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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꼭 알아야 할 유용하고 세상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차원 높은 정보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본 블로그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을 잘 간파하셔서 끊임없이
한민족 역사문화/한민족 神敎文化

8.신지녹도전자 천부경 해독 (넷의 뜻풀이)

by 바로요거 2006. 12. 29.

(반드시 먼저 1번 서론부터 읽어 보실 것)

 

***8.신지녹도전자 해독과 천부경 풀이 (넷의 뜻풀이) 

(7 번에서 계속 )



먼저 최치원이 신지녹도전자를 해독하고 그의 시첩(詩帖) 81자를 쓰면서 一 二 三이 하늘과 땅과 사람 이라고 한 하나 둘 셋의 신지문자를 다시 한번 보자.

 

 

 









 

그러니까 최치원이 이것을 하나 둘 셋 이라고 해독 했다는 증거는 그의 81자 에서

一始無始一...한(하늘)은 시작이 없는 데서 한 이 시작 되었고

一終無終一...한(하늘)은 마침이 없는 데서 한 이 마친다.

析三極... 셋(하늘과 땅과 사람)으로 쪼개 보아도...

天一 一 ...하늘의 첫째는(핵심은, 천신은) 한 이고

地一 二 ...땅의 첫째는(핵심은, 지신은) 둘(달-음달 양달,땅)이고

人一 三 ...사람의 첫째(핵심, 인신)은 셋(사람, 사내)인데...

 

라고 한 점으로 보아 위의 신지녹도문자를 하늘과 땅과 사람으로 해독 했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 ㄱ ㄴ ㄷ...ㅎ 의 뜻으로 풀어본 우리말 뿌리에서 하나 둘 셋은 하늘과 땅과 사람인 이유를 설명 하였다.

 

* 그러면 다음에 나오는 신지의 글자는 틀림없는 "넷" 일수 밖에 없는데 다음 신지 글자가 왜 "넷" 인가를 설명 한다.

 

 

 

우선 이 글자를 해독 하기 전 먼저 말한 신지 전자의 "둘"을 다시 보자

 

 

이 글자는 山 아래 휘돌고 있는 개울 즉 내(川)의 그림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山과 내 가 있으니 이는 대지 즉 땅인 달(둘)을 말하고 싶은 그림인데 이번에는 山은 없고 내 만 있으니 이것은 말 그대로 내(川)일수 밖에 없다.

 

그러면 이 내가 왜 넷 이 되며 넷 은 우리 말로 무슨 뜻인가를 설명 해야 한다.

우선 이것을 알려면 우리의 자음 "ㄴ" 속에 어떤 뜻이 들어 있는가를 다시 한번 보자.

 

우리 자음 "ㄴ" 속에는 먼저 말했듯이" 내려와 누어있다"라는 뜻이 들어 있다.

그래서 "ㄴ" 으로 시작되는 우리말은 (한자가 아닌 순수한 우리 뿌리 말)모두 내려오거나 누어있는 말 뿐이다.

 

누에 ...누어 있는 벌래

(目) ...얼굴에서 누어 있는 부분

(雪) ...비는 오는 즉시 흘러 버리지만 눈은 그대로 누어 있다.

 

그러니까 먼저 셋 등에 쓰이는 "ㅅ"은 서다(立), 세우다, 솟다의 뜻만 있었다고 했는데 이번 "ㄴ" 속에는 그 반대가 되는 내려 오거나 누어있는 뜻만 있을 뿐이다.

자세한 설명은 "천부인과 천부경의 비밀" 이란 책의 317 -336 쪽에 명시되 있고 먼저도 말했지만 여기서 간단한 몇 가지 예를 다시 한번 들어보자.


누리(세상) ...누어있는 대지 이다.

(川) ...위에서 말한 내도 누어서 흘러 내린다

 

이외 "ㄴ" 으로 시작 되지만 누어있는 것이 아닌 우리 말은 이 누어있다는 뿌리 말(語根)에서 진화한 말들이다.(위 책 참조)

그런데 여기서 내(川)가 바로 넷 이라는 단서는 바로 아래 단어에서부터 나온다.


누이, 누나 .... 마지(兄)나 아우(弟)로 표시되는 형제 즉 사내의 성기(남근)는 서 있지만 누이, 누나의 성기는 누어 있다.

여기서 고대 조상을 말하면서 성기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 것이 좀 불경 스럽지 않으냐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 말을 추적해 보면 거의가 생식기 용어에서 나온 말이다.

그 이유는 생식기나 생식 행위는 생명을 창조하는 가장 신성한 행위 였기에 지금 우리의 잣대로 해석하면 안 된다.


그리고 여기서 형제나 누이, 누나는 꼭 자기 형제와 자매만을 말하지는 않는다.

결혼제도가 없었던 옛날에는 결혼제도가 있는 지금과 같이 나와 내 마누라 사이에 난 아이만이 내 아들 딸이 아니라 그 부족의 씨 이므로 누구와 관계를 해서 아이를 낳았건 그건 다 무리의 아들(庶子)이고 무리의 딸 이므로 형제 자매란 꼭 같은 부모의 소생을 말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여진다.

 

말을 잠시 옆으로 돌리자.

고조선 때 들어와서는  이미 상류층 에서는 결혼 제도 같은 것이 있긴 있었던 모양인데 낙빈기의 금문해석을 보면 단군으로 추정되는 염제신농은 치우와 탁록에서 전투를 벌였다는 황제헌원의 고모와  딸을 각각 첫째 부인과 둘째 부인으로 맞아 들였으므로 황제 집안의 사위가 된다.

 

그런데 황제또한 신농의 고모와  딸을 각각 첫째와 둘째 부인으로 맞아 들이니 양쪽 집안의 아들은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장인과 사위가 된다.

꼭 빈라덴과 알카에다 같은 사이 이다.

 

이런 제도를 양급제(兩級制)라 하는데 이는 아버지나 아들간,또 형제나 족하등 두 사람이 역시 고모와 딸 등  두 여자와 결혼하여 한집을 이루는 제도 이다.

 

또 중국 역대 왕의 성군이라는 요순(堯舜)은 실은 고조선 제 6대 임금으로 추정되는 요(堯)임금과 7대 임금으로 추정되는 순(舜)임금이고 그들의 사이를 보면 순임금은 그 형인 오회와  고조선 제 4대 임금으로 추정되는 제곡고신의 딸 아황(娥皇)과 요임금의 딸 여영(女英)과 공동 남편이 된다.

 

그러니까 순임금는 형 오회가 장가갈때 데리고 장가간 데린님(도련님) 이 공동 남편이 되는것이다.

또 요임금은 자기의 딸 오희가 낳은 아들 ...그러니까 외손자 육종(陸終)을 자신의 작은부인 이 낳은 딸 안(安)과 결손 시키어 오희의 부자를 자신의 사위로 삼는다.

 

순임금은 자기의 딸 사모신을 (司母辛)을 고조선 8대 임금으로 추정되는 우(禹)임금과 결혼 시키는데 순임금이 양급제인 모계사회 에서 일부 일처인  부계 사회 같은것으로 가족제도를 제도를 바구려 하자 이 딸은 그 고모와 함께 반란을 이르켜 자신의 남편인 우임금을 왕으로 세우고 아버지 순임금을 실각 시킨다.

 

이 반란은 순임금이 변방의 제후국으로 순행을 나가고 궁궐이 빈 사이 일어 나는데 결국 순임금은 지금 관광지인 계림의 산속으로 들어가 최후를 맞고 이소식을 들은 순임금의 부인들 즉 아황과 여영은 호남 동정호에 있는 군산이라는 섬에서 물에 빠져 자살한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중국의 성군으로 뽑는堯舜의 기록은 공자님이 윤색한 것이라는 것이 낙빈기의 금문 해독 결과이고  필자가 아직 거기까지 분석은  못했지만 인류학자 모르간이 말하는 두 사람의 남편과 두 사람의 부인이 결혼하는 양급제(兩級制, Ppnalua)는 두 집안이 얼키고 설킨 결혼 제도 인것 같고 신라시대 초기에 박혁거세가 타성에게 왕위를 양위하거나 노례왕(弩禮王) 편에서 노례왕이 처음에 그 매부 탈해(脫解)에게 왕위를 사양하니 탈해는 “대개 덕이 있는 이는 이가 많으니 마땅히 잇금 으로 시험해 봅시다” 하고 떡을 물어 시험해보는 장면의 처남 매부 지간이 어쩌면 형제가 되는 근거가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나이 먹은 사람과 나이 어린 사람이 쌍으로 결혼 한다는 것은 어쩌면 생식을 본능으로 하는 고대 사회에서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즉 젊은 사내와 나이 많은 사내... 그리고 나이적은 여자와  나이 많은 여자의 성적 선택이나 경쟁을 통하여 우수한 후손을 얻으려는 목적 같은 것도 있을 것이고 나이 많은 상대가 나이적은 상대를 성적으로 성숙 시키는 계기도 될 수도 있으며 좀 비속하게 말하면 늙은 여자도 어린 사내와...늙은 사내도 어린 여자와 늦게까지 성생활을 할 수도 있는 방법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한다.

 

이렇게 현재 우리의 상식으로 犬판인 결혼제도와 성생활 풍습은 불과 50 여년전 만해도 우리와 동족인 에스키모들 한테도 남아 있었다.

 

즉 낯도 아니고 밤도 아닌 백야 때 에스키모 들은 여기 저기 어름 위에 어름 움막인 이글루를 짛고 헤터져 살다가 심심하면 개 썰매를 타고 형제나 동족이 사는 이웃마을 집으로 놀러 간다.

그때 손님을 맞이한 주인이 손님에게 가장 먼저 대접 하는 것은 자기의 부인을 제공 하는 것이 예의 이고 만약 손님이 이것을 거절하면 자신을 무시 했다 하여 큰 싸움이 벌어진다.

 

그때 물론 그 남편이나 아이들은 이 장면을 구경 한다. 왜냐하면 이글루란 방이 하나밖에 없는 어름 움막이기도 하지만 생명을 창조하는 행위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듯 음란한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는 성스럽고 신성한 행위 이기 때문이다.

 

이 성행위가 부끄럽다고 생각하게 된 동기는 성행위를 쾌락으로 즐기려는...즉 유희화 시키면서부터 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이것을 현대 우리의 잣대로 재서 미개한 행동이라고 할 수 없다.

 

그후 만약 그 부인이 임신하면 누구의 자식인가를 따지는 것은 참으로 무의미 한일이다.

왜냐하면 형제 등 동족의 씨는 모두 자신들의 씨 이기 때문이다.


또 지금도 티벳부근의 오지나 파키스탄 부근의 오지마을의 몽골리안들 한테 형제가 한 여자를 데리고 사는 풍습이 남아 있는데 최근 서방기자가 티벹의 한 재판소에서 취재한 보도에 의하면 티벹의 한 부인이 이혼 소송을 해 왔는데 그 사유는 그 여인은 그 집 형제들 중에 셋째를 좋아하여 그 집 형제들과 결혼 햇는데 그 셋째가 외국으로 돈 벌러 가서 몇 년째 오질 않으므로 이혼을 해야 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간 그집 형제들과 관계해서 낳은 아이들은 누구의 자식인지도 따질 필요가 없기에 알 수도 없다는 것이다.


또 지금도 마사이 부족들 중 일부는 아무리 부인들이 많아도 소와 양 등으로 15-6세 되는 처녀들을 사서 부인을 만들 수 있는데 그때 먼저 부인들은 새로 부인이 들어오면 협동하여 집을 짖어 준다.

뭐 집이라야 소똥 등을 말려 만든 벽돌 몇 개를 쌓고 위는 나무 잎 등으로 역어 만들고 출입문은 거적 데기를 쳐 놓는다.

 

어는 날 남편이 새 신부와 관계 하려고 창을 들고 그 집을 찾아가는데 만약 그 집 문전에 이미 어느 놈의 창이 꽃쳐 있으면 신랑은 그 집 방문을 포기하고 창이 꽃이지 않은 마누라 집을 찾아 간다.

물론 남편도 아내의 집에 들어갈 때는 그 문전에 자기의 창을 꽂아 놓는다.

 

즉 어떤 여자를 찾아가며 창을 문전에 꽂아 두는 이유는 "나는 이미 이 집 여자와 관계를 하고 있으니 누구던 들어오지 말라" 는 표시 이다.

 

물론 거기서 낳은 아이가 누구의 아이냐를 따지는 것은 참으로 무의미 하기에 모두 자기의 자식으로 기른다.


이것이 만약 현대 문명 세계의 일이라면 자기 아내가 딴 사내와 간음했을 때 불타는 증오와 질투심으로 그 문 앞에 끛혀있는 창을 뽑아 당장 년 놈들을 찌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무시하고 격멸하는 소위 미개인들은 절대로 개인 이기주의가 아닌 자기 집단이 바로 자신 이므로 먹을 것 입을 것 그리고 그 짝 까지도 개체적 사고방식이 없다.


우리가 간혹 도전 지구탐험 같은 프로에서 미개한 오지인의 생활을 볼 때 그들은 정말 자기 자신이란 없는 즉 개인 이기주의적 사고가 아닌 부족주의 생활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부족주의 사고가 요즘도 일어나고 있는 곳이 있다.

얼마 전 9.11사태에서 비행기를 몰고 건물에 충돌한 테러 분자도 이는 개인이기 주의가 아닌 부족 우선 주의 였고 지금 이라크에서 자살폭탄을 메고 적진에 돌파하는 이락크 인도 개인을 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들을 미개한 국가의 미친 테러 분자 취급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등박문을 쏘아 죽인 안중근 의사나 백천대장을 폭살한 윤봉길 의사 등 선열들은 어떠 한가?

 

그들도 분명 일본 측에서는 어리석은 테러 분자 이지만 우리에게는 위대한 선열인데 이들은 모두 개인의 이기주의가 아닌 자기 부족 자기 동포를 위한 거룩한 행동 이었다.


이렇게 고대 우리조상들에게 있었던 위대한 부족 주의 행동은 차츰 변질되어 우리 역사만 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가문적 사고로 바뀌고 이는 고려 때 사건을 다룬 KBS의 사극 무인시대만 보더라도 해주가문이니 청주가문이니 하여 자기 가문을 위하여 개인의 목숨을 바친다.


그 후 이 가문주의는 다시 가족주의로 바뀌면서 6.25때만 하더라도 그 가족을 위하여 개인이 희생 하였는데 그 예 하나가 얼마 전 개봉한 영화 " 태극기 휘날리며..." 이다.

그 영화에서는 자신의 행복은 아예 생각을 안 하는 형제지간의 우애가 펼쳐지는 내용이 줄거리를 잡는데 지금 서양 개인 이기주의에 물든 이 시대에 생각해 보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는 지금도 아직 베트남등 저개발 국에서는 그 가족중심 주의사상이 남아 있는데... 즉 나이가 불과 십여 세에 불과한 아이들 이라도 시골에 있는 그 부모와 동생들이 좋은 학교에 가게하기 위하여 하루에 16 여 시간의 중 노동을 하고 그 대가로 받은 돈 몃 푼은 한 푼도 않 쓰고 모두 시골 부모에게 보내어 동생의 학비를 보태는 것이 꼭 우리가 미개했던 6.25전 때와 같다.


 

 딴 말 그만 하고...

이상으로 볼 때 위에서 말한 누이, 누나는 꼭 내 자매만이 아니라 부족의 씨 중에 여자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위에서 말한 여자라는 "누"나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넷"이 어떻게 다른지 어떤 변천 과정을 겪는지 알아 보자.


누어있는 "ㄴ"의 뜻이 진화 하여 하늘에 누어있던 구름이 나리는것, 즉 비도  "나린다" 라고 하였고( 내리다는 감초격 접미사 이 가 붙은것)  그 물 이 흘러가는 내 야 물론 누어잇으니 나 에 접미가 이 가 붙어 내(川) 라 하였다.

 

해도 하늘에 누어 있으니 약 400년 전의 훈몽자회(세종 백년후에 최세진이 쓴 한자사전) 만 하더라도 "日"이 "나 일" 이었으며 지금은 "날 일"이라고 하는가 하면 이 "날"이 진화하여 하루로 치기도 한다.

 

또 이 모든것의 최고인 해가 나가 되다 보니 훈몽자회를 보면 "日은 君王之表" 라 하여 임금도 뜻한다. 즉 태양을 상징하는 임금을 "나" 라고 했던 것인데 임금이란 사내들의 대표자다.


그러므로 임금만이 "나" 라고 했고 일반 사내들은 감히 "나"라고 하지 못했으며 이 말은 지금까지 전래되어 어른 앞에서 자신을 "나"라고 했다가는 후레아들 놈 취급을 받는다.


그래서 그때 사내들은 자신을 나타내려면 "아롬" 이라고 했고 이는 한자로 私자 이며 그래서 훈몽자회 에는 私자가 "아롬 사" 자 이다.


이 "아롬", "어롬" 의 뜻은 성교를 뜻한다. (이부분 자세한 설명은 책 199쪽 아름답다는 쎅스를 잘할것 같다는 뜻 참조)

 

그래서 지금 사생활을 간섭할 수 없다는 말은 성교 하는데 간섭 할 수 없다는 뜻이고 이는 짐승인 개(犬)도 치열한 암컷 싸움을 하다가도 일단 교접에 성공하면 암컷과 붙어 떨어지지 않으므로 한동안 부자유 스러운 몸이 되었을 때 사람 같으면 그 연적 이었던 놈을 해칠 수도 있는데 다른 수컷들은 해치지를 않고 그냥 구경만 하고 있으니 인간이 자신의 연적을 질투하고 남의 사생활 즉 성교에 관여 한다면 개만치도 못하다는 이야기도 된다.

그러니까 개체가 없던 원시 사내들의 자기 호칭은 그저 "성교 하는 놈" 이란 뜻의 "아롬" 이었던 것이다.

 

다시 원론으로 와서

이렇게 사내들의 대표인 임금이 "나" 이므로 이 사내들의 상대는 "너" 라고 했다.

"너"에 다시 우리의 감초격 접미사 "이"가 붙으면 "네" 가 되고 여기에 다시 성립을 뜻하는 "ㅅ"이 붙으면 "넷"이 된다.

그러나 원래 ㄴ 은 누어있는것을 뜻 했으므로 그래서 "넷" 이란 "여자를 세우다" 라는 뜻이 된다.

 

"너"가 여자라는 근거를 사서삼경등 경전으로 보자

겨집이 ‘너’라는 증거는 우리 동이족인(東夷族) 순(舜)임금 으로부터 이어지는 은(殷) 나라의 후예라는 공자님의 논어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즉 논어에서 ‘너’는 꼭 여(女)자로 표시되고 있으니 그때만 해도 겨집과 ‘너’를 같은 글자로 썼다는 증거다.

 

그런데 이보다 더 애로틱 한 것은 지금도 쓰고 있는 물 수 변에 계집녀 자를 한 너여(汝) 자 이다.

왜 물가에 있는 겨집이 "너" 인가?

 

이 글자는 단군과 거의 동시대인 요순(堯舜) 으로부터 이어지는 중국 고대사의 기록인 서경(書經)때 부터 ‘너’ 라는 뜻의 글자로 쓰여졌는데 보다시피 물가의 여자 즉 목욕을 하는 여자로 벌거벗은 여자를 ‘너’로 보고 있다는 것은 바로 즉석에서 사내의 상대가 될 수 있는 것이 ‘너’라는 말이며 이 말이 위에서 말했듯이 환웅 신하 신지로 부 터 우리말과 글자를 배워 글자를 만든 창힐 이나 우리 한민족인 순임금의 영향을 받은 글자라는 점으로 볼때 고대에서 ‘너’가 겨집 인 것은 확실하다.

 

다음 "네"가 여자로 쓰여지는 예를 보자.

우선 하회 탈춤에서 양반과 파계승과 상놈이 한 각시를 가지고 싸우는데 이 각시의 이름이 "부네"이다. 또 배뱅이 굿에서 등장하는 여인들의 이름이 "세월네" "네월네" 이고 지금도 시골 등에 남아 있는 말이지만 "돌쇠네" 니 "삼돌네" 니 하는데 이는 돌쇠나 삼돌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마누라를 칭하는 것이다.

 

그리고 1940년경 일제가 창씨개명 하기 전 까지의 여인네 이름은 "똥네" 니 "분네" 니 "순네" 니 했는데 이것이 호적에 올려 지면서 한자로는 똥네는 분예(糞禮)로 분네는 분예(分禮)로 순네는 순예(順禮), 또는 순녀(順女)로 기록 되었다.

 

그런데 이 "너", "넛"이 여자라는 말을 보강하는 강력한 증거 하나를 더 제시하면 지금도 우리 국어 사전에(1978년 양주동 책임감수 민정사 발행 현대국어 대사전) "넛 손자" 라는 말이 있다.


"넛손자"란 누이의 손자를 말하는데 그렇다면 누이의 아들은 "넛 아들"이 될 텐데 우리 사전에는 이 "넛아들" 이란 말은 없고 "생질"(甥姪)이란 말만 있다.

이는 벌써 우리 순수한 말이 한자에 오염 됐다는 말이고 하여간 "넷"의 원어 "넛"은 누이 이면서 여자 라는 뜻에는 변함이 없으므로 여기 "넷"의 뜻은 "여자를 세우다" 로 본다.

 

그러니까 하느님은 "셋"에서 사람 즉 사내를 만들어 주시고 사내만 있으면 안되니까 그 짝인 여자도 만들어 주셨다는 말인데 이것이 얼마나 인간에 대한 축복이며 고마운 일인가?

 

꼭 창세기를 보고 있는 것 같은데 우리 하느님의 교훈이신 천부경이나 창세기는 모두 우주의 섭리를 아는 성인들의 말씀이니 대동 소이 할 것은 뻔한 이치다.


이 부분의 최치원 81자 에서는 運三四成環五七즉 "사내와 겨집을 운용하여 다섯과 일곱으로 동아리를 이룬다"가 있는데 여기서 다섯과 일곱은 나중에 풀이 하고 運三四... 즉 사내와 겨집을 운용해서...즉 사람(사내)도 人二三이라고 해서 짝이 있으니 사내 다음에는 겨집이 와야 말이 되지 기존의 이론처럼 삼 곱하기 사는 12 이므로 12는 시계의 동그라미(環)을 이룬다 라고 신라 최치원 시대에 시계 이야기를 해서는 정말로 뚱딴지 캐먹는 이야기가 된다.


9 번으로 계속


출처 : 천부인과 천부경의 비밀  |  글쓴이 : 우리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