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제님의 강세는 필연적인 역사섭리
■ 상제님의 강세 배경
■ 상제님 세상을 예고한 시천주
■ 주문 최수운의 기운을 거두고 오심
■ 해원을 위주로 보신 천지공사
■ 최선의 방법으로 짜신 천지공사
■ 세운도 삼변 도운도 삼변
■ 때를 못 만나고 돌아가신 아버지
■ 상제님 도의 역사 과정을 알고 신앙해야
■ 앞세상 문화는 신인이 합일하는만사지 문화
■ 주역의 핵심글귀 , “현룡은 재전하니 이견대인이라”
■우주원리는 꼭 그렇게 되도록 정해져 있는 것
■ 진실되게 살라
■ 군령에 빠지지 말라
■ 허구한 역사과정을 소홀히 생각하지 말라
■ 절대 화합하라
■ 화합은 참는 데서부터
상제님의 강세는 필연적인 역사섭리
오늘 이 시간에는 그 동안에 내가 여러 천 시간 교육시킨 것을 묶어서, 우주에서 인간농사를 지어 추수를 하는데 어떻게 해서 상제님이 이 세상에 오시게 됐는지, 또 우리 성도들의 사명은 무엇인지에 대해 한 마디로 얘기해 주려고 한다.
상제님 신앙하기가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다. 멋모르고 5년 신앙했다, 10년 신앙했다고 하는데, 그런 신앙의 역사만 유구한 게 아니다. 우주의 법칙도 그렇고, 천지에서 우리가 신앙하는 것 백 배 이상 정성을 들이고 있다.
상제님도 그렇게 둥글어갈 수밖에 없는 우주원리에 준한 필연적인 역사섭리에 의해 이 세상에 오셨다. 이 하추교역기에는 필연적으로 - 필연이라면 반드시 필必 자 그럴 연然 자다 - 꼭 그렇게 되어지고, 그렇게 되어지지 않을 수 없는 법칙에 의해 상제님이 오셔서 인간 역사를 마무리지으시는 것이다.
상제님의 강세 배경
거듭 얘기하거니와, 상제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연이 아니다.
상제님이 이 세상에 오시지 않으면 안 되는 역사섭리와 이 세상에 오시기까지의 과정을 묶어보면, 무형인 우주변화법칙은 그만두고도, 우선 지금으로부터 1,200여 년 전에 진표眞表라고 하는 불자가 있었다. 진표가 “미륵님 뵈어지이다.” 하고 생명을 건 구도 끝에 미륵님을 친견했다. 불자들에게 부처는 하나님이다. 그 잔소리 같은 얘기는 시간도 없고 우리 신도들이 다 아는 거니까 약한다.
해서 진표가 미륵님의 계시에 의해 전북 금제군 금산면 금산사에 미륵불을 조성했다. 허면 1,200여 년 전에 이미 상제님이 이 땅에 오신다는 것이 진표율사와 약속돼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런 과정을 거쳤고, 또 다른 게 있다.
420년 전에 이마두(마테오 리치)라는 카톨릭 신부가 중국 땅을 밟게 됐다. 이마두 신부가 서른 살 먹어서 인도를 거쳐 중국에 와 가지고 필생토록 카톨릭 선전을 했다. 동서양 문화라는 게 그 때부터 서로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마두 신부가 무슨 진리를 들고 나와 개창한 분은 아니지만, 그 분의 공로는 어느 성자 못지 않다. 인격적으로 공자, 석가보다 나은 분이고 오히려 예수보다도 더 나은 분이다.
그는 죽어 신명이 돼서도, 신명이라는 신명은 다 만나보고 동서양을 넘나들면서, 또는 우주공간의 딴 성좌도 넘나들면서, 어떻게 하면 인류 복지를 위해 좋은 일을 하겠는가 그 방법을 모색하였다.
그렇게 쫓아다니면서 인간 생활문화에 도움되는 것이 있으면 지상의 과학자들에게 알음귀를 열어주어 문명을 발달시켰다.
했는데 이마두 신부의 말대로 오히려 사람들이 잔폭해지고 더 못돼진다.
『도전』에는 그런 걸 자세히 쓰지 않았지만, 이마두 신부가 동서양 신성 불보살들과 회합도 해보고 별 연구를 다 해봤다. 허나 자기네들 능력으로써는 인간세상을 이화할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전부 뭉쳐서 우주의 주재자 참하나님께 등장해서, 거기서 무슨 대책을 창출하는 수밖에 아무런 방법이 없다.’
이렇게 해서 상제님께 찾아가 하소연을 한 것이다.
상제님도 “이마두가 모든 동서양 신성 불보살들을 거느리고 내게 와서 하소연하므로 괴롭기는 한량없으나 어찌할 수 없이 이 세상에 오게 됐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그게 바로 상제님이 이 세상에 오시게 된 배경이다.
상제님 세상을 예고한 시천주 주문
그러고 상제님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오신 게 아니다.
상제님 말씀을 봐라.
내가 서양 대법국 천개탑에 내려와 이마두를 데리고 삼계를 둘러보며 천하를 대순하다가 이 동토東土에 그쳐 중 진표가 석가모니의 당래불當來佛 찬탄설게讚歎說偈에 의거하여 당래의 소식을 깨닫고 지심기원至心祈願하여 오던 모악산 금산사 미륵금상에 임하여 30년을 지내면서 최수운에게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내려 대도를 세우게 하였더니 수운이 능히 유교의 테 밖에 벗어나 진법眞法을 들춰내어 신도神道와 인문人文의 푯대를 지으며 대도의 참빛을 열지 못하므로 드디어 갑자甲子년에 천명과 신교를 거두고 신미辛未년에 스스로 이 세상에 내려왔나니 동경대전東經大全과 수운가사水雲歌詞에서 말하는 ‘상제’는 곧 나를 이름이니라. (道典 2:27:4∼9)
내가 근래에 와서 최제우의 시천주 주문에 대해 한 두어 축 얘기한 사실이 있다. 그걸 다시 한 번 정리하면, 최제우가 여기 논산군 양촌면이라는 곳에서 연담蓮潭 이운규李雲圭라고 하는 도학가 밑에서 김일부 선생과 같이 동문 수학을 했다.
그래 김일부 선생은 정역正易을 지어내고, 최수운은 상제님에게 신통神通을 받았다. 김일부 선생은 광산 김씨로서 출생지는 양촌면 남산리이고 최제우 수운 선생은 경주 최씨로서 경북 월성군에서 출생했다. 김일부 선생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후손이고, 최수운 선생은 고운孤雲 최치원 선생의 후손이다. 혈통을 얘기하면 그렇게 돼 있다.
최수운 선생은 양산에 있는 천성산千聖山에서 수도를 했다. 저 통도사 있는 곳. 그의 이적을 더듬어보면, 도통을 하기 위해 그는 암자에서도 공부하고 굴속에서도 공부했다. 헌데 전부 실패했다. 도통이란 게 그렇게 해서 되는 게 아니다.
그러다 경주 용담에서 공부하던 중 상제님께 신통을 받았다.
신통이란 게 그렇다. 표본적으로 태모님이 신해辛亥(1911)년에 상제님 어천 치성을 모시고 차경석 성도 집 뜨락에서 기절해 죽어넘어 갔다가 한참만에 일어나신 적이 있다. 공부도 안 했건만 도통을 받으신 것이다. 신통은 그렇게 천지에서 내려주는 기운을 받아 도통하는 것이다.
최제우가 신통을 하고는, 앞으로 이 세상 역사가 어떻게 둥글어간다는 것과 천지 자연섭리, 그리고 상제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후천 새 문화를 만들어 새 세상을 조성하신다 하는 걸 알게 됐다.
그래 그걸 묶어서 글자로 만든 것이 ‘시천주侍天主 조화정造化定 영세불망만사지永世不忘萬事知’다. 시천주, 하나님을 모시고, 조화정, 조화를 정하니, 영세불망만사지, 만사지 문화를 개창해서 후천 오만 년 좋은 세상 만들어주는 은총을 영세토록 잊지 못한다는 뜻이다. 글자 열석 자에 자기의 사명과 앞으로 역사 판도 이루어질 것을 다 담아놨다.
최수운의 기운을 거두고 오심
헌데 우리나라 이조 오백 년 문화라는 게 제도적으로 유교의 틀 속에 정해져 버리지 않았는가. 최수운이 그런 유교의 틀 속에서 성장한 사람이 돼놔서 그 고린 유학자 기질을 탈피 못 했다.
최수운이 상제님한테 신통 받은 때가 경신庚申(1860)년 4월이다.
상제님이 미륵전에서 최수운이 일하는 걸 다 지켜보고 계셨다. 헌데 보니까 큰 도움될 짓을 못 해서 아무 짝에도 소용없게 생겼단 말이다. 해서 갑자甲子(1864)년에 그 기운을 거둬 버리셨다.
경신 신유 임술 계해 갑자, 신통을 내려준 해부터 기운을 거두신 해까지 5년, 만 4년이다. 갑자년에 최제우가 대구 달성 공원에서 대원군에게 참형을 당한다.
상제님이 최제우의 도통기운을 거두고, 그 8년 후에 이 세상에 오셨다. 갑자 을축 병인 정묘 무진 기사 병오 신미, 상제님이 신미辛未(1871)생 아니신가. 최제우 선생은 이미 ‘더디도다, 더디도다, 무극대도가 8년이 더디도다’ 하고, 8년 후에 상제님이 강세하실 것을 다 얘기했다.
상제님이 참하나님의 위치에서 인간의 몸을 빌어 이 세상에 오시는 데에도 그런 허구많은 난관을 거치셨다. 그러고 원시반본 진리에 의해 강씨 문중으로 육신을 빌어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해원을 위주로 보신 천지공사
헌데 상제님이 천명과 신교를 거두셔서 최제우는 이미 죽었는데, 왜 최제우가 제창한 주문을 지금까지도 읽고 있고 앞으로도 읽게 되느냐?
‘시천주’ 하면 ‘하나님을 모신다’는 의미인데, 그 하나님은 바로 이 세상에 인간 몸뚱이를 빌어 갖고 오신 강증산 하나님이다. 따라서 ‘시천주 조화정’은 강증산 하나님을 모시고 조화를 정한다는 말이다.
허면, 조화를 정한다는 말씀이 무슨 뜻인가.
선천 역사를 보면, 수많은 여러 백조 인구가 와서 전부 철천지한을 맺고 돌아갔다. 선천 세상의 역사섭리가 그렇다. 우주원리도 그렇고, 화수미제火水未濟 삼양이음三陽二陰 천지비天地否괘, 뭘로 해서도 남존여비가 되는 수밖에 없다.
하나의 예로, 선천 세상에 여자라는 것은 남자의 부속품일 뿐이다. 장난감이라고 하면 너무 심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실컷 부려먹고는 아무 이유 없이 죽이기까지 했다. 그게 여자에게만 국한된 것도 아니고, 약육강식으로 역사섭리가 그렇게 돼 있었다. 해서 원신寃神과 역신逆神이 하늘땅 사이에 가득 차서, 아주 악마 끓듯 한다. 그래 상제님이 그런 원한을 풀어주지 않고는, 누가 온다고 해도 절대로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없다고 하신 것이다.
해서 앞세상을 여는 바탕은 해원解寃이 우선이 됐다. 말 그대로 해원解寃 상생相生이다. 해원을 해서 자기가 못 다한 것을 이루게 한단 말이다.
원한이란 당연히 그렇게 됐어야 할 것이 그렇게 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거다. 다시 얘기하면, 자기 것을 뺏겼단 말이다. 자연섭리에 의해 똑같이 생명을 빌어 가지고 나왔건만, 타의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거나 제 성을 뺏겼다거나, 뭐 그 동안 그런 저런 일들이 오죽 많았는가.
저 여자들을 봐라. 남자나 여자나 똑같이 조상의 유전인자, 혈통을 빌어 가지고 세상에 생겨났다. 다만 수컷이라 하는 것은 성기가 길게 달렸고 여자라는 건 납작자지가 달렸달 뿐이지, 똑같은 사람이다.
우리나라는 그런 대로 여자의 기본권이 보장돼 있다. 박씨 조상의 혈통에 의해 몸뚱이가 생겨났으면 죽을 때까지 박 여사다. 손자 증손자 고손자, 천 년 만 년을 내려가도 혈통을 몰수당하지는 않는다. 유문儒門, 유교라는 테두리 속에서 좀 지나친 건 있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 중 여권을 옹호해주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헌데 딴 나라를 보면, 여자가 결혼하면 성을 뺏기지 않는가. 뺏기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몰수당해 버린다.
일본만 해도 여자가 시집가면 그 시간부터 자기 성이 없어져 버린다. 서양도 모두 그렇다. 서양 사람들은 여자가 시집가면 “성이 뭐야?” 하고 묻는다. 헬로우하고 결혼해서 살면 성이 헬로우가 돼버리고, 오케이하고 살면 오케이가 돼버린다. 하하. 그건 제 혈통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 아닌가. 가치관으로 따지면 아주 값어치가 없는, 버러지 턱도 안 되는 인간대접을 받는 것이다.
대부분의 세상 여자들 존재가치가 그렇게 없다. 지금 서양사람들 무슨 여권옹호니 여남동등 어쩌고 하는데, 철인들이 볼 때 그것 공연스레 까부는 것이다.
원한에 대해 말하다 보니 이런 얘기도 한 토막 나왔는데, 상제님이 해원을 위주로 천지공사를 보셨다.
상제님은 그 허구한 과정을 다 정리하시고 삼변성도三變成道라는 틀 속에서 해원 상생 보은 원시반본을 바탕으로 이 세상 둥글어갈 프로그램, 시간표 이정표를 짜신 것이다.
최선의 방법으로 짜신 천지공사
이 세상은 과연 참하나님이신 증산 상제님의 천지공사 틀 짜놓은 것과 아주 똑같이, 머리털만큼도 틀림없이 둥글어간다. 그렇건만 세속사람들이 단편적으로 봐서는 도저히 알 수 없게 돼 있다.
나도 여기 있는 우리 신도들과 같이 젊은 시절에, 여러 십만을 포교해 봤다. 내가 필생토록 포교했으니 나보다 더 포교 많이 해 본 사람은 없잖은가, 시간적으로 그렇고. 그러니 그 동안 무슨 일은 안 당해봤겠나.
내가 그 동안 포교하는 과정에서 세속 중생들과 상제님의 천지공사 내용을 얘기하다 보면, 좀 똑똑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런다. 강증산은 반역자라고. 이유인 즉, “왜 우리 조국을 일본으로 넘겨줬느냐? 조화권능이 있다 해서 조국을 일본으로 팔아 넘겼으니 반역자가 아니냐.”는 것이다.
단편적으로 그 말만 들으면 대답할 말도 없겠지. 허나 역사라는 커다란 틀 속에서, 그 허구많은 역사과정을 정리해서 새 세상 운로를 짜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가장 최선의 방법이었단 말이다.
그 얘기가 났으니 조금 정리하면, 상제님이 강세하실 당시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너무나 피폐해져 있었다.
또 우리나라 문화가 인류문화의 모태 문화지만, 그 때는 양반이 민초들을 토색질해대서, 국민들이 배울 능력도 없었고, 배워봤댔자 어디 써먹을 데도 없었다. 해서 백성들이 너무너무 무지했다.
우리들 클 때만 해도, 한 부락에 한문으로 제 성명 쓰는 사람이 몇 없었다. 종도사 얘기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상황으로 비춰 볼 때는 말이 안 되는 소리 같겠지만, 사실이 그랬다.
진서眞書, 한문은 그만두고도, 국문은 언문諺文이라 해서 상놈이 배우는 글이라고 했는데 그나마 언문 아는 사람도 모래 퍼다 놓고 손가락으로 글씨 써가며 공부했다. 종이도 귀했고, 종이 살 돈도 없고, 또 무식한 사람들에게 종이가 필요치도 않고 말이다. 그들은 평생 붓 한 번 잡아보지도 못한 사람들이다.
내가 클 때 연필이 나왔는데, 그걸 보고 “야, 이건 먹을 안 갈아도 되고, 이걸 쓰니까 새카맣게 나온다. 하, 이런 참 좋은 붓이 있다.” 하고 신기해했다. 아니, 내가 여든 살도 넘었으니 그게 벌써 70여 년 전 얘기 아닌가. 또 우리 클 때 입던 동저고리라는 게 있다. 저고리라는 게 우리나라 옷인데, 그 앞자락 여미는 게 요렇게 고름 잡아매는 것밖에 없다.
해서 겨울 같은 때 바람이 불면 앞자락이 벌어져 뱃살이 나온다. 나도 그렇게 하고 다녔다. 그 때 겨울은 영하 30도 이상을 오르내렸는데, 애들에게 어디 심부름을 시킨다든지 하면, 10리고 20리고 알배 내놓고 가야 하는 것이다. 그 세상이 그런 세상이었다.
조금 더 얘기하자면, 문익점이 들여온 면화 있잖은가.
서민들이 면화를 재배하는데, 우선 잘 핀 놈, 좋은 건 따 가지고 씨 빼고 고치 말아 실을 뽑아 놓는다. 당시 살림 형편이라는 게 그걸로 수목을 짜서 팔아야 먹고살았다. 그러고 또 얼마는 양반들에게 바쳐야 했다. 만일 얼만큼씩 분배해서 안 내놓으면 잡아다가 죽이니까.
해서 자기네들 옷을 지으려면, 피지도 않은 마늘쪽 같은 면화를 생으로 벌려 가지고 아랫목 같은 데다가 말린다. 그러고 물기가 마르면 회초리 같은 걸로 자꾸 두들긴다. 그게 본질이 면화니까, 자꾸 두들기면 부 하고 부풀어오를 것 아닌가. 그걸로 푸대 만큼씩하게 짜서 옷을 해 입고 다녔다. 헌데 그것도 제대로 차례가 가면 좋게? 여러 조각 이어 깁는 것을 누더기라고 하는데, 서민들은 열 조각 스무 조각을 이어 기운 누더기 같은 거나 입고 다녔다. 우리 백성들 실생활이 그랬다.
그 얘기를 하려면 한도 없다. 한마디로 죽지 못해 살았다. 상놈은 생전 망건 한 번 못 쓰고 수건이나 댕기고 사는데, 그 판에 카톨릭이 들어와서 사람은 전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니, 누가 카톨릭을 안 믿겠나.
대원군이 카톨릭 신도를 다 잡아죽이는데, 대원군의 마나님이 몰래 카톨릭을 믿었다. 참 사나이는 잡아죽이고 마누라는 몰래 믿고. 그게 그 세상 실정이었다.
상제님이 그걸 다 해원시키셨다. 최수운의 시천주 사상을 신봉하는 동학도들이 갑오동학혁명을 일으켜서, 과부를 개가시킬 것, 반상을 타파할 것, 군정세를 물리지 말 것 등등 십여 가지 조건을 내놓고 협상한 사실이 있다. 그래서 이름도 갑오경장甲午更張이다. 갑오년 동학 이후로 이 세상 역사에 새 장이 열린 것이다.
세운도 삼변 도운도 삼변
그렇게 상제님이 해원공사를 바탕으로 천지공사를 보셨는데, 그것을 크게 대분하면 세상 운로 둥글어가는 공사와 내적으로 우리 도운이 둥글어가는 공사가 있다. 그걸 세운공사 도운공사라고 명명했다.
헌데 세운도 삼변, 도운도 삼변이다. 아 일률적으로 쭉 일이 된다 해도 쫓아가기 어려울 텐데 삼변으로 둥글어가니, 1변 2변 때 신도들은 죽도록 믿었어도 좋은 세상을 보지 못하고 그냥 코(go~)해 버리고 말았다.
여기 앉았는 종도사 아버지도 그랬다. 우리 아버지가 전부를 다 바쳐서 보천교를 믿으셨다.
내가 어려서 우리 아버지를 지켜보면, 그 때는 무슨 금고라는 게 없으니까 저 궤짝 같은 걸 짜서 거기에다 종이 바르고 장식 좀 달고, 조선시대 문통 같은 걸로 덜컥 잠궈 버린다. 그게 뭐 문통이라고 할 것도 없고, 그저 막대기나 뭘로 찌른 것보다 조금 나으니까 해 놓는 것이다.
그걸 열면, 옛날 『사서삼경』 같은 책들이 들어 있다. 내가 옆에서 아버지가 책장 들추시는 걸 보면, 책 속에 태을주 박은 종이가 수십 장 끼어 있다. 그게 경면주사로 박은 것도 아니다. 한약방에서 환약 만들 때 겉에 뻘겋게 묻히는 칠주라는 게 있는데, 그건 인체에 해도 없다. 바로 그 칠주로 태을주를 찍은 것이다.
헌데 성금을 얼마나 바쳐야 그것 한 장을 얻느냐? 아, 산다고 해야 싹 돌아갈 테니 산다고 하지. 그것 한 장 사려면 금화 백 원을 바쳐야 한다. 그 때 금화 백 원이면 얼마냐? 그 당시 시골사람들은 평생에 백 원 짜리 만져보는 건 그만두고, 구경 한 번 못하고 죽는 사람이 80퍼센트는 되지 않나 모른다. 그런 백 원 짜리 금화 한 장을 성금으로 바치면 태을주 찍은 것 한 장을 주었다.
헌데 우리 아버지 궤짝을 보면, 성금을 얼마나 바쳤는지 그런 게 수십 장이다. 열 장이면 천 원, 스무 장이면 2천 원 아닌가. 그 때 돈 천 원이면 아마 한 백 석 꺼리는 살 게다.
때를 못 만나고 돌아가신 아버지
그 자세한 얘기는 할 수 없으니 다 못 하지만, 경제적으로 성금도 그렇게 많이 냈건만, 종국적으로 우리 아버지는 보천교를 믿다가 매맞아서 돌아가셨다.
보천교를 믿는데 왜 매맞아 돌아가셨느냐?
그 당시 저 상해 임시정부의 독립자금이 100퍼센트라고 할 수는 없지만 90퍼센트 정도는 보천교를 통해 들어갔다.
헌데 독립운동가라는 게 비밀결사 아닌가. 일본인들한테 붙잡히면 다 죽일 테니, 그 사람들은 그 사실을 무덤까지 가지고 간다. 해서 지금까지도 독립자금이 어떻게 임시정부로 건너갔는지 그 기록이 한 페이지, 한 줄도 남아 있는 게 없다. 그게 어디서 나와서 어떻게 갔다는 게 신문에 나오나, 책에 나오나? 누가 말로 전해주는 사람 있어?
우리 아버지가 바로 그 독립자금 사건에 연루됐다. 일본인들이 “너는 일본 황국의 반역자다.” 해서 우리 아버지를 잡아가 버렸다. 그 때 고등계라는 게 있었는데 거긴 사상범만 취급하는 데다. 거기 잡혀가면 다 죽어서 나온다.
헌데 그 때는 보통 무슨 절도죄만 지어도, 쇠좆매라는 걸로 때렸다. 쇠좆매라니 좀 무식한 얘기로 들리겠지만, 전 국민이 그렇게 불렀으니 별 수 없잖은가.
그게 뭐냐 하면, 소 자지로 만든 매라는 뜻이다. 소 자지는 좀 가는데, 소를 잡으면 자지를 떼 가지고 말렸다가 물에 불려 놓는다. 그러면 아주 보들보들해진다. 헌데 그놈으로 냅다 한 대 치면 몸에 착 감겨서, 그냥 피부가 홀딱 벗겨져 버린다. 제군들도 어지간하면 상식적으로 들어서 알 것이다. “가서 쇠좆매 맞아야 되겠구만.” 그 때는 그저 어른이고 애고 뭔지도 모르고 으레 쇠좆매라고 했다, 점잖은 사람도.
헌데 사상범에게는 쇠좆매 같은 건 매도 아니다. 저 독립기념관에 가봐라. 독립운동 하던 사람들을 어떻게 죽였나. 별스런 방법으로 다 하지 않았는가. 헌데도 토설하지 않고 그냥 앉아서 그 모진 고문을 당해냈다.
우리 아버지가 거기에 걸려들었다. 그러니 어떻게 됐겠는가. 철창 안에서 당한 고초는 필설로 다 기록할 수도 없다. 나는 우리 아버지 아들이니 오죽 잘 알겠나. 내가 장자로서 수종들기 위해 거길 쫓아다녔다. 해서 나도 전기고문을 당해봤다. 전기고문은 당해 본 사람만이 안다. 그 충격은 말로 표현 못 한다.
결국 우리 아버지가 살이 부어 가지고, 손으로 누르면 피부에서 누렁물이 줄줄 나오고, 정신도 혼몽하고 기거하기도 어렵고, 뭐 목숨만 붙어있달 뿐이지 죽은 송장이다. 그렇게 인간 노릇도 못하고 거치적대기만 하니까 내쫓아 버렸다. 그렇게 철창에서 나와 몇 해 사시다 돌아가셨는데, 그런 걸 누구보고 다 얘기하겠는가.
그게 다 보천교를 믿어서 당한 일이다, 보천교를 믿었기 때문에. 묶어서 얘기하면 때를 못 만난 것이다.
그 때도 역시 세상 둥글어 다니는 것만큼은 상제님 진리가 있었다. 나도 그 때 상제님 진리를 알았다. 아주 환해서, 오히려 지금보다 더 잘 알지 않았나 모르겠다. 내가 열 살 전에 벌써 “만국활계남조선萬國活計南朝鮮이요 청풍명월금산사淸風明月金山寺라, 일만 나라의 살 계획은 남쪽 조선에 있고 맑은 바람 밝은 달 금산사로다.”(道典 7:14:1∼2), 또 “우리 일은 남조선 배질이라.”(道典 6:51:4) 하신 상제님 말씀을 입춘서로 써 붙였다.
나는 그 제1변 때 이미 상제님 신도가 된 사람이다. 그게 벌써 얼마 전 일인가. 8·15 해방된 지도 50년이 넘었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상제님 진리가 여태 빛도 못 얻었는데 그 때는 오죽했겠는가. 그렇게 막연한 신앙들을 했다. 그러고서 실컷 매맞고 다 죽어버렸다. 그 후손들이 지금 여기 앉아 있는 것이다.
상제님 도의 역사 과정을 알고 신앙해야
우리 신도들은 상제님이 이 세상에 어떤 과정을 거쳐서 오셨고, 상제님 신앙하는 과정 속에서 제1변 때는 어땠고 제2변 때는 어땠고, 제3변에는 어떻게 해야 되고 어떻게 해서 열매 맺는다는 걸 알고 신앙을 해야 한다.
헌데 우리 신도들은 신앙을 하면서 제 식견을 가지고 뭘 설정해 놓는다. 아니, 그까짓 게 몇 푼 어치나 된다고 그러는가. 그 한 주먹 거리도 안 되는 식견으로, “의통목은 아무아무 때에 올 것이다. 만일 그 때까지 안 오면 신앙을 포기하겠다.” 그런 자다가 꿈꾸는 소리나 한다. 아니, 하늘땅이 저 위해서 생겼나? 내가 그런 걸 훤하게 지켜보고 있다.
종정은 지금도 잠을 세 시간밖에 못 잔다. 많이 자면 네 시간. 한창 글쓸 때 잠잘 시간이 어디 있나. 그런 때는 책을 화장실에도 가지고 가야 한다. 변 하나도 편히 앉아서 못 본다. 시간에 쫓기니까.
지금도 종정이 『도전』 개정작업을 하고 있다.
내가 언젠가 저 서울 은평도장인가 한 두어 군데에서 이런 얘기를 한 사실이 있는데, 우리 부자가 스무날 전인가 한달 전에 제주도를 갔다. 헌데 종정은 어딜 가도 『도전』을 안고 다닌다. 이따가 봐라, 여기도 가지고 올 테니까. 사실 강도가 들어와도 『도전』은 안 가져간다. 그건 돈도 안 되는 것 아닌가. 헌데 잘 때도 끌어안고 자거든.
그러면서 하는 소리가, 집도 다 없어지고 모든 게 불타 없어져도 『도전』만은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사람 작업한 모든 결정체가 『도전』 아닌가, 개정 작업하는 것. 헌데 이번에 잘못되면 영 잘못 되고 만다. 왜 그런고 하니, 이제는 증언해줄 선천 성도들 손자 증손자들도 다 죽어버렸단 말이다.
그런 걸 세세히 말로 할 수 없지만, 『도전』 개정작업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종정은 사실 그대로 상제님의 혼 아닌가, 상제님의 혼! 그렇게 기가 막히게 정성을 들여 책을 써서, 상제님 진리를 오착 하나 없이 전해 주는데, 우리 신도들이 그걸 모른다.
우리 신도들은 지금, 역사적으로 5천 년 6천 년 조상 할아버지한테 혈통을 물려받아, 씨종자로 매듭지어지려고 한다. 헌데 내가 우리 신도들 하는 양을 지켜볼 때, 자기 생명을 거저 얻는 것으로 안다. 물론 잘 믿는 사람도 있지. 하지만 잘 믿는 사람도 반드시 이걸 알고서 믿어야 한다. 이 개벽철에 내 생명체 하나를 건지는 게, 얼마나 허구많은 과정을 거쳐서 이뤄지는 것인지를 말이다.
아까 서두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도 이 세상에 오실 때 허구한 과정을 거치셨다. 또 우선 종도사 가정도 종도사의 아버지가 보천교 믿다가 왜놈들한테 잡혀서 매맞아 돌아가셨고, 그러고 종도사가 지금 여든한 살 먹도록 전부를 다 바쳐 신앙을 하고 있고, 종정 또한 마흔아홉 살 먹도록 상제님 글쓰느라고 밤낮으로 쉬지도 못하고 있다
앞세상 문화는 신인이 합일하는 만사지 문화
이번에는 글자 그대로 개벽이다, 개벽!
개벽을 여러 가지 형태로 해석할 수 있지만, 한 마디로 얘기하면 씨종자 추리는 것이다. 묵은 세상을 마무리하고 인류역사를 매듭지어 새 생명을 찾고, 새 세상 현실선경 지상선경 조화선경을 건설하는 일!
앞 세상은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신명과 사람이 하나되는, 신인이 합일되는 세상이다.
가을겨울 세상은 기氣가 주장한다. 기라는 것은 신神인데, 신명은 가을겨울 세상이라야 때를 만나는 것이다. 즉, 앞세상은 신명시대, ‘시호시호時乎時乎 귀신세계鬼神世界’다. 헌데 신명이 사람을 못 만나면 제 노릇을 못 하고, 사람도 신명을 만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쉽게 얘기해서 가을철이 되면 모든 만유가 제 본의건 아니건 간에 열매를 여문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가을철이 되면 도통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자연 그렇게 돼버리는 것이다. 시운도 그렇고, 자연섭리가 그렇게만 되어진다.
그래서 백성도 제 노릇할 만한 통은 다 해버린다. 바로 그게 만사지 문화다. 만사지 문화는 기존의 도통에 댈 게 아니다. 그 세상이 되면 제대로 된 사람은 누구나 조화를 부린다. 상제님이 참으로 통이 잘된 사람은 쳐다만 봐도 안다고 하신다. 무엇이고 다 알아버린단 말이다. 그러니 세상천지, 누가 남 음해를 하겠나.
지금은 객적인 걸 접해야 아는 세상이다. 컴퓨터 같은 걸 빌어서 말이다. 허나 그런 건 생활문화용품으로 사용하는 것 아닌가.
만사지는 제가 스스로 알아버리는 것이다. 인류문화의 매듭이 그렇게 되어져 있다. 앞세상 문화는 그런 문화다. 아주 최선의 문화요 열매문화, 그게 바로 상제님 문화다.
여기 앉은 상제님 신도들은 개벽하는 세상, 즉 죽는 세상에 살고, 살고 나서는 그런 만사지 문화를 받는다. 우리 신도들은 바로 그 일을 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즉, 죽는 세상에 살자는 것 하나 하고, 천지에서 농사지은 인종 씨 추수하는 것, 그러고 인류문화를 매듭지어 열매기 문화, 문명의 극치인 신인이 합일하는 만사지 문화를 여는 일을 말이다.
허면 그걸 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세속적으로 오염된 정신 다 일축해 버리고 새로운 정신, 새로운 각오, 개벽정신에 합치되는 행동을 해야 한다.
주역의 핵심글귀 , “현룡은 재전하니 이견대인이라”
내가 오늘 전국 신도들에게 문제 하나를 내줄 테니 들어봐라.
주역이라는 것이 인류문화의 원 모태다. 맞지? 진리의 모태고 문화의 모태다.
헌데 주역의 첫 획을 그은 사람이 바로 우리 조상인 태호 복희 씨다. 그래서 상제님도 “응수조종태호복應須祖宗太昊伏인데 하사도인다불가何事道人多佛歌오”(道典 5:303:1) “응당히, 모름지기 할아버지 조 자 마루 종 자, 우리 종통의 조상은 태호 복희 씨인데, 도를 닦는다는 사람들이 어찌 하 자, 일 사 자, 하사로, 즉 무슨 일로, 무엇 때문에, 어째서, 왜, 부처 노래만 부르느냐?”는 것이다.
부처 노래라고 해서 꼭 부처 노래만 뜻하는 건 아니다. “왜 아멘 찾고 나무아미타불 찾고 딴전을 보느냐? 내 조상 내 종통은 내던져두고 어디 팔려 다니느냐?” 하고 상제님이 한탄하시는 싯구다.
헌데 주역 세상이라는 것은 인류역사가 생긴 이후로 이번 개벽하는 시한까지가 끝이다. 그때 되면 자연섭리가 바뀌어져 버린다. 개벽 후의 세상은 정역正易 세상이 되는 것이다.
24절후로 볼 때, 동지 소한 대한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 입하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 입추, 입추 후로는 가을철이 돼 버리지? 1년 24절후에 따라 철이 바뀌어지듯이, 하추교역을 하고 나면 주역의 판도는 끝장이 난다. 주역 세상이 매듭지어지고 정역 세상이 온다. 그건 아주 천지의 이치다.
헌데 세상 매듭짓는 대표적인 글귀가 주역에 담겨져 있다. 그 정답을 맞추는 사람도 혹 있을런지 모르겠다. 내가 우리 신도에게 이걸 숙제로 내주는데, 이건 알아도 혼자만 알아야지 남에게 말하면 안 된다.
주역의 대표적인 글귀가 뭐냐하면 “현룡見龍은 재전在田하니 이견대인利見大人이라”는 것이다. 이 여덟 자가 주역의 매듭이다.
나타날 현(見은 볼 견, 나타날 현 자로도 새긴다), 용 용, 있을 재, 밭 전, 나타난 용은 밭에 있다는 말이다.
내가 대략 힌트를 줄 테니 들어봐라. 현룡이면 나타난 용이니까 살았다는 소리지? 산 용은 활동을 하는데, 밭에 있단 말이다.
이견대인이라, 이로울 이 자, 볼 견 자, 큰 대 자, 사람 인 자다. 이로운 것은 이끗 아닌가, 내게 이익되는 것. 그게 원형이정元亨利貞으로 보면 서방, 가을에 가서 붙는다. 가을은 생사판단을 하는 때니까 이롭다는 것은 산다는 의미도 된다. 즉 대인은 현룡과 맞먹는 뜻이다. 사는 것은 현룡, 대인을 만남에 있다는 뜻이다.
동서고금에 주역이란 자연섭리, 우주원리를 상징하는 것이다. 어떤 특정한 인물을 위한 것도 아니고, 주역은 한 시대 봄여름 세상의 이치가 집약된 것이다.
이 문구를 알면 주역의 핵심을 뚫는다. “현룡은 재전하니 이견대인이라, 나타난 용은 밭에 있으니 사는 것은 대인을 만남에 있다.”
만유는 봄철에 파종하면 가을에 가서 열매를 맺어야 한다. 봄에 새싹 틔워서 가을에 열매 못 맺으면 봄여름 농사가 다 소용없다. 열매 맺는 데까지가 농사짓는 것이다.
이 글귀를 풀이해서 아는 사람이면, 과연 참 천지이치를 통한 사람이다. 자연 상제님 진리도 알 테고, 이번에 살 기운도 있고, 가히 참 세상사를 맡길 만한 사람이다.
‘현룡은 재전하니 이견대인이라, 나타난 용은 밭에 있으니 이로움이 대인을 만남에 있다.’
역사적인 의미에서도, 이제 곧 주역 세상이 매듭지어지는데, 주역의 답을 한번 내려볼 필요도 있잖은가. 내가 그 정답을 내려주면 주역의 매듭이 나온다. 결국 언젠가는 내가 평을 해 줄 테지만, 좋건 그르건 이 여덟 글자가 주역을 대표하는 핵심글귀로서, 선천 역사의 매듭이요, 주역의 매듭이요, 인간농사의 매듭이다.
더 얘기하면 다 알려주게 될 테니 그만하겠다.
상제님을 신앙하는 진실한 신도라면, 그 정답을 쉽게 풀이할 수 있을 게다."
우주원리는 꼭 그렇게 되도록 정해져 있는 것
인간 역사는 자연섭리 우주원리와 불가분리한 연관이 있다. 해서 처음 인류역사가 싹이 틀 때부터 매듭짓는 데까지 아주 정해져 있는 것이다.
역사과정이라는 것은 자연섭리를 바탕으로 꼭 그렇게만 진행되고, 그렇게만 이루어지고, 그렇게만 매듭지어진다.
그리고 거듭 얘기하거니와, 자연섭리가 성숙됨에 따라 인류역사도 성숙된다. 따라서 인류역사란 한마디로 우주 변화원리를 상징하는 것이다. 사람도 모르게 꼭 그렇게만 되어지고, 그 길을 타고 그렇게만 가지는 것.
그래 주역이 처음 생길 때부터 자연섭리라는 건 필연적으로 꼭 그렇게 매듭지어지는 것이다.
이만하면 다 얘기해줬다.
하니까 저 정답을 맞춰봐라. 거듭 강조하거니와, 저게 인류역사의 정답이자 총 결론이다.
이제 선천역사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이제 마무리를 하면서 선천의 자연섭리 우주원리, 주역을 내가 좀 정리해 줄까 생각하고 있는데, 그러다 보면 세상 사람들이 저 정답을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역으로 욕하는 사람도 생길 테지만.
진실되게 살라
시시한 얘기 자꾸해봤자 그렇고, 내가 그만할 테니 살고 복 받으려면 유형 무형을 다 바쳐서 성숙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신앙을 해라. 공연스레 남의 눈치나 보고 남의 정신에 끌려서 헛세상 살려고 하지 말고, 가을에 성숙된 열매를 맺으려 할 것 같으면 실속이 있어야 한다. 양심 속이고 거짓말하고 어쩌고 정책적으로 뭘 달리 맞추고, 그건 그것만큼 빈탕이 되는 것이다.
가을에 열매를 맺는데, 그걸 묶어서 말하면 정기신精氣神이다. 제 실속 없으면 절대로 소용없는 것이다. 가을이 되면 거짓은 0.1퍼센트도 통하질 않는다. 자연섭리가 그렇다.
그러니 진짜로 진실되게 살아라. 사람은 아주 정의롭게, 절대 거짓말하지 않고 양심 속이지 않고, 남 미워하지 않고 살아야 한다.
남을 미워하면, 미워하는 걸 상대방 조상신명들이 안다. 신명이니 오죽이나 잘 아나. 해서 ‘저 사람이 내 자손을 미워하는구나. 그놈 참 나쁜 놈이다.’ 하고 조상신들끼리도 미워하고 서로 싸우기도 한다. 네 자손이 내 자손을 이유 없이 미워한다고, 어디 한번 해보자 하고 한 쪽에서 치려고 하니까 다른 쪽에서도 치려고 준비를 한다, 전쟁준비를.
그러니 공연스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아라. 특히 지금은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
우리는 다 똑같은 상제님의 신도다. 여기 앉은 종도사도 상제님 신도고, 보천교 하다가 매맞아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도 역시 상제님의 신도다.
복 받으려 할 것 같으면 신앙은 진짜로 해야 한다!
군령에 빠지지 말라
그러고 군령 발동할 때 절대 빠지지 말아라.
여기도 조직이다. 조직 속에서 빠지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내 의사에 맞고 안 맞고를 떠나서, 군령 발동은 상제님 진리권에서의 제도다. 신명계가 그렇게 되어져 있다.
상제님 진리를 연구해 봐라. 상제님 진리는 군대진리다. 여기 그것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상제님 진리 자체가 그렇다, 그걸 행사 안 했을 뿐이지.
지금은 제도적으로 조직이 그렇게 돼 버렸다. 그러니 군령 발동하는 데 절대 빠지지 말고, 반드시 육임을 짜라! 거저 신앙하려고 하지 말란 얘기다. 아니, 죽는 세상에 사는데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상제님 진리에 보답하기 위해서도 육임쯤은 다 짤 수 있다. 내가 잘되기 위해서도 짤 수 있고 말이다. 내가 이런 얘기는 하도 많이 해서 더 얘기하고 싶지도 않은데, 반드시 육임을 짜라. 반드시! 빠른 시일 내에!
육임 꼭 짤 사람들 손 좀 들어봐라.
됐다. 백 퍼센트다, 백 퍼센트!
제군들은 진심으로 육임을 짜라.
그러고 포교를 하면 나보다 더 잘 믿는 신도들을 만들어라. 허면 그 사람들이 의통목 지나고서 얼마나 고마워하겠나.
상제님 진리를 전해서 살려주면 그건 참 인간 하나님이라고, 내 제1의 생명이다, 사실 우리 어머니 아버지보다 더 고맙다고 할 게다. 그런 좋은 일, 남에게 은혜 좀 베풀면 못 쓸 일이 생기나?
반드시 포교를 해라! 암만 어렵고 또 어려워도 육임을 짜라.
그러고 사람들이 뭘 모르니까 말을 잘 안 들을 뿐이지, 상제님 진리를 잘 알면 포교하지 말라고 해도 한다. 그러니 첫째가 교육이다. 교육에서 뒤쳐지면 다 뒤떨어져 버리고 만다. 또 『도전』도 통독해라.
허구한 역사과정을 소홀히 생각하지 말라
내가 오늘 할 얘기를 다 못하고 말았는데, 하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추수를 하는데도 그런 허구한 과정을 거치셨다.
진표율사에서부터만 따져도 자그마치 1,200여 년이다. 1,300년의 시공을 거쳐 상제님이 이 땅에 오시게 된 건데, 그걸 어떻게 하찮게 아는가! 자연섭리, 역사섭리로 되는 일도 이렇게 참 유구한 세월 동안 역경만첩逆境萬疊을 거쳤다.
이게 바로 천지 자연섭리 속에서 필연적으로 둥글어가는 역사과정이다. 이걸 한번 잘 생각해봐라.
헌데 하찮은 개체인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우리가 이걸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서 낙오자 되면 5천 년, 6천 년 전 자기 조상까지도 다 끝나고 만다. 그러니 알아서 해라.
상제님 잘 믿어서 내 수백 대 조상도 살고, 앞으로 생겨나지 않은 여러 천 대의 자손들 복도 벌고, 나아가 앞으로 다가오는 좋은 세상에 사는 게 거저 되어지는 게 아니다. 이게 바로 천지의 농사요, 개인적으로 말하면 시조신에서부터 내 혈통의 농사다.
여기 앉았는 사람은 앞으로 다 창업시조 두겁조상이 될 사람들이다. 그걸 집에 돌아가서 백지 내놓고 나열해서 한번 써봐라. 그 결론이 어떻게 나는지.
과거 현재 미래, 오늘 내가 얘기한 것 가지고, 우선 진표율사를 기점으로 해서 거기 정답도 내려보고, 검토도 해보고 말이다.
우주원리라는 것은 아주 꼭 그렇게 되어져 있는 것이다. 내가 주역도 얘기하지 않았는가.
내가 시간이 없어서 더 덧붙이지 못하지만, 지정학상으로도 여기가 아주 핵이다. 지정학상으로 봐도 우리나라에 하나님이 오셔서 매듭짓게 돼 있다.
세상 사람들이 미련해서 진리를 모르니까 그렇지, 지구라 하는 것은 우리나라 하나를 위해 생겨져 있는 것이다.
일본, 미국, 중국 대륙, 아프리카, 저 호주 뉴기니아 그런 데 하나하나가 전부 우리나라를 위해 생긴 것이다. 지리를 알고 나면 “야, 참 세상은 조화속이로구나.” 해서, 아이들 말로 미치고 팔짝 뛴다.
그 유구한 역사과정을 통해 상제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천지공사를 바탕으로 앞세상을 전개시킨다는 이게 참 얼마나 기막힐 일인가.
절대 화합하라
다시 말하거니와, 천지의 대도로도 이런 허구한 과정을 거쳤는데, 그 속에서 내 한 개체를 가지고 쫓아가려고 하면서, 망령된 생각 갖고 남보고 나 위해 달라고 한다든지, 정책적으로 무슨 술수 써가면서 남에게 피해나 입히고 슬슬 거짓말한다든지 하는 건, 제가 제 무덤 파는 짓이다.
제군들은 각 도장에 돌아가면, 무엇보다 절대 화합을 해라. 화합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상대방에 적응해야 한다. 아, 가정에서도 자식된 도리로 “예, 아버지! 예, 어머니!” 해줘야 부모가 좋다고 할 것 아닌가. 또 남편 위치에서도 자기 처되는 사람에게 참 예쁘다 하고 사랑한다고 하고 수고했다 하고, 아주 그렇게 참 따스하게 온정적으로 하면, 신바람이 나서 어렵게 일하고도 어려운 줄도 모른다.
또 가정 주부의 위치에서는 남편에게 공경을 다해야 한다. 사나이가 도둑질하고 강도질하고 사기 협잡질하고 거짓말하는 게 전부 처자를 위해서 하는 일이다. 저 혼자 살려고 그런 짓 하는 사람 없다. 그러니 남편이 얼마나 고마운가. 사실 못된 일을 해도 고마운 것이다.
내외간에도 장가를 잘 들면 나쁜 남자도 좋게 선도될 수 있고, 또 안 좋은 여자도 남편이 잘 하면 훌륭한, 참 모범적인 가정주부가 될 수 있다. 애들도 잘 키울 것 같으면 공부도 잘할 게고. 아니 저 위해줘서 싫다는 사람 있나? 서로 위해주면 화합을 해서 좋은 가정이 되는 것이다.
화합은 참는 데서부터
옛날 역사에, 장공예張公藝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성은 베풀 장 자 장가고, 이름은 귀 공 자 재주 예 자, 공예다. 그 사람은 9대가 한 집에서 살았다. 9대라면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 고조 현조, 쭉 이렇게 해서 9대 조상까지를 말한다.
하루는 누가 와서 어떻게 9대가 한 집에서 살 수 있느냐고 물으니까, 아무 소리도 않고 참을 인忍 자 100자를 써내 놓는다. 한 마디로, 무엇이고 참아야 한다는 것이다. 9대가 한 집에 사니 얼마나 속 터지는 일이 많겠나. 자손 중에도 오색잡놈 다 생겨났을 테고.
그러니 그저 “백인百忍 당중堂中에 유태화有泰和라”고, 화합은 참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사람은 매사 잘 참고 그저 양보해야 한다.
그러면서, 여기는 교화단체니까 상대방이 감화되도록, ‘너 나쁜 걸 내가 안다.’ 하고 표시 내지 말고 잘 대해주면, 그 사람이 머리를 숙일 것 아닌가. ‘야, 참 내가 한 수 빠졌다. 내가 나쁜 사람인데 나를 이렇게 감싸주다니 참 고맙다.’ 하고, 속으로 뉘우치게 된다.
그러니 절대 도장에 돌아가서 화합을 해라. 그러다 보면 자연 일이 된다.
뭐 한도 끝도 없는 얘기니, 내 그만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군령 발동할 때 절대로 빠지지 마라. 알겠는가!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