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꼭 알아야 할 유용하고 세상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차원 높은 정보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본 블로그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을 잘 간파하셔서 끊임없이
한민족 역사문화/한민족의 역사문화

삼국은 중국 대륙에 존재했다!?

by 바로요거 2007. 10. 13.

 

TV 책을 말하다 - 삼국시대 천문기록을 통한 고구려,백제,신라의 영역

 

중국대륙의 삼국(인용글- 편집)

박창범은 1994년에 한(韓)민족의 사서에서 '삼국시대 천문현상 기록'을 이용해서 삼국의 위치를 연구한 내용입니다.
 

고려시대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삼국시대에 일어난 일식(日蝕)이 67회, 행성(行星)운동의 이상현상이 40회, 혜성(彗星)의 출현이 63회, 유성(流星)과 운석(隕石)의 낙하가 42회, 기타 14회 등 총 226회의 천체현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문현상에 대한 한(韓)민족의 기록들은 국내외 학자들에 의하여 연구되어 왔는데 이 천문기록은 과학적 또는 과학사적인 가치뿐 아니라 고대 역사학에도 응용가치가 있습니다.
 

이유는 천체기록을 당시 주변국가들의 기록과 비교함으로써 과학 문물의 흐름을 알 수 있고 또한 특정 국가가 남긴 천체기록을 분석하여 정세변화와 강역의 위치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천문현상 기록뿐만 아니라, 지진(地震), 홍수(洪水), 해충(颱風)의 기상학적, 지질학적 기록도 마찬가지인데 이렇게 자연현상 기록은 다양한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이 기록들을 이용하여 논하고자 하는 것은 한(韓)민족 고대삼국의 정확한 위치를 추적하는 것이고 천체 기록으로부터 관측을 수행한 나라의 위치를 알아볼 수 있는데 이유는 일식과 같은 현상의 경우 달 그림자가 지구상의 모든곳에 드리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부지역에서만 식(蝕)의 진행을 볼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서 다년간에 한 장소에서 일어나 일식들을 잘 볼 수 있는 것은 관측자의 위치(국가의 위치)입니다.
 

일식을 이용한 삼국의 위치 고증의 방법

첫번째는 국가가 기록한 일식을 천체역학적으로 계산해서 실제 일식들의 진행상황을 동아시아 전역에서 조사하여 그 일식들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최적 관측지를 찾는 방법이다.





도표-01 삼국의 일식현상의 등고선

고구려(왼쪽 상) 백제(왼쪽 하) 가야(오른쪽 상-216년 이전) 신라(오른쪽 하-787년 이후)
 

삼국의 일식현상에 대한 등고선으로 최적 관측지의 중심축지역을 볼 수 있는데 고구려(왼쪽 위) 백제(왼쪽 아래) 가야(오른쪽; 216년 이전) 신라(오른쪽 아래; 787년 이후)
 

신라(24회)와 백제(19회) 그리고 고구려(8회)에 기록된 일식으로 동아시아에서 관측할 수 있는 일식들을 보여주는 것으로 윤곽선 안쪽 지역으로 갈수록 평균 식분이 크며 이것은 곧 그 기록을 남긴 국가의 위치를 증명한다.
 

삼국의 일식을 잘 관측할 수 있는 곳이 모두 한반도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 고구려의 경우에는 일식 횟수가 적어서 최적 관측지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백제나 신라의 경우보다 북쪽에 치우쳐 있음을 알 수 있다.
 

백제와 신라의 경우에는 최적 관측지가 확실히 보이며 각국의 관측자가 발해만과 양자강 유역에 각각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로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는 김수로왕의 가야
 

두번째는 각국가의 일식현상을 볼 수 없는 지역을 제거해 나가는 것으로 국가가 기록한 일식을 모두 볼 수 있는 지역을 바로 그 국가의 위치로 생각하는 것이다.





도표에서 점 부분은 이런 지역이고 바깥으로 갈수록 일식기록이 있어도 볼 수 없는 지역인데 분명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백제와 신라의 경우는 최적 관측지와 일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백제가 대륙의 동부에 있었다는 생각은 일부 사학자들에게서 제기되고 있으며 도표에서 같이 연구의 결과는 그들의 주장과 상당히 일치하고 천체 관측만을 이용한 연구내용으로 본다면 기존 역사관과 달리 백제의 위치가 대륙에 있습니다.
 

그리고 신라의 경우 관측자가 경주에 있다면 동아시아에서 관측 가능한 24개 일식 중 2개를 전혀 볼 수 없는데 <삼국사기>에서 신라의 천문기록은 가야의 초기기록으로 김수로왕의 후손인 김유신이 신라에 편입시킨 것입니다.   

일부 사학자와 일본학자들은 <삼국사기>의 일식기록이 중국기록을 차용한 것이라고 하면서 현재에도 인정을 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유- 일본이 먼저 일식기록을 검증한 결과가 6~7세기 이전에는 대륙에 있던 것이 확인됨
그러자 <삼국사기>는 중국의 기록을 차용했다고 주장함
 
하지만 일본학자의 주장은 신빙성이 없는데 그 이유는 <삼국사기>의 일식기록이 중국사서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고 없습니다. 

이렇게 박창범에 의해서 <삼국사기>의 기록은 한(韓)민족의 독자 관측기록임이 증명되었고 동아시아 전역의 일식을 세세히 연구한 책도 발간했습니다.

글편집 : 자료로본 한국 고대사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