받고 황국신민화 교육과 민족말살정책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광복을 했지만 우리의 현실은 사람만 바뀌었을 뿐 일제식민통치의 연장이었던 것이다.
프랑스는 국권을 회복한 뒤 과거에 나치에 협력한 사람들을 단죄하여 청산하고 역사의 정의를 바로잡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광복 후 친일파 정리를 못한 탓에 오히려 그들이 권력과 학문의 중심에 앉아 득세를 하고 그 후손들까지 부귀영화를 누리는 모순된 역사를 만들었다.
역사의 정의가 바로잡히지 않음으로 인해 식민사관의 그늘에 가려진 우리 역사는 무려 4천년이 넘는 기억이 지워져 2천년이 되었다. 드넓은 대륙강토는 압록강 너머로 사라져 오직 반도의 벼랑 끝에 매달려 살게 되었다. 또한 외래사상을 통치수단으로 삼고 생활하면서 고유의 정통문화와 뿌리정신, 주체성, 자주성까지 상실하고 자기부정과 자기비하, 패배주의에 빠지고 말았다. 마침내 우리 역사는 세계역사의 중심자리에서 추락하여 변두리 역사요 출처불명의 역사라는 누명을 쓰게 되었다.
이 땅의 역사는 병들어 있다. 역사가 병들어서 정신까지 병들어 있다. 우리 역사의 뿌리를 찾는다는 것은 혼을 찾는 것이다. 내가 어떤 종교를 믿든, 내 삶의 진실을 알아야 하고 우리들 삶의 과거를 바르게 보아야 한다. 대한의 시원 역사를 아는 것은 우리 문화사상의 원류를 바탕으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여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힘의 원천을 얻는 일이다.
우리가 지금 대한의 역사에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뿌리를 찾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중국과 일본에 의한 역사 침탈에 두 손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를 비롯한 고대사를 우리 역사에서 빼야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뿌리 없는 민족이 되는 것이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더 늦기 전에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고 알아야 할 의무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
증산도 본부, 월간개벽 2010.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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