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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역사문화/한민족의 역사문화

[청구국의 강역]

by 바로요거 2009. 9. 1.

 

[청구국의 강역]

- 청구국시대의 지명도

환국시대의 14대 치우(蚩尤)환인이 제후국의 반란을 격퇴하고 대륙의 하북성과 산동성지역에 청구국(靑丘國)을 만듭니다

요녕지역의 홍산(紅山)에 있던 환국(桓國)이 점차적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환국의 분파들이 산동과 하남성 그리고 강소, 안휘와 절강지역으로 진출하여 환국의 제후국을 건설합니다.

그런데 복희씨(伏羲氏), 신농씨(神農氏)를 화하족의 사서에서는 자신들의 선조라고 하는데 거짓기록으로 한(韓)민족의 조상입니다.

환국시대의 14대환인 자오지(치우)가 제후국(유망)의 반란을 평정하자 유망의 아들 헌원(軒轅)이 치우에게 다시 도전을 하는데 치우는 탁록(琢鹿)에서 승리하여 헌원을 서쪽지역으로 몰아냅니다.

이렇게 대륙의 하북성, 산동성과 하남성, 강소성등 전지역으로 강역을 확장하여 청구국을 건국하고 중심에 신시를 만드는데 그곳을 공상(空桑)지역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헌원과의 탁록전투 이후에 치우가 연(宴)과 회(淮),대(垈)를 점령하고 예(芮),탁(琢)지역에는 군대를 주둔시켜서 헌원을 방어하게 합니다.

연은 연주(宴州)로서 산동성과 하북성의 경계지역으로 황하 하류지역이며 회,대는 회수(淮水)와 태산(泰山)지역으로 태산은 산동성에 있는데 동악이고 회수는 하남성, 안휘성, 강소성을 지나 황해로 들어가는 강이다

한편 치우가 헌원을 평정한 뒤 도읍한 곳을 <태백일사>에는 하남성의 진류(陳留)이며 지금의 회양시(淮陽市)라고 말하고 산동성을 청주(靑州) 또는 청구(靑邱)라고 했는데 청구국에서 유래 된 것으로 지금도 산동지역에는 '청'자 지명이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치우가 개척한 청구국의 강역은 대륙의 태행산맥(太行山脈) 동쪽의 화북평원임을 알 수 있으며 사서에 나오는 동이족(東夷族)의 활동지역과 일치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북지역의 산융(山戎), 북적(北狄), 동호(東胡), 숙신(潚藎)을 말하고 산동지역에는 래이(萊夷), 우이(禑夷), 도이(島夷), 풍이(馮夷), 양이(揚夷)가 있었고 회수지역에는 서이(徐夷), 회이(淮夷)가 있었습니다

치우의 청구국은 요녕지역에서 헌원을 물리치고 회대(淮垈)지역으로 진출했으며 예(芮)지역을 봉쇄해서 헌원을 방어하고 영토를 확대해 간 것입니다.

예는 산서성과 하남성의 접경지역이고 황하와 위수가 합류하는 곳으로 예국(芮國)이 있었고 지금은 예성(芮城)이 있다.

치우시대의 지명들을 살펴보면 지금의 북경지역에 탁록과 탁수(琢水)가 있고 무종산(無終山)이 있습니다. 계속해서 산동성의 임치시(臨淄市)지역에 환성(桓城)과 환태(桓台)가 있었고 지금도 환대시(桓垈市)로 남아있으며 산동반도의 래이가 활동하던 곳에 래주시(萊州市)가 있다.

그리고 '청'자 지명으로 청구(靑丘), 청산(靑山), 청도시(靑島市)가 있으며 하남성 개봉시(開封市)가 공상이며 남으로 허창(許昌), 회양(淮陽)이 있다. 이렇게 '청'과 '환'이 들어가는 지명들이 하북평야에 많이있고 이곳이 청구국의 활동지역이었습니다.

- 치우시대의 묘 분포도

그리고 치우의 묘(墓)가 옛 지명으로 수장현(壽張縣)이고 지금의 동평(東平)의 문상현(汶上縣)에 있고 동평의 서쪽 동군(東郡)에는 고신씨(高辛氏)의 묘가 있으며 지금의 곡부(谷阜)에는 소호씨(少昊氏)의 묘가 있고 서화(西華)의 동쪽 항성(項城)에는 기자(箕子)의 묘가 있습니다.

또 한 지금의 진성(晉城) 서쪽에 황릉(黃陵)이 있는데 헌원의 묘가 있고 요구(姚丘)지역은 순(舜)의 출생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대륙의 태원(太原), 진성(晉城), 서화 그리고 항성지역을 사이에 두고 동부지역은 치우의 강역이었고 후에 한(韓)민족의 고구려, 백제가 화하족과 대치하면서 싸우던 격전지였습니다

치우에 대해서 화하족의 사서는 치우의 능에서 붉은 연기가 날리면 전쟁이 일어날 조짐이라고 믿었고 또 깃발모양을 한 혜성을 치우기성(蚩尤旗星)이라 하면서 치우를 대륙에서는 군신으로 추앙을 하면서 두려워했던것 입니다.

그리고 사서도 치우를 구려(九黎)의 천자(天子)라 하므로 동이족(東夷族)이란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치우와 헌원은 천자와 제후의 전쟁이었으며 치우는 산동지역에 청구국을 세우고 지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