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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개벽]진정한 검도(劍道)는 자신의 묵은 관념을 베는 것

by 바로요거 2009. 3. 2.

 

[월간개벽]진정한 검도(劍道)는 자신의 묵은 관념을 베는 것

 

 칼에서 배우는 중도(中道)와 정의(正義)의 기상
 
 글·이동화 (대구 만촌도장)
 
 

 양편에 날이 있으면 검(劍)이라 하고, 한편에만 날이 있으면 도(刀)라고 한다. 그 검과 도를 통칭해서 부르는 말이 바로 칼이다.
 
 인류문명의 진화와 함께 이 칼의 형태 및 쓰임새도 다양하게 발전해 왔다. 생활도구에서 전쟁무기에 이르기까지 칼은 생(生)과 사(死)의 극단적 양면성을 지닌 특별한 상징성 때문에, 실생활에의 용도 이외에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는 마음수양의 방편으로도 여겨져 왔다.
 
 천지의 4마디(생장염장, 춘하추동) 변화정신을 대변하는 ‘원형이정(元亨利貞)’의 4대 덕성(德性) 중, 가을을 상징하는 이(利) 자에도 ‘칼 도(刀)’ 자가 붙어 있다. 이는 곧 칼의 정신이 가을의 정신과 상통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오늘날 후천 가을세상을 열어갈, 새 역사 창업의 과업을 짊어진 상제님의 일꾼들에게 칼의 정신은 과연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칼의 역사적 유래와 상징성
 
 칼은 인류가 만들어낸 무기 중 창, 활과 더불어 가장 오래된 무기로 꼽힌다. 그러면 이 칼의 유래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주 재료가 돌이었던 칼이나 창이 쇠로 바뀐 것은 바로 배달국 치우천황 때의 일이다. 치우천황은 갈로산(葛盧山)에서 쇠를 캐내 아홉 개의 야금소(冶金所)에서 칼과 창 등을 만들었으며, 이 청동제 무기는 누구도 대항할 수 없는 첨단병기였다고 전한다. (『한국상고무예사』 참고)
 
 검(劍)에 대한 최초의 기록인 『관자(管子)』「지수편」에도, “치우가 검을 만들었으며, 치우는 동이족으로 중원까지 군신으로 존경을 받았다. 중국에는 검술이 전해지지 않았고 동시에 그 무기 또한 드물다.”고 적고 있다. 이 또한 우리 민족의 청동기와 철기문명이 얼마나 선구적이었는가 하는 것을 가늠케 한다. 그 당시 출현한 동검(銅劍)은 정복을 위한 수단뿐 아니라 지배계층의 권위와 종교적 권위를 함께 상징하는 것이었다.
 

 또 『산해경』「해외동경전(海外東經傳)」에서는 동이를 군자라 부르고 “그들은 옷을 입고, 관을 쓰고, 띠를 두르며 검을 찼다.”라고 하여, 검은 예(禮)의 상징이며 지배자의 상징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렇듯 검이 갖는 각별한 내면적 의미는 사회조직의 발전과 함께 확대되어 갔다.
 
 철기시대에 주로 쓰이던 철제대도는 소환두대도(素環頭大刀 : 검 손잡이 끝의 고리 안에 아무 것도 없는 형태의 대도)였다. 일본의 옛 기록에 맥검이나 고려양대도(高麗樣大刀) 등을 보면 일본도와 검의 이름이 고구려의 환두대도와 검을 칭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백제는 도부(刀部)를 두어서 도와 검을 다루는 장인의 육성에 힘을 쏟았으며, 용환두대도에서는 백제의 뛰어난 기술을 엿볼 수 있다. 신라는 장식패도의 일종인 황금장단검(黃金長短劍)과 주류를 이루었던 삼환두대도와 ‘용봉문 소환두대도’*가 있다. (『한국 전통무술과 정착무술의 실제』, p.48∼49)
 

 

 ‘용봉(龍鳳)’이라는 단어에서 볼 수 있듯, 우리 선조들은 검속에도 음양의 우주정신을 담고자 했다. 그리고 그 정신을 나의 정신으로 삼기를 노력했다.
 
 고대 국중 행사를 하던 ‘소도’에서는 오상(五常: 忠, 孝, 信, 勇, 仁)계율을 실천하며 옆에는 경당(고구려 평민교육기관)을 세워 미혼 자제들에게 사물(四物)을 익히게 했는데, 이때 검술도 병행하였다.
 
 조선시대에 주로 이용된 도검은 이인검(二寅劍: 인년, 인월에 다듬은 칼), 삼인검(三寅劍: 인년, 인월, 인일에 다듬은 칼), 사인검(四寅劍: 인년, 인월, 인일, 인시에 다듬은 칼)과 진검(辰劍: 용의 해에 만든 검), 칠성검(七星劍)이 있는데 검신(劍身)에 모두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다.
 
 『사기(史記)』를 보면 북두칠성은 상제님이 타는 수레로, 하늘의 정중앙을 운행하면서 사방을 직접 통제한다고 하였다. 또 칠성(七星)은 일체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고, 칠정(七政)의 축이 되며 음양의 본원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진정한 검도는 자신의 묵은 관념을 베는 것
 
 검도(劍道)란 말은 이천년 전 중국 『한서』「예문지」에 처음 소개되고 있는데, 같은 책에서 다른 무술과는 달리 유독 검도만은 법(法)이 아닌 도(道)라 불리웠다.
 
 무(武)라는 글자는 『설문해자』에 의하면 ‘武 = 戈 + 止’의 회의문자로써 ‘창[戈]을 멈추게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즉, 폭력을 금하고 군사를 모아서 대(大)를 유지하고 공(功)을 정하고, 백성을 걱정하고 재(財)를 풍부하게 한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바로 그 무(武)의 대표적 상징인 검술은 사람에게 이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변(事變)에 임하여 죽음과 삶을 분명히 하는 기술이었다. 죽고 사는 것을 분명히 한다는 것은 몸의 기술 이전에 마음의 차원에 해당한다. 즉, 검술이 몸의 기술이고 칼 쓰는 기술이라면, 검도는 마음의 기술이자 생사를 벗어나는 기술인 것이다.
 
 검도의 극치는 적도 없고 나도 없는 경지이고, 적을 의식하지 않을 정도로 나의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그러한 경지는 사물과 나를 잊어 담연하여 사사로운 망념과 집착이 끊어진, 화(和)하여 하나가 된 경지이다. 적에게는 이미 승리했지만 자신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무념의 경지인 것이다.
 
 칼은 안으로는 인간의 칠정(七情 : 인심,욕심)을 제어하고 사단(四端 : 도심, 본심)이 드러나게 하며, 도심(道心)과 인심(人心) 사이에서의 갈등을 초월하여 천지와 조화된 마음으로 나아가게 한다. 또 밖으로는 사회적 불의를 숙청하여 정의를 실현하는 가을의 서릿발과 같은 결단적 의지를 상징하고 있다. 다시 말해 칼은 나의 본성을 회복시켜 주고, 그런 나를 통하여 모든 악업의 잔재들을 소멸시켜 버리는, 인존시대의 절대명제를 분명히 해주는 진리의 자기 표현인 것이다.
 
 
 늘 깨어있음을 지키는 마음의 칼, 심검(心劍)
 
 우리 선조들의 검이 상징하는 것은 악(惡)이 아니라, 진정한 용기와 진정한 지혜와 선(善)의 정신이다. 검은 살인(殺人)이 아닌 활인(活人)에 그 목적과 정신이 있다. 검을 다루는 자의 마음에 활인의 정신이 깃들어 있을 때 이를 심검(心劍)이라 하는데, 이는 검으로 이르고자 하는 길의 목적이다. 심검이란 더 이상 물리적인 칼이 필요 없는 단계를 말한다. 칼이란 물건이 관념 속에서만 그 가치가 있을 뿐, 적이 없으므로 칼도 검술도 필요가 없어지는 경지이다.
 
 또한 나의 마음속에 있는 천지의 순수 본성적 차원의 정의의 심검은 타인의 묵은 습성과 관념을 단호히 베어 그 사람에게 본래 내재한 광명을 되찾아 주고 인간의 삶의 목적을 달성하게 해 주는데 있다.
 
 옛날 공자나 이태백도 검을 차고 다니면서 난세의 어지러움 속에 자신을 검으로 보호하였고, 남명 조식선생은 경의(敬義)정신을 행동하고자 하여 자신이 차고 다니던 칼에 “안에서 밝히는 것은 경이요, 밖에서 결단하는 것은 의다.”(內明者敬, 外斷者義)라는 좌우명을 새겼었다.
 
 칼날은 태극(太極)이요, 칼날이 지난 자리는 음양(陰陽)이다. 이렇듯 칼은 또 중도(中道)를 상징한다.
 
 한치의 기울어짐도 없는 칼날 위에 나의 마음을 세워 보라.
 
 양심과 욕심의 경계, 즉 참과 거짓의 경계에는 언제나 칼이 있다. 욕심과 거짓의 탈을 쓴 기쁨, 시기, 질투, 슬픔 등 그 수많은 드러나는 것들 속에 감추어진 욕심과 거짓됨의 가면을 칼은 용서치 않는다. 오직 양심과 참됨만을 지키기 위하여 칼은 언제나 깨어있을 뿐이다. 내 속에서 발현되고 나를 영원의 생명으로 이끌어 주는 천지일월의 절대 순수 본성을 서슬 시퍼런 칼날과 같은 정신이 아니면, 무엇으로 얻을 수 있겠는가?
 
 또한, 내 안에서 얻지 못한 순수본성을 삿된 마음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전할 때, 그것은 달마의 말을 빌자면 일체가 악마의 교설일 뿐이다. 오직 도심(道心)을 득하느냐, 득하지 못하느냐에 나의 생명과 인류의 생명이 매여 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칼은 흐트러진 마음을 바로잡는 계율과도 같은 것이다.
 
 증산도에도 도전과 어록, 4대 신앙관과 인간관, 10대 생활개혁지침 등의 계율이 있다. 즉 말씀이 계율이다. 이 계율은 기존의 어떤 계율과도 달리 우주본체의 절대 순수 경계에서 인사화된 것이다. 도(道), 곧 우주법도가 계율로 화한 것이니 자율적으로 실천하는 참된 즐거움이 있을 뿐이다.
 
 스스로의 정성스러움을 칼의 정신과 같이 한다면, 누구도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을 반드시 달성할 수 있다. “하늘이 옳다 그르다 하지 말고 도를 닦겠다고 말하라” (道典 9:217:6) 하신 증산 상제님의 말씀처럼 순종의 정신에 따르면 너무도 쉽다.
 
 상제님의 천지공사가 오직 심법공사, 신명공사임을 명심하여 일체의 ‘나’를 비워버리자. 천지의 뜻을 집행하는 우주적 심법을 나의 말과 행동으로 선포하자. 역사는 지금 우리에게 칼날과 같은 15진주의 심법을 요구하고 있다.
 
 “나는 오직 마음만을 볼 뿐이며, 지금은 하늘이 천심 가진 자를 찾는 때다.” (8:20:1)라고 하신 증산 상제님의 말씀이 더욱 엄숙하게 다가온다.  
 
 [참고문헌]
 1.『무도론』, 김정행, 김상철, 김상룡 공저, 대한미디어
 2.『독행도(獨行道)』, 한병철, 한병기 공저, 학민사
 3.『동양무도연구』, 이진수. 한양대 출판부
 4.『한국 전통무술과 정착무술의 실제』, 조일환, 문예마당
 5.『조선세법(朝鮮勢法)』, 김재일. 허일봉 공저, 화산문화
 6.『한국상고 무예사』, 고동영, 한뿌리
 7.『검무예』, 오정교. 진한도서

 

월간개벽 2005년 4월호 http://www.greatope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