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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 '강펀치' 세계경제 휘청

by 바로요거 2008. 3. 13.

2008년 3월 1일 (토) 03:18   조선일보

인플레 '강펀치' 세계경제 휘청


안 오르는 것이 없고 안 오르는 곳이 없다 서브프라임 때문에 금리를 내리자니… 물가가 오른다. 금리를 올리자니… 경기가 침체된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인플레이션의 영향력을 발견하기가 어려워. 무언가 다른 것이 진행되고 있어." 1995년 앨런 그린스펀(Greenspan)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연준) 의장은 동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경제 예측 전문가인 게리 실링(Shilling) 역시 1998년에 쓴 '디플레이션'이라는 책에서 "1980년대부터 인플레이션율은 계속 하락했으며 현재 인플레이션은 사실상 끝났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지금 세계는 10여 년간 잊고 있었던 인플레이션 공포에 다시 직면하고 있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최근 "미국의 생산성 둔화와 중국산 수입품 가격 상승 등은 저(低)인플레이션 시대가 끝나간다는 증거"라며 "미국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초기 징후를 보이고 있다"라고 말을 바꿨다.

최근 인플레이션은 글로벌한 현상이다. 미국의 경우 지난 1월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기 대비 4.3% 급등해 16년 만의 최고치에 근접했다. 유로지역도 1월 인플레이션이 3.2%에 달해 14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은 1월 소비자물가가 3.9% 뛰어올라 3년4개월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또 중국은 11년, 사우디아라비아는 16년, 스위스는 14년, 싱가포르는 25년 만에 가장 높은 인플레이션을 경험하고 있다.

물론 역사적으로 보면 최근의 인플레이션은 아직 우려할 만한 단계는 아니다. 70년대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조차 두 자릿수 물가가 흔한 일이었고, 저소득 국가에서는 90년대에도 평균 인플레이션율이 50%에 달했다. 그러나 작년 4분기 이후 세계 각국의 소비자 물가 오름세가 눈에 띄게 가파라지고 있어 세계가 다시 인플레이션 시대로 접어드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더욱 무서운 것은 경기 둔화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찾아오고 있다는 점이다. 70년대 이후 처음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의 징조가 엿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 원자재 가격 상승이 소비자 가격에 본격 반영되기 시작

최근 세계적으로 물가 상승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것은, 작년 이후 지속된 유가 등 원자재 가격 상승이 각종 소비자 가격에 본격적으로 전가되는 신호로 풀이되고 있다.

이를테면 이구택 포스코 회장은 원재료인 철광석 가격이 계속 치솟자 오는 4월 철강 판매 가격을 추가 인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포스코를 포함한 아시아·유럽 철강회사들은 이에 앞서 원자재인 철광석 광산 업체인 브라질 발레(Vale)와의 수입 단가 협상에서 가격을 무려 65%나 올려주기로 해 철강업체의 판매 가격 인상은 예상된 수순이었다. 이에 따라 철강을 원료로 하는 자동차나 조선, 건설, 기계 등 후속 물가 인상이 잇따를 전망이다. 조셉 글라우버(Glauber) 미국 농무부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한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많은 기업들이 원자재 가격 상승을 소비자 가격에 전가하지 않고 자체 흡수해 왔지만 이젠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 미묘한 때 찾아온 인플레이션

인플레이션은 아주 미묘한 시점에 찾아왔다. 글로벌 경제는 서브프라임발(發) 경기 침체 우려로 한파(寒波)에 떨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인플레이션이 함께 닥칠 경우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수 있는 여지가 크게 좁아진다는 점에서 위협적이다. 전통적인 인플레이션 대응 수단인 금리 인상 정책을 펴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지금 미 연준(FRB)은 서브프라임발 금융위기가 실물 경제 위축으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잇따라 금리를 떨어뜨리며 시중에 돈을 풀고 있다. 경기 침체 우려가 날로 높아짐에 따라 월가에서는 FRB가 3월에 금리를 추가로 0.5%포인트 인하할 것이란 전망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금융완화 정책은 물가에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FRB의 딜레마가 있다. 한국은행을 비롯, 다른 중앙은행들 역시 비슷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

무디스의 리서치 부문인 이코노미닷컴의 선임 이코노미스트인 매튜 케언즈(Cairns)의 말은 이런 상황을 잘 압축하고 있다. "FRB는 한 가지 문제(경기침체)를 풀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이는 올해 말쯤 인플레이션 압력이라는 새로운 문제의 발단이 될 수 있다."

■ 원자재 수급 불안 꺾일 기미 없어

문제는 글로벌 인플레이션 폭풍의 진앙인 원자재 가격 급등이 전혀 꺾일 기색이 없다는 사실이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고, 백금은 온스당 2000달러를 돌파했다. 커피와 코코아, 차 값도 수년 래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원인이 무엇일까? 수요 측면에서는 중국 인도 등 신흥시장의 거대한 원자재 수요가 있다. 일례로 미국은 1000명당 900명이 자동차를 소유하는 반면, 중국은 1000명 당 9명에 불과하다. 중국인이 계속 자동차를 사들이는 한, 석유 가격은 인상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른바 애그플레이션(agflation·농산물 가격 급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라 불리는 국제 농산품 가격의 앙등 역시 비슷한 원인에 기인한다. 이를테면 지난 2006년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중국인에게 매일 우유 500㎖씩을 마시게 하는 것이 나의 꿈"이라고 밝힌 이후 중국인의 우유와 치즈 소비가 급증, 국내 피자업계가 치즈 파동을 겪는 식이다. 중국은 1985년 1인당 20kg의 육류를 소비했으나, 2006년 50kg으로 급증했다. 또 2001년 이후 세계 육류 소비 증가분의 절반, 석유 소비 증가분의 5분의 2가 중국의 소비에 의한 것이었다.

여기에 글로벌 투기자금의 원자재 투기가 가세한다. 2000년대 들어 글로벌 저금리에 따른 과잉 유동성은 1차로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 버블을 낳은 데 이어 이번에는 원자재를 표적으로 삼고 있다. 농산물을 이용한 대체 에너지 개발 경쟁 역시 농산물 수요 증가를 부추긴다. 원자재 공급 측면에서도 악재가 첩첩산중이다. 예컨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전력 부족 사태로 제련업체들이 문을 닫고 백금 가격이 앙등한다. 또 케냐의 정치 불안으로 국제 차 값이 뛰고, 나이지리아 송유관 사고와 우고 차베스(Chavez)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엑손모빌의 분쟁이 국제 유가 불안을 증폭시킨다.

■ 중국발 글로벌 인플레이션 우려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물가 상승은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또 다른 위협이다. 중국의 물가와 임금이 오르면 공산품 수출가격이 오르고 이를 수입하는 선진국의 수입 물가가 따라 올라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하게 된다. 그러나 중국의 수출 물가 상승이 선진국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LG경제연구원은 미국이 중국으로부터 들여오는 수입품 가격이 일제히 10% 올라도 미국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0.2~0.3% 정도에 그친다고 분석했다. 이보다는 중국의 고성장에 따른 원자재 수요가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더욱 큰 위협이라는 것이다.

■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관건

지금까지의 인플레이션 수치는 70년대의 오일쇼크 당시에 비교할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만일 물가 상승이 지속돼 경제 주체들 사이에 인플레이션 기대심리(일문일답 참조)가 형성될 경우엔 인플레이션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 재생산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70년대와 달리 중앙은행의 인플레이션 방지 노력이 평가를 받으면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많이 수그러들긴 했지만, 소비자에게 밀접한 농산물이나 에너지 가격이 계속 앙등할 경우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형성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미국 클리블랜드 연준이 최근의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측정한 결과, 2004년 5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런던 소재 롬바드스트리트리서치 이코노미스트인 가브리엘 스타인(Stein)은 "과거엔 인플레이션이 생기면 중앙은행이 긴축 정책으로 막을 수 있었던 반면, 지금은 경기 불안이라는 다른 문제가 겹쳐 중앙은행이 긴축 정책을 펴기 어렵다"면서 "이는 결국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높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제학자들은 최근 인플레이션 공포의 근저에는 2000년대 들어 진행된 세계적인 저금리와 이로 인한 유동성 증대가 있다고 지적한다. 강석훈 성신여대 교수는 "경제학적으로 볼 때 시중에 통화가 많이 풀리면 이에 상응하는 생산성 증가가 없는 한 결국은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이지훈 경제부 기자 jh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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