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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역사문화/환단고기*韓의뿌리

단재 신채호가 지하에서 울고 있다

by 바로요거 2009. 2. 26.

 

단재 신채호가 지하에서 울고 있다

월간개벽 2003.10월호 http://www.greatopen.net


 일제 때 우리 역사를 지키기 위해 악전고투한 역사가들을 민족사학자라 하여 누구보다도 존경하고 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일제는 단군을 말살하려 들었으나, 결국 말살하지 못하고 지역민의 시조라고 주장할 수밖에 없었다. 저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한국인의 뇌리에서 단군을 지워버리려 했었는데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쫓겨났던 것이다. 한국인이 단군을 잊지 않았다는 것은 한국인이 결코 일본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제 때 자칫하면 일본인으로 동화同化될 뻔하였다. 만일 그랬더라면 우리는 필리핀이나 인도처럼 자국어를 쓰지 못하고, 자국사를 알지 못하고 남의 말, 남의 글 그리고 일본사를 우리 역사로 알 뻔하였다. 이러한 일제의 문화침략에 정면으로 맞선 분이 바로 민족사학자였으니, 그들은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외로운 항일 역사전쟁을 했던 것이다. 그 분들 중에 한 분이 단재 신채호(丹齋 申采浩, 1880∼1936) 선생이다.
 
 단재 선생은 단군의 역사를 지키기 위해 항일독립운동을 하다가 차디 찬 여순 감옥에서 옥사하셨다. 그런 단재 선생이 말하기를 “우리 역사는 남이 망친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손으로 망쳤다”고 하면서 통탄하였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한번 알아보기로 하자.
 
 우리 역사는 내란이나 외침보다도 우리역사를 쓴 사람들에 의해 더 많이 없어져 버렸다. 특히 그들은 귀신도 하지 못하는 땅 옮기기의 재주를 부려 아사달을 떠다가 황해도 구월산으로 갖다 놓음으로서, 우리의 강역을 압록강 이남으로 줄이고 더 크지도 말고 더 작지도 말라는 식의 역사를 만들었다.”
 
 단재는 또 ‘조선시대 사대주의 역사가들이 우리 강역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성까지도 문약했던 것으로 착각하였다’고 비판하였다.
 
 “임금을 높이고 백성을 낮추는 소위 춘추필법을 배운 조선시대 사람들은, 삼국시대의 사람들까지도 문약에 빠지고 편안히 소국에 살기를 바랐던 사람들처럼 그려냈다. 그러나 우리는 본래 무강한 민족이었다.”
 
 지금 우리 역사책을 읽어보면 우리 민족이 처음부터 문약에 빠져 외적과 싸워서는 한번도 이기지 못하고 백전백패하는 패배자의 역사로 그려 놓았다. 무강武强하였던 우리 민족의 본래 모습은 어디로 가고, 대국에 아첨하고 우리끼리 서로 헐뜯고 싸우는 한심한 민족으로 그려놓은 것이다. 심지어는 무강武强이란 단어 자체를 잊어버리고 문약文弱이란 말만 알게 되었다. 그러니 누가 조국을 진정 사랑하겠으며 조상에게 감사하다고 절을 하겠는가.
 
 요즘 조국을 떠나 캐나다로 이민 가겠다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보도를 읽고, 우리나라는 벌써 망했다고 생각했다. 왜냐 하면 홍암 나철(羅喆, 1860∼1916) 선생이 다음과 같이 말한 바와 같기 때문이다. “죽고 사는 것은 몸뚱이의 죽고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죽고 사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증산도 월간개벽 2003.10월호http://www.greatope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