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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와 중국의 수많은 사서들이 대륙백제를 증명하고 있다

by 바로요거 2016. 11. 17.

환단고기와 중국의 수많은 사서들이 대륙백제를 증명하고 있다


중국의 수많은 사서들이 증명하고 있는 대륙백제

백제가 요서(遼西)를 경력한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사서는 《통전(通典)》을 비롯하여 《송서(宋書)》·《양서(梁書)》·《남사(南史)》 등에 다 들어 있으며 사마광의 《자치통감(資治通鑑)》에도 《북사(北史)》를 인용하여, "진대에 고구려가 요동을 빼앗아 차지했고, 백제도 요서 진평 2군을 빼앗아 점령하여 차지했다고 하였다. 특히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에 이같은 사실을 그대로 전하고 있으며 아무런 이의를 달지 않았다. 이 책의 편자들은 자기들과 견해가 다를 때에는 반드시 안어(按語)라는 형식으로 주석을 하였다는데 일언반구 말이 없다. 도리어 백제의 강역에 대해 우리도 놀랄 만큼 남만주 일대부터 백제의 강역을 설명하고 있다.
출처 : http://blog.daum.net/eodls4420/161



☞백제는 변진(弁辰)의 나라로 진대(晉代)에 일어나 번작(蕃爵)을 받았다. 스스로 백제군을 고려(고구려) 동북(중국측 방향:우리방향 요서)에 두었다." -[남제서] <백제전>

☞"그나라(백제) 본래 고구려와 함께'요동'의 천여리밖에 있었는데, '서진'때에 '구려(고구려)'가 이미'요동'을 다스리자, '백제'역시 '요서''진평' 2군의 땅을 점령하여 스스로'백제군'을 설치하였다." -[남제서] <백제전>

☞백제 동성왕이 광양태수를 고달로,대방(중국 화북지역)태수로 조선태수를 양무로,광릉태수를 회매로, 청하태수를 모견으로, 조선태수 양무를 광릉태수로, 낙랑태수를 왕무로 임명하여 중국 남조에 승인을 요구하였다. 황제는 모두 들어주었다."

☞"이 해에(서기490년) 위나라가 또 기마병 수십만명을 징발하여 백제 국경선에 침공했으나, 모대가(동성왕) 사법명,찬수류,해례곤,목간나 장군에게 군사를보내 위나라 군사를 습격하여 크게 격파하였다." -[남제서 권58] <동남이전 백제편>(양나라 숙자현)

☞​"백제국이 진대로부터 시작하여 송, 제, 양대에 양자강 좌우를 차지하고 있었다." -[북사] <백제전>

☞ "봄 정월…백제의 왕 여창을 사지절 도독 동청주자사로 삼았다." -[북제서] <후주기> , [삼국사기] <백제본기>

☞"백제란 조상이 동이다. 동이는 세 한국이 있으니 첫째 마한, 둘째 진한, 셋째는 변한이다. 변한과 진한은 각각 열 두 나라가 있고 마한은 54국이나 된다. 그 중에 큰 나라는 인가가 만여 호가 되고 작은 나라는 수천 호가 되어 모두 합치면 도합 10여만 호가되는데 백제란 그 중의 하나이다. 그것이 후대에 점점 강성해져 모든 조그마한 나라들을 병합했다. 그 나라는 본래 구려(句麗)와 함께 요동의 동쪽에 있었다. 진(晉)대에 구려(句麗)가 이미 요동을 차지하니 백제 역시 요서(遼西)와 진평(晉平)의 두 군(郡)의 땅을 차지하고 스스로 백제군(百濟郡)을 다스렸다." -[양서] <백제전>

☞"백제는 예부터 내려오는 동이의 마한에 속한다. 진(晉)말에 구려(駒麗)가 요동을 차지하니 낙랑 역시 요서 진평현을 차지했다."-[양직공도]

☞"백제는 군현을 담로'라고 부른다. 백제에는 22개의 담로가 있어 왕의 자제와 종족에게 나누어 웅거하게 하였다.(...)서기450년

☞백제 비유왕이 방물을 바치며 사사로이 대사'풍야부'를 서하태수'로 삼을것을 요구하고 역림,서림(기문둔갑)등점술서와 쇠뇌 등 '병기'도 요구하였다.(...) 황제는 이를 모두 들어주었다."-[남사] <백제전>

☞​"백제의 영토는 서쪽으로 바다를 건너 중국남방 월주에 닿고 북쪽으로 바다를 건너 고구려 국경까지 남쪽은 왜국에 이른다. 백제는 동(한반도),서(중국대륙) 두 곳에 서울을 두고있다."-[구당서] <백제전>

☞"백제가 망한후 그 땅(한반도,대륙백제 영토)은 신라,발해,말갈에 의해 나눠어졌다."-[구당서] <백제전>, -[신당서] <백제전>

☞"처음 백가(百家)로서 바다를 건넜다하여 백제라 한다. 진대에 구려가 이미 요동을 차지하니 백제 역시 요서와 진평의 두 군을 차지했다(현재의 유성(柳城)과 북평(北平) 사이)"-[통전] <제도사>(당나라 제상 두우 편찬)

☞"백제국이 양자강 어구를 좌안을 진대로부터 시작하여 송, 제, 양대에 이르기 까지 점령하고 있었고, 후위때에는 중원을 차지하였다."-[주서 49권] <백제전>

☞"백제국은 본래 고려와 더불어 요동의 동쪽 천여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 후 고려가 요동을 침략하여 차지하게 되었고 백제는 요서를 공략하여 소유하게 되었다. 백제가 다스리는 곳은 진평군, 진평현이라 하였다."-[송서] <백제전>

☞"송서에서는 백제가 다스리던 곳으로 진평군을 거론하고 그 도성을 거발성이다 라고 하였다. 거발성은 진평성이다. 그 곳은 지금 금주,영원,광녕의 경내(요서 지역)에 있다. 백제의 또 다른 도성인'고마성'은 조선국(한반도)에 있다. -[흠정만주원류고] <대청제국 건륭제>

☞"금주, 의주, 애춘을 포함한 지역이 다 백제의 강역이다."-[만주원류고

☞"백제왕은 동,서의 두성에서 거주하는데, 동쪽 성은 공주(충청도)로서 당시 국왕의 제2의 수도였다. 서쪽성은 지금의 부여현이니 양나라때 명농왕이 이산성에서 살았으며 성산으로도 쓰고 산동 영성현 동쪽에 있다." -[신당서 각외국전 지리고증] <대청제국 말기학자 정겸>

☞"고구려와 백제는 전성시에 강한 군사가 100만이고 남으로는 오(吳), 월(越)의 나라를 침입하였고,북으로는 유주,연,제,노나라를 휘어잡아 중국의 커다란 위협이 되었다.[삼국사기] <최치원전>

▶환단고기에 기록되어 있는 요서 백제


☞요서 땅에 백제의 영지가 있었는데 곧 요서,진평이고 강남에는 월주가 있었으니 여기에 소속된 현은 첫째 산음, 둘째 산월, 셋째 좌월이다. (21세 문자제) 명치 11년(단기 2834,501) 11월에 이르러 월주를 쳐서 취하고 군현의 이름을 바꾸어 송강,회계,오성,좌월,산월,천주라 하였다

☞ 명치 12(단기 2835,502)년에 신라 백성을 천주로 옮겨 그곳을 채웠다. 이 해에 백제가 조공을 바치지 아니하므로 군대를 보내어 요서,진평 등의 군을 쳐서 빼앗으니 백제군이 없어지고 말았다.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 ​

백제가 군사를 일으켜 제 노 오 월의 땅을 평정하고 관서를 설치하여 호적을 정리하고 왕의 작위를 나누어 봉하고 험한 요새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그리고 군역과 세금과 특산물 납부를 모두 본국에 준하여 하게 하였다

환단고기에는 백제땅이 요서,진평 등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구려 21세 문자제 제위시에 요서,진평의 백제군을 군대를 보내 없앴다는 기록도 함께 나와 있습니다. 





▶남중국 역사서에만 기록되어있다고??

백제는 북중국을 점령했는데 어째서 송서 양서 남사와 같은 남중국 왕조들의 역사서에만 이런 내용이 기록되어있냐는 것이다 그래서 믿을 수 없다고 합니다.

한나라의 계승자인 후한이 약해지면서 중국은 위촉오삼국시대로 분열되었고 삼국시대가 끝난지 얼마뒤 다섯개의 북방유목민족이 남하하여 북중국을 차지햇습니다.

이로 인해서 북중국에선 유목민의 나라들이 세워지고 기족의 중국 한족 왕조는 남중국으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이시대를 4호 16국시대라고 부릅니다. 다섯 유목민족이 16개국을 북중국에 세운 시대라고 그렇게 부릅니다.

5호 16국 시대의 대혼란이 수습되면서 중국은 남북조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남북조시대에는 남중국과 북중국에 원칙상 각각 하나의 왕조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 남북조 시대에 순차적으로 출현한 남중국왕조가 유송,남제,양나라.진나라입니다.

<송사><양서><남사>는 바로 이나라들의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송사는 유송 양서는 양나라 남사는 사개국 모두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한국의 일부 학자들은 "남중국 역사서에 백제의 북중국 점령이 기록된 것은 남중국이 북중국을 폄하할 목적으로 거짓 역사를 기록했기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북중국 역사서에 이런 사실이 기록되어있지 않았으므로 믿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남중국과 북중국이 서로 견제하다보니 남중국이 백제의 북중국 점령을 자기네 역사서에 기록했을 거라 믿고 있는 것입니다.

<송사>를 제외한<양서>와 <남사>는 북중국이 중국 전체를 통일한 뒤에 편찬된 책입니다.

양서와 남사는 북중국을 계승한 당나라때 편찬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책들은 북중국이 편찬한 책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중국이 북중국을 조롱할 목적으로 그런 사실을 기록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사실들을 고려하면 백제가 요서땅을 점령했음을 부정하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이 옳지 않음을 알 수있습니다.
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1743#none





☞출처: http://band.us/#!/band/59634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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