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모수, 고두막한, 고주몽의 선조...고씨족의 시조는?
해(고)모수.고두막.고추모의 선조 고씨족은 누구인가?
중국이 발해(순우리말=밝해=태양)로 표기한 대진국의 황실은 서압록하에서 천제 지내는 것을 큰 행사로 여겼다고 하니, 이것은 뿌리 의식을 드러낸 것이다.
대진국본기에 “3월 16일에 삼신일체의 상제(上帝)를 서압록하의 강변에서 제사를 지냈다. 서압록하(지금의 요하지역)는 고리(골=구리=고려=고구려)의 옛 땅이다”란 기록을 보면 대진국의 황족인 대씨 역시 고씨에서 오지 않았나 의심해 본다.
이 심증을 더욱 깊게 하는 것은, 고리의 옛 땅에서 태어난 해모수를 일러 종실 대해모수라 하였음으로, 그 대해모수의 이름 중에서 대를 따서 대씨로 삼았을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해모수를 일러 대해모수라 하였고, 고무서를 일러 소해모수라 하였다.
고씨의 시조는 누구일까?
삼국사기에는 중국측 기록을 들어 고양씨의 후손이라고 한다.
고양씨는 황제헌원의 방계 후손이다. 그것은 중국측이 우리 역사를 폄하시키기 위하여 내놓은 술책이다. 고씨의 기원은 배달국 거발한 환웅천황의 신하인 고시씨로 보아야 한다.
신시본기에 치우씨, 고시씨, 신지씨의 후손들이 그 공덕에 의하여 가장 번성하였다 기록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고시씨가 색불루 단군의 선조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환단고기]기록에 따르면 북부여 시조 해모수의 고향은 고리국[藁離國]인데, 이 고리국은 바로 단군조선의 구려국(句麗國)이다. 그나라 임금을 군(君)이라 하였다. 단군조선의 대표적인 9봉후국 중의 하나[단군왕검의 작은 아들 부소를 봉한 나라]이다.
서기전1285년부터 고리국출신의 고씨들이 단군3조선의 대단군으로 즉위하게 되였는데 47대단군 고열가[44대물리단군의 현손, 고씨단군의 마지막 단군]의 종실(황실)인 해모수의 고향 즉 선조의 나라가 고리국이라는 것이다.
단군조선 상장군 출신 47대 고열가는 46대 단군에게 아들이 없어 마지막 대단군에 오르기 전에 영품리왕寧稟離王(단기고사에서는 고열가 단군의 시호였다.)으로 격하된 적이 있었다.
영품리왕의 시비가 낳은 아들이 동명왕이라는 전설이 [삼국유사]에 있고, 졸본부여의 고두막한 동명왕은 고열가의 후손이라는 설이 [환단고기]에 있다.
<후한서> 부여전에서는 색리왕의 시비가 낳은 아들이 동명왕인데 도망쳐서 부여에 가서 왕이 되었다.
따라서 동명성왕 고두막은 [동명신화]내용대로라면 고열가와 왕궁의 시녀사이에서 태어났으나 고열가에게 죽임을 당하려 하자, 도망한 사람의 아들임을 알 수 있다.
고두막가족의 출생비화를 담고있는[동명신화]나, 한반도남부 진한지역으로 도피하여 왕이 된 [박혁거세 신화]나, 해모수의 후손인 불리지와 공식혼인 관계없이 유화부인에게서 태어난 고추모을 통해서 알수 있는 점은 고대 한국인들은 혈통을 중시했으며,공식적인 혼인관계를 거치지 않았거나,시녀의 몸에서 태어난 아이는 결국 버려지거나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였음을 알 수 있다.
단군조선당시 요동과 요서를 구분하는 기준은 난하였다.
고리국은 단군조선당시 구려하(九黎河) 건너 요동의 서안평을 가리킨다. 구려하는 서압록 즉 서요하이다. 서기전108년경의 구려하와 요동과 서안평이 어디인지를 알면 옛 고리국 즉 구려국이 어디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단군조선 시대 구려국은 묵자(예수.석가모니.공자를 능가하는 현실적인 광명사상가)를 배출한 고죽국과 가까운 곳에 있었다고 보이는데, 옛 서안평은 요나라 때 임황이다.
대진국 시대에 임황은 옛 서안평이며, 서안평은 구려하 건너 요동에 있었던 것이 되는데, 구려하는 서요하이므로 지금의 요동반도 서쪽에 붙은 요하가 아니라 그 보다 더 서쪽에 있었던 요하이므로 즉 서안평은 지금의 요동반도 바로 서쪽이 아니라 그보다도 큰 강을 건너 서쪽에 있었던 것이 된다.
즉 지금으로 따지면 북경의 북쪽과 요동반도 사이에 발해만 북쪽에 있었으며, 지금의 요하의 상류쪽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즉 단군조선 당시 번한의 북쪽 지역에 있었던 것이 된다.
흉노족의 시조는 단군왕검 차남 부소의 후손 색정
그리고 고리국의 1대 왕으로 취임한 부소의 후손 중에서 흉노의 시조가 되는 색정이 나오게 된다.
따라서 흉노의 기원도 바로 고리(고려.고구려)국이다. 중국 오나라 손권이 고구려왕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구려를 보고 흉노의 선우라고 말하는 역사적 배경이다. 흉노는 북방초원지대로 이동하면서 단군조선의 종속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리고 이 흉노에서 분가한 종족이 또한 단군왕검의 차남 부소의 후손인 기후의 수유족이다. 대단군의 좌현왕이였던 기후는 본래 대단군 후계자로 낙점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우현왕이였던 색불루(해모수.고추모의 조상 고등의 아들)가 반발하여 쿠테타를 일으켜 대단군으로 취임한다. 이에 기우여(기후=기자)는 마한과 손잡고 색불루와 전쟁을 벌이나 계속 패하고 번조선 부단군으로 취임하게 된다.
은나라 사람 기자와 부소의 후손 기자는 동명이인
따라서 번조선이 기자조선으로 명칭이 변경되는 배경자체가 기자(기후=기우여)를 1대 단군으로 삼기때문이다. 그리고 주나라에게 망한 은나라의 신하 기자와는 동명이인이다. 은나라 신하 기자가 번조선으로 망명해온 시기는 기자조선 3대 솔귀 부단군때이며, 진조선 대단군 솔나단군때이다. 일부 사학계에서 부소후손 기자와 은나라 신하 기자를 동일한 인물로 규정하는데 잘못된 내용이다. [환단고기]만 잘 읽어봐도 구분할 수 있는 문제이다.
흉노 등 북방유목민들의 고향은 동방
따라서 단군왕검 차남 부소의 나라 고리국은 단군조선의 대단군들을 배출하고 부여-고구려를 개국한 해씨(고씨)들이 왕족임을 알 수 있고, 고리족은 유목민들로 유라시아 초원지대를 지배한 주역임을 알 수 있다. 물론, 고구려(고리)가 흉노의 선우라고 했던 중국 오나라 손권의 말대로 유라시아초원을 지배한 흉노.몽골 등 북방 유목민족의 기원또한 동방(만주.한반도)이며, 북방유목민족의 철기제조기술또한 동방지역에서 서방지역으로 전파되었음을 알 수 있다.그리고 고대 최첨단기술인 철제기술을 보유한 고리(구리.구려.고구려)족들이 지배종족일 수 밖에 없었다.[윤복현]
출처: 이너모스트 http://innerm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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