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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꼭 알아야 할 유용하고 세상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차원 높은 정보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본 블로그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을 잘 간파하셔서 끊임없이
인생담론*행복론/인생행로*나침반

음과 양에 대하여

by 바로요거 2008. 4. 4.

 

음과 양에 대하여

 

앞에서 우주변화의 법칙은 주역의 一陰一陽之謂道라 하였는데,

이 우주에 존재하는 만물은  이 법칙을 벗어나서는 존재하지 못합니다.

이를 보통 음양이라 하고 그 본체로 말할 때는“태극”이라고 합니다.

太極이란 가장 작지만 가장 커질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 개념입니다.

우주의 시원으로 보면 시간과 공간이 압축 공약된 자리로,현대물리학의

우주의 태초의 상태인 특이점(만유인력,핵력,약력,전자기력등이 분리되기전의 통일장의자리)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숫자로는 일(一)로 표시합니다.

원래 우주가 완전히 펼쳐진 모습은 十 으로 표시하는데  음(-)과양(ㅣ)의 교차점인 열십자의 중심점이 태극입니다.

十 이란 一에서 출발합니다.

역에서 보통 理(道)의 본체로 말할 때 이 태극이라는 개념을 씁니다.

이 태극에서 우주는 출발하여 태극에서 먼저 陰과陽이라는 두 기운이

생한다고 합니다.

이 음과 양의 두 기운이 양은 동하고 음은 정하여 두 기운이 묘합하면

오행기운을 낳는다고 하였습니다.

오행이란 木 火 土 金 水 입니다.

여기서 陽권에 속하는 것은 木,火이고 陰은 金,水이고 음도 양도 아닌 중성적인 성질을 지닌 것을 土라고 합니다.

오행이란 태극에서 음과 양으로 발전한 천지기운이 더 분화됨을 의미합니다.

오행기운이 돌고 돌아 四時의 질서가 생겨나고

만물이 화생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태극이 천지기운이 막 태동하는 자리라면 이는 有는 아니지만

有의 시작점이고 유가 태동하기 전의 모습을 무극(無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숫자로는 영(제로) ㅇ 이나 十으로 표시합니다.

노자선생이 말씀하신 만물(有)의 시원인 無와 비슷한 개념입니다.

태극은 무극에 뿌리를 박고 있습니다.

無極而太極(무극이태극)이라고  주렴계 선생은 말씀하셨는데,

이는 무극=태극이라는 개념은 아닙니다.

무극이 체라면 태극은 용하는 자리로 체와 용의 관계로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또 태극이 體라면 음양은 用이되고 음양이 체라면 오행은 용이 됩니다.

이렇듯 기준에 따라 체와용은 수시로 바뀔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유가의 우주론의 기초를 세운 분은 공자선생을 비롯한

그 전 분들이시지만(태호복희씨,요,순,우,탕,문,무,주공,공자)

이를 집대성 하신 분은 북송오현과 주자선생이십니다.


동서 고금의 모든 성인 철인 현인들의 사상이란 그것이 진리를 향한 몸부림이지 본래 둘은 아닙니다.

철학은 논쟁을 목적으로 있지 않으며,종교는 서로 배타하라고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시대와 장소와 풍토와 사람이 달라서, 그 진리을 전개하는 방식이

조금 차이가 있을지언정, 천지 부모 안에 거하는 동류인 인간으로서 어찌

그 본래 진리의 세계가 다를 수 있겠습니까?

이는 모두 무지와 이기심의 소치입니다.

지금도 열심히 여기저기서(?) 박치기하며 싸우고 있습니다.

도대체 기준이 없는 세상입니다.

우주와 인간은 왜 존재하는지?

인간과 우주는 어떠한 관계성 속에 있는지?

그러므로 천지 속에 거하는 인간으로서 어떤 방향을 가지고 살아가야하는지?

인간은 이러한 진리를 알 권한이 없고,

인간의 노력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인지?

인간이 모르면 그 누가 알 수 있는 것인지?

그냥 나는 흘러온 대로 흘러가는 데로만 사는 것이 최선의 삶인지?

도대체 그 누구도 답을 주지 않습니다.

석가부처가 자등명(나자신을 등불삼고) 법등명(진리를 등불삼고)하라고

하셨습니다.

삼천년이 지났지만 이 절실한 가르침은 빛을 잃지 않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많은 시간동안 이러한 물음표를 머금고 살아 왔습니다.

요즘은 조금씩 밝아지고는 있지만 아직 체득하기에는 더 많은 시간이

남겨져 있음을 느낍니다.

주자선생은 만약 총명한 사람이 한번 노력해서 얻을 것 같으면

그렇지 못한 사람은 백번이라도 굴하지 않고 노력하면 천지로부터 받은

한계도 극복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그렇다면 선하지 않은 기질도 변화 시킬 수 있습니까?

대답하셨다. 반드시 변화시켜서 되돌려야한다. 만약 남이 한번하면 나는 백번 하며,남이 열 번하면 나는 천번을 한다면 비록 어리석더라도 반드시 총명하게 되고 비록 나약하더라도 반드시 강해질것이다.)

<주자어류 권4 성리1 40조목>

이 구절은 중용 20장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인일능지 기백지 인십능지 기천지 과능차도의 수우필명 수유필강:

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 果能此道矣 雖愚必明 雖柔必强<중용20장>


다음은 퇴계이황 선생이 지은 성학십도 중

주렴계 선생이 지은 태극도설입니다.

여기에는 유가의 우주론의 정수가 무르녹아 있습니다.

제1도 태극도 설

無極而太極, 太極動而生陽, 動極而靜, 靜而生陰, 靜極復動, 一動一靜互爲其根, 分陰分陽兩儀立焉, 陽變陰合而生水化木金土, 五氣順布四時行焉, 五行一陰陽也, 陰陽一太極也, 太極本無極也, 五行之生也, 各一其性, 無極之眞二五之精, 妙合而凝, 乾道成男坤道成女, 二氣交感化生萬物, 萬物生生而變化無窮焉, 惟人也得其秀而最靈, 形旣生矣神發知矣, 五性感動而善惡分, 萬事出矣, 聖人定之以中正仁義, 而主靜立人極焉, 故聖人與天地合其德, 日月合其明, 四時合其序, 鬼神合其吉凶, 君子修之吉, 小人索之凶, 故曰立天地道曰陰與陽, 立之道曰柔與剛, 立人之道曰仁與義, 又曰原始反終故知死生之說, 大哉易也斯其至矣.

朱子曰圖說, 首言陰陽變化之原, 其後卽以人所禀受明之自, 惟人也得其秀而最靈純粹   至善之性也, 是所謂太極也, 形生神發則陽動陰靜之爲也, 五性感動則陽變陰合而生水   火木金土之性也, 善惡分則成男成女之象也, 萬事出則萬物化生之象也, 至聖人定之以   中正仁義, 而主靜立人極焉, 則又有得乎太極之全體, 而與天地混合無間矣, 故下文又   言天地日月四時鬼神, 四者無不合也, 又曰聖人不假修爲而自然也, 未之此而修之, 君   子之所以吉也, 不知此而索之, 小人之所以凶也, 修之索之亦在乎敬 之間而已矣. 敬則   欲寡而理明, 寡之又寡以至於無, 則靜虛動直而聖可學矣.

퇴계선생왈:右濂溪周子, 自作圖拜說, 平巖葉氏, 謂此圖卽繫辭, 易有太極是生兩儀, 兩儀生四   象之義而推明之, 但易以卦爻言, 圖以造化言, 朱子謂此是道理大頭腦處, 又以爲百世   道術淵源, 今玆首擖此圖, 亦猶近思錄以此說爲首之意, 蓋學聖人者求瑞自此而用力於   小大學之類, 及其收功之日而遡極一原, 則所謂窮理盡性而至於命,

所謂窮神知化德之盛者也.


무극(無極)이면서 "태극(太極)"이다.

태극이 동(動)하여 "양(陽)"을 낳는데, 동의 상태가 지극하면

정(靜)하여지고, 정하여지면 "음(陰)" 을 낳는다.

정의 상태가 지극하면 다시 동하게 된다.

한 번 동하고 한 번 정하는 것이 서로 그 뿌리가 되어,

음으로 나뉘고 양으로 나뉘어, "양의(兩儀)" 가 이루어진다.

양이 변하고 음이 합하여 수(水),화(火),목(木),금(金),토(土)를 낳는데,

이 다섯 가지 기(五氣)가 순차로 퍼지어 네 계절(四時)이 돌아가게 된다.

"오행" 은 하나의 "음양" 이고, 음양은 하나의 "태극" 이며

태극은 본래 "무극" 이다.

오행의 생성 시에 각각 그 성(性)을 하나씩 가져서,

"무극의 진(眞)과 이(음양), 오(오행)의 정(精)"이 묘하게 합하여 응결되면

"건도(乾道)"는 남성을 이루고, "곤도(坤道)"는 여성을 이룬다.

두 가지 기(二氣)가 서로 감화하여 만물을 낳고,

만물이 계속 생성함으로써 "변화"가 무궁하게 된다.

오직 인간만이 그 빼어난 것을 얻어 가장 영특하다.

형체(形)가 이미 생기자 정신(神)이 지(知)를 발하고,

오성(五性)이 감동하매 "선악"이  나뉘고 "만사"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에 성인이 "중정(中正)"과 "인의(人義)"로써 이것을 정하고,

정(靜)을 주로 하여 "인극(人極:표준)"을 세웠다.

그러한 까닭에 "성인(聖人)"은 그 덕성이 천지와 합치하고,

그 밝음이 일월과 합치하며, 그 질서가 네 계절과 합치하고,

그 길흉이 귀신과 합치한다.

군자는 이것을 닦으므로 길하게 되고,

소인은 이것을 어기므로 흉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하늘의 도를 세워 음과 양이라 하고,

땅의 도를 세워 유(柔)와 강(剛)이라 하며,

사람의 도를 세워 인과 의라 한다"고 하며,

또 이르기를 "원시반종(原始反終)하면 사생(死生)의 설(說)을 안다"고 한 것이니, 위대하도다 '역(易)'이여! 이것이야말로 그 지극한 것이로다

원시반종:주역계사에 나오는 말로 의역하면 ‘시작과 끝이 하나로 이어지는 순환의 이치’로 볼 수 있다.


주자가 말했습니다.

도설(圖說)의 머리 부분에서는 음양에 의한 변화의 근원을 말하였고,

그 다음으로는 곧  인간의 타고난 것을 밝혔다.

여기 "오직 인간만이 그 빼어난 것을 얻어서 가장 영특하다" 한 것은

순수하고 지극히 선한 성(性)을 말하는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태극이다.


"형체가 생기자 정신이 발하였다"는 것은 양이 동하고 음이 정하여 이루는   것이다.

"다섯 가지 성(五性)이 감동한다" 함은 양과 음이 변하고 합하여 수, 화,     목, 금, 토의 성을 낳는 것을 말한다.

"선악이 나뉘인다"는 것은 건도와 곤도가 남과 여를 이루는 상이다.

"만사가 나온다"는 것은 만물이 화생하는 상(象)이다.

"성인이 중정(中正), 인의(仁義)로 정(定)하고, 정(靜)을 주로 하여

인극(人極:인간의도리,표준)을 세웠다" 한 것에 이르러서는,

태극의 전체를 얻어서 천지와 더불어 간격 없게 합치토록 된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 아래 글에서 다시 천지, 일월, 사시, 귀신이라는 네 가지와 합치되지 않음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주자는 또 말하였다. 

성인은 힘써 닦지 않아도 저절로 된다.

이러한 경지에까지 이르지 못하여 몸을 닦는 것은 곧 군자가 길하게 되는 까닭이다.

이것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그 도리를 거스르는 것은 소인이 흉하게 되는 까닭이다.

닦는 것과 거스르는 것은 역시 "경(敬)"과 "사(肆:방자하다)"의 차이에 있을 뿐이다.

경의 태도를 가지면 욕심이 적어지고 사리는 밝아진다.

욕심을 적게 하고 또 적게 하여 아예 없게 하면,

정할 때에는 허하고 동할 때에는 곧게 나아가게 되어 성인을 배울 수 있다.



위의 것은 염계 주자가 스스로 만든 '도'와 '설'입니다.


  평암(平巖) 섭씨(葉氏)는 말하기를, "이 그림은 [계사(繫辭)]에서 '역(易)에 태극이 있다. 태극이 양의(兩儀)를 낳고, 양의가 사상을 낳았다'고 한 뜻을 미루어 밝힌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다만 [역]에서는 괘효(卦爻)를 가지고 말하였는데, 이 그림에서는 조화(造化)를 가지고 말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이것은 도리의 큰 두뇌가 되는 것이며 백세 도술의 연원이 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지금 이 그림을 머리에 내세우는 것은 역시 [근사록(近思錄)]에서

이 [태극도설(太極圖說)]을 첫머리에 둔 의도와 같은 것입니다.

무릇 성인을 배우는 사람은 근본을 여기서부터 실마리를 찾아 [소학], [대학] 등에 힘을 기울이다가

그 보람을 거두는 때에 이르러 하나의 근원을 끝가지 거슬러 올라간다면,

이것이 이른바 "이(理)를 궁구하고 성(性)을 다하여 명(命)에 이른다"

(窮理盡性而至於命)는 것이고, 이른바 "신묘(神)를 다하고 조화를 알아서 덕이 성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窮神知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