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타운 개발이 낳은 "유전유家 무전무家" |
이낙연 의원, 서울개발현장취재 보고서 발표 화제 |
개발지 세입자들 “갈 곳 없다” 발만 동동 [시민일보]대통합민주신당 이낙연 의원이 17일 <개발의 그늘>이라는 제목의 서울 개발지역 현장취재보고서를 발표해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개발에 밀려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현장 취재보고서를 냈다”고 밝혔다. 그는 보고서를 발간하게 된 배경에 대해 “많은 아파트가 지어지기 전에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어쩌면 우리가 잘 알고 있을 수도 있고,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수도 있는 많은 사람들의 형편이 궁금했다”며 “우리의 현장취재는 바로 그런 궁금증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보고서에서 뉴타운식 개발로 인해 밀려난 원주민들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뉴타운은 거대한 빈곤층 청소”= 서울시가 추진 중인 뉴타운 사업은 정비사업을 좀 더 광역적으로 시행함으로써 도시기반시설 개선과 주택공급 확대를 꾀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제까지 3차에 걸쳐 25개 지역이 뉴타운으로 지정됐다. 2002년 시범뉴타운으로 지정돼 개발이 한창인 길음, 왕십리, 은평 지역은 상전벽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엄청난 변화의 물살을 타고 있다. 그 뒤를 이어 지정된 나머지 뉴타운을 포함해 서울시내 뉴타운 대상지역의 면적은 총 2232만㎡에 달한다. 신도시 가운데 가장 넓다는 동탄 2기신도시의 2180만㎡보다도 넓은 면적이다. 그렇다면 뉴타운 사업은 과연 그곳에 살던 세입자들에게도 축복이며 혜택일까? 은평뉴타운의 경우는 종전의 개발방식보다 진일보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린벨트가 해제된 상태에서 보상가격이 평가돼 원주민이 좀더 많은 보상금을 받을 수 있고, 원주민에게 일반분양분보다 저렴한 가격의 아파트를 공급하며, 전체 물량의 약 40%를 임대아파트로 공급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타운 역시 가난한 세입자들에게는 그림의 떡,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서울 은평구 진관외동 천병용씨(가명·42)의 경우가 그 사실을 뒷받침한다. 그는 은평뉴타운 주민대책위원회 활동을 한 경력이 있다. “뉴타운은 한마디로 가진 자만의 잔치입니다. 가옥주들은 보상도 받고 아파트도 생기니 더 없이 좋지만, 세입자들은 다른데 가서 살라는 말 밖에는 안 되니까요. 구청장이라는 사람이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세입자들한테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 한다’고 말했을 정도니 알만 하지 않습니까.” “뉴타운 지역에 살던 세입자 대부분은 보증금 기백만 원에 10~20만 원 월세 살던 사람들입니다. (지역을 떠나지 않고) 주변에서 살아보려고 애쓰던 세입자들도 꽤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안 남았어요. 뉴타운 바람에 불광동, 연신내는 물론이고 원당, 벽제까지 집값이며 월세까지 엄청나게 올라버렸지요. 일부 남아있는 진관외동 산동네를 제외하고 그 분들이 들어가 살 집들이 사라져버린 겁니다. 그렇게 쫓겨나듯 떠난 세입자들이 나중에 뉴타운에 어떻게 들어올 수 있겠습니까. 나중에 보면 알겠지만 은평뉴타운 임대아파트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웬만큼 능력이 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낙연 의원은 “의욕을 갖고 뉴타운 사업을 추진하는 서울시 관계자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이것이 뉴타운 사업의 어두운 뒷모습”이라고 지적했다. ◇멀쩡한 집 허무는 그들만의 개발=개발사업은 기본적으로 기반시설이 열악하고 노후, 불량 건축물이 밀집한 지역의 주거환경 개선이 목적이다. 그러나 현재 각 지역에서 추진되는 개발사업이 이러한 기본 요건을 충족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따른다. 장위뉴타운이 추진되고 있는 성북구 장위동 일대에는 우리가 확인한 바로도 지은 지 10년 안팎의 다세대, 다가구 주택이 상당히 많다. 이런 멀쩡한 집들을 왜 허물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더구나 서민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사는 다가구 주택을 허물고 타운하우스나 고급 빌라촌을 짓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개발이냐고 그들은 묻는다. 장위동 이정란씨는 “반지하 월세방이지만 남편 직장이 멀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회의 도움도 많이 받고 있는데 이 곳이 개발되면 마땅히 옮길 곳을 찾기가 어렵다”며 “나라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실제로 해주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장위뉴타운과 관련해 서울 성북주거복지센터에서는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하고 있었다. 첫째는 존치구역(재정비촉진구역으로 지정할 수 없거나 기간경과, 여건변화에 따라 나중에 촉진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는 지역)이 지난해 주민설명회에서는 전체의 40%에 가까웠는데, 불과 몇 달 사이에 10% 이내로 대폭 줄었다는 점이다. 둘째는 장위뉴타운의 사업추진방식이 순환정비 방식이 아닌 전면개발 방식이라는 점이다. 가이주단지나 임시거주대책이 수립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개발은 결국 세입자들을 몰아낼 뿐이라는 것이다. 셋째는 장위뉴타운 지역 2만7000여 세대 가운데 약 80%를 차지하는 세입자들을 위한 매입임대주택, 전세임대주택 등 임대주택 공급을 늘릴 방안이 없다는 점이다. 성북주거복지센터 남철관 사무국장은 “주민들, 특히 대다수를 차지하는 세입자들이 원하지 않는 뉴타운 개발이 무슨 소용인가. 대책을 마련할 수 없다면 주민들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해 장위뉴타운 계획은 전면적으로 재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닐하우스촌 사람들=비닐하우스촌은 불법 무허가 주거지를 통칭하는 의미로 사용되지만, 정확한 용어는 아니다. 서울시내 비닐하우스 밀집지역으로는 서초구, 강남구, 송파구 등 모두 9개구에 3800여 세대, 700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그중 서초구 우면동 뚝방마을과 강남구 양재동의 잔디마을을 찾아가 봤다. 이들 지역은 소위 신(新)발생 무허가 건축물 밀집지역이다. 우면동 뚝방마을은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으로 재개발지역에서 밀려난 이주민들이 형성한 마을이다. 이 곳은 2005년 우면2 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되면서 주민들과 서울시 측이 보상과 이주대책 문제로 첨예한 대립을 보여온 지역이다. 뚝방마을 주민대책위원회 김순례 위원장은 “이 곳에 들어온 지 27~28년이 됐는데 여기에다 임대아파트를 짓는다면서 우리더러 무허가니까 퇴거하라고 한다”며 “20년을 넘게 살던 주민들을 내쫓고 임대아파트를 지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소리쳤다. 서초구 일대의 비닐하우스촌 주민들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천주교 빈민사목위원회 ‘서초평화의 집’ 박순석 선교사는 뚝방마을을 비롯한 비닐하우스촌의 최대 현안은 주민등록 등재 문제라고 말한다. 지난 2004년 대통령 직속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의 ‘빈곤층 집단거주지역 지원대책’에 따라 행정자치부는 ‘빈곤층 집단거주지역 주민등록 전입관련 지침’을 시달했다. 이 지침에서 행정자치부는 거주주민이 전입을 희망하면 적극적인 전입조치를 취하라고 지방자치단체들에 지시한 바 있다. 그러나 경기도 과천시와 서울 서초구, 강남구 등의 무허가 비닐하우스촌 주민들의 주민등록 등재는 아직까지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이들 지방자치단체는 비닐하우스촌 주민들이 토지를 당초 이용목적과 달리 불법으로 점유하고 있고, 불법 무허가 지역에서는 지방자치단체가 지방자치법상의 제반 행정이념을 실천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로 전입신고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 ◇임대아파트 주민의 애환=임대아파트는 저소득 서민들에게 쾌적한 주거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실제로 우리가 만난 많은 서민들도 임대아파트가 생활의 편의라는 측면에서는 다른 주거형태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사실만 제외하면 임대아파트에서 살 이유가 그리 많지 않다고 말하는 서민들 역시 적지 않았다. 못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반지하방이라도 섞여 사는 것이 훨씬 낫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서울 성동구 금호동 대우임대아파트에 사는 박영자씨(가명·55)는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지원하는 단지내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 박씨는 형편이 어려워져 임대아파트에서조차 쫓겨나는 사람들을 보는 일이 가장 안타깝다고 말했다. 자신도 철거민이었던 성동종합사회복지관 김종수 주임은 “임대아파트에서 쫓겨난 사람들을 많이 봤는데, 정부나 서울시가 그런 사람들에게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다”며 대책을 촉구했다. 임대아파트, 특히 공공임대아파트 입주민 가운데 상당수는 일정한 수입이 없거나 경제활동을 하더라도 비정규직 또는 일용직인 경우가 많다. 정부의 보조를 받는 계층과 달리, 실제 생활에서 그들과 큰 차이가 없으면서도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하는 나머지 세입자들은 사각지대로 남아있다. 이들에게 월 10~20만원의 임대료, 7~10만원의 관리비, 각종 공과금까지 더해지면 사실상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된다. 사각지대에 놓인 임대아파트 세입자들의 이 같은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임대계약을 전세로 전환하는데 필요한 전세보증금을 대출해주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국민주택기금으로 지원하는 연리 4.5%의 근로자 서민 전세자금대출 제도가 그것이다. 이 대출은 원래 연소득 3000만원 이하의 무주택 세대주 등 자격을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받을 수 있다. 그런 이유로 많은 임대아파트 세입자들이 이 대출을 이용했다고 한다. 그런데 대출 과정에서 우리는 한 가지 불합리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신도 이 대출을 이용한 성동종합사회복지관 김종수 주임은 “SH공사가 주민들한테 많이 권유해서 우리은행으로부터 1800만원을 대출받았다. 기존 보증금을 합해서 임대계약을 전세로 전환하고 몇 십만 원 남은 돈으로 도배도 했다”고 비난했다. 실제 한국주택금융공사는 근로자 서민 전세자금을 대출해주면서 영세민에게는 0.5%, 일반인에게는 0.7%의 보증수수료를 받고 있었다. 2년마다 계약을 갱신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임대아파트 관리도 효율이 먼저?=서울시는 올해 7월부터 임대아파트 통합관리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시스템에 따라 서울시내 156개 임대아파트 단지마다 설치돼 있는 관리사무소를 묶어 8개의 권역별 통합관리센터에서 관리하도록 할 계획이다. 주택관리의 집약화 및 전문화를 도모하고 민간관리업체의 전문관리기법을 활용해 입주민이 부담하는 관리비를 줄이고, 보다 나은 주택관리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것이 서울시가 밝힌 통합관리센터 설치의 배경이다. 그러나 임대아파트 주민들은 서울시의 통합관리센터 구축계획에 커다란 우려를 갖고 있었다. 임대아파트의 특성상 관리의 효율성만 따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주민들의 입장이다. 주민들의 관리비 부담을 절감할 수 있다는 서울시의 설명과는 달리 비용부담이 오히려 더 늘어날 것이라며 주민들은 반대한다. 그 동안 쌓인 주민들의 불신도 적지 않았다. 관악주민연대 이명애 사무국장은 “지금까지는 SH공사가 직접 고용한 관리사무소장, 직원들이 아파트를 관리했지만 센터로 전환되면 대부분의 일을 민간업체가 하게 된다. 앞으로는 SH공사의 통합관리센터에서 최소 인원만 가지고 일을 할 것”이라며 “단지 관리를 위해 인원이 더 필요하면 주민들이 고용하라는 거나 다름없는데 이것부터가 주민들 부담이 된다”고 우려했다. ◇공무원들도 개발사업의 문제점 지적=한 공무원은 “개발을 통해 지역의 정주여건이 개선되고 세수도 확대됨으로써 타 지역보다 살기 좋은 지역이 되면 좋은 것 아니냐”고 말했으나 또 다른 공무원은 “서민들의 삶이 개발로 더욱 피폐해지는 것을 잘 알지만, 그들을 돕자면 재정을 투입하는 방법 밖에 없는데 자신들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다”며 무력감을 토로했다. 모 공무원은 “원주민의 이주가 늘어나는 원인 중 가장 큰 것은 경제적 이유”라면서 “낮은 권리가격(보상기준이 되는 원주민 보유 건축물의 가격)에 비해 더 많은 자금을 부담해야 하거나, 중도금을 미납해 발생하는 이자를 감당하기 힘들어 이주가 발생하므로 이를 보완할 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중도금 대출의 확대, 모기지 형태의 중도금 대출 상품 개발, 재산평가를 사업 후의 가치인 분양평형을 기준으로 적용함으로써 대출기준을 완화하는 길, 즉 대출가능금액을 늘려주는 것을 모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모 공무원은 “구역지정 이전 시점부터 주택을 소유하고 거주하던 조합원에게는 비용부담을 완화해주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시민일보/이영란 기자 joy@siminilbo.co.kr 시민일보 바로가기 http://www.siminilbo.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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