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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역사문화/한민족의 역사문화

고구려, 백제, 부여의 국명에 대하여

by 바로요거 2007. 10. 12.
<고구려(高句麗)는 음이 '고구리'이고 백제(百濟)는 음이 '맥제'이어야 한다 >


- 국명을 바로 발음하자 -


㉮ 고구리의 이름을 사서에서는 고구려, 고구려, 구려, 구려, 고려, 고려, 고리, 고리, 하구려, 맥

이, 구여, 구루(高句麗, 高句驪, 句麗, 句驪,高麗, 高驪, 藁離,  離, 下句驪, 貊耳, 句餘 溝 )등으

로 기록하고 있다.

왜 하나의 국가 명칭이 이렇게 많을까 ?

이것은 소리를 중요시한 때문이다.

현재 우리는 훈민정음이 선포된 이후의 세대인데 고구리를 고구려로 읽는다.

그러나 옥편에서도 나라 이름으로 발음 할때는 고구리로 읽어야 한다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음

에도 왜 고구려, 고려 로 발음하고 있는것일까 ?

고구리는 구리와 朝鮮(조선맥)의 전통을 이은 대국가 였으니 마땅히 본래의 발음으로 불러야 옳은 것이다.


한족들은 고구리를 부르는데

삼국지에는 고구려, 구려, 하구려, 고리, 맥인, 소수맥 고구려즉고리합음(高句麗, 句麗, 下句驪,

 離,貊人,小水貊 高句驪卽 離合音)으로

후한서에는 고구려, 구려일명맥이(高句麗, 句麗一名貊耳)

위서에는 고구려, 고려(高句麗, 高麗)

송서에서 고구려, 고려(高句驪, 高驪)

남제서에는 고려(高麗)

양서에는 고구려, 구려, 하구려, 고려(高句驪, 句驪, 下句驪, 高驪)

구당서, 신당서에는 고려(高麗)
삼국지에서 남사까지는 고구리가 건재했을 때의 기록이고 신, 구당서는 패망후의 기록이다.

특징을 살펴보면 려자(麗字)에 마(馬)변이 있는것과 없는것

고구려(高句麗)와 고구려(高句驪), 고려(高麗)와 고려(高驪), 구려(句麗)와 구려(句驪)

구자(句字)가 빠진 것 고려(高麗)와 고려(高驪) (음은 고리)


고자(高字)가 빠진 것 구려(句麗)와 구려(句驪) (음은 구리)

고(高)자 대신 하(下)자를 쓴 것 하구려(下句麗)와 하구려(下句驪) (음은 하구리)

전혀 다른 맥(貊)자가 들어간 것 소수맥, 맥인, 맥이(小水貊, 貊人, 貊耳)

이렇게 여러가지로 부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

물론 현재의 대한민국을 줄여서 한국(韓國)또는 대한(大韓)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전혀 다른 발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고구려(高句麗)의 원음(原音)을 무엇으로 했을까 ?

양서(梁書)
高句驪者其先出自東明, 東明本北夷 離王之子, 離王出行

(고구려자기선출자동명, 동명본북이고리왕之子, 이왕출행)

'고구리는 동명으로부터 시작되는데 동명은 본래 북이(北夷)의 고리왕의 아들인데 고구리왕이 출행하였다. '는 뜻이다.

분명히 이곳에서 고리왕은 高黎(고리) 또는 高麗(고리) 또는 高驪(고리)의 동음이자화이다.

또 이왕(離王)은 고려(高黎)에서 리(黎)를 고려(高麗)에서 려(麗)를 고려(高驪)에서 려(驪)를 즉,

리(黎) 또는 려(麗) 또는 려(驪)를 동음이자화(同音異字化)하여 이(離)로 발음했을 것이다.

고구리는 해모수께서 BC239년에 건국하였는데 후인이 기록할 때 부려(夫黎)를 부여(夫餘)로 고

리(高黎)를 고리( 離)로 기록했던 것은 아닐까 ?

지금 고구리의 후예로써 반도의 코리아 구요동(舊遼東)의 북쪽의 하수(河水)이남의 고구려 후예

로서 리(黎)가 있는데 모두 음이 리로 되어 있다.

사서에서 고리( 離)가 있으므로 高句麗와 高句驪는 '고구리', 高麗와 高驪는 '고리', 句麗와 句驪는 '구리'로 발음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역사의 맥과 사서와 옥편에서 보듯 려(麗)와 려(驪)와 리(黎)는 '리'로 발음함이 옳다고 본다.

참고로 옥편의 기록을 보면

黎는 今半島音 '려'이고 중국음 '�'이고

麗는 今半島音 '려'와 '리'이고 중국음은 '�'이고

驪는 今半島音 '려'와 '리'이고 중국음은 '�'이다.

離는 今半島音 '리'이고 중국음 '�'이다.

이와 같은데 Mongolia Korea(Kolia) Li로 발음하고 있으니 Li로 발음함이 좋를 것이라 생각된다.

고구리는 구려일명맥이(句驪一名貊耳)로 기록하고 있는데 구려(句驪)는 치우천자(蚩尤天子)때

국호 구리(九黎)의 전통을 이은 이름이고 맥이(貊耳)는 맥이(貊夷)의 동음이자인데 조선을 예맥

조선(穢貊朝鮮) 또는 줄여서 맥(貊)으로 불렀다.

결국 고구리는 구리(九黎)와 조선(朝鮮)의 맥을 이어간다는 뜻의 국호였다.

그런데 구리는 치우천자때의 국호인데 처음으로 투구와 갑옷을 만들어 입고서 대륙을 뒤흔들었

다. 그래서 동두철액(銅頭鐵額)이라 기록하고 있는데 구리와 철을 사용했다는 뜻이 아닌가 ?

구리(九黎)는 구리(銅)을 사용하기 시작한 우리 민족의 최초의 국호였다.

이것은 비약적인 글이 되었지만 黎와 麗와 驪는 '리'로 발음함이 옳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 부여(夫餘)는 부리(夫黎)에서 유래되었는데 부리(夫黎) 또는 고리( 離)로 불렀다.

부여(夫餘)는 삼국지와 후한서에 항목으로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부여는 주몽(朱蒙)에서 대무신왕(大武神王)사이에 고구리에 병합되었다.

부여는 부리(夫黎)를 '부여'로 발음했을 때의기록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오랜 국명이 아니다.

BC239년에서 BC37년까지 고구리의 국명은 양서의 고리( 離)로, 삼국지에서 부여로 하고 있는

데 夫餘(夫黎)나 高黎는 '黎에서 제일 상좌'라는 뜻이니 그음을 따서 같은 글자면 같이 쓰여졌다

고 볼수 있다.

최초의 고구리의 국호는 高黎또는 夫黎로 쓰여졌다고 볼 수 있으며 이는 고구리가 신,구당서에

서 고려(高麗)로 표기함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부여(夫餘)는 부리(夫黎)의 다른표기이며 고리(高黎)와 같은 뜻이었다.


㉰ 高句麗의 국호제정과 그 뜻


고구리국호를 제정한 근본 사상은 무엇인가?

고구리는 BC239년부터 AD668년까지 있던 나라의 이름이다.

高句麗는 고조선(古朝鮮) 말기에 한족의 정(政)이 진(秦)을 건국하여 요(遼)의 서쪽을 통합하고

있을때 장성(長城) 북쪽에서는 해모수가 고구리를 건국하였는데

黎(�)族에서 아버지와 같다는 뜻에서 부리(夫黎)라고 하였고 또 최고라는 뜻에서 고리

(高黎)로하고 高麗(고리) 또는 高句麗(고구리)로 불렀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또 요(遼)의 동쪽에는 기비(箕丕)가 마한(馬韓)의 자리에서 마한, 변한의 지역을 다스리고 있었

고 또 반도와 만주에는 낙랑국의 최숭이 다스리고 있었다.

이렇게 하다가 주몽(朱蒙)이 남하하여 장성지북(長城之北 : 4세기이전)에 高句麗(고구리)를 재

건하였고 태조대왕때 까지 민족재통합(民族再統合)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鄒牟王(주몽)은 왜 국호를 고구리로 고쳤는가?

이것은 구려일명맥이(句麗一名貊耳)가 의문을 풀어준다.

句麗 또는 句驪는 우리민족 고조선 이전 치우천자때 국호 九黎(구리)의 맥을 이어간다는 뜻이었다.
九黎(구리)는 黎(리)로 약하여 부르기도 하는데 '리'는 좁은 의미와 넓은 의미 두가지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리의 전체를 구(九)로 보아서

(一曰 江水이남, 二曰 江淮問, 三曰 河淮, 四曰 遼東, 五曰 長城北, 六曰 西長城(秦長城北)北, 七

曰 北滿州, 八曰 南滿州, 九曰 海東(한국))

구리(九黎)로 불러 전체를 나타내는데 九黎(구리)후예로 최고라는 뜻에서 高句麗(고구리)라 하

였고 동음이자화하여 高句麗(고구리) 또는 高句驪(고구리)로 불렀던 것이다.

또 맥이(貊耳)는 동음이자인 맥이(貊夷)이며 맥인(貊人)으로 이는 고조선을 뜻한다.

후한서 권1에서 貊音陌(맥음맥)(貊을 맥으로 발음하였다. )

사기 권43에서  音陌(맥음맥)( 貊을 '맥'으로 발음하는데 현재는  (학)이다.)

사기 권 110에서  卽濊(맥즉예)( 은 바로 濊이다)

창해지군(滄海之郡)에서 동일명칭을 예(濊 : 후한서), 예(  : 한서), 예맥조선(穢貊朝鮮 : 한서),

조선(朝鮮)으로 표기했는데 조선(朝鮮)이나 예(濊)는 같은 의미로 쓰였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위의 법칙에서

조선→예→맥→맥--맥→백(朝鮮→濊→ →貊--陌→百)으로 변경 시킬 수 있다.

맥인(貊人)은 맥이(貊夷)로 다시 맥이(貊耳)로 변경시켰는데 구려일명맥이(句驪一名貊耳)는 고

구리가 조선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결국 高句麗(고구리)는 줄여서 句麗(구리)로 부를 수도 있고 高麗(고리)로 부를 수도 있다.

조선 시대까지도 ‘麗’를 ‘리’로 읽다가 일제 시대에 들어와 ‘려’로 읽기 시작한 것을 아직도 고치

지 못하고 그대로 ‘려’로 읽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