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역사가 줄어든 11가지 이유
우리겨레 역사가 줄어들게 된 11가지 계기
우리 역사는 역사서와 유물 그리고 사적이 외적의 방화와 침탈 그리고 왜곡에 의하여 한없이 축소되고 말았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스스로의 역사 왜곡에 의한 역사의식의 상실이다. 역사의식의 상실은 한민족의 혈통 및 문화 그리고 고유의 사상, 철학, 신앙의 무관심 및 배척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민족의 역사와 정신을 상실한 우리겨레는 급기야 세계인을 자처하며 스스로 한민족 해체를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이런 문제점의 모든 근원은 역사 왜곡에 있다 할 것이므로, 문정창 선생이 주장한 역사 축소 계기 10가지에 1가지를 추가하여 우리 역사가 줄어들게 된 역사적 사건 11가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1. 고구려 동천왕 18(A.D 244)년 위장 모구검(관구검)의 환도성함락과 모든 전적의 약탈 및 제거
2. 백제 의자왕 20(A.D 660)년 나당연합군에 의한 사비성의 함락과 그 초토화
3. 고구려 보장왕 27(A.D 668)년 당나라 장수 이적의 평양성 함락과 일체 전적의 수거
4. 신라 경순왕 원(A.D 927)년 후백제주 견훤이 신라왕도에 들어가 경애왕을 자살하게 하고 경순왕을 세운 다음 신라의 전적을 그 국도 전주에 이관하였다가 그 44(A.D 935)년 고려국조 왕건에게 섬멸당할 때에 병화로 인하여 소진된 일
5. 고려 인종 7(A.D 1129)년 금나라에 속하여 서표를 바친 후 금제의 압제 하에서 주체성 있는 수많은 고적들이 자취를 감춘 일
6. 고려 고종 20(A.D 1233)년 몽고에 패한 고려조에 홀필열의 위풍이 떨치자 지금까지 사용해왔던 황경 제궁 등의 이름이 없어지고 동해천자의 팔관악부가 금지되고 삼한고기 해동고기 삼국사 등이 자취를 감춘 일
7. 1392년 한양조선이 성립되자 태종이 오부학당을 송나라 제도에 의거하여 설치하는 등 유교를 크게 장려할 때에 유학도가 이단시하는 일체의 문헌들을 소각한 일
8. 선조 25(A.D 1592)년 5월 임진왜란으로 도성이 함락되자 이 때 수많은 전적이 난민들의 방화로 인하여 소실되고 또한 왜장들이 약탈 수거하여 오늘날까지 보관하고 있는 일
9. 이괄의 난(A.D 1624)과 병자호란(A.D 1636) 때에 무수히 소실된 일
10. 1910년 대한제국을 강점한 군국일본이 군경을 동원하여 이 나라 전적을 혹은 불사르고 혹은 탈거하고 혹은 삭탈하고 혹은 조작해 놓은 등의 일은 그 대표적인 것
이상은 문정창 선생이 고조선사 연구 제3장 단군조선(63~64쪽)을 정리한 것으로 11번 째 역사왜곡을 아래와 같이 첨부하고자 한다.
11. 일제의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하여 역사왜곡에 참여한 이병도와 그 아류인 신석호, 이기백, 김철준 등이 1945년 8월 15일 광복 후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의 주요 대학 역사학과 주임교수의 위치에 임명된 후, 그 일당 및 제자들이 대한민국 학술원, 국사편찬위원회 등을 설립함으로서 모든 대한민국의 역사를 크게 왜곡시키고, 고구려 역사재단을 점거함으로서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왜곡에 적극 협력하고 있는 일
옛적 우리 동방 한민족은 광명을 숭상하였다. 그래서 백의민족이라고 한다. 광명의 숫자로 표현하면 동방의 3, 8이다. 이 광명을 통일한 수는 11이다. 그런데 우리민족은 우주 가을을 목전에 두고 11번에 걸쳐 역사를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것은 분명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것이다.
글 : 송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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