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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법칙*생존법/우주1년에 답이있다

쉽게 배우는 우주변화원리 머릿말과 서론

by 바로요거 2007. 10. 7.

 

[쉽게 배우는 우주변화원리-1] 머리말

 

지금부터 한동석 선생님의 우주변화원리를 통해 증산도의 우주관을 논리적이고 철학적인 접근을 시도할까 합니다.

증산도에 처음 입문해서 공부하고자 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전해드리는 만큼 최대한 쉽고 간단하게 핵심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울러 모든 공부에는 스스로 책을 보아야 그 효과가 큽니다. 그러니 책을 보면서 쉽게 배우는 우주변화원리를 공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왜 증산도진리를 자연법칙이라 부르는지 지금부터 공부해 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책을 소개하면서 저자의 뜻을 기리기 위해서 머릿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머리말>

  오늘날 세계의 관심은 우주는 어떻게 움직이며 인간과 만물은 어떻게 그 속에서 변화(變化)하면서 생멸(生滅)하는가 하는 문제에 집중하기 시작하고 있다. 이것은 물론 인간이 자기의 권위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피할 수 없는 임무이며 또는 책임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오히려 인간이 자기의 탐구욕 불만을 충족시키려는 신비(神秘)에 대한 선전포고인 것이다.

  생각컨대 오늘의 철학은 우주의 본체와 변화를 탐색하는 바탕인 본질적인 능력을 거의 상실하고 다만 피상적(皮相的)인 개념에만 집착한 나머지 철학 본연의 자세인 신비개발(神秘開發)의 임무를 단념할 수밖에 없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인간의 의욕은 정신이나 생명의 생멸(生滅)과 같은 막중한 명제를 신비의 창고 속에 넣어두고 좌시(坐視)만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일어난 인간의 반발이 드디어 신비에 대한 도전의욕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그 의욕이 바로 신비개발의 완수는 아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탐구욕은 드디어 신비개발의 수단이며 방법인 우주운행의 법칙을 발견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음양오행(陰陽五行)의 법칙이다.

  음양오행의 운동법칙이란 우주의 변화법칙(變化法則)이며, 만물의 생사법칙(生死法則)이며, 정신의 생성법칙(生成法則)이므로 우주의 모든 변화가 이 법칙 밖에서 일어날 수는 없다. 그러므로 필자는 이 법칙의 원리를 우주변화(宇宙變化)의 원리라고 명명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느 개인의 창작이 아니고 역대(歷代) 성철(聖哲,東洋)들의 합심협작(合心協作)의 결정인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 진리가 있으니 이것은 상대적(相對的) 진리가 아니고 절대적(絶對的) 진리이다. 그러므로 본고는 이와 같은 진리인 우주변화의 원리를 소개함으로써 동양사상의 진면목을 과시하려는 것이다. 그런즉 다만 소론(所論) 중에 졸렬(拙劣)한 점이 있다면 이것은 필자의 미급(未及)인 것뿐이고, 사상 본연의 결함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우주변화원리-2] 서론

 

오늘은 쉽게 배우는 우주변화원리 두 번째 시간으로 교재 12~19쪽의 서론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주변화원리란 문자 그대로 우주가 변화해 가는 법칙을 말합니다. 낮이 지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가 일상에서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무심코 지나가는 모든 현상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을 제시해 주는 것입니다. 나아가 지구와 일월은 아무런 사심도 없이 다만 돌기 위하여 돌아가는데 왜 인간은 사리사욕의 함정에서 헤매고 있는지, 그 신비의 장막을 벗겨내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속적인 인간이 자기의 지능으로써 현상계의 모든 존재를 인식한다는 것은 경험적인 오성작용(悟性作用)의 구사에 불과한 것이므로 이것으로는 물질계의 현상은 영사(映寫)할 수는 일을는지 모르지만 진정한 실상을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때문에 복희와 문왕같은 성철을 기다려 바로 포착해서 유형의 그림을 남기게 했으니 이것이 바로 하도낙서와 복희괘도와 문황괘도로 옮겨져서 비로소 문자화하게 된 상수원리(象數原理)의 창조입니다.

 

그러나 이와같은 기본법칙의 구비는 우주의 상을 찾기 위한 설계에 불과하며 실제로 우주의 상을 찾으려면 그 설계에 의하여서 가장 찾기 쉬운 대상을 먼저 선택하여야 합니다. 즉 대우주의 상과 소우주의 상이 다르지 않기 때문에 우주에서 직접 찾는 것보다는 오히려 인체에서 찾는 것이 빠르고 용이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자는 근취저신 원취저물(近取猪身 遠取猪物)이라 하여 설파한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칠정육욕에 사로잡혀서 자연법칙에 순종하는데 인색합니다. 무정한 초목은 오히려 인색하지 않는데 유정한 인간이 오히려 인색한 것은 왜일까요? 이 문제를 풀어내고 그 오점을 시정하는 것이 바로 신비의 문을 여는 방법이라고 한동석 선생은 말하고 있습니다. 즉 아무리 자연법칙에 정통하고 근취저신하는 방법을 안다해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도문(道門)을 열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를 알게 된 인간은 불교가 말하는 바의 법신(法身)으로 화(化)하여 순수이성의 경지에 이르게 되어 明을 통일하여 삼라만상의 변화를 비로소 환히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지구 위에서 만물이 움직이게 되고 인간이 역사를 창조하기 시작한 이후 희세의 성인들이나 역대의 철인들은 모두 이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나 문고리를 잡은 이는 진실로 드물었으니, 바로 이것이 석가의 극락(極樂)의 문이요, 공자의 시중(時中)의 문이요, 예수의 십자가의 길이며, 일부의 十十一一之空의 문인 것입니다. 한동석 선생은 이것들이 모두 이명동질(異名同質)의 문에 불과한 것이며, 극락[空]에서 찾아도 좋고 시중에서 찾아도 좋고 십자가에서 찾아도 좋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극락이나 시중의 문이 어디 있는지 모르며 십자가의 길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수천년을 방황해 온 것입니다. 따라서 한동석 선생은 우주변화원리를 공부하는 목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결론맺고 있습니다.

 

"여기서 변화원리를 논하려는 것은 상수의 법칙으로서 인물의 상을 파악하는 것을 1차적인 목적으로 하는 것이나, 만일 지고한 明의 단계에까지 이르려면 신명(神明)을 정화(淨化)하여 무극(無極)과 空의 진경(眞境)에까지 이르러야 하는 것이다."

 

요컨데 유불선 모든 종교에서 부르짖어 온 신비의 문은 각 문화권마다 언어가 달랐을 뿐 동일한 세계이며, 인간은 욕심때문에 그 세계로 들어서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아가 동방에서는 천수상하여 받은 하도낙서를 기반으로 음양오행 원리를 밝혀내며 소우주인 인간을 통해 우주가 변화해 가는 법칙을 탐구하였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