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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꼭 알아야 할 유용하고 세상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차원 높은 정보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본 블로그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을 잘 간파하셔서 끊임없이
약이되는 생명말씀/도훈말씀(日月)

후천개벽을 극복하고 새 문화를 여는 증산도! -[1]

by 바로요거 2007. 9. 3.

후천개벽을 극복하고 새 문화를 여는 증산도!

 

 

"상씨름이 넘어가면서, 우주의 자연질서가 바뀐다. 천지 질서가 바뀌면서 대세가 넘어가고,

그리고 가을천지의 숙살 기운이 오면서, 알 수 없는 괴병이 한반도에서 터진다.

그것이 남북한 49일을 쓸고 3년 동안 지구촌 인종씨를 추린다. 세 벌 개벽, 이것이 가을개벽의 실제 상황이다.

이렇게 과거 인간성자들의 진리로는 어찌해볼 수 없는 우주적인 대변혁이 일어난다.

때문에 이 때는 참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셔서, 선천 우주에서 가을의 새 우주로 들어갈 수 있는 진리의 다리를 놓아 주신다.

그것이 바로 증산도라는 진리의 놋다리다!

 

 

개벽이 일어날 땐 목 넘기기가 어렵다
개벽은 대자연의 질서가 바뀌는 것
상제님의 도통, 중통인의
천지를 뜯어고치시는 상제님의 권능
천지질서를 새롭게 짜놓으신 천지공사
1차 소멸, 인간이 혼과 넋으로 분리되는 죽음
천지를 형상하여 생겨난 인간의 몸
선仙이 되려면 공덕을 베풀어야
인간은 본래의 나를 발견하기 위해 산다
도를 잘 닦아야 영생한다
자손과 선영의 관계
세상에서 가장 큰 죄, 남의 천륜을 끊는 죄
수행의 필연성
2차 소멸, 인간과 만물의 명줄을 끊는 가을개벽
1, 2차 소멸을 극복하는 수도법, 태을주 수행
태을주는 동서문화의 깨달음의 열매
‘훔치훔치’는 천지부모를 찾는 소리
생장염장의 개벽원리
선천에도 개벽이 있고 후천에도 개벽이 있다
시간 질서의 틀이 바뀐다
머지않아 개벽이 온다
선천 종교의 결론, 후천개벽
생장염장의 도수, 12만9천6백 수
가을문화의 특성, 통일과 조화
신명들의 원한을 끌러주시는 상제님
여름철 화기와 가을철 금기가 충돌한다[火克金]
천지조화의 중심자리, 상제님 태모님의 도법
천지공사는 신명공사
후천 오만 년 시작은 단주의 해원으로부터
신명계에서 주도하는 오선위기 전개과정
애기판 총각판 상씨름판
상씨름은 예측불허의 마무리 싸움
상씨름 마무리의 시발점, 삼팔선에 소가 나가는 것
세 벌 개벽
상씨름의 과정
괴병의 실체
지축 정립
후천으로 넘어가는 진리의 놋다리, 증산도
콩밭에서 나온 일꾼이 의통으로써 살린다
태을주를 읽어야 하는가?
무궁한 태을주의 조화
추살의 대변혁기, 상제님 도법을 만나야
일심으로 상제님 도를 보고 참된 구도자가 되자

 

이곳 포항은 포항제철이 있는 도시인데, 지금 단언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다가오는 대개벽의 실제 상황에서 피하기 어려운 어떤 문제를 안고 있다.
 상제님이 “동래울산이 흐느적흐느적 사국 강산이 콩튀듯 한다.”고 말씀하신 바, 부산 울산과 아주 가깝게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강릉에서 우리 일꾼들이 개벽문화를 전하느라고 혼신의 힘을 다했는데, 그 곳 사람들이 알고 있는 개벽에 대한 정보를 들어보면, 앞으로 동해안 지역에 피해가 있다고 한다. 일본 지진에 대한 지질학자들의 연구 발표도 있지만, 그게 일본에서 일어나는 대지진 때문이라고 한다. 즉 일본에 큰 지진과 더불어 해일이 일어나면, 그 충격이 불과 한 시간만에 우리나라 동남해안까지 파급된다는 것이다. 다 함께 개벽의 파도를 타는 거다.
 
 
 개벽이 일어날 땐 목 넘기기가 어렵다
 
 지금 개벽이 오고 있다, 개벽이!
 앞으로 인류문명이 근원적으로 그 틀부터 바뀐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역사 과정과는 완전히 다른 새 세상이 열린다. 그렇다고 그게 우리가 꿈속에서 환상적 관념적으로나 생각해 볼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우리의 역사의식과 과학적 상식으로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납득할 수 있는 새 문명이 지금 온 우주에서 우리가 살고있는 지구촌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
 그러면 개벽이 어떻게 올 것인가? 언제쯤 올 것인가? 그리고 개벽이 일어날 때의 구체적인 상황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또 결론적으로 개벽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상제님이 앞으로 이 우주의 질서가 바뀌는 대개벽, 구체적으로 가을개벽, 종교적 철학적 언어로 말하면 후천개벽이 실제 일어날 때는, “목 넘기기가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장차 십 리 길에 사람 하나 보기가 어렵다. 또 한창 개벽이 일어날 때는 백 리 길에도 사람 하나 보일 둥 말 둥 한다.”는 말씀도 있다. 참으로 엄청난 말씀이다. 아, 십 리 길에 사람 하나 본다고 하면, 사람이 어느 정도 산단 말인가.
 예로부터 그런 위험을 감지하고 있는 일본 국민들의 운명을 생각해 보라. 앞으로 대변혁에 의해 일본이 멸망당한다! 일본 사람들 스스로가 하는 얘기다.
 그것은 어떤 종교적인 종말론적 사고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과학적 근거를 갖고 하는 얘기다. 일본 동경대학의 다찌바나 교수가 약 10년 전에 발표한 논문 내용이, 일본에 있는 87개의 활화산 가운데 몇 개가 폭발하면, 연쇄반응을 일으켜 전 일본열도가 갑자기 물로 쑥 들어간다는 것이다.
 또 20여 년 전에 일본 사람이 쓴, 세 권으로 구성된 소설 <일본침몰>이 영화화되었는데, 그 결론을 보면 백성들 조금 남고 일본이라는 나라가 망해버린다는 것이다.
 참, 개벽상황을 들여다보면 앞으로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난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자연재앙은 한 마디로 말하면 개벽으로 들어가는 막판 길목이다. 홍수, 지진, 화산폭발 또 얼마 전에 우리가 된통으로 당한 중국의 황사까지. 금년도의 황사는 참 말할 수 없이 불길한 징조를 느끼게 한다. 죽음의 재다.
 
 
 개벽은 대자연의 질서가 바뀌는 것
 
 개벽이란 뭔가?
 개벽은 쉬운 말로 천지의 계절이 바뀌는 거다. 우리는 이 세상 태어나 지금 이 순간까지 살면서, 누구도 일 년 사계절 즉, 지구의 봄여름과 가을겨울이 바뀌는 변화에 도를 통해 있다. 나이가 든 만큼 확연히 체험하고 있다.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 그 시간의 마디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크게 개벽이라고 한다. 봄개벽, 여름개벽, 가을개벽, 겨울개벽.
 그런데 우리가 지금 말하고 있는 후천개벽이란 단순히 지구 일 년 사계절의 변화가 아니다. 여기서 새 문화의 개벽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개벽이란 뭔가? 그것은 대자연의 질서가 바뀌는 것이다. 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주의 계절이 바뀐다, 시간질서가 바뀐단 말이다.
 그러면 보다 근원적인 문제를 제기해 본다.
 올해 증산도의 도를 열어주신 도조 증산 상제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지 132년이 됐다. 그런데 아직까지 세상에서 증산도를 모른다.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도를 전한 사람들이 세상에 조직적으로 진리를 전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세상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 진리를 찾지 않는 허물도 있다고 본다.
 우리 상제님은 지금으로부터 132년 전인 1871년에 오셨다. 그리고 서른한 살 되시던, 20세기의 첫 새벽을 울린 1901년에, 만고에 없는 대도통문을 열어놓으셨다. 그 도통사건은 우주 역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분기점이다. 곧 ‘지난날 우주역사는 선천의 변화이고 앞으로 오는 새로운 세상은 후천세상으로서, 이 변화는 바로 후천개벽이다.’라고, 인간과 우주 자연계의 역사를 선후천으로 크게 이분해 놓은 대사건이다.

 

상제님의 도통, 중통인의
 
 그러면 우리 상제님이 여신 새 차원의 도통문이란 무엇인가?
 상제님께서 “예로부터 상통천문上通天文과 하달지리下達地理는 있었으나 중통인의中通人義는 없었나니 내가 비로소 인의人義를 통하였노라.”(道典 2:13:4)고 하신다.
 상통천문, 위로는 천문을 통했다, 곧 ‘하늘이란 무엇인가? 하늘은 어떻게 생겨났으며 어떤 변화를 하는가?’ 이에 대해 한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하달지리, ‘아래로는 이 땅이 어떻게 생성되어 벌어져서 인간이 살게 됐는가? 산과 물은 무엇이며 땅이란 뭔가?’에 대해서 통한 자가 있었다.
 그러나 완전한 중통인의는 없었다. 즉 천지의 열매인 인간에 대해 완전한 깨달음, 궁극의 도통문을 연 자가 없었다.
 이것은 지난날 성자들의 깨달음에 대해 총체적으로 비판하신 말씀이다. 예수도 석가모니도 공자도 천지에 대해 한소식을 들었지만, 천지의 열매이자 천지의 뜻을 완성하는 인간 생명의 문제, 인간의 총체적인 구원 문제에 대한 의혹을 완전히 거두지는 못했다는 말씀이다.
 이게 진리의 만족도 문제인데, 조금 전 우리 증산도 신앙지인 월간 『개벽』지가 나왔다고 해서 펼쳐 보니, 이천 중리도장에 있는 한 여성 신도가, 한평생 진리를 찾아 방황하다가 증산도를 만난 소감을 적은 게 있다. 그 글 제목이 ‘성당에서도 내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다.’다. 성당에서 간절히 기도를 했지만 진리의 갈급증이 채워지지 않더라는 것이다.
 불교를 신앙한다고 법당에서 목탁 치고 진언 외우고 관세음보살을 찾지만, ‘과연 내 마음은 뭔가? 인간의 마음 문을 어떻게 여는가? 윤회란 뭔가? 부처란 뭔가?’ 이런 진리의 기본 명제들이 깨지지 않는다. 저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또는 아름답게 떠오르는 보름달을 쳐다보면서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진리를 갈구하는 가슴속은 채워지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현대문명의 들녘을 거닐고 있는 세상 사람들의 가장 큰 정신적 위기다.
 
 
 천지를 뜯어고치시는 상제님의 권능
 
 그러면 “예로부터 상통천문과 하찰지리는 있었으나 중통인의는 없었나니 내가 비로소 인의를 통했다.”는 말씀에서 인의人義란 무엇인가?
 인의人義란 사람 인 자에 뜻 의, 옳을 의 자로서, ‘인간 문제에서 무엇이 옳은 거냐? 무엇이 잘못된 거냐? 인간에게 가장 고통을 던져주는 문제는 뭐냐?’ 이런 시비곡직是非曲直을 바루어 내는 걸 말한다.
 ‘중통인의를 통했다’ 이것은 한 마디로, “내가 모든 인간의 마음과 이 우주의 내면세계에 있는 신들의 마음까지 다스린다! 내가 인간과 신명의 마음을 통치할 수 있는 우주 궁극의 도통문을 열었다.”는 말씀이다. 이것은 오직 상제님만이 하실 수 있는 말씀이다.
 상제님이 선천문화에 대해서 뭐라고 평하셨는가?
 “내 공부는 삼등이 있나니 상등은 천지조화를 뜻대로 부린다.”고 하신 말씀이 있다. 곧 상등은 죽은 사람도 고치고, 비도 내리게 하고, 축천축지縮天縮地해서 몇 걸음에 서양도 가고, 순식간에 신명세계도 갔다 온다는 말씀이다.
 또 “중등은 용사에 제한이 있다.”고 하셨는데, 곧 이런 조화를 일부는 쓴다는 말씀이다.
 그 다음 “하등은 천지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단지 알기만 할 뿐이다.”라고 하신 바, 하등은 ‘차천지지내사此天地之內事는 무소부지無所不知다. 이 천지 안의 일은 내가 모르는 바가 없다.’고 한 송나라 소강절처럼, 알기는 하나 조화권을 행사 못 한다.
 상제님은 이전의 성자들에 대해서, “옛 사람은 알기만 하고 용사를 뜻대로 하지 못했다.”고 평하신다. 예전의 성자들은 천지 안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모든 건 하나님의 뜻이다, 자연 섭리다, 하늘의 뜻이다.’ 이렇게 얘기했을 뿐, 자기 뜻대로 다스리거나 자유자재로 잘못된 걸 뜯어고치지 못했다.
 그러고서 상제님은 아주 충격적인 말씀을 하신다.
 “나의 도는 금불문 고불문今不聞古不聞이다.” 즉 “나의 도는 이제도 들은 바가 없고 예전에도 들은 바가 없다.” 또 “금불비 고불비今不比古不比다.” “예전의 불교 기독교 유가의 가르침이나 현대 과학문명 등 그 어떤 진리와도 비교할 수 없다.”는 말씀이다.
 비교라는 건 서로가 비등해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대개벽 세계를 열어놓으신 상제님 도법은 그 깨달음의 경계나 도통경지가 예전의 가르침과 전혀 다르다. 때문에 도저히 비교할 수가 없다는 말씀이다.
 이것이 개벽문화다운 증산도의 특성이다.
 결론적으로 상제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나는 천지도 뜯어고치네.”라고 하신다.
 
 
 천지질서를 새롭게 짜놓으신 천지공사
 
 이제 개벽문화의 본론으로 들어간다.
 천지를 뜯어고치신 상제님의 9년 행적과 삶을, 상제님 당신의 언어로 천지공사라고 하신다.
 “내가 천지를 뜯어고친다.”
 과거에 이런 말씀을 한 성자가 있는가? 그들은 그런 발상조차도 못 했다.
 “내가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친다.”
 상제님은 하늘과 땅, 즉 인간 생명의 근원, 도의 바탕자리인 하늘과 땅이 병들어서, 천지를 뜯어고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셨다.
 상제님은 천지를 뜯어고치고 천지 질서를 바로잡아, 인간 역사가 나아가는 전 과정의 질서를 새롭게 짜놓으셨다. 이것을 “인간 역사의 새 판을 짜셨다.”, “새 인간 역사를 심판해놓으셨다.” 등등 여러 가지로 표현한다.
 “내가 천지를 뜯어고친다.”
 이 말씀은 너무도 파천황적인 말씀이다. 인간이 경외하며 살아온 생명의 근원인 하늘을 마구 뒤흔드신 말씀이다. 상제님은 지나온 선천하늘을 묵은하늘이라 규정하시고, 그 하늘복판을 툭 쳐서 선천 인간들이 몸담아 기도한 텅 빈 진리의 틀을 부수어 버리신 것이다.
 “묵은하늘이 사람 죽이는 공사만 보고 있도다.”
 소위 선천문화의 가치체계라는 것이, 사람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사랑, 자비 같은 영원불변의 좋은 가르침도 있지만, 부분적으로는 시대에 걸맞지 않은 독선과 아집, 무서운 죽음의 기운을 뿜는 잘못된 교리체계도 있다.
 불가의 윤회라는 것도 그렇다. 선천에는 윤회가 있지만 앞으로 가을개벽이 오면 그게 없어진다. 이번에 쭉정이가 돼서 없어지면 영원히 소멸되고 마는 것이다.

 

1차 소멸, 인간이 혼과 넋으로 분리되는 죽음
 
 그러면 여기서 생명의 소멸문제를 한번 더듬어 볼까 한다.
 인간은 왜 태어나는가?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우리 인간 삶에 어떤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헌데 초등학교 시절로부터 대학원을 나오고 외국 유학을 갔다오고, 지구촌을 더듬어 다녀보고, 각 종교문화권을 훑어보고, 세상의 책을 다 보았다 할지라도, 인간 삶의 궁극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해 말해 준 성자가 있는가?
 내가 알기로는, 어려운 말씀으로 얘기한 이는 그런 대로 있다고 보지만, 지식의 유무를 떠나 그 누구도 알기 쉽게, 명쾌하게 밝혀준 성자는 오직 우리 증산 상제님뿐이다.
 자, 인간은 왜 태어나는가? 왜 우리는 도를 닦아야 되는가? 왜 인간은 도를 만나야 그 순간부터 진정한 인간의 문턱을 넘게 되는가?
 인간 생명은 어떻게 구성되는 건가? 우리 몸이 어떻게 해서 생겨나는가?
 이에 대해 우리 증산 상제님은 체계적인 명쾌한 대도의 가르침을 내려 주신다.
 
 사람에게는 혼(魂)과 넋(魄)이 있어
 혼은 하늘에 올라가 신(神)이 되어 제사를 받다가 4대가 지나면 영(靈)도 되고 혹 선(仙)도 되며
 넋은 땅으로 돌아가 4대가 지나면 귀(鬼)가 되느니라.(道典 2:98:2∼4)

 
 이 말씀에서 선천 유불선 기독교, 이슬람교 등 동서 신비주의 문화의 영적 가르침에서 얻지 못한 인간 생명의 본질을 깨닫게 된다. 그들 진리의 한계가 와르르 무너져 버리는 것이다.
 이 말씀을 듣고, 우리 인간 몸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그 원리를 대경 대법하게 알고, 왜 도를 닦아야 하는지 생각해 보라.
 자, 사람에게는 혼과 넋, 혼백魂魄이 있다.
 혼백이란 우리 몸 속에 있는 영체의 음양적인 두 요소다. 혼은 하늘기운을 받아 태어나고, 넋은 땅의 기운을 받아 생겨난 것으로, 이 둘은 다 무형이다(그런데 서양에는 하늘 중심의 가르침만 있지, 땅적인 영체에 대한 가르침이 없다. 그들은 영혼을 하늘의 혼(heavenly toul), 넋을 땅의 혼(earthy toul)이라고 번역한다).
 사람이 죽어 숨 떨어질 때, 따뜻한 기운은 빠져서 하늘로 올라가는데, 그게 혼이다. 상제님이 어린 호연이를 데리고 하신 말씀이 있다.
 
 � 하루는 상제님께서 약방 사랑채에서 곤히 자고 있는 성도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앉아 계시거늘
 호연이 “왜 자는 사람 들여다보세요?” 하고 여쭈니 손짓으로 ‘가까이 오라.’ 하시어 손으로 가리키시며 “저 사람 콧구멍에서 나오는 것 좀 봐라. 저기 콧구멍의 쥐 좀 보아라.” 하시니라.
 호연이 이에 신안이 열리어 보니 성도들의 콧구멍에서 새앙쥐만하게 생긴 영기(靈氣)가 들락날락하더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저것이 다시 콧구멍으로 들어가야 잠이 깨는 것이니라. 저놈이 안 들어가면 사람이 죽고 들어가야 사느니라.
 저 쥐가 나간 후에 때려서 깨면 그 사람이 농판이 들거나 죽을 수 있으니 저것이 사람의 혼이니라. 사람마다 다 그러하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콧구멍에 드나드는 저것이 하나라야 내 본심이고, 저것이 둘이어서 양쪽 콧구멍으로 드나드는 사람은 그만큼 마음보가 커서 이놈이 담장을 넘어 도둑질을 하느니라. 그래서 하나를 때려죽여야지 그놈을 그냥 놔두면 커서 일을 저지르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2:100:2∼7)
 
 아, 전설 속에 나오는 동화 이야기 같지 않은가.
 혼은 본래 하늘 기운을 받아 태어나 하늘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런데 혼이 머무는 집이 우리 몸에서 간肝이다. 간이 건강하고 충분히 휴식을 취한 사람은 잡스런 꿈을 안 꾼다. 너무 피로하거나 간이 나쁘면, 혼이 제 집인 간에 드나들지 못하고 돌아다니므로, 눈만 감으면 꿈을 꾼다. 혼이 돌아다니면서 보고 듣는 게 바로 꿈이다.
 그리고 사람이 죽으면 하체가 차가워진다. 넋이 몸을 떠나 땅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람이 죽으면 혼은 하늘에 올라가 신이 되어 4대 동안 제사를 받다가 영도 되고 선도 된다. 그리고 넋은 땅으로 돌아가 귀가 된다.
 죽음이란 곧 천지부모 기운을 받아 생겨난 영적인 두 가지 음양적 요소인 혼과 넋이 다시 천지로 분리되는 인생의 대사건이다.
 
 
 천지를 형상하여 생겨난 인간의 몸
 
 그럼 사람 몸은 어떻게 해서 생겨나는가?
 상제님이 “형어천지形於天地하야 생인生人하나니”라고 하셨다. 천지를 형상해서 인간이 태어난 거란 말씀이다. 이 말씀은 뒤집어 말하면, 이 천지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말씀이다.
 10여 년 전에 우연히 미국의 타임지를 보니, 과학란에 이런 내용이 있다. 한 과학자가 그 동안 우주의 모든 별자리 데이터를 슈퍼 컴퓨터에다 넣고 단추를 누르니까, 이 우주가 놀랍게도 건장한 청년 같은 빵빵한 사람 모양으로 나오더라는 것이다.
 본래 천지의 형상이란 아주 건강한, 체격 좋고 묵직한 사람이 사지를 벌리고 있는 모습이다.
 대우주 천체권이 사람 형상을 하고 있다!
 지금 과학이 그 정도까지 알고 있다.
 그런데 인간은 천지 기운을 받아 한 개체로 태어나는 순간, 대우주의 근원으로부터 분리된다. 그리하여 한 사람 한 사람이 천지의 열매이건만, 본래의 천지의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만다. 천지 조화의 근원자리를 못 본다.
 그걸 서양 사람들은 분리된 자아(teparated telf)라고 한다.
 따라서 한 개체로서 인간의 삶의 목표란, 본래 내가 하나로 있던 온 우주의 생명력과 하나가 되는 거다. 이를 위해 인간은 도를 닦고 진리를 추구하고 있다.
 
 
 선仙이 되려면 공덕을 베풀어야
 
 인간이 태어나 생장과정을 거쳐 청년기 노년기를 지나 죽음을 맞으면, 우주의 속세계인 신도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헌데 상제님 말씀으로 보면, 인간이 신도에 가서 잘 닦아 사대가 지나면 영도 되고 선도 된다. 그 영은 백광처럼 아주 환하고 밝다.
 사대라면, 보통 일대를 삼십 년 잡아 120년이다. 약 백 년이 넘도록 신명으로 살면서 도를 잘 닦으면, 사대가 지나면 태양 빛과 같이 눈부신 영으로 산다는 말씀이다. 일반 신명으로 사는 것보다 영으로 사는 게 훨씬 더 영적 진보가 이루어진 것이다. 공도적이며, 대자연을 즐기고, 우주 섭리에 대해 안목을 갖고, “아 세상이 이렇게 둥글어 가다가 가을이 오면 대자연이 개벽을 하는구나. 앞으로 전 인류가 십 리에 사람 하나 보일듯하게 멸망당해 없어지는 대자연의 변국이 오는구나.” 이런 큰 깨달음의 기쁨 속에 사는 고등한 영적 존재가 바로 영靈이다.
 그러면 영靈은 선仙과는 어떻게 다른가?
 그것은 같은 경계지만 다르다. 그것을 확연히 구분 못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선은 도만 닦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이게 중요하다.
 상제님이 말씀하신 바, 가을개벽을 건넌 뒤에는 완전히 다른 새 세상이 열린다. 지금까지 인간이 체험하지 못한 완전히 다른 세상이. 상제님으로부터 도통 받으신 태모님도 “앞으로는 하수도 칠백 세까지 산다.”고 하셨다. 앞 세상은 아무리 약체라고 해도 700살을 살다 죽는다. 상제님의 선 문명의 기운 때문이다. 앞으로 선경 문명이 열리는 것이다.
 그런데 죽어서나 살아서 선이 되려면, 세상에 공덕을 많이 베풀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도 선이 될 수 없다. 선은 영원불멸하는 인격적 영신이다. 선은 사람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고, 영으로 나투기도 하고, 땅속으로도 가고 물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자유자재로 생각대로 움직인다.
 “나는 이 머리털 하나만 있어도 사람 몸으로 다시 온다.”는 상제님 말씀이 그에 대해 다하신 말씀이다.

 

인간은 본래의 나를 발견하기 위해 산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 때문에 사는가?
 우주와 하나인 본래의 나를 발견하기 위해, 본래의 나를 회복하기 위해 산다.
 그러려면 도를 닦아야 한다.
 해서 도를 닦으려고, 그 방법론과 깨달음의 경계가 뛰어난 진리를 찾아다녀 본다. 불교에도 가보고, 기독교에도 가보고, 신비주의도 가보고, 수행자가 강연하는 데도 가보고, 산 속에 도사가 있다고 해서 찾아가 몇 달 간 공부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선천의 진리는 그 체계가 빈곤하고 미성숙됐기 때문에, 참 진리를 추구하는 우리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한다.
 증산 상제님은 선천의 성자들과는 다른 분이다. 이것이 증산도가 선천문화와 구분되는 가장 중요한 요체다.
 상제님의 진리 말씀은 그 전체 틀이 종합적이고 분명하며, 선천 각색 종교문화를 다 포용한다. 만일 그렇지 못하고 제것만 옳다고 주장한다면 그건 독선이다. 우리 상제님 진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선천의 동서양 유불선 기독교문화를 다 포용하고, 그 가운데 일부 시대에 뒤떨어지고 맞지 않는 것은 건전하게 비판하면서 그 한계를 넘어선다.
 상제님 도법에서 인생의 궁극 목적이란, 도를 잘 닦아 본래의 나, 우주의 조화근원에 있는 나를 보고, 오늘 이 순간의 나를 변혁시키는 거다.
 개벽이 일 년 후에 오든, 6개월 후에 오든, 한 달 후에 오든, 내일 아침에 오든, 오늘밤 자정에 오든, 내가 변화되지 않고는, 나의 마음과 내 생명과 세상을 보는 진리의 안목이 변화되지 않고는, 내가 새로워지지 않고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개벽이 열 번 백 번 천 번 와도 허망한 일이다.
 나를 발견하여 내가 새롭게 변화되고 새로워지면서, 앞으로 오는 새 문명의 개벽 세상을 수용하고, 새 세상을 건설할 수 있는 주인공이 되는 것, 이것이 상제님이 찾는 일꾼이며 참된 구도자의 자세다.
 
 
 도를 잘 닦아야 영생한다
 
 인간 생명의 탄생과 소멸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라. 모든 생명은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는 자연법칙에 의해, 태어나면 반드시 멸하게 돼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영원히 사는 방법이 있다.
 상제님이 도를 닦는 자와 도를 닦지 않는 자에 대해 하신 말씀이 바로 그것이다. 아주 단순하고 쉽지만 너무도 중요한 말씀이다. 이 말씀을 모르고 세상을 산다면, 그건 참 무모하게 삶을 진탕하는 거다. 자, 다 함께 읽어보기로 한다.
 
 도를 잘 닦는 자는 그 정혼이 굳게 뭉쳐서 죽어서 천상에 올라가 영원히 흩어지지 아니하나,
 도를 닦지 않는 자는 정혼이 흩어져서 연기와 같이 사라지느니라. (道典 9:29:1∼2)

 
 이 말씀은 초등학생 어린이도 다 알아들을 수 있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왜 도를 닦아야 되느냐?”에 대해 가장 명쾌하고 심오하게 밝혀주신 말씀이다.
 자, 도를 잘 닦으면 그 열매, 은혜라는 게 무엇으로 주어지는가? 내 정혼이 굳게 뭉쳐진다. 때문에 죽어서도 영체가 사라지지 않고, 이 우주와 더불어 영생하는 것이다.
 아, 저 중동 지역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냥 단순히 종교 잘 믿고 한 쪽을 죽여서 순교자 되면 영생하는가? 그건 전부 그릇된 말이다.
 지금 이 말씀에서 도를 닦는다는 것은 실천행, 곧 수행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수행에도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진리를 듣고 깨닫는 것이다. 즉 공부를 해서 이통理通, 이치를 통해야 된다. ‘아, 이건 거짓 가르침이다. 요건 얼마는 참된 가르침이고 나머지는 다 거짓말로 만들어 낸 얘기다. 이건 종교 장사꾼들이 하는 소리다. 그건 조금 깨달음이 되다 만 소리다.’ 하고 진리의 전체 틀, 바탕을 볼 줄 알아야 된다. 상제님 말씀처럼 ‘큰 공부를 하려면 체를 잡을 줄 알아야’ 한다. 체란 몸 체 자, 바탕 체 자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장님이 코끼리 엉덩이 한 쪽 만져보고 코끼리를 아주 잘 안다고 하는 거와 같다.
 
 “도를 닦지 않는 자는 그 영체가 흩어져서 정혼이 흩어져서 영원히 연기와 같이 사라진다.”
 
 인간은 육체가 소멸된 뒤에 다시 영체도 소멸된다. 두 번의 죽음을 통해 인간 생명 즉, 나라는 존재가 이 자연 속에서 영원히 없어지는 것이다.
 
 
 자손과 선영의 관계
 
 그러면 이 소멸을 면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관통하는 인간 삶의 역사란, 바로 조상과 나의 조화로운 관계다. 이에 대한 상제님 말씀이 있다.
 
 하늘이 사람을 낼 때에 무한한 공부를 들이나니 그러므로 모든 선영신(先靈神)들이 쓸 자손 하나씩 타내려고 60년 동안 공을 들여도 못 타내는 자도 많으니라.
 이렇듯 어렵게 받아 난 몸으로 꿈결같이 쉬운 일생을 헛되이 보낼 수 있으랴.
 너희는 선영신의 음덕을 중히 여기라. (道典 2:101:1∼4)

 
 쓸 자손 하나를 타내기 위해 천상 선영들이 60년 동안 기도한다! 자손 하나를 타내는 준비 기간이 60년, 사람으로 말하면 한평생이다. 그렇게 선영의 기도를 통해 자손이 나오고, 그 자손이 또 자손을 두고 산다. 이렇게 선영과 자손의 혈통 맥이 이어지면서 역사가 지속되는데, 한편 선영은 영체 생명으로 살면서 그 자손들이 제사로 받들어주는 걸 흠향한다. 따라서 제사지내는 게 너무도 중요하다.
 상제님께서 앞으로 오는 가을개벽은 선영이 자손과 더불어 열매를 맺는 때로서, “자손이 선영을 박대하면 그 선영도 자손을 버린다.”고 하셨다. 아주 무서운 말씀이다. 따라서 개벽기에는 선영의 음덕을 저버린다든지, 선영을 배반한다든지, 신이 없다고 부정한다든지, 이런 게 가장 큰 죄다.

 

세상에서 가장 큰 죄, 남의 천륜을 끊는 죄
 
 죄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씀인데, 상제님이 말씀하신 죄악론도 여러 갈래가 있다. 선영과 자손 관계에서 혈통을 바꾸는 죄악이 있고, 또 세상에서 짓는 죄 가운데 남의 천륜을 끊는 큰 죄가 있다.
 최익현이 고종과 그 아버지 대원군 사이를 이간질하여 몰아내야 한다고 상소를 했다. 그게 저 유명한 운현궁 사건이다. 상제님이 그에 대해 하신 말씀이 있다.
 
 죄는 남의 천륜(天倫)을 끊는 것보다 더 큰 죄가 없느니라.
 최익현(崔益鉉)이 고종 부자의 천륜을 해하였으므로 죽어서 죄가 되어 나에게 하소연하는 것을 볼지어다.
 유부녀를 범하는 것은 천지의 근원을 떼는 것과 같아 워낙 죄가 크므로 내가 간여치 아니하노라. (道典 9:57:1∼3)

 
 또 내가 얼마 전에 얘기를 들었는데, 오래 전부터 ‘묻지마 관광’이 유행하고 있단다. “이름도 묻지 마세요, 주소도 묻지 마세요.” 그러고는 짝을 지어 관광버스 타고 다니며 죽도록 재미있게 놀다가 딱 돌아서서 헤어지면 끝이라는 거다.
 요새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남편과 마누라를 바꿔 노는 계모임도 생겼다. 이건 천륜 끊기 대회다. 참 기가 막히는 일이다. 그 죄는 천지의 근원을 떼는 큰 죄라서 상제님도 간여를 안 한다고 하시지 않는가.
 『도전』을 보면, 하루는 구릿골 약방에 구렁이가 나타났다고 난리가 났다. 성도들이 상제님께 이렇게 여쭙는다. “지금 마당에 큰 구렁이가 있는데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으나 이 왕뱀이 몸을 구부려 움츠리고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몸집과 길이가 세상에서 보기 드물게 크고 그 모습이 무엇인가 애원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 말씀을 듣고 상제님께서 친히 문을 열고 구렁이를 바라보시더니 “빨리도 되었구나.” 하신다.
 그게 무슨 말씀이겠는가? 사람이 죽자마자 바로 구렁이로 태어났다는 말씀이다.
 그 말씀을 듣고 한 성도가 여쭙는다. “사람이 큰 죄를 지으면 죽어서 구렁이가 됩니까?” 이에 상제님께서 “하늘에 이러한 벌(罰)이 있느니라.” 하신다. (道典 9:56)
 아까도 상제님 말씀을 들었지만, 죄는 천륜을 끊는 것이 가장 큰 죄다. 남의 유부녀, 유부남을 사통한다든지, 남의 천륜 끊는 것, 이간질시키는 것, 그것은 죄가 너무도 크다. 우리가 신도를 체험해 보면, 그런 사람은 죽으면 유리관에다 발가벗겨 집어넣고, 사람 몸보다 더 큰 구렁이를 그 목에다 걸어놓는다. 수행을 하면 누구도 그걸 볼 수 있다. 그게 그렇게 큰 죄다.
 시방 지구촌에 빽빽이 들어차 있는 러브호텔을, 나는 구렁이 기르는 농장이라고 부른다. 물론 거기에 가는 사람이 다 그런 사람은 아니지만, 남의 유부녀 유부남과 사통하는 미래의 구렁이들을 양육하는 곳이다.
 
 
 수행의 필연성
 
 다시 수행 이야기로 돌아간다.
 인간 생명은 천지의 내면적, 영적 요소인 혼과 넋으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혼백은 천지의 영적 요소의 용用으로, 그 바탕 체體는 정精과 신神이다. 종으로 아래쪽에서는 정이 작용하고 위쪽에서는 신이 작용한다.
 정이 작용하는 곳이 하단전인데, 이걸 정단精丹이라고도 한다. 두 콩팥 사이에 있는, 내 생명의 근원적인 힘이 동하는 이 곳을 흔히 한의학에서 ‘신간동기腎間動氣’라고 한다.
 이 정단을 통해 호흡을 잘 하면, 정이 기화氣化되어 가슴 중앙에 있는 기단氣丹이 열린다. 감수성이 열리는 것이다. 서양 사람들이 말하는 하트 차크라(heart chakra), 곧 만물의 순수성, 생명성을 느끼고 들을 수 있는 귀와 눈이 열리기 시작한단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더 위로 승화되면 신단神丹이 열린다.
 내 생명의 근원을 유형화된 걸로 말할 때, 음적인 것이 하단전 정이고, 양적인 게 상단전 신이다. 정은 내 몸의 땅이고 신은 내 몸의 하늘이다. 내 몸의 하늘과 땅이 위아래로 있다.
 그런데 본래 주어져 있는 이 정과 신을 갖고 살면 자연사하고, 얼마 있다가 그 영체도 소멸한다. 그러므로 자연이 구성해준 내 정과 신을 뒤집어야 한다. 내 생명의 바탕인 천지비天地否 괘상을 뒤집어 지천태地天泰 괘가 될 때, 내 영혼이 천지와 더불어 영원히 사는 불멸의 생명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이 왜 수도를 해야 되느냐 하는, 수행의 필연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헌데 이 수행하는 것도, 아무리 “주문을 읽어라. 앞으로 개벽할 때 태을주 안 읽으면 다 죽는다더라. 이게 상제님 말씀이라더라. 그게 천지공사의 결론이다.” 이렇게 얘기해 줘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왜 수행을 해야 되는가? 수행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이게 스스로 사무치게 깨져야 한다.
 상제님 진리의 틀을 보면, 도를 닦지 않으면 그 정혼이 흩어져서 영원히 멸망당한다. 아, 내 생명이 어느 날 병들어 시들부들하면서 죽으려고 헐떡거리는 것보다 더 허망한 일이 어디 있는가.
 사람은 건강해서 소주 한두 병씩 먹고 양주를 물처럼 마실 때는 생명의 본성에 대해, 내 몸 속에 깃들어 있는 우주의 비밀에 대해 무관심하다. 그러다 어느 날 자신이 병들거나 가족이 불의의 사고로 죽어서, 어떻게 헤어날 수 없는 큰 고통을 겪게 되면, 의식이 일순간에 뒤집어진다.

 

2차 소멸, 인간과 만물의 명줄을 끊는 가을개벽
 
 자, 인간의 생사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린다.
 1차 소멸이란, 죽음의 질서를 넘어 내 몸 속에 깃들어 있는 영적 요소인 혼이 하늘에 올라가 신이 되어, 도를 잘 안 닦으면 일정한 시간이 지나 그 정혼이 흩어져 온전히 없어지는 걸 말한다. 곧 우주 자연 속에 태어난 나라고 하는 한 인간이, 완전히 멸하여 없어지는 사건이다. 이것은 너무도 허망한 일이다.
 그렇게 되면 이 우주 은하계가 아무리 많고 지구의 역사가 영원히 지속된다 하더라도, 없는 거나 똑같다.
 그런데 지금 앞으로 오는 개벽에서 문제시되고 있는 2차 소멸 문제가 있다, 또 한 번의 소멸이. 그게 무엇인가?
 모든 인간, 뭐 신앙을 하든 하지 않든, 지식이 있든 없든, 돈이 있든 없든, 세상을 통치한 제왕이 됐든 신하가 됐든, 서시나 양귀비 뺨치는 미모를 가졌든 아니든,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대자연에서 인간 생명을 총체적으로 끊는 사건이 있다. 그게 바로 머지않아 오는 가을개벽이다.
 상제님이 이 대우주 질서의 바탕을 뚫어 꿰고, 처음으로 이에 대해 알기 쉽게 해주신 말씀이 있다. 두 글자로 가을 추秋 자, 죽일 살殺 자, 추살秋殺이다!
 가을에는 천지에서 인간의 명줄을 끊는다. 그게 추살이다!
 이 총체적인 추살기운은 어떻게 오는 건가?
 개벽의 필연성, 왜 개벽이 대자연의 섭리로 반드시 오는 건지, 좀더 체계적으로 생각해보자. 이건 내가 종말론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그대들에게 내일 모레 개벽하니까 적당히 살라고 하는 말도 아니다. 이 우주의 운행질서 문제에서 가장 심오한 도 세계의 정수, 그 근본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잠시 일본에서 20여 년 전에 만든 영화 <일본침몰>을 보자.
 (영화상영)
 이 영화를 보면, 상제님 말씀대로 일본이 순식간에 없어진다. 상제님이 이미 백 년 전에 일본의 운명을 전 우주 신명들에게 명하여 천지공사로 심판해 놓으신 말씀이 있다.
 “장차 일본은 불로 치고 서양은 물로 치리라.”
 『이것이 개벽이다』 책 상권을 보면, 지금까지 동서양에서 언급되어 온 참혹한 개벽상황에 대해, 그 핵심이 잘 정리돼 있다. 그것을 상제님은 이 천지를 다스리는 주재자로서 요약하여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일본이 불로 멸망당하는 저 가공할 과정을 보면, 불과 몇 초 사이에 다 소멸돼 버린다.
 또 상제님이 개벽상황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셨는고 하니, “이 뒤에 이름없는 괴질이 침입할 때에는 죽은 자가 새우 떼 밀리듯 하리라.”(道典 7:23:5)고 하셨다. 새우 떼 잡아 쏟아놓을 때 보면, 수십만 마리, 수백만 마리가 엉겨서 마치 벌레들 뒤끓듯 한다.
 상제님은 또 개벽 때 “자식이 지중하지만 손목 잡아 끌어낼 겨를이 없다.”고 하셨다. 아니 손목을 어떻게 잡는가, “아!” 하다보면 벌써 다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없는데.
 2차적인 소멸이라는 것은, 우주 질서가 바뀌는 가을개벽에 의해 인간의 총체적인 생명진화가 완전히 막 내리고, 새로운 차원으로 궤도 진입하여 들어가는 변혁이다. 때문에 가을개벽의 정신이 아주 철저하게 깨져야, 오늘의 우주가 처한 현실적인 변화내용을 바르게 볼 수 있다.
 
 
 1, 2차 소멸을 극복하는 수도법, 태을주 수행
 
 그러면 우리 삶의 문제를 놓고 볼 때, 우리는 왜 살아야 되는가?
 이 문제에 대해, 1차 소멸의 결론을 강조할 겸 다시 한 번 새롭게 생각해 보자.
 사람은 도를 닦아야 된다. 그것은 내 생명을 천지와 더불어 영원히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가장 근본 되는 생명공부다. 나의 삶, 내 생명, 이보다 더 존귀한 게 없다.
 세상에서 아무리 깊이 이론적으로 학문을 연구하고 생각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내 생명의 근원, 우주의 근본인 도와 하나 되는 실제적인 공부가 아니다.
 해서 언젠가는 시간의 물결과 더불어 내 생명 자체가 자연 소멸되어 없어진다.
 게다가 이번에는 가을개벽과 더불어 전 인류의 명줄을 총체적으로 끊는 천지의 추살기운이 온다.
 이 1차 소멸과 2차 소멸 두 가지를 극복하는 수도방법이 바로 상제님이 내려주신 태을주 수행이다.

 

태을주는 동서문화의 깨달음의 열매
 
 왜 태을주를 읽어야 되는가?
 상제님께서 “이 주문 속에 천하의 복록과 수명이 들어있다.”고 하신 바대로, 하늘 아래의 모든 공부를 합한, 공부의 열매를 딸 수 있는 게 태을주 공부다. 태을주를 잘 읽으면, 첫째로 혼이 밝아진다.
 수도를 한다는 게 뭔가?
 그냥 말로만 정혼이 뭉쳐진다 하면 실감나게 안 들린다. 하지만 실제로 태을주를 읽어보면 ‘아, 수도라는 게 이런 거로구나’ 하는 걸 곧바로 깨닫는다. 태을주 읽고 체험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얘기하는 게, 태을주 읽는 법을 바르게 알고 잘 읽으면, 영이 밝아진다는 것이다.
 사람은 우주로부터 분리되는 순간, 어둠의 세력에 묶여 버렸다. 해서 빛의 세계를 갈 수가 없다. 태을주 수행을 통해 본래의 나를 회복하고 나의 근본, 나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태을주가 완성된 역사과정을 되돌아보면, 지난날 불교의 도통의 역사, 도교의 깨달음의 역사, 기독교의 하나님의 역사 등 모든 문제의 결론에 다다른다.
 태을주 속에 동서문화의 깨달음의 열매가 다 들어있다.
 “훔치훔치 태을천 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사파하”
 가을철에는 태을천에 들어가 태을천 기운을 받아야 인간 생명이 완성된다고 단언할 수 있다.
 “어떤 근거로 그런 얘기를 하십니까?”
 3년 전엔가 미국의 달라스도장에 간 적이 있는데, 달라스는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된 곳으로 유명하다. 그 때 달라스도장을 세운 웨인 신도가 바로 이 태을주 문제를 질문한다. 그러고 강연회 때, 달라스도장에 있는 미국 신도들 여러 명이 둘러앉아 질문을 하는데, 한 남성이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
 “왜 앞으로 오는 가을 개벽기에는 태을주를 읽어야 됩니까?”
 왜 태을주, 태을천이 중심이 되는가 하는, 핵심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거기 가 보면, 동서양 출신, 남미 출신 등 각국 인종이 모여 있다. 아, 미국이란 나라가 세계 인종이 모인 곳 아닌가. 그 여러 사람들이 둘러앉아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데, 그 내용이 우리 한국신도들이 궁금히 여기고 있는 생각과 똑같다.
 
 
 ‘훔치훔치’는 천지부모를 찾는 소리
 
 신선문화를 들여다보면, 그들이 전부 ‘태을’을 얘기한다. 도교의 경전을 『도장道藏』이라고 하는데, 그 책 내용을 보면 거의 대세가 신의 세계에 대한 얘기다. 헌데 그 신도 세계의 뿌리가 누구냐 하면, 태을천 상원군님이다.
 또 불교도 그 결론이 태을주의 한 글자, ‘훔’이다, 훔
 불교에서 참선을 통해 도를 통하면, 대우주 생명의 실상, 이 대우주가 열린 생명의 조화 경계를 보는데, 바로 그것을 상징해서 ‘훔’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디팍 차프라(Deepak Chopra)라고 하는 인도출신의 의사가 있는데, 그는 수행문화를 사람의 영성 개발 쪽으로 이끌어감으로써 미국에서 크게 존경받는 사람이 됐다. 헌데 그가 ‘훔’소리를 암세포에 들려주었더니 암세포가 뻥뻥 터지더라는 것이다. 그 사람이 강의한 『양자치료법(Quantum Healing)』 이란 테이프에 그 얘기가 나온다.
 ‘훔’ 소리에 암세포가 터진다. 왜일까?
 ‘훔’은 모든 생명이 일어나는 근원, 도의 바탕자리이기 때문이다. ‘훔’은 이 우주 만유의 모든 소리의 근원이며, 모든 소리를 낳는 모체다. 모든 소리를 머금고 있는 소리다.
 그러면 ‘훔치훔치’는 무슨 뜻인가?
 “훔치∼훔치∼”
 ‘훔’인간과 천지 만물 생명의 근원이며 생명의 조화자리다.
 그리고 ‘치’는 “내가 그 조화자리와 영원히 떨어지지 않고 하나가 된다.” 곧, ‘대정불변야大定不變也. 크게 정해서(굳혀서) 변치 않는다’는 뜻이다.
 이렇듯 ‘훔과 치’에는 ‘천지만물의 근원 신성과 하나가 된다.’는 뜻이 있다.
 그래서 ‘훔치훔치~’는 상제님 말씀대로 천지부모를 찾는 소리다.
 예로부터 전해오는, 도통한 사람들이 써 놓은 비결에 “낙반사유落盤四乳”라는 말이 있다. ‘낙반, 즉 저런 큰 바위가 무너져도 사유, 곧 네 젖꼭지를 빨면 산다’는 뜻인데, 네 젖꼭지는 ‘훔치훔치’를 말한다. ‘하늘이 무너져도 훔치훔치 네 젖꼭지를 빨면 산다’는 뜻이다.
 여기서 하늘이 무너진다는 건, 하늘땅이 부서진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천지 질서가 바뀌면서 오는 엄청난 충격을 말한다. 즉 그런 천지의 대변혁기에도 이 네 젖꼭지를 빨면 절대로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고 해서 ‘낙반사유’라고 하는 것이다.

 

생장염장의 개벽원리
 
 그러면 앞으로 개벽은 어떻게 오는가? 개벽은 왜 오게 돼 있는가? 개벽이란 뭔가? 이 개벽기는 어떻게 극복되는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 우리는 상제님의 우주론으로 한 마디로 정리된 아주 명쾌한 답을 찾을 수 있다.
 상제님께서 ‘이 우주는 어떻게 해서 열렸는가?’에 대해 해 주신 말씀이 있다.
 사실 동서고금의 우주과학자나 천체 물리학자들이 무엇을 알기 위해 그토록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있겠는가? ‘이 우주는 도대체 어떻게 열렸느냐?’ 이걸 알기 위해서다.
 우주가 열릴 때의 최초의 경계를 상제님은 “천지는 24방위에서 한꺼번에 열렸다.”고 하신다. 또한 상제님께서는 무한 대우주든 태양계든 은하계든, 우리가 살고있는 지구든 초목이든, 우리의 몸이든, 의식세계든, 크고 작은 유형 무형의 자연계를 관통하여 흐르고 있는 대우주의 창조법칙, 우주의 변화원리가 있다고 하신다. 그게 무엇인가?
 
 내가 천지를 주재하여 다스리되 생장염장(生長斂藏)의 이치를 쓰나니 이것을 일러 무위이화라 하느니라. (道典 4:41:3)
 
 그 법칙은 오직 ‘생장염장’밖에 없다는 말씀이다.
 내 몸이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 생장하여 성인으로 살다가 노인이 되면, 육신은 땅에 묻히고 혼은 천상에 올라가 영적인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거기서 잘 닦으면 계속 살고, 안 닦고 죄 많이 지으면 짐승이나 구렁이로 태어나거나 죽어 없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그 근본 이치가 바로 생장염장이란 말씀이다.
 우주의 본성이 뭔가? 우주의 이법이 뭔가?
 우주는 생장염장, 낳고 길러내고, 세 번째에 가서는 그 생장과정을 마무리짓기 위해 거둔다. 여기서 염斂은 거둘 염 자다. ‘수렴한다, 열매 맺는다, 성숙한다, 통일한다, 매듭 짓는다.’는 뜻이다.
 자, 천지에서 나를 내어 길러왔는데, 세 번째 시간대에 가면 온 우주에서 지구촌 모든 인간의 명줄을 총체적으로 일시에 거둔다. 그 사건이 바로 오늘 말씀의 핵심주제인 가을개벽의 추살 사건이다.
 
 
 선천에도 개벽이 있고 후천에도 개벽이 있다
 
 “선천에도 개벽이 있고 후천에도 개벽이 있느니라.”
 이 말씀을 보면, 지난날 사라진 태고문명의 전설에 대해 ‘아, 그게 단순한 전설이 아니로구나.’ 하는 걸 알 수 있다. 이번에 개벽하고 나면 일만여 년 전에 없어진 아틀란티스 대륙이 다시 솟는다. 지금 대서양(the Atlantic Ocean) 이란 영어의 어원이, 지난 계절개벽 때 없어진 대륙의 이름 아틀란티스에서 온 것이다.
 헌데 앞으로 후천세상이 올 때 또 개벽이 있다. 그게 가을개벽이다.
 봄이 되면, 죽은 듯한 고목나무의 껍질을 뚫고 새순이 나온다. 그것이 봄비 두어 번 맞으면 2, 3일 사이에 이파리가 다 터져 버린다. 그리고 여름철이 되면 무성하게 하늘을 뒤덮는다. 봄의 천지 정사政事는 싹 틔우는 것, 생하는 것이고, 여름의 정사는 성장, 자라고 분열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을 천지의 정사는 다 죽이는 거다. 모든 이파리를 전부 떨궈버리고 열매를 맺는다.
 지금 상제님이 말씀하신 생장염장은 인간이 녹을 먹기 위해 짓는 초목 농사에 대한 말씀이 아니다. 우주에서 지구를 중심으로 인간농사 짓는 우주의 일 년 사시에 대한 말씀이다.
 이 우주에 봄여름가을겨울이 있다.
 우주의 봄 개벽으로 태어난 인간은 인종 씨를 퍼뜨리며 자연환경에 적응해 가면서 동서양 각 지역으로 이주하여 정착해 왔다. 뭔가 자기들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분투하고, 평화의 세월을 누리는가 하면 때로는 전쟁과 대량살육을 하기도 하면서, 이 세상에 문명을 만들어 왔다. 그 과도기적 전체 과정을 선천 봄여름 세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우주가 가을개벽, 후천개벽을 한다. 이 개벽은 인종 개벽, 열매 맺는 총체적인 인간개벽이다.
 
 
 시간 질서의 틀이 바뀐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인간이 가을개벽을 하는 건가?
 그게 바로 앞으로 닥칠 개벽의 실제상황이다.
 여기서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먼저 선후천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선천과 후천은 각기 어떤 변화를 하는가?
 주역의 선후천은 상제님이 말씀하신 선후천과는 좀 다르다. 주역을 보면, 복희 팔괘가 우주의 봄철 농사짓는 것을 원리적으로 나타냈는데, 예로부터 중국 학자들이 그걸 선천이라 하고, 문왕 팔괘는 여름철의 변화를 상징해서 나타냈는데 그걸 후천이라고 했다.
 이걸 처음으로 부정한 분이, 백여 년 전 충청도 연산에 살던 일부 김항 대성사다. 김일부 대성사가 ‘복희 문왕 팔괘는 다 선천의 천지정사다. 내가 그린 정역 팔괘가 앞으로 오는 우주 가을철의 천지정사를 원리적으로 드러낸 것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상제님께서 “일부가 내 일 한 가지를 했다.”고 하신 것이다.
 김일부 대성사가 한 일이 무엇인가?
 그에 관련된 상제님 공사가 있다.
 어느 날 해가 바뀌어 정월 초하룻날이었다. 성도들이 떡국을 차려드렸는데, 상제님이 드시질 않고 “내가거라.” 하신다. 그러고는 음력 2월 1일 아침이 되자 상제님이 “떡국을 한 사발 차려오너라.”고 하신다. 2월은 음력으로 묘월卯月이다.
 그 공사내용이 무엇일까?
 이번에 개벽하고 나면 한 해의 머리, 세수歲首가 음력 2월, 즉 묘월로 바뀐다는 것이다. 그걸 묘월세수卯月歲首라고 한다.
 “일부가 내 일 한 가지를 했다.” 즉 일부 대성사가 묘월세수卯月歲首를 알아냈다는 말씀이다. 이건 대단히 중요한 내용이다. 다가오는 가을개벽으로 시간의 틀이 바뀌는 문제이므로, 이 말씀은 반드시 기억해 둬야 한다.
 여기서 상제님이 선후천이라고 하신 건, 우주 일 년을 가지고 말씀하시는 거다. 물론 하루 낮과 밤, 지구의 일 년 봄여름과 가을겨울을 나누어 선후천으로 얘기할 수도 있지만, 인간의 문명과, 자연의 시간질서의 선후천 변화를 포괄하여 ‘구체적으로 말씀한 분’은 인류사상 우리 상제님밖에 없다.

 

머지않아 개벽이 온다
 
 상제님이 이 세상에 오신 걸 보면, 머지않아 개벽이 온다.
 헌데 백 년 전 상제님 당대 성도들도 그 당시에 개벽이 올 줄 알았다. 또 2천 년 전 예수성자도, 자신이 예루살렘 한 바퀴 도는 사이에 천국이 온다고 했고, 바울도 자기가 살아있을 때 개벽이 오는 줄 알았다.
 석가부처는 자기가 세상에 와서 깨달음을 연 3천 년 뒤가 되면 말법이 되고, 우주의 별자리가 바뀐다고 했다. 곧 이번 개벽을 얘기한 것이다. 또 그 때가 되면 자기의 법으로는 이 세상을 교화할 수 없고 “새 부처님이 새 진리를 가지고 오신다. 그 분은 저 도솔천에 계신 천주님이다.”라고 했다. 그 도솔천의 하나님을 본래 범어로 마이트레야 붓다(Maitreya Buddha)라고 하는데, 그것을 음역해서 미륵불이라고 한다. 가득할 미彌 자에 굴레 륵勒 자다. 그 문자적인 뜻을 풀면, 미륵불은 인간 종자가 널리 퍼지고 모든 법이 분열되어 있을 때, 새로운 진리로써 개벽세계를 여시는 부처다.
 그리고 “미륵님이 여시는 용화세상이 되면, 온 천하 사람들이 한 마음이 되어, 서로 웃으며 사는 살기 좋은 낙원이 건설된다. 만백성이 다 도를 통해 부처가 된다.”고도 했다.
 그래서 석가모니는 자기의 친아들 라훌라와 수제자인 가섭, 군도발탄, 빈두타 등 네 사람에게 “너희들은 내 법을 받아 열반에 들지 말고, 앞으로 오시는 도솔천 천주님의 도를 받아 열반에 들라.”고 한 것이다.
 그 의미가 뭘까?
 쉽게 얘기하면 “너희들은 내 법을 받지 말라.”는 거다. 즉 “지금은 과도기로서 심법이나 닦는 것이고, 궁극으로는 도솔천의 천주님, 미륵님의 도법으로 새 세상을 연다.”는 것이다. 이것이 불교의 결론이다.
 상제님께서 “공자 석가 예수는 내가 쓰기 위해 내려보냈노라.”고 하시지 않았는가.
 
 
 선천 종교의 결론, 후천개벽
 
 선천 유불선 기독교의 최종 결론이 바로 후천개벽이 오는 것이다.
 기독교의 결론이 “새 하늘 새 땅을 보았습니다.” 이 한 마디다. 예수를 내려보낸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계시를 받은 예수의 제자 사도 요한에게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한다.”고 하신다. 즉, ‘내가 온 우주를 새롭게 한다, 온 우주를 개벽한다’는 말씀이다. 요한은 ‘천지의 질서가 바뀌는, 새 하늘 새 땅이 새로이 열리는 바로 그 때, 아버지 하나님이 오신다. 그래서 아버지가 직접 아버지의 나라를 건설하신다.’고 전했다.
 불교의 결론이 뭔가?
 아까도 잠깐 언급했지만, ‘다른 부처님이 오셔서 온 우주의 질서를 바꾼다.’는 것이다. 다른 부처님, 그건 깨달음의 경계가 전혀 다르다는 말이다.
 또 유교의 결론도 ‘간방艮方에서 하나님이 오신다.’는 거다. 간艮은 동북방의 변화 괘상을 말한다. 동북방에서 인류문명의 열매를 맺게 하는 새 진리가 나온다, 상제님이 오신다는 것이다.
 도가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은 도가 더 높기 때문에 다른 이들보다 좀더 알았는데, 어쨌든 그들은 표현만 조금씩 달리 했을 뿐, 다 개벽소식을 전한 바 있다.
 
 
 생장염장의 도수, 12만9천6백 수
 
 그러면 앞으로 지구촌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일시에 바뀌는가?
 그 동안 세상 모든 걸 다 바꿀 수 있어도, 인간의 정신은 그 누구도 바꿀 수 없었다. 그래서 예수 성자가 태어난 고향에서는 지금도 피 튀기는 싸움을 벌이고 있잖은가. 최근에도 예수의 탄생지 베들레헴이 처절하게 부서졌다.
 이 문제는 누구도 온전하게 해결할 수 없다.
 하지만 이번에 대자연의 새로운 가을개벽 질서가 오면서, 상제님의 새 진리로 그게 이뤄진다.
 자, 그렇다면 개벽은 왜 오는가?
 그것은 우주는 어떻게 변화하는가 하는 우주 일 년의 문제다.
 우주 일 년 사계절은, 시간수로 보면 12만9천6백 년이다. 우주의 하루는 360년이고, 그 360년이 360회 지속되면 우주 일 년 12만9천6백 년이 구성된다.
 또한 사람의 음양운동, 유형과 무형의 호흡과 기맥의 변화도 하루에 12만9천6백 회 작동을 한다.
 지구에서 인간이 녹을 따먹는 일 년 사계절 초목농사도, 지구가 하루 360도 음양동정으로 자전하면서 일 년 동안 360회 돌아 제자리에 오면 12만9천6백 도가 이뤄진다.
 곧 인간 몸 속, 지구에서 녹을 창출하는 사계절 농사, 그리고 우주에서 인간농사 짓는 일 년의 시간도수, 생장염장의 도수를 맞추는 것이 전부 12만9천6백 수로 구성돼 있다. 상제님께서 이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해주신 것이다.
 그 가운데 선천에 인간이 문명을 구성하는 기간이 오만 년이고, 또 앞으로 겨울철 빙하기가 올 때까지, 새 문명을 만들어 지속할 수 있는 시간이 오만 년이다. 이렇게 인간 문명이 지속될 수 있는 기간이 10만 년이고, 나머지 2만9천6백 년, 약 3만 년은 우주의 겨울철이다. 즉, 천지가 휴식을 하는 때로서 지구촌 인간들이 파괴한 문명의 잔재, 오물 등 모든 걸 정화하여 지우는 기간이다. 하루 밤낮으로 말하면 잠자는 시간. 인간은 밤이 되면 하루의 문제를 수렴해서 매듭짓고 깊은 잠에 떨어져 천지 기운을 수장한 뒤, 다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지 않는가.

 

가을문화의 특성, 통일과 조화
 
 우주 일 년에서 봄여름은 생장분열이 근본이고, 가을겨울에는 수렴 통일이 근본이다. 봄여름에 숱한 인간들이 태어나는데, 각기 마음도 다르고, 외모도 다르고, 생각하는 게 다르다.
 때문에 선천 봄여름 문화에서는, 다양한 것을 서로 조화하고 통일하는 걸 지향한다. 조화와 통일! 그것이 바로 가을문화의 특성이다.
 따라서 봄여름에는 각 종교에서 이 지상에 천국을 건설한다, 부처님 나라를 세운다고 아무리 목 터지게 외치면서 노력한다 해도, 결단코 그런 세상이 이뤄질 수 없다.
 그에 대한 상제님 말씀이 있다.
 
 선천은 상극(相克)의 운이니라. 위무로써 승부를 삼아 부귀와 영화를 이 길에서 구하였나니, 이것이 곧 상극의 유전이라.
 내가 이제 후천을 개벽하고 상생의 운을 열어 선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리라.
 만국이 상생하고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화합(和合)하고 분수에 따라 자기의 도리에 충실하여
 모든 덕이 근원으로 돌아가리니 대인대의(大仁大義)의 세상이니라. (道典 2:15:2∼5)

 
 내 세상은 조화선경(造化仙境)이니라.
 조화로써 다스려 말없이 가르치고 함이 없이 교화되며
 내 도는 곧 상생이니, 서로 극(剋)하는 이치와 죄악이 없는 세상이니라.
 앞 세상에는 남녀가 모두 대장부(大丈夫)요, 대장부(大丈婦)이니라.
 이제 천하를 한집안으로 통일하나니 온 인류가 한가족이 되어 덕이 무르녹고
 생명을 살리는 것을 덕으로 삼느니라. (道典 2:16:3∼8)

 
 이 말씀을 보라. 선천세상은 상극의 운이기 때문에, 세세토록 전쟁이 그칠 날이 없었다. 사실 그 동안 동서양 전 인류의 삶을 보면, 하루도 싸우지 않은 날이 없고, 하루도 눈물 흘리지 않고 사는 날이 없었다. 우리 가정사나, 주변 사람들의 삶을 보아도 그렇다.
 지금 지구촌 62억 가운데 8억이 밥을 굶고 산다고 한다. 미국에만도 천 몇백만 명이 밥을 제대로 못 먹는 사람들이 있다.
 선천에는 우주 질서가 음양의 균형이 깨어진 즉, 양을 중심으로, 양도를 바탕으로 생명을 낳아 기르는 변화를 하기 때문에, 상극의 운이 지배한다.
 해와 달을 보면, 양력이 음력보다 항상 한 달 빠르다. 사람도 남자가 여자를 극한다. 선천 문명의 전 과정이 그렇다. 하늘이 땅을 극해왔단 말이다.
 회교도를 보면, 아직도 여자들이 차도르를 쓰고 다닌다.
 내가 중동 지방에 가서 이집트 피라밋 안을 들어가 본 적이 있다. 그 때 요르단 공항에 내려 요르단에서 며칠 머물다가 이집트엘 갔는데, 그 곳이 지중해 바로 옆이라서 바람이 불기 때문에, 여자들이 모래바람을 피하기 위해 차도르를 쓴다고 얘길 한다. 우리 나라로 말하면 여자들이 한복 입는 거하고 같다는 거다. 아, 그 얘기를 들으니, 처음에는 그럴 듯하게 들린다.
 그런데 어느 날 BBC방송 인터뷰를 보니, 차도르를 쓴 아주 잘 생긴 중년 여인이 “나는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동자에서 경멸의 눈빛을 읽었다.”고 하면서 눈물을 흘린다. 얼굴도 못 드러내놓고 다닌다고, ‘야! 너도 여자냐?’ 하는 듯한 모멸감을 느낀다면서 눈물을 뚝뚝 흘린다. 그게 지금도 내 머릿속에 인상깊게 남아 있다.
 
 
 신명들의 원한을 끌러주시는 상제님
 
 선천문화는 음양의 균형이 깨져있다. 자연인 하늘과 땅도, 인간 문명의 동서의 균형도 긴장관계에 있고, 자연의 결과물인 남녀의 관계도,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 세계의 경계도 그렇다.
 그렇게 선천은 유형 무형, 자연과 만물의 삶이 전부 상극에 갇혀서 눈물과 한과 원 속에 살아왔다.
 그러면 상제님의 해원의 도법에서, 이 원과 한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이 원과 한의 실상에 대해 상제님이 해주신 무서운 말씀이 있다. 먼저 사람으로 생겨나지 못하고 죽은 자의 한을 말씀하신다.
 “죄는 뱃속 살인이 크니라.”
 뭐 윤리적으로 잘못을 저질러서 상해를 입혀 살인을 했든, 전쟁으로 죽였든, 상제님은 뱃속 살인이 큰 죄라고 하신다.
 자기가 아이를 갖고는 제 아이를 죽인다. 이유는 간단하다. 여자라고 해서, 또는 실수로 잉태했다 해서, 또는 남편이 기분이 나쁘다고 떼라고 해서 죽인다. 이런 말을 하면 “아, 두어 달밖에 안 된 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나요?” 하고 물을 수도 있다.
 영이 사람 몸을 받으려면, 어떤 영은 10년 전부터 그 부모 곁을 맴돌기도 하고, 어떤 영은 1년 전부터 맴돌기도 한다. 사람 몸 하나를 받기 위해서 말이다.
 아까 상제님 말씀이 “쓸 자손 하나 타내려고 천상에서 선영이 60년씩 기도를 드린다.”고 하셨다.
 헌데 달수가 적다고 해서, 생명을 생명으로 여기지 않고 그냥 끌어내어 죽인다.
 
 한 10여 년 전, 백두산에 가서 들은 이야기다. 9월인데도 백두산 근처는 으시시 추웠다. 백두산에서 내려와 그 근처 호텔에서 숙박을 하면서, 경주에 산다는 산부인과 의사와 대화를 하게 됐다. 우리 종도사님이 그 기운을 보시고 물으셨다. “그래, 선생은 애를 몇이나 긁어냈소?” 그러니까, “평생 아마 한 3만 명은 긁어냈심더.” 한다. 하, 아무렇지도 않게 3만 명을 긁어냈다, 3만 명을 죽였다는 거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평균 몇 명씩 긁어내는가?
 내가 어떤 통계를 보니, 남한에서만 1년에 이백만 명을 긁어낸다고 한다. 게다가 산부인과 의사들 얘기를 들어보면, 비공식적으로 행해지는 낙태가 워낙 많아서, 그게 플러스 알파 수십만이다.
 그러면 도대체 지구촌 뱃속 살인은 얼마인가?
 유엔에서 공식 통계로 나온 걸 보면, 1년에 2억의 생명이 어머니 뱃속에서 생겨나는데, 그 가운데 4분의 1이 조금 넘는 약 5천5백만 명을 뱃속에서 죽인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때 지구촌에서 전쟁하다 죽은 수보다 많다. 2년이면 한 1억 이상을 살해하는 거다. 누가? 자기를 만든 어머니 아버지가.
 우리나라에서 일 년에 뱃속 살인하는 게 이백만이면, 하루에 얼마인가? 약 오천 몇백 명 된다.
 아, 열차가 탈선해서 몇백 명 죽었다, 자동차가 충돌해서 몇백 명 죽었다, 비행기가 추락해서 몇백 명 죽었다 해도 전국이 초상난 것처럼 들썩들썩 난리가 나지 않는가.
 헌데 뱃속에 있는 아이들을 하루에 오천 몇백 명이나 가위로 칼로 다 절단해서 몸을 해체해 가지고 뽑아낸다. 그렇게 살해당하는 것은 교통사고로 죽거나, 박치기해서 팔다리 부러지고 눈이 빠져 죽는 것보다도 백 배 천 배 참혹한 죽음이다.
 수행을 해서 신도를 보면, 그 영이 그대로 있다. 해체되어 몸뚱이는 다 잘라지고 찢어졌지만, 그 영체, 신명은 피를 흘리며 그대로 다닌다.
 며칠 전 아홉 시 뉴스에도 이런 게 나온다. 우리나라 여고생들 가운데 임신한 경험이 열 명에 하나라던가. 내 잘못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고서 몇 번씩 임신을 하고 애를 긁어낸다고.
 헌데 그 신명들이 정상적으로 살 수 없으니까 몰려다니면서 자살을 한다. 자기를 소멸시키는 거다. 이게 신명의 자살사건이다. 달리는 차에 뛰어들어 박치기를 하거나, 전쟁터에 가서 쏟아지는 포탄에 몸을 던져 자기를 해체시킨다.
 그래서 상제님이 “예로부터 처녀나 과부의 사생아와 그 밖의 모든 불의아의 압사신(壓死神)과 질사신(窒死神)이 철천의 원을 맺어 탄환과 폭약으로 화하여 세상을 진멸케 하느니라.”(道典 2:52:2∼3)고 하신 것이다.
 지금 이런 신명들이 지구촌을 다니면서 온갖 재난을 뿌리고 있다. 비행기가 추락하고 교통사고 일어나고, 또 죽음의 충동이 일어나 아파트에서 손잡고 뛰어내리고, 자살 사이트 만들어 동반해서 죽고. 자살하는 건 모두 척신이나 그 집안의 자살귀신이 붙어서 그러는 거다.
 
 이제 예로부터 쌓여 온 원(寃)을 풀어 그로부터 생긴 모든 불상사를 소멸하여야 영원한 화평을 이루리로다.
 선천에는 상극의 이치가 인간 사물을 맡았으므로 모든 인사가 도의(道義)에 어그러져서
 원한이 맺히고 쌓여 삼계에 넘치매 마침내 살기(殺氣)가 터져 나와 세상에 모든 참혹한 재앙을 일으키나니
 그러므로 이제 천지도수를 뜯어고치고
 신도(神道)를 바로잡아 만고의 원을 풀며
 상생의 도(道)로써 선경을 열고
 조화정부를 세워 함이 없는 다스림과 말없는 가르침으로 백성을 교화하여 세상을 고치리라. (道典 4:14:1∼7)

 
 “내가 이제 해원의 도로써 원을 끌러내고 상생의 도로 새 세상을 연다.” 이것이 바로 상제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행하신 9년 천지공사다.
 천지공사란 뭔가?
 천지공사는,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세상 인간의 문제를 천지와 더불어 끌러낸다는 것이다.
 인간이란 ‘형어천지形於天地하여’, 곧 천지의 기운을 받아 태어나 살아가는 존재다. 따라서 천지의 질서를 바르게 알고, 앞으로 오는 대자연의 변화를 똑바로 인식해서 거기에 순응하는 사람만이 궁극적으로 인생의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가을철 때가 되면 추살 기운으로 다 없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