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공한증과 한류열풍
1. 서문(序文)
평원과 중원 만주와 반도 열도 그리고 해양에 이르는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끝에 자리잡은 한민족의 삶은 크게 5가지 사건으로 국력의 소모와 함께 활동영역의 축소를 가져왔다.
대표적인 사건은 5천년전 치우천황과 황제헌원과의 전쟁이다. 중원 전 대륙을 전장으로 하여 10년간 73차례 싸웠던 이전쟁은 결과적으로 치우천황과 동방족의 승리로 끝나는듯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은 반전되었다.
후에 2200년전 서방족의 한무제가 번조선에 이어 북부여의 영토를 침공하자 동명부여를 세운 고두막한 단군이 이를 막아낸다.
다시 1400년전에 수문제와 수양제가 고구려를 차지하려 전쟁을 벌였으나 을지문덕 장군의 활약으로 국난을 극복한다. 후에 수양제의 이종사촌인 이연과 그의 아들 진왕 이세민이 다시 1300년전까지 치열하게 싸운다. 이를 대막리지 연개소문과 안시성 성주 양만춘 장군이 막아낸다. 100년에 걸친 수당과이 싸움으로 국력을 다한 고구려는 결국 668년에 멸망하고 만다.
시간은 다시 천년이 지나 1592년부터 1598년까지 2차례 걸쳐 일본의 20만대군으로 조선을 침공한다. 이때는 돌격대장 원균과 지장 이순신 등 조선수군의 대활약으로 지긋지긋한 7년전쟁을 막아낸다. 그 뒤 30년뒤 1637년 병자년에 청의 황태극이 이끄는 12만8천의 청군의 침공을 받게 된다. 그러나 부자형제가 총출동된 황태극의 군대는 서기 1637년 12월 1일군대를 소집해 서기 1638년 1월 30일 조선의 수도 서울을 함락하고 선조를 무릎꿇려 항복을 받아낸다.
이후 구한말 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드디어 자주적인 9천년의 역사는 단절을 겪고 만다. 그리고 지난 100년의 세월동안 일본제국과 미국제국, 소련제국에 의해 식민통치,신탁통치, 한국전쟁을 거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민족에게는 위대한 지도자가 있었을때, 그 국력을 가장 널리떨치었고, 주변의 국가들이 감히 이 땅을 넘보지 못하였다. 또 국난의 어려움이 발생할때마다 자주적 역량과 문화적 우월성을 바탕으로 일어서곤 했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 새로운 영웅의 등장을 필요로 하는 시대가 도래하였다.
바로 국제정세가 급격히 이동하고 힘의 균형축이 흔들리며 다시 혼란한 세상이 도래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에 앞서 한민족의 역량을 살펴보는 것이 손무와 손빈의 『손자병법』상의 전략인 지피지기면 백전불태와 부합하여 먼저 지피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2. 공한증 - 치우천황의 후예들과는 전쟁을 피하라
오늘날 중국축구대표팀이 한국축구대표팀 앞에서만은 거의 쩔쩔매다 시피 해 한국축구를 무서워한다는 공한증이라는 이름이 중국의 언론에 의해 등장하게 됐다. 그런데 이 공한증이 역사는 축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앞서 서두에서 말한바 있었던 치우천황과 황제헌원의 73전 73승의 전승의 역사를 이끌어낸 14대 자오지 환웅천황의 별명을 치우(우레의 신, 번개의신, 개벽의 신)라고 붙인데서도 이 공한증의 기원을 알 수 있다. 5천년전으로 거술러 올라가는 공한증의 역사를 창시한 치우천황의 역사는 후에 한무제의 군대를 참혹하게 패배시킨 고두막한과 수당을 교체하게 만든 을지문덕 등으로 이어진다.
수의 패배와 수를 계승한 당의 연속적인 패배는 중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이는 명나라에도 이어졌다. 1488년 2월 조선에서 표류해 왔던 최부를 접견한 소주의 안찰어사들이 최부에게 "당신 나라에 무슨 장기가 있어 능히 수 당의 군대를 물리칠 수 있었느냐"고 질문한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해 조선군이 일본군에게 참패를 거듭하자 명의 관리들은 매우 의아하게 여겼다. 1594년 왜국의 재침을 우려해 다시 원병을 청하려고 북경에 갔던 조선 사신에게 명의 도찰원우첨도어사 이화룡은 조선이 자강에 힘쓸 것을 강조하면서 "조선이 수당 이래 강국으로 불렸는데 지금 이처럼 허약해진 이유가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며 역사가인 안정복은 그의 저서 <동사강목>에서 이 전쟁에서 고구려가 승리해 이후 외적이 함부로 침입하지 못하게 됐다고 평했다.
`예로부터 전쟁의 승패는 병력의 많고 적음에 달린 것이 아니라 장수의 능력 여하에 좌우되는 것이다. ... 수나라는 천하를 통일해 그 강성한 군사력과 부강한 국력이 전진에 비할 바 아니었는데, 양제는 천하의 군사력을 총동원해 작은 나라(고구려)의 정벌에 나섰다. 고금을 통해 이와 같이 대규모 병력을 동원한 예를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시 고구려로서는 속수무책으로 항복을 애걸하는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을지문덕은 몹시 혼란하고 어지러운 가운데서도 침착하게 계획을 수립하고 기회를 틈타 전력을 다해 적을 공격해 마치 마른 나뭇가지를 분지르고 썩은 나무등걸을 뽑아 제치듯이 적을 궤멸시켜 수양제가 대패하고 돌아가게 함으로써 그를 온 세상의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
문무를 겸전한 뛰어난 재능과 지혜와 용기를 두루 갖춘 자가 아니라면 뉘라서 이런 장한 일을 이룩할 수 있었겠는가. 이후 당 태종의 신묘한 무략으로도 안시성에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요,금, 몽고는 사나운 공격으로도 큰 해를 끼치지 못했다. 금산 금시 무리와 합단 홍건적 군사는 모두 우리나라에서 섬멸되었다.
천하가 후세에 이르기까지 우리 동방을 강국으로 알고 감히 가벼히 침범하지 못했다. 이는 을지문덕이 남긴 공적이 아니겠는가.` 이윤섭, 천하의 중심 고구려, 코리아북케이스, 2004, 157쪽.
3. 정한론 - 대륙으로 가는 다리가 돼라, 풍신수길의 후예들
9천년 역사에 가장 치명적 오류로 남는 두 사건중 하나가 바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다. 특히 임진왜란은 대륙세력이 아닌 해양세력으로부터 거쎈 도전을 받아 민족이 거의 도륙되다 시피한 전쟁으로 전 국토가 황폐화된 몽고의 침입에 이어, 전국토가 유린된 두번째 전란기였다. 이후 이런 전란기는 한국전쟁을 마지막으로 하고 있지만, 임진왜란의 상처는 특히 컸다.
그 까닭은 조선의 국력이 임진왜란을 통하여 급격히 국력을 소모하고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하여 결국 멸망의 길로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며, 이로서 해양세력이 세력과 기술 곧 총칼을 쓰는 공부와 돈모으는 공부를 통해 대륙으로 진출하려는 꿈을 키워주는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주범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정명가도 곧 명을 치러가니 길을 비켜달라는 요구를 통해 조선침략을 정당화 한다. 그후 300년이 채 못되는 시기 다시 1853년 페리제독에 의해 강제로 세계자본주의체제에 편입된 일본은 자국이 당한 방식 그대로 1864년 운요호사건을 일으켜 조선을 강압적인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조약을 강요하게 된다. 이때 일본 지도층사이에서는 정한론 곧 조선을 대륙으로 건너가는데 있어 밟고 가야할 다리로 보았다.
지난 400년의 역사를 놓고 보면, 한민족은 대륙세력과의 싸움은 중원을 차지한 대국의 체제에 편입하여 싸움을 멈추었고, 다른 한편 해양세력과의 싸움을 통해 국력을 소모시킴으로서 활동영역과 범위가 축소당해왔다고 하겠다.
고종황제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은 한민족이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게 만들었고 결국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한번도 타 민족에게 일시적으로는 주도권은 빼앗기었을지언정 나라를 잃은 적이 없었던 한민족에게 가혹한 시련의 시간대를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이 400년의 시간대 속에서 우리를 지켜낸 힘이 있다. 바로 우리의 선조들이 우리의 도덕과 윤리 그리고 문화가 우월함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국난이 일어날때마다 의로서 일어섰다.
그들이 바로 의병이다.
오늘날까지 한국인을 지켜온 힘은 바로 역사속에서 불의한 침략에 맞서 스스로 국가와 민족 그리고 가정과 가족 및 자신을 지켜낸 의병의 힘이 있었기에 위급한 상황에 언제든 함께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이 우리를 지켜왔던 것이다.
4. 한류(韓流) - 오직 가지고 싶은 것은 문화, 백범의 소원
근대의 문을 연것은 일본제국주의로부터 벗어나려는 몸부림으로부터 였다. 그리고 이 근대를 열었을때 어떤 이상을 가지고 새로운 국가를 건설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병행되었다.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중 한 사람인 백범 김구선생은 그의 자서전 『백범일지』를 통해 식민 36년을 겪은 소감과 소회를 이렇게 피력하고 있다.
"내가 내 나라를 잃어 가슴아팠으니 남의 나라를 침범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내가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문화다." 문화의 힘이야 말로 폭력을 굴복시키고, 전쟁을 종식시키며, 인류를 한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힘이 있다는 백범의 말처럼, 우리가 해야할 일은 우리의 문화를 성숙의 차원으로 끌어내 전 세계인류의 복지와 평화에 이바지 한다면 이 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백범의 소원이 오늘날 실현되려는지, 우리는 그 현상들을 목격하고 있다. 곧 일본과 중국, 동남아시아 및 미국와 유럽 각지에 한류열풍이 서서히 불고 있는 것이다.
한류의 시작은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로 부터 시작되었다. 이른바 `욘사마`신드룸을 비롯해서 동양적이고 한국적인 가족정서와 잘생기고 예쁜 연애인들에 힘입어 한류의 물결은 서서히 한국의 문화와 역사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조류와 함께 불고 있는 복병이 바로 중국의 동북공정과, 백두산공정, 한반도공정과 일본의 독도영유권주장과 후소샤 중학교 일본역사교과서왜곡문제이다.
곧 중국와 일본이 일으키고 있는 역사왜곡 그리고 자라나는 세대에게 미치는 역사교과서왜곡의 문제는 누가 동북아시아의 패권을 쥐고, 북한의 붕괴이후 세계에 대비한 영토확장과 영유권주장을 주도하는가에 대한 미래의 문제로 바뀌고 있다.
바야흐로 동북아시아 역사의 주역이 누구인가 극동아시아에서 역사의 주체세력은 누구였는가에 대한 문제로 한판 역사전쟁이 시작되려는 것이다.
결국 한류열풍이 사그라들지 않고 지속되기를 바란다면, 논쟁의 초점 한가운데 를 치고들어가는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동아시아의 역사의 주인이 누구였는가에 대한 문제다. 곧 누가 주인 곧 천자국이었는가에 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역사의 주인에 대한문제가 바로 중국과 일본이 한국에 대해 걸고 있는 시비의 본질인 것이다.
이는 다시 역사를 이끌어가는 주체적 역량을 누가 지니고 있는가 곧 역사를 재해석하고 새로운 문명을 누가 이끌어낼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5. 결문(結文)
지금 우리는 100년전의 상황과 같이 풍전등화의 국난에 처해 있다. 러일전쟁으로 시작되어 러시아가 전쟁에 패하면서 유럽의 군사적 균형이 깨짐으로서 발생했던 제1차세계대전과 중일전쟁을 기점으로 삼국동맹과 삼국연합이 부딪혀 전 세계를 전란으로 이끌었던 제2차세계대전 이후 냉전의 최악의 대립지였던 남북한 한반도의 정세가 100년이 지난 뒤에도 100년전과 같이 열강들 속에서 제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지도자들과 사람들로 역사의 진로가 나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역사는 책임지는 사람을 원한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힘을 대강 살폈다.
우리가 주체적 역량이 있을때, 중국과 일본은 우리가 가졌던 힘, 곧 강대한 수당을 물리쳤던 고구려의 힘을 생각할 것이다. 우리가 외교적 역량이 있을때, 서희가 거란의 80만 대군을 물리친 고려의 외교적 힘을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백범이 소원한대로 한국의 문화를 한류라는 이름으로 널리 전하여 우리의 정서와 우리의 윤리도덕을 전할 수 있었다. 그 한류열풍의 핵심에는 결국 역사와 문화의 주도권 경쟁이 포함되어 있고, 일본의 혐한류와 교과서왜곡과 중국의 동북공정 또한 이러한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제대로된 대응의 방향을 모색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역사에 대해 각인하고, 우리 자신이 역사속에서 가졌던 힘이 우리에게 내재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우리 스스로의 능력과 단결의 힘을 믿어 의심치 않을때 분출된다.
이미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단결된 모습을 전 세계인들에게 보여준바 있다.
새로운 동북아시아 문화를 주도할 주인공 문화, 그것이 그대가 열어야 할 역사의 새로운 장이다.
도기 136년 9월 19일 화요일 늦은 8시 56분 윤 7월 26일
환기 9205년 웅기(신시개천) 5904년 단기 4339년
불기 3032년 유기 2553년 서기 2006년 이슬람력 1385년
참고서적 : 안경전, 개벽실제상황, 대원출판, 2004.
이윤섭, 천하의 중심 고구려, 코리아북케이스, 2004.
성삼제, 고조선 사라진 역사, 동아일보사, 2006.
박창범, 하늘에 새겨진 우리역사, 김영사, 2004.
정재승, 바이칼, 한민족의 시원을 찾아서, 2004.
이학종, 돌에 새긴 희망 미륵을 찾아서,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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