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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꼭 알아야 할 유용하고 세상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차원 높은 정보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본 블로그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을 잘 간파하셔서 끊임없이
약이되는 생명말씀/도훈말씀(日月)

병란(兵亂)과 병란(病亂)이 함께 온다! - [1]

by 바로요거 2007. 9. 3.

 

병란(兵亂)과 병란(病亂)이 함께 온다!

 

 

 

 "이 후천개벽은 우주의 질서가 바뀌는 대개벽기이기 때문에, 이것은 무슨 선하고 악한 도덕성이 문제되는 게 아니다.

이걸 알아야 된다! 모르는 게 가장 큰 죄악이다. 선지후각(先知後覺), 먼저 제대로 알아야 깨달음이 온다.

알아야 깨진다! 지금은 진리를 새로 배워야 된다. 이 우주에 가을이 온다는 소식을 들어야 한다!

그건 오직 상제님 진리를 만남으로써만, 상제님 말씀대로 '오직 판 밖의 내 공부법' 으로만 이뤄질 수 있다! "

 

차례--->>>

 

 

자연개벽, 문명개벽, 인간개벽
후천개벽의 본질 문제
원과 한이란
우주의 근본 이치, 생장염장
선천 종교의 결론, “다른 분이 오신다!”
우주의 질서가 바뀐다
상제님 진리는 열매기 진리
인류문화의 본질이 바뀐다
진표와의 인연으로 이 땅에 오신 상제님
간도수로 오신 상제님
신도神道에 눈을 떠야
신명의 분류
인류 역사상 가장 뿌리깊은 단주의 한
단주의 해원
선천은 전쟁의 원한 역사
상극질서를 상생의 질서로 뜯어고치신 상제님
상제님은 어떤 분인가?
모든 것이 상제님으로부터 다시 새롭게 된다
천지질서를 뜯어고치신 천지공사
지구의 기령 통일
정음정양 도수, 도통맥을 태모님에게
순창의 오선위기혈을 발동시켜 지구촌의 새 질서를 짜심
오선위기의 대국 과정, 애기판과 총각판
고베[神戶]공사
상씨름은 개벽상황과 직접 연관되어 있다
민족 단위로 나라가 쪼개진다
개벽의 실제상황이 벌어지고 미군이 철수한다
병겁은 어디서 오는가?
인간 씨 종자 건지는 의통
시두는 병겁의 전조
태을주로 개벽을 극복한다
상제님 도를 만나야 성공한다
진리의 역군이 되라

 

 

지난해 가을 울산지역 증산도 대강연회 때, 머지않아 문 여는 이 롯데호텔에서, 다시 한 번 상제님 개벽문화에 대해 말씀 듣기를 고대한다는 이 곳 상제님 일꾼들의 요청을 받고, 그 자리에서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먼저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 그대들 모두 이 땅에 오신 강증산 상제님의 대도 말씀에서, 인간이 반드시 풀고 가야하는 진리의 근본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음으로써, 새로운 생의 전환점을 맞이함은 물론, 다 함께 상제님과 삼생의 인연 맺기를 축원합니다.
 
 
 자연개벽, 문명개벽, 인간개벽
 흔히 “머지않아 개벽이 온다.”고 하는데, 개벽이란 무엇인가?
 쉽게 말해서, 개벽은 동양문화에서 말하는 창조론이다. 본래 서양의 창조라는 말에 대응하는 동양의 언어가 개벽이다. 곧 서양에서 “태초에 이 우주가 창조되었다.”고 하는 데 대해, 동양 사람들은 “태초에 이 우주가 개벽되었다.”고 한다. 우주가 개벽되었다, 열렸다는 말이다.
 태초에 하늘과 땅이 열려서 오늘과 같은 모양으로 이뤄진 것이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백여 년 전에, 인간으로 오신 우주의 주재자 하나님인 증산 상제님에 의해, 처음으로 종합적인 자연개벽과 인문개벽과 인간의 심법을 여는 인간개벽이 선언되었다.
 상제님은 “선천은 삼계가 닫혀 있는 시대니라. 그러므로 각국 지방신(地方神)들이 서로 교류와 출입이 없고 다만 제 지역만 수호하여 그 판국(版局)이 작았으나 이제는 세계통일시대를 맞아 신도(神道)를 개방하여 각국 신명들이 서로 넘나들게 하여 각기 문화를 교류케 하노라.”(道典 4:6:1∼3)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 그대로, 그 동안 하늘과 땅과 인간세상과 신명계가 개방되질 않았다. 그래서 인간이 신명을 모르고 인간이 제 마음을 모른다. 서로가 서로를 모른다. 그러나 이제 천지가 가을운수로 들어서면서 통일시대를 맞이하였다.
 따라서 증산도에서 말하는 개벽문제는 기성종교에서 외쳐 온 단순한 종말론의 차원을 넘는다. 개벽은 우주의 자연질서와, 인간 문명과, 인간 생명의 본성인 마음의 문을 어떻게 여느냐, 쉽게 말해서 인간이 어떻게 궁극의 도통문화를 여느냐 하는 근본 명제를 안고 있다.
 선천에는 도통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웠다. 하지만 앞세상에는 그게 완전히 바뀐다. 누구나 다 닦은 만큼 도통을 한다.
 
 
 후천개벽의 본질 문제
 개벽이 온다, 종교적 철학적 용어로 후천개벽이!
 그러면 그 개벽의 실제 대사건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또 개벽이 올 때는 어떤 변혁이 일어나는가? 왜, 무엇 때문에 개벽이 일어나는가? 그리고 그 개벽상황은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그 동안 기존의 기독교나 불교에서 말해온 인간의 삶의 문제, 그 핵심이 무엇인가? 원죄나 업, 선과 악, 그런 게 인간 문제의 근본인가?
 물론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 그것을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제기한 분이 있다. 누구인가?
 바로 132년 전에 이 땅에 강세하신 우리 증산 상제님이다.
 자, 증산 상제님의 말씀을 보자.
 
 선천에는 상극의 이치가 인간 사물을 맡았으므로 모든 인사가 도의(道義)에 어그러져서 원한이 맺히고 쌓여 삼계에 넘치매 마침내 살기(殺氣)가 터져 나와 세상에 모든 참혹한 재앙을 일으키나니 (道典 4:14:2∼3)
 
 상제님은 인간의 원과 한을 가장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그리고 인류역사를 관통한 인간의 문제로 말씀하고 계신다.
 따라서 상제님의 개벽문화에서 말하는 인간의 행·불행의 근원은, 단순히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다! 원과 한의 살기가 이 천지에 꽉 들어차서, 그것이 터져 나와 세상의 모든 참혹한 재앙과 불행을 만들고 있다. 아, 비행기가 떨어지는 것, 자동차가 박치기하는 것, 어떤 집이 화재로 폭발하는 것, 그게 전부 인간으로 살다가 천고의 원과 한을 맺고 천상으로 간 신명들이 인간에게 붙어서 일으키는 거란 말이다.
 이것이 증산도에서 제기하고 있는 후천개벽의 본질적인 문제다.
 
 
 원과 한이란
 그럼 이 원과 한의 속성은 무엇인가?
 모든 생명의 본성은 지속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영원히 살고자 하는 것이다. 당장 죽고 싶다고 하는 이들도, 폭탄이 떨어진다고 할 때, 가만히 앉아 참혹한 죽음을 기꺼이 맞겠노라고 만용을 부리는 자는 없다. “어이쿠” 하면서 순간적으로 살려고 발버둥친다.
 인간 생명의 꿈인 행복과 건강! 그것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 인간에게는 원과 한이 맺힌다. 특히 외부의 억압이나 폭력, 전쟁과 같은 극히 강력한 파괴적인 수단에 의해 생명을 그르치게 되면, 인간은 원통함을 느낀다. 원寃은 남에게 일방적으로 당해서 가슴 아픈 걸 말한다.
 또 세월이 흐르면서 그것이 가슴에 깊이 맺힐 때, 한이 남았다고 한다. 한은 ‘맺힐 한’ 자다. 내 가슴에 내 마음에 깊이 맺힌 덩어리, 병증病症이다.
 원통한 것은 개별적이고 개인의 삶과 역사 환경에 따라, 자연 환경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한이라는 건 보편적이다. 모든 인간에게는 맺힌 게 있다.
 지금 이 원과 한의 문제를 놓고, “아, 나는 좋은 집에 태어나 배부르게 잘 먹으며 즐겁게 살고 있으니까, 또 사업하는 것 잘 돌아가니까, 그런 건 내가 알 바 아니다. 원과 한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지, 원과 한이 없는 인간이 어디 있나!” 이렇게 얘기하고 넘어갈 게 아니다.
 민족이나 국가, 동양·서양을 떠나, 인류의 역사 속에서 정말로 잊혀질 수 없고 용서될 수 없는, 충격적인 원한을 깊이 맺고 죽어간 비극의 주인공들, 그 고통의 실상을 한번 들여다보자.
 
 지난 4백 년 동안 유럽에서 노동력 차출이라는 미명으로, 아프리카 흑인을 잡아다 노예로 만들고 잡아죽인 숫자가 6천만이 넘는다.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아미스타드>란 영화를 보면, 아프리카에서 흑인이 백인의 앞잡이가 되어, 같은 흑인을 짐승 잡듯 잡아다가 노예로 팔아 넘긴다. 그러고 망망대해를 가다가, 그들이 병들거나 노동력을 상실하면 참담하게 죽인다. 자, 영화를 보면서 그 고통의 순간으로 들어가보자.
 (영화감상)
 이 흑인들의 하늘을 찢는 절규! 죽음의 순간에 외치는 처절한 외마디 비명소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천지 안을 떠돌고 있다.
 
 이 원과 한도, 고통의 밀도에 따라 용서될 수 있는 게 있는가 하면,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깊고 깊은 게 있다. 이 원한의 실례는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런데 이렇게 처절하게 죽어간 인간의 원한의 고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증폭된다. 여기에 인간의 증오의 문제가 있다! 여기에 보복의 문제가 있다! 그것을 한 글자로 척隻이라고 한다, 척!
 증산 상제님이 ‘이 세상을 사는 인간으로서 가장 행복한 사람, 잘 사는 사람이 누구냐?’에 대해 말씀해주신 만고의 멋진 명언이 있다.
 “상말에 ‘무척 잘산다’ 이르나니 ‘척(隻)이 없어야 잘산다.’는 말이라.”(道典 2:79:1)
 “무척 잘산다.”에서 ‘무척’은 ‘대단히’라는 뜻으로 들리지만, 본래 그 속뜻은 ‘남과 척이 없다. 남으로부터 미움 사는 게 없다’는 거다.
 그러니 좋게 살아야 된다. 좋게! 덕을 베풀면서! 그렇지 않고 남 잘 되는 것 못 보고 해코지를 하면, 반드시 그에 대한 악척을 받아 생을 좋게 마감할 수 없다.
 선천 인류역사라는 것은 악척의 역사다. 피의 역사요! 보복의 역사요, 저주의 역사다. 문명사로 보면 전쟁의 역사다!

 

우주의 근본 이치, 생장염장
 왜 인간의 삶이 원과 한의 역사인가?
 여기서 이 우주의 개벽문제가 나오는데, 한 마디로 그것은 선천의 우주 질서가 상극이기 때문이다.
 증산도 진리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우주론 개벽관을 보라. 그 동안 인간이 어떤 환경에서 살아왔느냐? 이 우주는 어떤 목적을 갖고 인간을 내어 기르는가?’ 이에 대해 상제님이 예전의 말씀을 취해서 해 주신 말씀이 있다. “천지무일월공각天地無日月空殼이요 일월무지인허영日月無知人虛影이니라, 즉 천지는 일월이 없으면 빈 껍데기요, 일월은 사람이 없으면 빈 그림자니라.”(道典 8: 59:3∼4)천지와 일월의 열매가 인간이다! 우주의 열매, 우주의 총 결론이 우리 인간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이게 바로 상제님이 처음으로 말씀해주신, 이 우주에서 인간농사 짓는 사계절 개벽문제다. 현대말로 표현하자면 시간의 문제.
 ‘우주는 어떻게 돌아가느냐? 무엇을 위해 돌아가느냐?’
 상제님은 그것을 아주 간결하게 압축하여 말씀하신다.
 “내가 천지를 주재하여 다스리되 생장염장(生長斂藏)의 이치를 쓰나니 이것을 일러 무위이화라 하느니라.”(道典 4:41:4)
 생장염장, 즉 이 우주는 봄에 생명을 내고 여름철까지 기르다가, 가을이 되면 봄여름철에 길러낸 진액을 뽑아 열매를 거둬들인다. 이것이 우주변화의 목적이다.
 자, 이 말씀을 하시는 우리 상제님이 누구신가? 이 우주를 다스리시는 통치자, 주재자이시다. 사실 지난 수천 년의 세월 동안, 동서양을 통틀어 손가락 꼽을 정도의 몇 사람만이, 이 우주에 통치자가 있다는 걸 말했다. 제2의 공자라고 하는 유가의 주자 같은 분이 그걸 알았다.
 “이 우주에는 우주를 통치하는 하나님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도가 짧아서 상제님의 조화세계를 알 수가 없다. 나는 다만 리理, 이치를 말할 뿐이다. 즉 우주 속에 내재한 대자연의 섭리, 대자연의 이법, 우주의 변화원리를 믿고 그것을 공부할 뿐이다.”(『주자어류』 참고)라고 했다.
 
 지금 상제님이 “내가 천지를 맡아 다스리는데, 그 근본이치는 ‘생장염장’ 네 가지 질서다.”라고 하신다. 상제님의 이 한 마디 말씀에서, 그 동안 동서양 과학자들이나 철학자들이나 종교 하는 이들이 해답을 찾지 못한 진리의 근본 문제, 우주변화의 수수께끼가 명쾌하게 풀린다.
 아, 하루도 낮에는 나가서 일하고, 밤에는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 쉬지 않는가. 이 주야동정이라는 건 뭐 배우고 못 배우고, 믿고 안 믿고, 관심이 있고 없고, 알고 모르고 그런 문제가 아니다. 그건 신앙의 대상이 아니다. 대자연의 섭리이고, 생명의 섭리다. 아침이 되면 눈뜨고 나가서 일하고, 저녁이 되어 해떨어지면 가서 쉬는 동과 정! 그것을 어기고 부정하면 병들어 죽는 것밖에 없다.
 지구 일 년도 그렇다. 지구가 하루 360도 자전하면서 태양을 안고 한 바퀴를 돌면, 지구의 봄여름가을겨울이 돌아간다. 즉 360도 하루 음양동정이 바뀌는 게 360회 반복되면, 초목농사 지어서 인간이 녹을 취하는 한 주기, 지구의 일 년 사계절 12만9천6백 도가 성립되는 것이다.
 우주 일 년도 이 360년을 하루로 360회를 순환 반복해서 12만9천6백 년 수다. 선천 봄개벽으로 인간을 낳아 여름철까지 기르다가, 후천 가을개벽으로 씨 종자를 추수하고 쉬는, 일체 생물이 멸망당하는 겨울철까지가 우주 인간농사의 한 주기다. 우주도 일 년 사계절로 순환하는 것이다.
 우주에서 인간 농사짓는 우주 일 년이나 지구에서 인간이 먹고살기 위해 초목농사 짓는 거나, 인간의 하루 주야동정 삶의 이치가 다 똑같다. 오직 생장염장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 우주의 근본 이치, 우주의 섭리다.
 
 
 선천 종교의 결론, “다른 분이 오신다!”
 그런데 지금 이 때는, 이번 우주 일 년 가운데 선천 봄여름철을 마무리짓고 가을철로 들어가는 하추교역기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인간으로 태어나 사는 건가? 인간의 삶의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사실 그 동안 아무도 이걸 가르쳐주지 않았다. 어머니 아버지도 가르쳐준 바 없고, 초등학교로부터 대학교 대학원을 나오고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인간이 무엇을 위해 사느냐? 그리고 인류는 지금 어느 때에 살고 있느냐?’ 하는 시대적, 역사적, 문화적, 우주적인 전환 문제에 대해 가르쳐준 자가 없다!
 기성 종교에서는 이것을 단순히 종말론의 문제로, 구원론의 문제로만 언급했을 뿐이다. 기독교에서는 대부분, 예수성자가 왔다간 지 2천 년 정도가 되면 말세가 오고, 주님이 재림한다고 한다.
 또 불가에서는, 석가모니 법이 나온 이후 3천 년의 세월이 흐르면 말법시대가 되어, 새 부처님이 오신다고 했다. 석가모니 진리로는 더 이상 인류의 마음을 다스릴 수 없다는 거다. 그 진리로는 지구촌 인간의 마음 문을 못 연다는 거다.
 왜 석가모니의 법으로 인간 마음의 문을 못 여는가?
 천륜 다 끊고, 성(姓)도 다 던져버리고 법명 받아 깊은 산중에 들어가 죽는 순간까지 용맹정진으로 참선을 하면, 환해져서 뭔가 알기는 안다. 그러나 이 우주질서가 바뀌는 문제를 모른다! 불교의 종말이 어떻게 끝나는지 모른다. 새 부처님이 오신다고 하는 불교의 말법 문제가 개벽인 걸 모른다.
 그런데 선천 성자들의 진리 말씀의 결론을 한 마디로 압축하면, 장차 대자연의 섭리가 바뀌는 그 때, 바로 엄청난 개벽문제를 해결해 주는 분이 오신다는 거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새 부처님, 미륵님이 오신다(지금 이 미륵불의 강세소식은 불가에서 철저히 왜곡시킴으로써 알 수 없게 되어 있다).
 또 예수가 말한 바대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오신다! 그 아버지가 친히 오셔서 이 우주의 새 질서를 연다, 곧 신천 신지(새 하늘 새 땅)를 여신다.
 이게 참 믿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것이 선천종교 문화인 불교의 결론이요, 기독교의 결론이다! 핵심은 다른 분이 오신다는 것이다!

 

우주의 질서가 바뀐다
 거듭 말하거니와, 이 우주는 12만9천6백 년을 한 주기로 인간농사를 짓는다. 이 우주가 처음 인간생명을 낳는 게 봄철이다. 그걸 봄개벽, 선천개벽이라고 한다.
 그런 다음 우주는 여름철까지 생명을 기르고, 봄여름 생장과정을 다 끝마친 뒤 세 번째 가을철에 들어서면, 봄여름철에 길러낸 생명의 진액을 거두어 열매를 맺는다.
 ‘열매 맺는다.’는 말은 다른 말로, ‘천지에서 인간생명을 거둔다, 추수한다, 수렴한다, 매듭짓는다, 통일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세 번째 가을의 시간대에서 우주의 질서가 바뀐다.
 문제는 이것이다.
 이 때 천지에서 우리 인간 생명을 하나도 예외없이 일시에 거둬들이는 대변혁이 온다. 이것이 앞으로 오는 가을개벽, 이른바 후천개벽의 문제다.
 그런데 이 때, 지난 선천 봄여름의 낡은 문화, 낡은 세상을 문 닫고, 하늘과 땅과 해와 달의 질서가 가을로 바뀌는 대개벽기를 맞이하여, 그 변혁을 극복하는 새 진리가 나온다. 지구촌 모든 인간의 마음과 영, 인간 생명을 성숙케 하는 새 문화가!
 그 새 진리를 들고 나온 분이, 바로 132년 전에 이 땅에 오신 우리 증산 상제님이다.
 우리 인간의 삶의 목적은, 이 우주가 성숙된 질서로 바뀌는 후천 가을개벽 때, 인종 씨를 추수하러 오시는, 예수가 말한 하나님 아버지, 석가모니가 말한 도솔천의 천주님 미륵불이신 이 우주의 주재자이신 증산 상제님의 완성된 새 진리를 만나, 성숙된 열매 인간이 되는 데 있다.
 증산 상제님께서는 만고에 없는 도통문을 여시고, “내가 전하는 도는 고불문금불문古不聞今不聞이다.”라고 하셨다. 곧 “나의 도는 예전에도 들어본 바가 없고 이제도 들어본 바가 없느니라.”는 말씀이다. 예전의 석가, 예수, 공자, 노자, 마호멧 이런 성자들이 감히 꿈도 꾸어보지 못한, 그들의 깨달음으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새 진리란 말씀이다.
 또 “선천의 판안 공부로는 알 수 없을 것이요, 판 밖의 내 법이라야 알 수 있다.”는 상제님 말씀도 있다.
 ‘앞으로 어떤 세상이 오는가?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수행을 해야 되는가? 앞으로 어떻게 나의 마음과 생명을 닦아야 되느냐?’대해, 서양문화에도 동양문화에도, 내가 전하는 도와 비슷하게 얘기한 자가 없다는 말씀이다.
 
 
 상제님 진리는 열매기 진리
 상제님께서 선천 성자들의 가르침에서는 들어본 바 없는 새 진리를 열어주시기 위해 오셨다. 그 진리의 성격이 무엇인가?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후천개벽에 한두 가지 살을 붙여 거듭해서 얘기할 게 있다.
 아까도 잠깐 언급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때는, 인간농사 짓는 우주 일 년에서 봄여름이 끝나고 가을로 들어서는 중간지점이라는 것이다. 곧 선천세상을 마무리짓는 여름과 가을이 바뀌는 하추교역기! 그걸 알려주는 여러 징조가 있다.
 지금 지구촌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온갖 부작용이 초래되고 있다. 바야흐로 인구폭발 시대다.
 초목이 봄에 싹터서 계절의 여왕 5월에 가면 봄비를 맞으며 이파리가 쑥쑥 자라나 여름철 말인 6, 7월에 가면 온 하늘을 다 덮어버리잖는가.
 지금이 바로 그러한 때다.
 그런데 땅 속 깊은 곳에서 뻗쳐오르는 천지의 양기, 초목의 생명력이 그냥 한없이 솟구쳐 오르기만 하는 게 아니다. 극즉반極卽返의 이법에 따라, 여름철 성장의 극이 되면, 가을 서릿발을 맞아 불과 수삼일 만에 낙엽이 떨어진다. 모든 게 조락凋落하여 뿌리로 돌아간다. 소위 낙엽귀근落葉歸根으로, 떨어지는 이파리는 뿌리로 돌아가 거름이 되고, 그러고는 딱 열매 하나 맺는다.
 이 열매 맺는 게, 인간이 녹을 따먹는 지구 일 년 초목농사의 결론이다. 봄에 씨뿌리고 여름에 기르면, 가을에는 뿌리, 줄기, 꽃 이파리의 진액을 다 거둬 열매를 맺는다. 그 열매에는 뿌리, 줄기, 이파리, 즉 생명 진화의 모든 과정, 생명의 비밀이 다 응축돼 있다. 그것은 새로운 생명의 씨앗이다.
 상제님 진리는 바로 선천 유불선 기독교의 진액이 응축된 우주 가을철의 열매기 진리, 통일진리다.
 
 
 인류문화의 본질이 바뀐다
 그러면 우리가 맞이하는 가을개벽은 실제로 어떻게 오는가?
 이것이 오늘 말씀의 핵심이다.
 우주 문제를 놓고 볼 때, 우리 인생공부, 진리공부의 근본, 우주변화의 결론이 가을개벽이다.
 상제님께서 아주 쉬운 말씀으로 “천지대운이 이제서야 큰 가을의 때를 맞이하였느니라.”(道典 7:28:4) “지금은 온 천하가 가을운수[秋運]의 시작으로 들어서고 있느니라.”(道典 3:11:5)고 하신다.
 인류문화의 본질이 바뀐다.
 어떻게 바뀌는가?
 선천에는 하늘과 땅과 인간과 신명계와 어천 만물이 상극의 겁살에 눌려서, 뜻하는 바를 못 이루고 원과 한을 맺고 죽어갔다. 이 원한은 과거 성자들의 묵은 가르침으로는 끌러낼 수가 없다!
 가을철에는 우주의 질서가 새롭게 바뀌는 대개벽을 한다. 때문에, 이 문제는 오직 우주의 지존의 절대자 자리에 계신 하나님, 상제님만이 끌러낼 수 있다. 그래서 천상 보좌에 계신 상제님께 달려가 그것을 하소연한 분이 바로 서양의 이마두(마테오 리치) 신부다.
 
 서양사람 이마두가 동양에 와서 천국을 건설하려고 여러 가지 계획을 내었으나 쉽게 모든 적폐(積弊)를 고쳐 이상을 실현하기 어려우므로 마침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만 하늘과 땅의 경계를 틔워 예로부터 각기 지경(地境)을 지켜 서로 넘나들지 못하던 신명(神明)들로 하여금 거침없이 넘나들게 하고
 그가 죽은 뒤에는 동양의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돌아가서 다시 천국을 건설하려 하였나니
 이로부터 지하신(地下神)이 천상에 올라가 모든 기묘한 법을 받아 내려 사람에게 ‘알음귀’를 열어 주어
 세상의 모든 학술과 정교한 기계를 발명케 하여 천국의 모형을 본떴나니 이것이 바로 현대의 문명이라.
 서양의 문명 이기(利器)는 천상 문명을 본받은 것이니라.
 그러나 이 문명은 다만 물질과 사리(事理)에만 정통하였을 뿐이요, 도리어 인류의 교만과 잔포(殘暴)를 길러 내어 천지를 흔들며 자연을 정복하려는 기세로 모든 죄악을 꺼림 없이 범행하니
 신도(神道)의 권위가 떨어지고 삼계(三界)가 혼란하여 천도와 인사가 도수를 어기는지라.
 이에 이마두는 원시의 모든 신성(神聖)과 불타와 보살(菩薩)들과 더불어 인류와 신명계의 큰 겁액(劫厄)을 구천(九天)에 하소연하므로 (道典 2:26:3∼2:27:3)

 서양사람 이마두가 중국에 와서 돌아가셨는데, 그분은 자기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백성들에게 봉사하여 이로움을 준다 해서, 성姓에 이로울 ‘리利’자를 붙였다.
 ‘이 서양 사람 이마두가 동양에 와서 천국을 건설하려고 여러 가지 계획을 내었으나 쉽게 적폐를 못 고치고, 죽어서 동양의 문명신을 거느리고 천상에 올라가 천국문명을 배워 서양 사람들에게 알음귀를 열어주었다. 그렇게 해서 인사로 이뤄진 게 오늘의 서양 문명, 서양 과학이다.’ 이게 상제님 말씀이다.
 참, 그 인식이나 비판의 경계가 지금의 학자들이나 역사가들하고는 전혀 다르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과학문명은 천국의 문명을 그대로 복사한 거란 말이다. 지금 날이 갈수록 점점 그 정밀도가 똑같아지고 있다.
 헌데 이번 가을개벽으로 인간문명이 천상의 문명을 능가하게 된다. 그게 앞으로 오는 조화造化문명이다!
 이것이 참 중요한 내용이다. 앞으로 오는 문화는 조화문화, 다른 말로 만사지萬事知 문화라고도 한다.

 

진표와의 인연으로 이 땅에 오신 상제님
 그러면 상제님께서는 왜 이 동방 땅에 강세하셨는가?
 상제님이 지구촌의 숱한 나라를 제쳐두고 이 땅에 강세하신 것은, 몇 가지 피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고 하셨다. 자연섭리와 신도의 탄원과 또 우리 조상들이 살면서 역사 속에 쌓아온 음덕 등 여러 가지 이유가!
 그 가운데 상제님은 진표율사와의 인연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의 동토(東土)에 인연이 있는 고로 이 동방에 와서…”(2:73:6) “진표(眞表)는 나에게 큰 인연이 있느니라.”(3:69:1)
 1,200여 년 전, 통일신라 시대 때 불가의 도승인 진표는 열두 살 넘어 출가해서, 한평생 미륵님에게만 기도했다. 그는 27세 때 서해 변산에 있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 가운데 있는 부사의방장이라는 곳에서, 3년 동안 기도하고 또다시 21일 수도한 끝에, 미륵님으로부터 대도통을 받는다.
 불가 3천 년 역사에서, 도솔천의 천주님인 미륵님으로부터 석가모니에 못지 않은 큰 도통을 받은 이는 오직 그분 한 분뿐이다.
 도통을 받은 그는 “미륵님께서 이 땅에 강세하여 주십사” 하고 기도했다. 미륵님이신 상제님께서 그에게 이 땅에 강세하실 것을 약속하면서, 당신의 모습 그대로 불상을 세울 것을 명하신다. 그 명을 받고 그가 세운 것이, 실내 미륵불상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전북 금제군 금산면 금산리 금미륵불이다.
 요즘 드라마에 나오는 조선 말 명성황후에 대해, 상제님은 “민중전이 각처의 사찰에 빠짐없이 기도하였으나 오직 금산사에는 들지 못하였느니라.”(道典 3:69:2)고 하셨다. 그가 가정과 나라를 위해 전국에 있는 사찰에 기도했으나, 오직 금산사에만은 들지 못했다, 상제님과 인연이 없다는 말씀이다. 참 기막힌 말씀이다. 그는 선천의 부처인 석가모니만 알았지, 앞으로 새 개벽천지를 여는 미륵불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던 것이다.
 왜 그런가? 의식이 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판안의 법에 매여서, 우주가 새롭게 열리는 개벽의식을 갖고 있질 못했기 때문이다.
 
 
 간도수로 오신 상제님
 상제님이 이 땅에 오시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주역의 간艮도수 때문이다. 개벽 소식 가운데 이 간도수만 제대로 알아도 큰 소득이다. “주역을 보면 내 일을 안다.”는 상제님 말씀 그대로, 주역을 보면 공자가 한평생 공부하고 나서, 모든 변화가 귀결되는 곳 즉, 선천세상이 마무리되고 후천세상이 처음 열리는 곳을, 팔괘의 방위로 “성언호간成言乎艮”이라고 했다. 간방에서 말씀을 이룬다, 완성된 진리가 나오는 곳이 동북 간방이란 말이다.
 나무로 말하면 간艮은 열매다.
 사실 한 그루 나무에 우주의 섭리가 다 들어있다. 뿌리는 손巽이고, 땅 위에 뻗은 줄기는 진震이다. 진손震巽이 일체다. 또 꽃은 태兌고, 열매는 간艮이고, 천지기운을 받아 나무가 자라니 하늘은 건乾이고, 땅은 곤坤이다. 그리고 일월의 물과 불기운으로 모든 생명이 생성된다. 그게 감괘坎卦 이괘離卦다.
 이렇듯 한 그루의 나무에 천지 조화의 이치가 그대로 다 들어있다!
 그리고 이제 봄 다음에 여름이 오고 여름 다음에 가을이 오는데, 그 가을에 문명의 열매를 맺는 곳, 지구촌 문화를 통일하여, 전 인류를 보편적인 새 진리로 건져내는 개벽의 땅! 그 곳이 바로 간방이란 말이다! 지구촌 동북 간방!
 인류 문화가 바로 이 간방에서 시작되고, 최종 종결도 여기서 이뤄진다.
 이에 대해 상제님이 확인해주신 말씀이 있는데, 오늘은 그것까지 전할 시간이 없어서 다음으로 미룬다. 머지않아 『도전』 개정판이 나올 테고, 또 다른 서적들도 있으니, 그걸 보면서 직접 그 말씀을 공부하기 바란다.
 
 
 신도神道에 눈을 떠야
 자, 그럼 가을세상이 올 때, 왜 엄청난 일이 벌어지는가?
 이 가을개벽을 알려면 먼저 인간이 뭔지, 그 바탕이 뭔지 알아야 한다.
 인간의 본성이란 뭔가?
 그냥 세상의 지식 좀 배워서 돈 벌어 뜻 좀 이루고, 먹고 즐기다가 죽어 없어지면 끝인가? 그게 아니다.
 상제님 말씀을 보라.
 
 사람에게는 혼(魂)과 넋(魄)이 있어
 혼은 하늘에 올라가 신(神)이 되어 제사를 받다가 4대가 지나면 영(靈)도 되고 혹 선(仙)도 되며
 넋은 땅으로 돌아가 4대가 지나면 귀(鬼)가 되느니라.(道典 2:98:2∼4)

 
 상제님은 종종 신을 신명으로도 말씀하셨는데, 사람이 죽으면 신이 된다. 그러고 4대 동안 제사를 받으면서 영도 되고 선도 된다. 또 몸뚱아리는 죽어서 땅속으로 들어가 4대가 지난 뒤에 귀가 된다.
 지금 사람들이 서양의 종교나 과학 등의 영향을 받아 ‘귀신’ 하면 아주 저급한 신명으로 알고 있다. 그게 아니다. 수도를 해 보면 알겠지만, 천지가 신이다. 천지가 귀신이란 말이다. 하늘은 신이고 땅은 귀다.
 천지귀신, 하늘과 땅!
 진리라는 건 하늘과 땅에서 시작해서 하늘과 땅으로 끝난다. 따라서 인간의 삶은 하늘땅 공부로 시작해서 하늘땅 공부로 끝나는 것이다.
 헌데 아직 참된 진리가 없어서, 수많은 인류가 하늘땅이 뭔지도 모르고 죽어갔다. 수도공부가 있긴 하지만, 이 천지의 실상을 생활 속에서 쉽게 체험할 수 있는 공부법이 없었다.
 그 수도법이 바로 태을주 공부다. 태을주를 잘 읽으면 누구도 천지와 만물의 본성인 신을 볼 수 있다. 그대들이 신도에 눈뜰 때, 앞으로 오는 가을개벽이 뭔지, 가을개벽의 실제 상황에서 왜 이름 없는 괴병이 전 인류의 명줄을 끊는지 알 수 있다.
 아, 왜 하루에 오백만이 넘는 숫자가 넘어가는가! 상제님 말씀을 보면, 앞으로 이 지구촌에 괴질병 개벽이 3년 동안 지속되는데, 그게 왜 오는가?
 
 
 신명의 분류
 좀 전에도 말했지만 인간 생명의 바탕이 신이다. 상제님 말씀을 보자.
 
 하루는 어린 호연이가 “참말로 신명이 있나요?”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그럼.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모두 신명의 조화로 되는 것이지.” 하시니라. (道典 2:98:7∼8)

 
 또 말씀하시기를 “지금 너희 양쪽 어깨 위에 신명이 없으면 기운이 없어 말도 못 하느니라.
 눈에 동자가 있어야 보이듯이 살아 있어도 신명 없이는 못 다니느니라.
 또 신명이 안 가르치면 말도 나오지 않나니, 이 모두가 신명의 지킴이 있는 연고니라.” 하시니라. (道典 5:305:2∼4)

 
 신이 있어야 보고 듣는다!
 죽어서 혼이 몸을 떠나면 신명이라고 한다. 그런데 선천세상에 실재했던 인간의 몸을 떠난 신들이, 이 천지에 꽉 들어차 있다. 상제님께서는 이 신명들을 크게 구분해서 말씀해 주신다.
 먼저 한 생애 살면서 인간세상을 밝고 좋은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문명을 개발하고 개척하는 데 헌신한 이들이 있다. 즉 과거 성자들이나 철학자 과학자들, 그들은 문명신이다.
 그 다음 각 문명권은 일정한 민족이나 지역에 따라 형성되었는데, 바로 그 민족 또는 부족의 생사를 주관하고 돌보는 신, 지방신이 있다. “선천은 삼계가 닫혀 있는 시대니라. 그러므로 각국 지방신(地方神)들이 서로 교류와 출입이 없고 다만 제 지역만 수호하여 그 판국(版局)이 작았으나…”(道典 4:6:1∼2)라고 하신 상제님 말씀처럼, 지방신은 각 지경을 다스린다.
 원시 시대에는 부족신이나 민족신들이 그 민족의 하나님 또는 조물주로 받들어져 왔다. 지금 각 부족과 민족간의 전쟁은, 지방신들 간의 싸움이다. 자기네 지방신의 절대성을 강요하면서 상대방을 꺾으려고 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거다. 그게 가장 처절한 곳이 저 중동 지역이다.
 오늘도 보니까, 이스라엘에서 자살폭탄 사건으로 근 백 명이 죽고 다쳤다. 그건 그칠 수가 없다. 앞으로 어떤 평화 협상안이 나온다 하더라도 또 터진다. 왜 그런가? 원과 한을 안고 죽은 신명들이 보복을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앞으로 지구촌 인종 씨 추리는, 천지의 질서가 뒤집어지는 대개벽, 서양에서 영이 밝은 이들이 전하는 한 소식인, 거의 모든 게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뒤바뀌는 지구의 대변혁에 의해서만 해소될 수 있는 문제다.
 그 다음, 상극기운이 축적된 선천 역사에서 불의를 바로잡으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무참하게 죽은 혁명가의 영신인 역신逆神이 있다.
 또 상제님은, 이 우주를 새롭게 창조, 경영하는 우주통치정부인 신명 조화정부에, 각 성씨의 선영신이 한 사람씩 참여하고 있다고 하셨다.
 즉 이번에는 인종 씨 추려 열매 맺는 가을개벽이므로, 그 조상과 자손의 전 역사를 심판해서, 과연 누가 씨받을 종자인가를 공정하게 심판하기 위해, 천상의 선영신이 각기 한 사람씩 참여해 있는 것이다.
 그 다음 상제님은 인간역사에서 큰 원을 맺고 죽은 신명들을 원신寃神이라고 하셨다.
 아까도 말한 바와 같이, 천고의 원을 품고 참담하게 죽어간 흑인들, 중세 때 마녀사냥으로 죽은 숱한 여자들, 이들이 원신이다. 상제님은 먼저 이 원신들의 한을 끌러줘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신명의 분류
 좀 전에도 말했지만 인간 생명의 바탕이 신이다. 상제님 말씀을 보자.
 
 하루는 어린 호연이가 “참말로 신명이 있나요?”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그럼.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모두 신명의 조화로 되는 것이지.” 하시니라. (道典 2:98:7∼8)

 
 또 말씀하시기를 “지금 너희 양쪽 어깨 위에 신명이 없으면 기운이 없어 말도 못 하느니라.
 눈에 동자가 있어야 보이듯이 살아 있어도 신명 없이는 못 다니느니라.
 또 신명이 안 가르치면 말도 나오지 않나니, 이 모두가 신명의 지킴이 있는 연고니라.” 하시니라. (道典 5:305:2∼4)

 
 신이 있어야 보고 듣는다!
 죽어서 혼이 몸을 떠나면 신명이라고 한다. 그런데 선천세상에 실재했던 인간의 몸을 떠난 신들이, 이 천지에 꽉 들어차 있다. 상제님께서는 이 신명들을 크게 구분해서 말씀해 주신다.
 먼저 한 생애 살면서 인간세상을 밝고 좋은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문명을 개발하고 개척하는 데 헌신한 이들이 있다. 즉 과거 성자들이나 철학자 과학자들, 그들은 문명신이다.
 그 다음 각 문명권은 일정한 민족이나 지역에 따라 형성되었는데, 바로 그 민족 또는 부족의 생사를 주관하고 돌보는 신, 지방신이 있다. “선천은 삼계가 닫혀 있는 시대니라. 그러므로 각국 지방신(地方神)들이 서로 교류와 출입이 없고 다만 제 지역만 수호하여 그 판국(版局)이 작았으나…”(道典 4:6:1∼2)라고 하신 상제님 말씀처럼, 지방신은 각 지경을 다스린다.
 원시 시대에는 부족신이나 민족신들이 그 민족의 하나님 또는 조물주로 받들어져 왔다. 지금 각 부족과 민족간의 전쟁은, 지방신들 간의 싸움이다. 자기네 지방신의 절대성을 강요하면서 상대방을 꺾으려고 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거다. 그게 가장 처절한 곳이 저 중동 지역이다.
 오늘도 보니까, 이스라엘에서 자살폭탄 사건으로 근 백 명이 죽고 다쳤다. 그건 그칠 수가 없다. 앞으로 어떤 평화 협상안이 나온다 하더라도 또 터진다. 왜 그런가? 원과 한을 안고 죽은 신명들이 보복을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앞으로 지구촌 인종 씨 추리는, 천지의 질서가 뒤집어지는 대개벽, 서양에서 영이 밝은 이들이 전하는 한 소식인, 거의 모든 게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뒤바뀌는 지구의 대변혁에 의해서만 해소될 수 있는 문제다.
 그 다음, 상극기운이 축적된 선천 역사에서 불의를 바로잡으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무참하게 죽은 혁명가의 영신인 역신逆神이 있다.
 또 상제님은, 이 우주를 새롭게 창조, 경영하는 우주통치정부인 신명 조화정부에, 각 성씨의 선영신이 한 사람씩 참여하고 있다고 하셨다.
 즉 이번에는 인종 씨 추려 열매 맺는 가을개벽이므로, 그 조상과 자손의 전 역사를 심판해서, 과연 누가 씨받을 종자인가를 공정하게 심판하기 위해, 천상의 선영신이 각기 한 사람씩 참여해 있는 것이다.
 그 다음 상제님은 인간역사에서 큰 원을 맺고 죽은 신명들을 원신寃神이라고 하셨다.
 아까도 말한 바와 같이, 천고의 원을 품고 참담하게 죽어간 흑인들, 중세 때 마녀사냥으로 죽은 숱한 여자들, 이들이 원신이다. 상제님은 먼저 이 원신들의 한을 끌러줘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인류 역사상 가장 뿌리깊은 단주의 한
 그런데 원신들 가운데 누구의 원한이 가장 뿌리 깊으며,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는가? 이것이 인류의 고통 문제를 역사적인 안목에서 보게 해 주는, 아주 중요한 구원 문제의 하나다.
 그게 누구의 한인가?
 상제님은 그것이 바로 4천3백 년 전, 저 중국의 유가에서 가장 살기 좋은 시대라고 일컫는 요순시대, 요임금의 아들 단주丹朱의 원한이라고 하신다. 붉을 단 자, 붉을 주 자, 단주丹朱의 깊은 한!
 그 이름도 뭔가를 시사해 주는 듯한데, 그에 대한 상제님 말씀을 보자.
 
 이 때는 해원시대(解寃時代)라.
 원한의 역사의 처음인 당요(唐堯)의 아들 단주(丹朱)가 품은 깊은 원(寃)을 끄르면
 그로부터 수천 년 동안 쌓여 내려온 모든 원한의 마디와 고가 풀릴지라.
 대저 단주를 불초(不肖)하다 하여 천하를 맡기지 않고 요(堯)가 그의 두 딸과 천하를 순에게 전하여 주니
 단주의 깊은 원(寃)을 그 누가 만분의 하나라도 풀어 주리요.
 (道典 2:31:3∼7)

 
 수천 년 동안 불효자의 대명사로 불리워 온 단주의 깊은 원을 누가 알아주겠는가. 참으로 사람을 참담하게 만드는 게, 착한 사람을 “저놈 나쁜 놈이다!”라고 왜곡시키고 매도해서 어둠 속에 빠뜨리는 거다. 그것처럼 억울하고 분한 일이 없다.
 유가에서는 공자 이래 여러 현인들이, 요임금 순임금을 도덕의 본보기로 말하며, 유가의 종통이 요순에서 왔다고 한다.
 그런데 상제님은 그게 아니라고 딱 잘라 말씀하신다. 인류역사에 가장 강력한 원한의 피를 뿌린 게 요임금 순임금이라고, 9년 홍수가 백성들의 피눈물로 일어난 거라고 하신다.
 
 세상에서 요순지치(堯舜至治)를 일러 왔으나, 9년 홍수는 곧 창생의 눈물로 일어났나니
 요(堯)는 천하를 무력으로 쳐서 얻었으므로 9년 홍수가 일어나 백성들을 다 유랑하게 하였느니라. (道典 4:24:3∼4)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요(堯)의 아들 ‘단주가 불초(不肖)하였다’는 말이 반만년이나 전해 내려오니 만고의 원한 가운데 단주(丹朱)의 원한이 가장 크니라.
 정말로 단주가 불초하였다면 조정의 신하들이 단주를 ‘계명(啓明)하다’고 천거하였겠느냐.
 만족(蠻族)과 이족(夷族)의 오랑캐 칭호를 폐하자는 주장이 어찌 말이 많고 남과 다투기를 좋아하는 것이겠느냐?
 온 천하를 대동(大同)세계로 만들자는 주장이 곧 ‘시끄럽고 싸우기 좋아한다’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道典 4:24:6∼10)

 
 요순시대에 단주가 세상을 다스렸다면 시골 구석구석까지 바른 다스림과 교화가 두루 미치고
 오랑캐의 이름도 없어지며, 만리가 지척같이 되어 천하가 한집안이 되었을 것이니 요와 순의 도는 좁은 것이니라.
 단주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깊이 한을 품어 순(舜)이 창오(蒼梧)에서 죽고 두 왕비가 소상강(瀟湘江)에 빠져 죽는 참상이 일어났나니
 이로부터 천하의 크고 작은 모든 원한이 쌓여서 마침내 큰 화를 빚어 내어 세상을 진멸할 지경에 이르렀느니라.
 그러므로 먼저 단주의 깊은 원한을 풀어 주어야 그 뒤로 쌓여 내려온 만고의 원한이 다 매듭 풀리듯 하느니라.
 (道典 4:24:15∼19)

 
 요임금은 자기의 아들 단주가 불초하다고 해서, 그에게 왕위를 넘겨주지 않고 순에게 넘겨줬다. 그러나 상제님 말씀을 보면 단주는 본래 그런 인물이 아니다. 상제님은 “만일 단주가 대권을 쥐고 나라를 다스렸다면, 천하에 대동세계가 열렸을 것이다.”라고 하신다. “요순의 도는 좁은 것이니라”는 상제님 말씀으로 볼 때, 단주는 자기 아버지 요임금이나 그 뒤를 이은 순임금보다, 의식의 발상이라든지 국제정세를 보는 안목이 확 트인 인물이며, 대동세계를 만들 평화주의자임을 알 수 있다.
 중국 사람들이 주변 민족을 전부 오랑캐로 몰아버린 것도 바로 요순시대부터 싹튼 것이다.
 그러니 만일 단주가 대권을 잡았다면, 이 동아시아에서 우리 민족과 중국 한족이, 조선 왕조가 끝날 때까지 그렇게 대대로 대립하는 일이 없었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단주의 해원
 상제님은 단주를 해원시키기 위해, 9년 천지공사 보실 때 약장 중앙에 “단주수명丹朱受命”이라고 쓰셨다. “단주가 수천 년만에 하나님의 명을 받았다.”는 뜻이다.
 또 상제님으로부터 도통 받으신 태모님께서는 “단주 해원으로 세계 해원 다 끄르는구나.” 하고 노래하셨다. 인간역사에서 가장 깊이 뿌리 내린 단주의 원한이 끌러지면서, 전 인류의 원한이 끌러지는 새로운 기점을 맞이했다는 말씀이다. 대단히 중요한 말씀이다.
 지금 우리나라 역사가 왜곡, 조작되고 말살되어, 단주의 역사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 학교에서 요순의 역사와 단주의 원한의 실상을 제대로 알고 역사를 가르치는 이가 있는가.
 상제님은 “단주의 원을 끌러내리면, 그 뒤로 수천 년 동안 쌓여내려온 모든 원의 마디와 고가 풀린다.”고 하시고, 단주의 해원을 중심으로, 천지 안에 있는 원한 맺힌 모든 신명들을 세운에 투입, 해원시키셨다.
 세운世運이란 인간 세 자에, 움직인다, 둥글어간다 할 때 운 자다. 상제님은 원한 맺은 신명들을 세계질서 돌아가는 데에 투입하셨다. 또 인간과 신명의 생사를 심판하는 명부의 책임자를 전부 교체시키셨다(불가에서도 명부시왕을 얘기하지만, 그게 원래 불가문화가 아니다. 불가에 있는 칠성각, 삼신각, 명부전 같은 건 본래 우리의 전통문화다. 유불선 기독교 이전의 신교문화다).
 먼저 역신 가운데 가장 큰 원을 맺고 죽은 동학의 전봉준 녹두장군을, 조선의 명부대왕으로 임명하시고, 일본의 명부대왕에 최수운 대신사, 청국 명부대왕에는 김일부 대성사를 임명하셨다. 이에 대해 더 상세하게 이야기했으면 좋겠지만 시간 관계로 생략한다.
 
 
 선천은 전쟁의 원한 역사
 다시 강조하건대, 상제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까닭은, 선천 상극도수에 걸려서 천고의 원을 맺고 죽은 인간과 신명의 원한을 끌러 대세를 잡아 돌리면서, 지구촌 인종 씨를 추려 새 세상을 여시기 위해서다.
 그러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상제님이 하신 일이 무엇인가?
 상제님은 서른한 살 되시던 해, 신축(1901)년 음력 7월 7일날 만고에 없는 대도통을 이루시고, 9년 동안 천지공사를 행하셨다.
 천지공사란 뭔가?
 천지공사에는 크게 세운과 도운이 있다.
 지난 백 년간의 상제님의 천지 개벽공사를 잘 들여다보면, 개벽상황이 어떻게 전개되어 가는지, 그 대세를 알 수 있다. 다 같이 상제님 말씀을 보자.
 
 선천은 상극(相克)의 운(運)이라
 상극의 이치가 인간과 만물을 맡아 하늘과 땅에 전란(戰亂)이 그칠 새 없었나니
 그러므로 천하를 원한으로 가득 채우므로
 이제 이 상극의 운을 끝맺으려 하매 큰 화액(禍厄)이 함께 일어나서 인간세상이 멸망당하게 되었느니라. (道典 2:12:4∼7)

 
 “선천은 상극의 운이라 전란이 그칠 새 없었다.”
 지구촌에서 전쟁을 하지 않는 날이 거의 없다.
 “전쟁사를 읽지 말라. 전승자의 신은 춤을 추되 전패자의 신은 이를 가나니”(道典 2:102:3∼4)
 오죽하면 상제님께서 이렇게 전쟁사를 읽지 말라고 하시겠는가. 전쟁사 글 읽는 소리를 듣고, 전패자의 신이 저주한다는 말씀이다.
 사실 인간 현실 문제의 심각함은, 이렇듯 고통받는 이들의 원과 한의 중심에 서봐야만 제대로 알 수 있다. ‘과연 깊은 원과 한을 맺고 죽은 신명들이 천지 안에서 어떤 역사를 만들고 있느냐? 앞으로 이 우주에 어떤 대변혁이 오느냐?’ 이것은 극복될 수 없는 원과 한을 맺은 처절한 사람들의 모습을 봐야만 실감할 수 있다.
 영국 북부에 스코틀랜드가 있는데, 수백 년 동안 그 민족의 영웅으로 받들어지고 있는 이가 있다. 그대들도 잘 알고 있는 윌리암 왈라스다.
 내가 스코틀랜드의 공항에 내려 차를 몰고 가는데, 아름다운 호숫가에 있는 조그만 가게의 할머니가 하는 말이 있다. “이 곳에 와서 윌리암 왈라스의 생가를 안 가보면 말이 안 된다.”는 거다. 그들의 자긍심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영국이 북부 스코틀랜드를 강권으로 점령하여 통치를 하는데, 얼마나 악질적이었느냐 하면, 스코틀랜드 처녀가 시집을 가면, 첫날밤에 영국군 장교가 더불고 잔다. 그러니 스코틀랜드 남성들의 원과 한이 얼마나 컸겠는가. 아, 내가 장가를 가는데, 그 날 밤에 마누라를 영국 군인이 데리고 잔다고 생각해 보라. 아마 누구도 감당키 어려운, 그야말로 천지를 가르는 울분이 일 것이다. 제아무리 도덕가나 성직자나 착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걸 감당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이에 분노한 윌리암 왈라스가 자유를 얻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다. 그게 <브레이브 하트>란 영화로 나왔다. 20세기 불멸의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