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문제의 해결책을 논의하기 위해 어렵사리 마련된 베이징 6자회담! 회담에 참가한 6개 당사국들은 자국의 이해손실을 저울질하며 총성 없는 전쟁, 치열한 외교전을 펼쳤다.
역사적인 베이징 6자회담에서 당사국들 사이에는 과연 무슨 말이 오갔는지, 또 이번 회담이 한반도의 운명과 세계질서의 향방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는지 본 프로그램을 통해 살펴보기로 한다. (이하 본문발췌)
제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 미국 영국 중국 소련 등 연합국의 수뇌들은 상대를 바꿔가면서 카이로·얄타·포츠담에서 3자회담을 열고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했다. 그로부터 60년 뒤 중국 베이징에서 6자회담이 시작됐다.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사상 처음으로 남북한과 주변 4강이 같은 협상테이블에 앉은 것이다.
회담 첫날
8월 27일 오전 9시, 남북한과 주변 4강이 모여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방안을 논의하는 6자회담이 개막돼, 사흘간의 일정에 들어갔다. 이번 회담은 중국의 적극적인 중재로 가능했다.
셀리그 해리슨 / 前 워싱턴 포스트 기자, 세기재단 연구원 “중국은 전쟁을 방지해 피난민이 밀려드는 것을 막고자 한다.”
박명림 /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중국이 왜 적극중재에 나섰는가 하는 것은 바로 크게는 동아시아의 평화, 더욱 중요한 것은 북핵위기를 제거함으로써 일본의 핵화는 물론 미국의 동아시아 MD 추진 명분을 제거하려고 했다.”
6개국은 인사말에 이어 기조연설을 통해 회담에 임하는 기본 입장과 북핵문제의 해결방안을 제시했다. 북한과 미국은 기조연설을 하는 동안 감정이 매우 격앙된 것으로 알려졌다.
오후 3시경, 중국의 마지막 기조연설이 끝난 뒤 김영일과 켈리, 두 사람은 회담장 안의 소파로 자리를 옮겨 40분 동안 대화를 나눴다. 김영일은 적대시정책 포기, 불가침조약의 체결을 요구했다. 그러나 켈리는 이를 일축했다. 핵폐기와 체제보장 문제를 놓고 둘 사이에는 격론이 벌어졌다.
첫날 회담에서 벌어진 북한과 미국의 정면충돌은 다른 참여국의 중재로 다음날 양자 접촉을 다시 갖기로 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이날 저녁, 리셉션장에서 북한과 미국은 2차 양자 접촉을 가졌다. 김영일과 켈리는 나란히 앉아 1시간 가량 대화를 나눴다. (미국과 북한의 양자접촉, 하지만 그 내용에 대해서는 양쪽 모두 입을 열지 않았다.)
지난해 9월 부시 미 대통령은 선제공격이 포함된 신 안보전략을 제시했다. “모든 미국인에게 안보는 최우선이다. 우리는 미래의 위협에 대비해야 한다. 조국의 자유와 동맹국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선제공격을 준비해야 한다.” (美육군사관학교 졸업식, 2002.9)
9.11 테러 이후 작성된 국가 안보보고서(NSS), 기존의 억제전략 대신 독자적인 선제공격을 해야한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 대상으로 불량국가가 핵보유시도를 할 경우 등을 들어 구체적으로 북한을 명시하고 있다.
또 핵무기 사용에 대한 핵태세 보고서(NPR)에서 핵선제공격 대상을 명시했다. 북한 이라크 등은 즉각적, 잠재적, 예기치 못한 위협 등 모든 조건에 해당된다. 즉, 북한과 이라크는 미국의 최우선 핵선제공격 대상이라는 것이다.
회담 이틀째
6자회담 이틀째, 본회담에 앞서 야부나카 일본대표는 북한과 양자접촉을 가졌다. 납치문제와 미사일 문제를 협의하자는 일본의 요구를 북한측은 일축했다. 그러나 별도의 채널을 통해 이 문제를 상의하자는 데 합의했다.
이날 회의는 전날 발표된 각국의 기조연설에 대해 자국의 입장을 밝히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러시아와 일본이 전날 미국이 제안한 내용에 일부 긍정적인 요소가 있다고 지적했다.
바로 그 때 북한 대표들이 강하게 불만을 표시했다. 김영일 수석대표는 한술 더 떠서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포기할 의도가 없는 게 분명하기 때문에 우리는 핵무기 보유 및 실험도 할 의도가 있다”고 발언했다. 이 말을 들은 켈리는 격분해서 회담장을 나가 버렸다.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북한의 발언을 핵보유선언이라고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국무부 대변인은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북한의 발언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우려할 만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튿날 터져 나온 북한의 핵보유 선언 해프닝은 미 국무부의 공식 브리핑으로 진정됐다.
리커 / 국무부 대변인 “북한의 핵무기에 대해서는 확인가능하고 복구불가능한 핵계획의 종결이 필요하다. 우리의 초점은 북한으로 하여금 이에 대해 동의하게 하는 것이다.”(2003.8.28)
회담 이틀 째, 북미간의 재격돌로 인해 결국 오후에 예정됐던 북미간 양자접촉은 무산됐다. 양측은 핵심의제를 놓고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 한 채 팽팽히 맞섰다.
캐린 리 / 미국 교육재단 연구원 “북미간에는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이 있다. 북한은 공격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찰에 대해 극도의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반면 미국은 플루토늄 개발조차도 입증하지 못한다면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은 입증할 길이 없다고 생각한다.”
백학순 /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 연구실장 “일단 선핵포기를 선언하게 되면 미국이 이를 증명하라 이렇게 나오는 것이다. 그러면 바로 사찰을 의미하는데 일단 사찰을 허용했다 하더라도 모든 부분을 다 보여준다 하더라도 미국이 계속해서 다 보여주지 않았다 이렇게 주장할 가능성이 있고, 그것은 이미 이라크에서 증명이 됐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약 2년여에 걸쳐 이라크의 미사일, 핵무기, 생화학무기 프로그램에 대한 광범위한 사찰을 실시했다. 그러나 IAEA의 사찰결과 대량살상무기가 발견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했다.
회담 사흘째
회담 사흘 째, 전날 늦은 밤까지 논란을 벌였던 공동발표문 형식을 놓고 29일 아침, 북한측이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북한측 담당자는 절대 문서에 서명할 수 없다고 했다. 자신들의 농축 우라늄 핵개발을 공식화 할 수 없으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다음 회담 일정에 대해서도 확인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 강하게 제기됐다.
29일 오전, 베이징 6자회담은 공식 폐막됐다. 공동발표문과 의장요약문의 중간성격인 의장요약공동발표문으로 의견이 접근됐다. 오후 3시 중국의 왕이 부부장은 합의사항을 발표했다.
북한은 폐막을 앞둔 29일 오전, 외무성 성명을 통해 뻬이징 6자회담이 백해무익한 것이었다고 발표했다. 출국 성명에서 대표단 역시 미국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정태양 / 북한측 대변인 “결국 이번 회담은 탁상공론에 불과하였으며 순수 우리를 무장해제 시키기 위한 마당으로 되었다는 것이 보다 명백해졌다. 따라서 이러한 회담은 더는 필요도 없고 흥미도 기대도 가질 것이 없습니다.”
94년 핵위기 때 특사로 활약했던 지미 카터 前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일 기고를 통해 ‘북미 전쟁 가능성이 어느 때 보다도 높다’고 경고했다. 6자회담은 마지막 기회라는 것이다.
“우리는 참담한 결과를 초래할 또 다른 한국전쟁 가능성에 직면해 있다. 그래서 위기에 처한 베이징에서의 다자회담은 매우 중요하다.”(USA 투데이 2003.9.1)
북한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의 개발은 미일동맹을 미영동맹 수준으로 강화하겠다는 미국의 새로운 세계전략, 그리고 일본의 재무장을 추진하는 우익들, 양자 모두에게 좋은 명분이 되고 있다.
주펑 / 베이징대 국제관계학 교수 “미국의 MD 계획은 이미 일본에까지 확대되었고 대만으로 확대될 것인가는 중국의 국방정책에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미국의 MD 계획은 중국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내년으로 다가 온 미국의 대통령선거, 재선을 노리는 부시가 북한과 대타협을 시도할 거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부시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이라크 전쟁은 한달에 40억 달러의 군비와 승리 후 더 많은 군인이 죽는 수렁 속으로 빠지고 있다.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은 부시 재선의 최대 승부처로 떠오르고 있다.
현대사 최초로 지금 우리는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하는 테이블에 앉아있다. 이 테이블은 북한의 핵위기로 인해 마련됐고 주변4강은 한반도의 위기를 자신들의 국익을 위해 활용하고 있다. 이제 국가의 이익, 민족의 이익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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