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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역사문화/한민족의 역사문화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by 바로요거 2010. 1. 12.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박종현 기자의 대중과 소통하는 학자들]〈31〉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세계일보 | 입력 2009.08.10 21:18

뿌리깊은 식민사관 떨쳐내려 한국사 진실찾기 나서

과거는 오늘을 있게 한 주춧돌이다. 오늘의 튼실한 '기둥'과 모나지 않는 '지붕'은 미래를 만들어내는 근거가 된다. 이는 역사학이 존재하는 이유다. 하지만, 역사를 쉽게 풀어내는 게 쉽지만은 않다. 역사 저술가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은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역사 저술가다. 그는 광범위한 자료를 섬세하게 분석해 비판적인 글쓰기를 선보인다. 독자층은 폭넓다. 역사 책을 찾는 독자라면 그를 피해갈 수는 없다. 역사에 대한 그의 확실한 철학이 불러온 효과다.





◇제대로 된 역사해석은 궁극적으로 정의롭고 바람직한 사회 창조에 도움을 준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은 지도층일수록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굳이 서양의 예에서 찾을 필요도 없이 우리 역사에서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참다운 모습을 찾아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송원영 기자

그가 보기에 우리 사학계는 아직 조선 후기 노론사관과 일제강점기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주류 사학계가 총론에서는 식민사관을 비판하고 있지만, 각론에서는 일제강점기 일본 사학자들의 왜곡된 연구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가 지적하는 학계의 현실은 참담하다. 삼국사기 초기 기록의 진실성에 의문을 품고, 한사군의 위치를 한반도 안으로 한정해 보고, 노론의 당파성을 언급 못하고, 현대사 연구를 백안시하고 있다. 이에 대한 그의 문제적 비판의식이 담긴 책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이 이달 중에 출간된다.

"아직도 우리 사학계는 식민사관의 뿌리가 깊어요. 노론사관이 조선사편수회로 이어졌고, 이런 흐름이 광복 이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왜곡은 비판하면서 식민사관은 떨쳐버리지 못한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우리 내부를 향하는 그의 말이 폐부를 찌른다. 낯까지 뜨거워진다.
"역사전쟁에서 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교과서부터 바로 잡아야 합니다. 식민사관 잔재가 남아 있기에 역사 교육을 강화하면 특정 부문에서는 오히려 식민사관이 전파되는 모순이 발생하기 때문이지요."

역사 교육의 잘못이 반복되고 있다며 고조선을 사례로 든다. 교과서에 고조선 중심부를 한반도 주변부로 표시하는 것은 '엉터리'라고 강조한다.

"고조선만 해도 그래요. 고조선 융성기에 중국 동북부에는 진나라가 있었는데, 두 나라는 2년에 한 번꼴로 전쟁을 했습니다. 속국들이 조공할 때 고조선이 방해를 한다면서 진나라가 곧잘 전쟁을 일으켰지요. 그리고는 전쟁 때마다 6만명의 군인을 동원했어요. 하지만, 고조선이 한반도 인근에 있었다면 지리적으로 볼 때 방해를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진나라가 6만명이나 되는 거대한 병사를 동원할 이유도 없었겠지요."

여러 차례 그를 만났지만, 비판 의식이 여전히 살아있다. 7년 전 처음 만났을 때, 이 소장은 달변가는 아니었다. 여전히 잔잔한 화법이지만 지금 거침이 없다. 그가 이어 '화랑세기'를 끄집어냈다. 화랑세기에 일부 향가가 나오는데, 기존에 인식되는 찬불가 형식이 아니어서 화랑세기를 위서(僞書)로 평가하는 학자들이 많은 실정이다.

"향가는 무조건 찬불가여야 한다는 게 말이 안 됩니다. 후대 학자들이 미처 알지 못한 종류의 향가가 있을 수도 있지요. 오히려 화랑세기가 진서(眞書)라는 자료가 더 많습니다."

화랑세기 속의 성 풍속이 문란하기 때문에 지어낸 이야기라는 사학계 일부의 시각도 내켜 하지 않는다.

"성 풍속 문란이라는 가치 판단은 한반도의 유교화 이후에 생긴 논점입니다. 그 시대에 적용하기는 무리가 따릅니다. 더구나 원나라 세조가 고려에 보낸 즉위교서에는 '동성동본은 결혼하지 마라'는 구절이 있어요. 이 구절 자체가 이 땅에 동성동본이 성행했던 것을 보여주지요."

신라는 혈족의 배타성을 유지하기 위해 근친혼에 관대했다는 것이다. 상식적인 접근을 통해 역사를 학자의 전유물에서 대중과 호흡하는 학문으로 끄집어내는 그의 설명은 이처럼 쉽다. 한때 대학에서 교수직을 제안했지만, 자유로운 글쓰기로 그는 지금 교수보다 더 영향력을 가진 학자다. 대학 문화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중세 시대에 대학의 공기는 자유로웠지요. 하지만, 지금 우리 대학들은 진리의 수호자도 탐구자도 아닙니다. 미국의 경쟁력이 대학의 경쟁력에서 비롯된 것인데, 우리는 그러지 못해요. 학문의 전당인 대학이 관료 출신을 총장으로 임명하는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고도 창피해 하지도 않아요."

역사를 배우는 목적은 과거의 교훈으로 현재를 살피고 미래를 대비하는 것에 있다. 역사적 진실이 보수와 진보를 뛰어넘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역사학이 사회통합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이 소장은 "직면한 상황이나 가까운 미래를 보는 정치·경제학에 비해 역사학은 종합학문"이라며 "역사학은 헬기를 타고 산 위에서 조망하는 학문이기에 동시대 문제에 대해서 발언하는 것을 꺼리게 된다"고 했다.

그러나 오늘 응용이 불가능하면 역사가 아니다. 다음 이야기로 꺼내든 것은 신라의 삼국통일과 조선의 외교방식이다. 삼국통일은 고구려가 했어야 하고, 조선은 사대외교를 버렸어야 했다는 게 일부의 시각이다.

"모두 역사적 맥락에서 살펴봐야 합니다. 후대인들이 '당대성'을 간과한 채 설명해서는 안 되지요. 고구려처럼 확실하게 싸울 것인지, 신라처럼 중국의 힘을 인정할 것인지는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의 문제입니다. 힘이 약한 처지에서 주변국의 공세적 외교에 대응해야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어요."

역사학의 존재론에 의문을 품는 사람에게 줄 만한 답이다. 그러기에 그는 불리한 여건에서도 사회를 한 단계 도약시키고 변화시킨 역사적 인물에게 애정이 많다. 조선 정조는 오늘의 정치인들이 크게 본받아야 할 인물이다. 정조는 재위 첫해에 서자들을 등용하는 '서류허통절목'을 제정한 뒤, 재위 3년에 유득공과 박제가 등을 등용했다. 서얼 차별로 관직 진출이 막혀 있던 이들을 등용해 당대 최고의 지식을 유통시켰다. 단번에 조선의 지식계에 변화를 가져왔으니, 인사 때마다 몸살을 앓은 정부나 민간기업이 본받을 만한 일이다.

"정조는 내부적으로 소외된 인물을 발탁해 등용하며 미래지향 정책을 펼쳤어요. 직계인 영조와 사도세자의 차이를 뛰어넘어 갈등을 치유하는 데 앞장섰지요. 지도층이 본받을 위인이지요. 우리 사회의 좌파는 철학은 있지만 실천력이 부족하고, 우파는 실천을 강조하지만 철학 자체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갈기갈기 찢겨 있지만, 앞서가는 제대로 된 나라라면 좌파는 우파정책을, 우파는 좌파정책을 펼치겠지요."

역사가 늘 모범 사례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모순과 오류에서도 배우는 법이다. 조선의 우파라 할 만한 노론은 이론과 철학에 함몰돼 오히려 실천하지 않았다. 오히려 좌파라 할 만한 소론이나 그 뒤를 잇는 양명학파와 강화학파는 실천하는 학자들이었다. 이는 그가 양명학에 관심을 두는 이유다. 정조와 정도전 등 역사적 마디에서 사회를 한 단계 도약시킨 이들에게 관심이 많은 그가 설정한 장기적인 목표에는 양명학이 자리 잡고 있다. 조선시대에 유일하게 주자학과 '맞짱 떴던' 학문인 양명학에 대한 연구는 우리 사학의 맥을 캐는 작업으로 여기고 있다.

"국가위기 상황에서 노론은 친일의 길을 걸었지만, 양명학은 국가를 구했습니다. 조선 지식계를 뒤흔든 강화학파의 시조 정재두 이래 정인보, 박은식, 이건창 선생 등이 모두 양명학을 공부했지요. 강화도에 양명학을 연구하는 기관이나 대학이 들어섰으면 좋겠어요."

1997년 '당쟁으로 보는 조선 역사'를 내놓은 이래 그는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와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을 거쳐 올해 초 '세상을 바꾼 여인들'에 이르기까지 30권에 이르는 책을 썼다. 그의 책은 이야기가 있는 역사 저술을 지향해 소설처럼 잘 읽힌다. 지난해 9월에는 역사 소설 '조선의 승려는 북벌을 꿈꿨다'를 내놓으며 긴박한 상황 묘사로 독자의 눈길을 끌었다.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이덕일 소장은…

1961년 충남 아산 출생.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숭실대 사학과 졸업 후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 취득. 한국사의 쟁점에 뛰어들어 변혁을 이끈 역사적 인물을 재해석하는 탁월한 역할을 해 왔다. 저술 활동은 물론 각종 지면에 외고자로 등장해 일반 독자에게 역사학 친밀도를 높였다. 출판계와 언론계 안팎에서는 일반인을 역사 현장으로 불러냈다고 평가한다. 풍부한 자료와 정확한 역사적 평가를 바탕으로 깔끔하게 글을 쓰는 '역사 글쟁이'다.

●저서


'당쟁으로 보는 조선 역사'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1∼3'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1·2' '조선왕 독살사건 1·2' '장군과 제왕 1·2' '조선최대갑부 역관' '사도세자의 고백'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 '한국사의 천재들' '조선선비 살해사건' '정조와 철인정치의 시대 1·2'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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