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린(成石璘)·조영무(趙英茂), 이조 판서 이직(李稷), 병조 판서 황희(黃喜), 대사헌 유정현(柳廷顯), 사간(司諫) 이육(李稑) 등을 편전(便殿)으로 불러들여 말하였다. |
“근일에 큰 바람의 재변이 있는 것은 인사(人事)에 감응함이 있었던 까닭에 그리 된 것이니, 과인이 황음(荒淫)한 실수가 있어서인가? 옛사람이 ‘황(荒)’자를 해석하기를, ‘안으로 색(色)에 빠지고, 밖으로는 짐승에 빠짐이라.’ 하였는데, 내가 안으로 빠진 것은 경 등이 알 바 아니지만, 밖으로 빠진 것은 모두가 함께 아는 바이다. 재변을 만난 뒤로 내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소위(所爲)가 천의(天意)에 합하지 아니하여 이에 이른 것인가?’ 하고 물러가 몸을 닦고 반성함만 같지 못하다고 여겼으므로 정사를 보지 아니한 지 이제는 5, 6일이나 되었는데, 그렇지 않다면 호령과 정사가 백성들의 원망을 산 것이 되니 화기를 해친 것은 어떤 일인가? 사람을 씀에 아직도 적당함을 얻지 못했음인가? 저화의 새 법[新法]이 아직 인심에 흡족하지 못해서인가? 정부와 대간에서 한 마디라도 재변이 오게 한 이유를 말하여 과인을 책함이 없으니 내 매우 민망하게 여기노라. 경 등이 감히 면대하여 말할 수 없다면, 마땅히 각기 실봉(實封)하여 계문(啓聞)하게 하라.” |
성석린(成石璘)·유정현(柳廷顯)·이육(李稑) 등이 대답하였다. |
“신 등은 아직도 전하의 성덕(盛德)에 잘못이 있으심을 보지 못하였으나, 사람을 임용한 한 가지 일로써 말하오면, 신 등과 같은 자도 중기(重寄)를 승핍(承乏)하였은 즉, 그 점이 백료(百僚)의 사이에 외람되게 쓰여졌는지 어찌 알겠습니까?” |
하고, 성석린(成石璘)과 이직(李稷)이 다시 아뢰었다. |
“오늘날 전선(銓選)을 모두 신 등에게 맡기었으니, 실로 미편(未便)합니다. 원컨대, 이제부터는 전선할 때에 집정 대신(執政大臣) 등을 어전에 불러 1품에서 권무(權務)에 이르기까지 모두 친히 현부(賢否)를 물으시어 제수하면 외람되게 받은 자가 그 사이에 용납될 수 없을 것입니다.” |
“그것은 그렇지가 아니하다. 오늘날 모든 지위에 열해 있는 자들도 경 등이 다 품신하여 내가 임명한 사람들이니, 어찌 경 등과 함께 친히 하여야만 정사를 한다고 하겠는가? 또 정사는 전선(銓選)하는 것뿐 아니라, 날마다 경 등과 서로 말하는 것도 모두가 정사를 하는 것이 되니 각기 자기의 마음을 다하라.” |
“내가 부덕(否德)한 사람으로 삼가 대업(大業)을 이어 받으매, 오직 상제(上帝)에 어김을 얻을까 염려하였다. 그러므로 근자에 왕위를 세자(世子)에게 선양하고, 나로 말하면 별궁(別宮)에 물러가 거처하면서 여생을 마치려 하였으나, 대소 신료(大小臣僚) 모두가 ‘불가하다.’하고, 또 내 마음으로도 ‘내 비록 왕위를 사양한다 하더라도 호령(號令)과 정사(政事)는 모두 다 어린 임금에게 위임할 수 없다.’고 여겼는데, 정사에 참여하여 들었은즉, 그 정사의 실수 때문에 재변을 가져온 것은 실로 과인에게 말미암은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 때에 대위(大位)를 사양했다 하더라도 국가에 이익됨이 없었을 것이므로, 드디어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곧 오늘에 이르렀다. 먼젓날 내 상제(上帝)에게 고(告)하기를,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내가 구하여서 얻은 것이 아니라, 바로 상제가 명한 것이니, 내가 만약 죄가 있다면 어찌하여 내 몸만 죄를 주지 아니합니까?’하였으니, 근일의 과인의 마음을 경 등이 어찌 다 알겠는가?” |
“어진이를 천거하고 구언(求言)함도 또한 재변을 물리치는 일단(一端)입니다.” |
“어진이를 구해 천거함은 모두 전일에 이미 임용한 바이고, 구언(求言)하여 진언하게 함도 또한 목전의 보통일에 지나지 아니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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