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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이되는 생명말씀/도훈말씀(日月)

기도는 신앙의 기본이요 원(元) 바탕이다!

by 바로요거 2007.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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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상제님 진리는 신도神道문화다. 사람이 집행할 뿐이지, 100퍼센트 신도문화다. 기존 문화권도 신앙이라 할 것 같으면 신명을 섬기는 유신론有神論이다. 신앙은 유물론唯物論이 아니고 신명을 섬기는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 상제님 문화는, 세상 둥글어가는 틀을 운영하는 신명세계, 바로 조화정부를 건설하신 신도문화가 아닌가.

또 지금 천지의 시점이 어떻게 됐냐 할 것 같으면 하추교역기다. “추지기秋之氣는 신神이다” 하신 상제님 말씀처럼 바로 신명이 주체가 되는 때다.

내가 입버릇처럼 노냥 얘기하지만 지나간 세상 봄여름 세상의 주체는 유형인 사람이고, 가을겨을 세상은 신명이 주체가 된다. 언제고 내가 이걸 빼놓고 얘기한 사실이 없다. 또 증산도는 상제님 천지공사를 집행하는 단체니, 증산도 권 내에서는 천지공사에 벗어난 것은 얘기가 되들 않는 것이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상제님 진리는 100퍼센트 신도문화다.

그렇다면 신인이 합일하는 이 때에 신명이 밑자리, 틀, 바탕이 되는 것은 당연하고, 사람은 신명계에서 질정을 한, 바탕을 정한 그것을 다만 집행만 하는 것 뿐이다. 다시 얘기해서 신인神人이 합일해야, 신명과 사람이 같이 합일을 해야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다는 건 두 말 할 나위도 없다.



그렇건만 기도문화에 있어서 상제님 진리를 인사로 집행하는 우리 신도들의 신앙 행태는 아직도 진리에 부합되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

증산도의 기도 문화가 좀 성숙돼 가는 것도 같지만, 아직도 증산도가 발전이 안 되는 것이 왜 그러냐 할 것 같으면, 신도들이 이율배반적인 신앙을 하기 때문이다. 이건 듣기 좋고 그르고 그런 걸 떠나서, 신도 비위맞추기 위해서 거짓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있는 그대로 말하는 수밖에 없다.

지나간 세상에도 사람은 신명에게 매달렸다. 자기 뜻대로 자기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또는 다급한 상황에서 구원받기 위해서,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신명에게 자기 소원성취를 비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인간의 본능이다.

사람의 행동이 어떻게 되어져 있느냐 하면, 아주 극적으로 급하고 어디다 호소할 때, ‘아이구 하나님. 아이구 하나님, 살려주십시오. 아이고 하나님, 구해 주십시오.’ 이렇게 하나님을 찾는다.

‘천지신명이시여, 하나님이시여. 조상님이시여. 구해주십시오.’ ‘그렇게 되여지이다.’ ‘소원성취를 시켜주십시오.’

진리가 되고 안 되고, 진리가 네모 칸이 난 진리든지, 세모진 진리든지, 팔각, 육각된 진리든지, 진리의 형태야 어떻게 됐든지 기도는 신앙의 밑자리요 원 바탕이다.



불가에서도 다 바쳐서 부처에게 빈다. 나무아미타불, 약사여래불, 아미타불. 지장보살, 문수보살, 무슨 보살 무슨 보살, 각계 부처를 찾으며 기도를 한다. 그네들은 부처지상주의니까 그렇게 해서 자기 소원성취를 전부 빈다.

기독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유일신이 됐든지 다신이 됐든지를 떠나서 전부 하나님을 찾는다. 예수가 됐든지, 여호와가 됐든지, 누가 됐든지 어쨌든 신에게 비는 것이다.

묶어서 그게 바로 기도다. 불교도 기도, 서교도 기도.

이슬람교도 한 손에는 코란을 들고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죽어서 마호멧을 좇아간다, 신을 섬긴다, 신에 귀의를 한다 하면서 기도를 한다.

유가와 도가도 역시 비가 안 오면 기우제祈雨祭를 지낸다. 옥황상제님 신단을 올리고 그 앞에 모여서 ‘옥황상제님, 비를 주십시오, 민생을 살려주십시오. 소원성취를 시켜주십시오, 복을 내려주십시오.’ 하고서 기도를 한다.

?

옛날 우리나라 풍속도로 말해도 그렇다. 각 가정에서 가장 정갈하고 깨끗한 데가 장독대다. 간장, 된장 같은 장을 보관하는 장독대.

옛날 우리나라는 농업국가로, 100퍼센트 농사만 짓고 살았다. 곡식에 손을 대지 않으면 동전 한 푼 생길 데가 없다. 가축이나 먹여서 그거 팔면 몇 푼이나 생기겠는가. 딴 부업이라는 게 아무 것도 있들 안 했다. 우리나라가 그렇게 살았다. 고려 때도 그랬고 고구려 때도 그랬고, 삼국시대를 통해서 이씨 조선시대 때도 그랬다.

그렇게 농사만 짓고 사는 사람들이 기도를 올리는데, 집에서 가장 깨끗한 데가 어딘가 하면 바로 장독대다. 거기보다 더 깨끗한 데가 없다.

장독대를 깨끗이 닦고서, 거기다 아주 정갈한 그릇을 올려놓는다. 거기에다 깨끗한 청수를 떠놓고서 아낙네들이 소원을 빈다. ‘우리 아들 병을 고쳐주십시오. 우리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이런 중병이 들었는데 이걸 낫게 해 주십시오. 아들을 못 낳는데 칠성님 아들을 하나 점지해 주십시오. 우리 남편이 죽을병이 들었으니 병을 낫게 해주십시오.’

그 소원성취! 그게 바로 우리나라 전통문화다. 그렇게 해서 그 기도문화가 내려온 것이 여러 천 년이다. 조금도 아니다. 여러 천 년 계계승승해서 이렇게 내려 왔다.



이렇게 인류 역사의 줄거리, 꼬갱이가 기도다. 기도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없다. 세계 역사의 밑바탕이 기도다. 또한 종교의 밑자리가 바로 기도다.

청수 모시고 기도하고 주문 읽는 것은 신앙의 기본이요 원 바탕이다!

-道紀 135(2005)年 9月 5日 종의회시 내려주신 도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