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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역사문화/한민족 神敎文化

석가모니 초상화의 비밀

by 바로요거 2017. 5. 2.

석가모니 초상화의 비밀

1. 석가모니의 초상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초상화가 실제로 있다는 점에 놀라는데 바로 위의 그림이 바로 대영박물관에 있는 부루나 존자가 그린 그림이다. ...
Gautama Buddha's real portrait at the age of 41 painted by Pûrna (Phú-Lâu-Na), a Buddha's follower [The original painting is in British Museum]
석가모니 41세때의 초상화가 있습니다. 석가의 제자인 부루나미가 그린 것으로 동이족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석가모니가 우리와 같은 혈족이라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고준환, [하나되는 한국사] 135쪽, 1992년)

 

부처님 在世시 10대 제자중에서 설법을 제일 뛰어나게 잘했다는< 부루나 다라미자 尊者>가 직접 그렸다는 초상화가 가장 신빙성 있어 보이는데 그 초상화를 기준으로 상호를 보게되면 굵은선 의 부드러운 적당한 곱슬 머리에 수염도 적당히 있고 이마나 안면의 선이 아주 서구도 아니고 우리 쪽의 몽골리언 모습에 가까운 티베트인들과의 중간형이며 어깨 골격도 넓고 강하며 석굴암의 부처님 정도의 비율의 골격에 인간적인 굴곡이 강한 아주 호남형으로 앞가슴도 적당히 넓게 벌어진 모습 등으로 보아 키도 약 1.87~1m90cm정도로 짐작되는 상호입니다.

 

2.모든 불상이 석가모니 진짜 모습이 아닌 이유.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실의 모습은 있기는 한데 부처님의 형상은 본래 그리거나 만들지도 않았었는데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열반)500년동안 그림으로나 형상으로는 표현을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생존시 큰 깨달음의 자리는 말과 글로도 표현 할 수 없어 부처님도 말없이 세 곳에서 전하셨는데(삼처전심)어디 감히 부처의 모습이나 형상을 만들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부처님 열반에 드신 후 500년 넘도록 부처님의 형상은 표현이 안되어 오다가 인도의 서북부 지역까지 점령해 들어온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의 세력하 통치시대에 만들어지게 되는데 간다라 지역에서 나오는 불상들의 모습은 거의 모두가 완전 그리스 사람들의 얼굴형입니다. 지금도 파미르고원 실크로드 부근 알렉산더왕이 동진했던 지역에는 그의 병사들이 현지인들과 결혼 후 내려오는 집단촌이 있는데 후손들은 서양인의 모습입니다.

정치적으로 가장 강자인 그리스의 티벳지역 점령군 통치자 총독이 우연한 기회에 부처님의 경전을 접하고 스님들의 법문을 듣고 불교에 심취하게 됩니다 그런 그리스의 총독이 이렇게 훌륭한 성인의 모습이 왜 없느냐는 의아심에 그리스인 들에 의해 불상이 최초로 만들어 지게 됩니다.

 

3.석가모니의 혈통

석가부처는 그동안 알려진 것처럼 인도의 주류를 이루는 민족인 아리안족이 아닙니다.

☞ 일찍이 이 땅에 유불도의 원형의식인 풍류도가 있다고 깨우쳐 준 고운 최치원 선생은 "석가불은 해 돋는 우이(嵎夷)의 태양이다. 서토(西土)에서 드러났으나 동방(東方)에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최문창전후집 대숭복사비명병서 崔文昌侯全集 大嵩福寺碑銘並序)

▶승우의 ‘석가보’를 보면 석가는 단종찰제리(檀種刹帝利)라고 하여 단군조선족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단종(檀種)은 단군종족이라는 뜻으로서 직접 우리민족을 가리키고, 찰제리(刹帝利)도 ‘삼국유사’에 신라왕을 찰제리라 하였으므로 우리민족을 가리킵니다.

☞ 1920년대 후반 영국의 사학자 「빈센트 스미스」는, 석가부처는 동쪽에서 이주해 온 코리(kori, 稿離)족 출신이라고 했습니다. 스미스에 의하면 석가족과 코리족은 동쪽에서 이동해 왔으며, 몽골리안 중에서 한민족을 형성한 코리(kori 稿離)족이 네팔지역에 이동한 것으로 추정하는 석존 몽고인설을 주장했습니다.

☞ 이러한 주장은 일본의 불교학계에서도 인정받고 있습니다. 석가부처의 여러 성도 그가 동방족의 혈통이었을 가능성을 강하게 보여줍니다.

☞일본의 불교학자 미야사카 유쇼(宮坂宥勝)는 석가족은 비아리야족이며 지리문화적 배경으로 보아 몽고계 인종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즉 붓다의 씨족은 인도에 베다(Veda) 문화를 일으킨 아리야족과는 다른 몽고계의 한 부족일 것이라고 주장하였던 것입니다.

☞이와모토 유타카(岩本裕)도 석가족은 비아리야 인종이라는 점을 좀더 구체적으로 제시하였습니다.왕의 후예라고 하는 불전 자체의 기록에 따르는 한, 사캬족은 아리야인 계통이 아닙니다.

☞태국의 불교학자 잠농 통프라스트(Chamnong Tongprasert)는 초기경전을 근거로 붓다의 생애를 정치적 시각에서 재조명한 매우 독창적인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이 논문에서 석가족은 틀림없이 몽고계 인종이었을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그 증거로 <락카나 숫따(Lakkhana Sutta, 三十二相經)>에 묘사된 "그들의(석가족)의 안색은 청동 빛과 같았으며, 그들의 피부는 우아하고 부드럽고, 그들의 눈과 머리칼은 흑색이었다"라 는 신체적인 특성과 "석가 왕국이 설립되었던 네팔을 포함하여 오늘날에도 히말라야 산맥 기슭을 따라서 분포된 민족의 대부분은 몽고계 인종에 속하기 때문에 이러한 석가족들은 틀림없이 몽고계 인종이었을 것"이라고 확정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나라 야스아키의 지적에 따르면, "그 후의 불교문화의 발전을 살펴보면 비바라문적 토착적 요소가 상당히 많이 발견된다. 예를 들어 요가의 중시, 사리(유골)숭배, 스투파(탑)숭배, 동물숭배, 지모신(地母神) 계통의 야크샤니(Yaksan, 불전의 夜叉, 藥叉의 여성), 그 남성으로 귀령(鬼靈)의 하나인 야크샤 숭배, 나가(Naga, 뱀, 龍神) 숭배 등이 그러한 것이다.
사캬족, 그리고 석존에서 시작되는 불교가 비아리야적 요소가 농후한 인도의 토착문화적 토양 가운데에서 성립·발전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 ...석가모니의 진정한 모습은 그리스의 화풍이 들어간 아테네식도 아니고 후에 전통을 이어간 아리안(현재의 이란 및 인도의 종족)계통의 심목고비가 아닌 몽고계 인 것이 확실합니다. 왜냐하면 현대 네팔에 샤카족이라 하여 석가모니의 후손들이 있는데 그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과 같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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