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易)의 세가지 뜻
역이란 천지의 도를 운행케 하는 원인자인 心과 같습니다.
역에는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變易(변화한다)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주 만유는 일순간도 쉼이 없이 운동하고 변화하고 있습니다.
현대 과학에서도 밝히듯이
우주는 역동성을 가지고 움직이며 변화합니다.
거시세계는 항상 일정한 틀을 가지고 운행함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습니다.
모든 별은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일순도 쉼이 없이 운행하고 있습니다.
미시세계인 아원자 세계도 역시 운동과 변화의 연속성 속에 있습니다.
우리가 오감으로 느끼는 세상은 어느 때는 정지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내가 정지해 있는 것 같아도 나를 싣고 있는 어머니 지구는 일순도 쉼이 없이 광활한 우주의 시공의 바다를 운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나를 이루는 나의 세포 하나하나는 잠깐 사이에도 생멸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정된 오감(안이비설신)으로 이 우주를 해석 하려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곤 합니다.
인간이 위대하다고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하늘을 새처럼 날수도 없고, 힘이 곰처럼 새지도 않으며,
개처럼 냄새를 맡을 수 없으며 ,독수리처럼 멀리 보지도 못하며,
철새처럼 자기 고향을 찾지도 못하며,
쥐처럼 위험을 미리 느끼지도 못합니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 보다 나은 것이 거의 없습니다.
두발로 걷는 것, 두 손을 쓰는 것, 잔머리 굴리는 것으로 만물의 영장이 되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우주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라고 한다면,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는 우주와 인간의 관계성의 문제를 풀고
인간으로서 가야할 길을 정해야하는 것일 것입니다.
우주 안에서 나의 존재의미를 찾고 우주적인 인간으로 화해 나가는 것이
인간으로서 가야할 길인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존재들 중 가장 변화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변화를 가로막는 요인은 인간의 인식작용이 항상 과거에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간의 인식작용이란 사물이 있고 그것과 감응하여 인식작용이 일어나고
그것은 기억되어지고 다음 이해되고 느끼고 통하는 순서를 거칠것입니다.
인간의 기억이란 그것이 과거의 산물이지, 현재성은 아닙니다.
인간은 현재에 있지만 마음은 항상 과거의 사실들 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것들을 떠올리며 희노애락등의 다양한 감정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과거는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되돌릴 수 없습니다.
과거는 반성은 하되 집착할 필요는 없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는 서로 인과의 관계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속에서 이 인과의 관계를 끊을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고 항상 저 푸르른 창공을 훨훨 날고 싶은 것과 같은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마음이란 실체가 없어서 만지지도 잡을 수도 없습니다.
증산도 개벽지 4월호에 보면(105~106 page)
현대 과학자들이 인간의 정신작용은 과연
인간의 두뇌의 자발적인(?)작용인가? 라는 의문을 가지고
연구한 결과, 결론을 이렇게 지었다고 합니다.
“뇌는 마음속에 존재하는 일련의 에너지 패턴을 받아들이는 수신기에
지나지 않는다”.
또 “인간 개개인의 마음은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에 연결된 컴퓨터 터미널과도 같다”.
“자신의 의식은 단지 인류 모두의 공통된 의식에 뿌리를 둔 데이터베이스의 개인적 표현일 뿐이다.”라고 하였다는군요.
이로 볼 때 “인간의 두뇌는 마치 안테나와 같은 구실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외부로부터 정보가 오면 반응할 뿐 스스로 인식작용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의 작용이란 반드시 外物을 전제로 가능합니다.
만약 우주에 나 혼자만 있다면
과연 나는 지금처럼 인식 작용을 할 수 있을까요?
한마디로 불가능합니다.
존재라는 개념은“관계한다”라는 개념이 더 적절합니다.
독존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석가 부처께서도 12연기로써 우주 만유의 연관성을 말씀하십니다.
또“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음으로 이것이 있다.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하고,저것이 멸함으로 이것이 멸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로 보면 연관성이 없는 존재는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연관성으로 보면 이는 理입니다. 理란 변하지 않는 법칙(不易)입니다.
또 동정과 변화의 끝이 없는 것이 만물의 속성입니다.
易은 이러한 우주만유의 동정,변화의 끝없는 모습을 變易이라는 개념으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둘째 역은 불역(不易)의 뜻이 있습니다.
우주는 변화로써 본질을 삼지만 변치 않는 면이 있습니다.
그것을 理혹은 道라합니다.
이는 만유의 규칙성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지구는 하루 밤낮이 있고 춘하추동 四時가 있습니다.
인간과 만물을 생하고 멸하는 소강절 선생의 원회운세라는 규칙성도 있습니다.
참고사항
元:10800*12=129600년 元이란 으뜸이라는 뜻이다.
元이란 지구 중심으로 보면 가장 큰 주기성임
會:360*30=10800년
運:30*12=360년
世:30년
여기서 世란 元을 기준으로 보면 한 시간에 해당되며
運이란 원을 기준으로 하루에 해당되며
會란 원을 기준으로 한달에 해당되며
元이란 한주기로 일년에 해당된다.
이러한 규칙은 지구가 존재하는 한은 변치 않을 것입니다.
작게는 태양계도 우리 은하도 우주도 일정한 규칙이 있습니다.
이를 주역에서는 한마디로
一陰一陽之謂道(한번 음하고 한번 양하는 것을 도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일음 일양이라는 일정한 규칙성이 우주만유의 법칙이라는 것입니다.
공간적으로 보면 동서남북, 상하좌우,앞뒤 등의 음양적 모습을 하고 있고,
시간적으로 보면 밤과낯 춘하추동 생장염장이라는 동정과 변화의 질서가 있습니다.
不易이란 우주 만유에 내재된 볍칙 즉 理를 의미합니다.
인간의 본성을 말함에 있어서도
자성이 청정하여 변치 않는 실체인 불가의 佛性(眞如)이라든가,
유가의 天命之謂性(하늘이 명한 것을 일컬어 성이라고 한다)의 性이라고 한 것 등이 이러한 불역의 원리를 인간에 적용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우주는 변화 한다 운동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변화나 동(動)에 집착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변화의 이면에는 변치 않는 것,
혹은 인간에게는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고,
動속에는 靜이 있으며 역시 정 속에 동이 있습니다.
인간의 인식은 이러한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로 역은 쉽다(簡易),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를 易簡(이간)의 道라 합니다.
역은 인간이 마음의 문호를 열면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공자선생은
근취저신 원취저물(近取諸身 遠取諸物)하라고 하였습니다.
“가까이는 자신의 몸을 살피고 멀리서는 만물을 살피라”
간단한 문구이지만 공부하는 방법을 제시한 명구입니다.
대저 진리란 멀리 있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나에게서 易의 象(상)이 나타나는 것은 인간은 小宇宙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만물은 역의 드러난 모습이기에 만물의 象(상:기미)을 보면
천지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공부하려고 마음먹으면 천지는 쉽게 우리에게 다가 온다는 것입니다.
또 진리라는 것은 모르면 어렵지만 알면 간단하고 쉽습니다.
이상이 주역에서 말하는 역의 의미입니다.
진리는 항상 인간에게 그 문호를 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안주하려는 마음, 본질적인 무지(無明)가
진리로 향한 길을 막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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