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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역사문화/한민족의 역사문화

단군조선과 중국의 국경지대

by 바로요거 2009. 9. 1.

 

 단군조선과 중국의 국경지대를 알아보자.


'요동'이라는 말은 중국인들이 그들의 영토를 기준으로 하여 가장 동쪽 끝에 위치한 지역을 의미하였다. 오늘날의 극동(極東)이라는 말과 같은 뜻을 지닌 말이었다. 그러므로 중국의 동쪽 국경이 이동하면 요동의 위치도 변하였던 것이다.요령성 요양시 지역을 흐르는 요하(遼河)는 오랫동안 만리장성 부근 난하를 가르켰다. 그런데 후대에 이름이 바뀐 것이다.

오늘날의 요동(遼東)은 요하(遼河 또는 요수(遼水))의 동쪽을 지칭하는데 고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중국의 여러 문헌에는 지금의 '난하( 河)'가 요하(요수)로 기록되어 있고, ≪사기≫에는 난하 동부유역에 있는 갈석산(碣石山) 지역이 요동으로 기록되어 있다.이로 보아 고대의 '요하'는 중국 북경 근처에 있는 지금의 '난하'였고, 고대의 '요동'은 '난하유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즉 그곳은 단군조선과 중국의 국경으로서 고대에 중국 영토 가운데서 가장 동쪽 끝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 단군조선과 중국의 국경지대


당시의 서한의 요동군은 지금의 난하 하류유역에, 즉 요서 서부에 자리하고 있었으므로 고구려가 진출한 요동군은 지금의 요동이 아니라, 중국 북경 근처였다.현재 통용되는 한국사 개설서에는 가장 강성했던 시기의 고구려 영토가 북경 근처가 아닌, 요령성 요양시 지역을 흐르는 지금의 요하(遼河)까지였다고 서술되어 있는데 그것은 고대의 '요동'을 지금의 지명과 동일한 곳으로 잘못 인식한 결과가 빚어낸 오류인 것이다.그리고 현행 국사 교과서는 단군조선의 역사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단군조선의 영토도 축소되어 있는 상태다.


* 편집 : 사후의 칼럼 몇가지를 붙여 편집하였으며 대륙을 지배했던 환국이후 고려까지의 강역을 중심으로 한 것입니다

지도로 본 역사강역

동북아시아지역의 지도를 중심으로 한(韓)민족의 고대국가와 화하족의 강역을 살펴보고 간단하게 역사를 소개합니다

사서에 나오는 배달국은 환국시대에 편입했으며 삼국의 초기위치와 일본열도는 coo2.net의 글을 참조했고 가야는 제 나름대로 설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지도에 나오는 국명에서 한(韓)민족의 동이족(東夷族)계열은 붉은색 글자로 화하족(華夏族)계열은 녹색으로 했습니다.

자주 인용되는 대륙의 성(省)지명을 기억할 수 있게 지도를 올립니다


-대륙의 성(省)지명


대륙의 요녕에서 한(韓)민족의 선조가 만든 홍산문명(紅山文明)이 발견되었는데 화하족(華夏族)의 앙소문명(仰韶文明)보다 빠른 문화이다.

요녕지역이 동이족(東夷族)의 활동중심지였고 화하족보다 먼저 환국(桓國)이라는 고대국가를 형성하는데 BC.6000~5000년대의 흥륭와(興隆窪)와 사해(査海)를 기반으로 BC.3000년의 우하량(牛河梁), 하가점(夏家店)으로 발전하고 요동반도의 소주산(小朱山)과 산동반도의 대문구(大汶口), 용산(龍山)문화로 전개된다.

우하량의 석관묘에서 여신상과 빗살토기, 곡옥(曲玉)이 발견되고 동산취(東山嘴)에서 석축제단(石築祭壇)이 발견된다.

요녕에 있던 환국의 동이족(치우)이 세력을 확장하여 산동반도와 하남으로 진출하는데 탁록(琢鹿)에서 화하족(헌원)을 물리치고 회대(淮垈)지역에 청구국(靑丘國)을 세우고 용산문화를 형성한다.

그러므로 <환단고기>에 나오는 환국의 강역은 흥륭와, 사해. 신락(新樂), 홍산으로 연결되고 청구국은 대문구, 용산으로 이어지는 강역입니다.

이 시기에 한반도 농포동(農圃洞)에서 빗살토기와 인물상이 출토되는데 대륙의 동산취유물과 비슷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