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순서대호 읽으실것)
( 14 에서 계속 )
***15. 신지녹도전자, 하나 둘 셋 ...열, 천부경 풀이 (홍익인간을 말하는 열의 뜻풀이2.)
** 이번에는 기독교 성경 창세기를 이용하여 내가 생긴 원인을 알아 보자.
기독교 성경도 이 수행방법은 천부경과 다르지만 사람이 만들어진 원인은 같다.
창세기 일장 첫번째 '빛이 있어라 하시매 빛이 있었다.
그런데 태양은 그 3일 후에야 만들어 진다.
그렇다면 태양도 있기 전 그 빛은 무슨 빛인가?
예수님은 말씀 한다.
'나는 빛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민족사를 연구하는 이 방에서 부처나 예수를 논 하는 것은 그분들은 모두 정신세계가 우리 하느님처럼 우주의 진리와 통하시는 분들이라 먼저 말했듯이 백두산에 오르는 길은 달라도 오르고 보면 백두산 천지는 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의 빛이나 불가의 대일광여래(大日光如來)는 모두 우리의 '환 = 한' 과 같은 빛이고 생명이고 하느님 이다.
우리 하느님은 지금 바이칼 호 부근에 사시던 몽골리안 '환한 부족'(桓國)의 지도자 라고 했다.
환다다 하는것은 원래 물질의 빛이 아니다. 지상의 빛 이란 밝다(檀-박달나무단 ) 라 하고 정신적 빛 이 환함 이다.(天上之光謂之桓 地上之光謂之檀)
그러니까 우리 하느님을 창세기 식으로 표현하면 태양이 있기전의 빛 이었으며 이 환한님이 > 화나님 > 하나님이 된것이고 이를 한자로 쓰자니 桓因이 된것이다.
(이하 생략)
다시 하나님은 흙(각종 아미노산, 단백질)을 빚어 육신을 만들고 생기를 불어 넣어 사람 즉 아담을 만들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갈빗대를 분열 시키어 아담의 짝인 이브를 만들었다.
이게 말이 되는가?
지금도 해양 연체동물 즉 오징어 류는 수컷과 암컷이 교대로 성 전환을 하기도 하며 달팽이 류는 아예 암수가 한테 붙어 있다가 짝 짖기를 할때는 또 이와 같은 달팽이를 만나 숫은 다른 것의 암과 ...그리고 그 암은 다를 것의 숫 과 유전자를 교환 한다고 했다.
왜 생명체들은 이렇게 힘든 짖을 할까?
인간을 포함한 생물들이 자기 복제를 하지 않고 다른 유전자와 교환을 해야 하는 이유는 자기 복제 또는 근친상간을 했다가는 무지랑이나 병신을 낳아 결국 멸종 하게 된다.
여기서 자기 생명만이 자기가 아님이 다시 혹인 된다. 즉 후손을 포함한 그 무리의 생명이 바로 자기 생명이 되는것이 자연 섭리로 설명 된다.
그러니까 이 자신의 생명, 즉 그 무리의 생명이 나약해 지는것을 막기 위해서는 유전자 교환을 해야만 건강한 후손을 얻게 된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라 했다.
즉 생명의 본성은 저 혼자 놀게 아니라 같은 류끼리 널리 어울려 좋은 유전자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 자연의 섭리를 일찍 깨달아 홍익인간 이라는 교훈을 내린 것은 우리 하느님 이다.
그러니까 인간도 태초에는...아니 지금도 남녀 양성의 유전자 속에는 성을 전환 할 수 있는 원인인자는 가지고 있고 사람도 태초에는 양성이 같이 붙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것을 증명 할 수 있는 것은 원시 공룡들은 암컷이나 숫컷중 어느 것이 다 죽고 짝이 없으면 어떤 독초나 어떤 풀을 먹고 성 전환을 한다고했다.
또 지금 은사시 나무 등은 숫컷 나무에서 너무나 꽃가루가 날리어 공원에서 숫 나무들만 골라 모두 베어 버리면 몇 년 뒤에는 암 나무들 중에 어느 것이 수나무로 성 전환을 하여 도루묵이 되게 한다했다.
이는 원래 그 나무속에 양성의 원인 인자가 다 들었다는 증거이고 이상으로 보아 태초에 아담의 갈비대로 이브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몽땅 거짓말은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 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교육시킨 다음 전도 파견을 보낸다. 그때 주의 사항이 '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 하여라' 이다.
즉 당시 유대인 들은 뱀을 지혜의 동물로 본 것이다.
그러나 이 지혜는 하느님의 지혜가 아닌 간교한 인간의 지혜 이다.
." 저 뱀 같이 간교한 놈!" 우리 말도 같다
이상으로 보아 뱀의 유혹을 받았다는 것은 동물인 뱀과 통화 했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인간이 지혜의 유혹을 받았다는 이야기 이다.
다음 선악과는 무엇인가? 이는 善惡果라 하니까 착하고 나뿐 열매로 알면 헛일이다.
善惡의 뜻은 '좋고 싫은 것' 이라는 뜻도 있고 果는 결과(結果)도 말한다.
다시 예수님은말씀 하신다.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걱정 하지 말라 하늘에 나는 새들도 다 하느님이 먹여 주니..'
이상으로 보면 애초에 자연의 섭리대로 살던 아담과 이브가 지혜가 생겨 자아(自我)를 인지할 수 있게 되고 이 자아를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지혜가 생겼다는 이야기 이다.
그러니까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이브는 눈이 밝져서(지능이 생겨서) 자신들이 벌거벗은 것을 알게 되고 무화과 나무 잎으로 그곳을 가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으로 인류는 원죄를 짖게 되어 지금껏 내려온다는 것이다.
필자는 가금 기독교 인들한테 질문 한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을 때 그 시간이 얼마나 걸렸겠습니까?'
'글쎄요. 한 10 분쯤 걸렸을까? 30분? 아니 한 시간? 근데 그게 왜 중요 합니까?
필자는 또 묻는다 '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 인지 불량식품을 먹어 식중독에 걸렸다면 그들이나 뒈지던지 말던지 할 것이지 왜 죄 없는 그 후손...그러니까 6천년 후의 우리까지 원죄가 있습니까? 글구 그들에게 원죄가 있어 우리에게 원죄가 있다면 예수 아니라 예수 할아버지를 믿어도 우리의 원죄가 없어 집니까?'
이런 질문에는 아예 대답조차 않는다.
먼저 선악과를 먹는 시간은 지금 현재 우리까지도 깨물고 있고 그 독은 점점 더 퍼져 가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즉 자아가 생기고 이 자아만을 위한 물질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인성은 그 물질에 갓치어 죽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 동물은 죽지 않는데 사람만 죽는다.
먼저 간교(물질의 지혜)한 뱀의 유혹을 받고 선악(좋고 싫은 것)을 분별하는 지혜가 생기자 에덴동산 ...즉 영생할 수 있는 땅에서 추방 당한다.
여기서 분별하는 지혜란 자아(自我)를 알게 되고 그 자아만을 위하는 물질지혜라는 말이다. 그런데 아담과 이브는 그 선악과를 먹어서 자기 개체가 자기 자신 인줄 알게 되자 결국은 죽었는데 그때 그 에덴 동산에 같이 살고 있던 벌이나 개미 그리고 동물들은 선악과를 먹지 않아 아직도 죽지 않고 잘 살고 있다.
지금 절벽 위에 벌 둥지 하나가 있다. 이 속의 벌들은 백 년 천년이 아니라 백만년전 ...그러니까 그들 종족이 만들어 질 때부터 그렇게 살고 있다.
왜 죽지 않느냐고 하면 바로 그들은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가 없기 때문이고 따라서 자아가 자연의 섭리인 우리 이기 때문에 개체의 죽음은 우리 세포 하나가 떨어져 나가고 새 세포와 교환 되는 것과 같고 그들이 나뭇잎 이라면 떨어지는 나뭇잎이 자아가 아니고 나무가 자아 이므로 그 나무를 위하여 거름이 되는 것으로 보기 때문 이다.
라고 하니까 회개가 전에 도둑질이나 서방질 한번 한 것, 그리고 교통신호 한번 위반한 것을 회개하라는 줄 안다.
회개(悔改)란 이런 잘못 한 것을 뉘우쳐 고치란 말이 아니고 네 개체가 너 인줄 아는 네 자아를 선악과 이전으로 돌리란 말이다.
즉 너는 네 몸뚱이가 네가 아니고 모든 생명이 바로 너이며 이 모든 생명을 유지 하기 위하여는 네 개인의 지혜가 아닌 자연의 섭리 즉 하나님의 섭리대로 살라는 이야기 이다.
그리하면 이 세상이 바로 천국이 되고 너에겐 죽음이 없다는 말이 되는데 도둑질 한번, 거시기 한번 한 것을 아무리 후회하고 죽어서 천당 가기를 빈다면 그건 말짱 도루묵 이란 말이다.
예수는 다시 말씀 하신다 " 마음이 가난한 자여 복이 있나니 천국이 너의 것이요'"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자아가 없음으로 내 것이 없다는 것이다.
즉 모든 자기의 소유는 진정 자기의 소유가 아니라 모든 생명의 소유 즉 '우리 것' 이라는 것이다.
* 그렇다면 현대 인들은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백억을 훔치다가 들통난 정치인 처럼 할 것이 아니라 주머니에 백억이 있어도 이는 내 것이 아니라 '우리' 것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주의에 모든 자기 소유가 실은 다 그렇다고 생각 하고 내가 아닌 우리를 위하여 일거수 일 투족 한다면 차츰 이세상이 천국으로 보이기 시작 할 것 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위 예수님이 말씀 하셨듯이 알거지 처럼 마음을 가난하게 한다면...즉 무소유를 소유 하기 시작한다면 이 세상이 차츰 차츰 천국으로 변할 것 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최치원이 말한 無궤化三 즉 대 자유인이 될 것이다.
이 소유와 무소유에 대하여 현대인 들의 착각을 예로 들면서 한번 비교해 보자.
여기에 만약 어떤 사내가 창녀 촌에 가서 창녀와 하룻밤을 같이 했다고 하자. 그때 이 남자는 그 창녀가 어젯밤에 어떤 녀석과 어떤 짖을 했는지에 따지거나 그에대해 질투 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자기 부인이 딴 남자와 간통을 한다면 질투와 증오에 몸부림을 칠 것이다. 이는 물론 자기 부인이 자아 에서 나온 '내것' 이라는 개인 이기주의적 사고에서 연유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매우 유의할 것이 있다. 이렇게 내 것이란 없다고 하니까 일할 것도 없이 허구 한날 놀다가 어쩌다 몇푼 생기면 남들한테 다 퍼주어 항상 알거지가 되라는 말이 아니라 우리 하느님의 교훈처럼 아홉까지 완성한 다음 열라 했으니 가령 천억을 모은 사람이 있더라도 이는 그 기업의 종업원들 것 ...또는 그 공장의 여러 사람들이 먹고 살 터전 이라고 생각 하라는 말이다.
이는 또 지금 우리가 나무를 심는다거나 자연을 보호 한다는 정신과 같은 것인데 이는 내가 아닌 후손에게 좋은 땅을 물려 주기 위한 것이니 여기에도 비유 할 수 있는 말이다.
이것이 위에서 질문한 오직 나만을 아는 현대인의 자아에 대한 실체 였다.
*** 자아의 감옥에서 사는 인간들
* 마약의 감옥
마약 중독자 들은 빌빌 대다가도 마약 한대만 주사 맞으면 이 세상이 완전 천국이 된다.
그래서 이 마약을 모르는 사람들을 참으로 불상 하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의 희열과 목표와 희망은 오직 마약뿐 그 외 인생은 무의미 하므로 그는 마약의 감옥 안에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는 술 중독도 마찬가지 이고 담배 중독도 그 정도는 차이가 있을 망정 마찬 가지 이다. 또 도박에 사는 사람들도 그 딸 때의 스릴이나 쾌감 때문에 도박을 빼 놓고는 삶이 무의미 해 지기 때문에 패가 망신하고 징역을 갔다 와도 또 도박이다.
그러나 이는 비단 마약이나 술이나 도박 말고도 아래 다른 것도 마찬 가지 이다.
* 약의 감옥
자연이 만들어준 생명들한테는 자연 치유력이 있다. 동물들은 위생적인 식사를 안 하고 아무데서나 더러운 것 또는 다 썩어가는 식사를 해도 식중독에 걸리지 않으며 배가 부르면 안 먹으면 되고 어디가 아프면 그대로 잠을 자면 낳는다.
인간도 애초에는 이 짐승들처럼 위생적인 식사를 하지 않았어도 잘 먹고 잘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지혜가 발달 하면서 무엇을 먹으면 더 맛있을까를 따지다 보니 요리를 해먹어야 하고 조금만 비위생적인 식사만 해도 병이 걸리며 그러면 약을 먹어야 한다.
인간의 위장이 그만큼 퇴화 한 것이다.
물론 갑자기 외상을 당하면 의사나 약으로 치료 한다. 그러나 의사나 약은 인간을 치로 하는 게 아니라 치료 하는 것은 자연 생명력이고 ...즉 찢어진 살이나 뼈가 붙게 하는 것은 생명력 이고 의사나 약은 약간의 보조 역할만 한다.
그런데 현대인은 너무 약에 의존 한다. 나이를 먹으면 약이 없으면 살질 못한다. 한 주먹씩의 약을 먹고는 그 약이 소화 잘 되도록 또 소화제를 먹는다. 이것도 약의 감옥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는 것이다.
* 돈의 감옥
먼저 미개한 오지 인들이나 인디안 이야기를 했는데 이 오지 인들이나 인디언들의 사냥 법은 산에 덧이나 함정을 파 놓고 다음날 가 보면 산 오리나 사슴이 빠져 있다.
그러면 그 중에 늙은 숫컷만 잡아 동네 사람들과 같이 나누어 먹고 젊은 암놈은 도루 놓아 준다.
그러나 현대 문명인 같으면 혼자서 일생을 먹고 살 돈을 벌어도 오직 돈을 더 벌려고 하다가 그 돈 속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는데 이런 현대인의 의식은 오직 돈버는 것만이 인생의 목표이고 이것을 떠나서는 인생이 무의미 해지니 이 역시 돈의 감옥에서 사는 것이다.
* 권력이나 정치의 감옥
권력을 손에 쥐어 봤던 사람은 절대로 그 권력의 속성에서 벗어날 수 없어 가진 방법을 다써 종신 권력을 잡으려 하고 선거를 통해 정치에 손댔던 사람도 이 정치의 굴레를 잊을수 없어 선거에 낙선해도 또 나서려고 한다. 돈이 있는 한 또 나서려고 한다. 이 사람은 권력의 노예 정치의 감옥에서 사는 것이다.
* 인기의 감옥
늙은 영화배우가 매일 전화통만 바라본다. 그러다가 어쩌다 전화가 오면 혹시 영화사에서 자기를 찾는 전화가 아닌가 반갑게 받았으나 영화 출연 제의가 아니면 아무리 친한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어도 실망 한다.
이는 가수도 마찬 가지이다. 인기시절 무대에서 많은 청중들에게 받던 그 요란한 박수 소리를 잊을 수 없어 결혼생활도 다 때려 치고 다시 가요계로 나간다. 이 사람들의 인생은 오직 인기 이고 그는 인기의 감옥에서 사는 것을 자신만 모른다.
* 사랑의 감옥
로미오와 줄이엣이 사랑 때문에 죽고 누군가가 잘 나가던 사람들이 현해탄에서 정사를 했다. 뿐만 아니라 요즘도 이루지 못할 사랑을 비관하여 정사하는 사람이 있다.
이들의 사랑은 매우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 같으나 만약 로미오와 줄이엣을 결혼 시켰더라면 3년을 못살고 싸움밖질에 이혼 했을지도 모른다.
이 역시 순간의 감정으로 생명을 건 것에 불과한 사랑의 포로 사랑의 감옥이다.
* 종교의 감옥
철저히 믿으면 천당이던 극락이던 간다고 한다.
그런데 이건 애초 좋은 종교에 줄을 잘 섯을때 이야기 이고 백백교 용화교 또는 어떤 사이비 교에 빠져 패가 망신 하는가 하면 인민대사원 오대양 사건에서 처럼 교주가 자살 하라면 자살까지 하고 종말이 가까워 졌다 하면 모든 재산을 교주한테 바치며 천당 표 까지 거액을 주고 구입하는 사람들은 완전히 그 종교의 감옥에서 사는 것이다.
* 명예의 감옥
오직 자신의 명예만을 지키려고 사는 사람이 있다면 이도 그 명예의 감옥에서 사는 것이다. 어떤 명예도 마찬 가지 이다.
* 자기 과시에 대한 감옥
어떤 사람이 갑자기 부동산 값이 오르는 바람에 졸부가 되었다.
그는 조그만 승용차를 사서 타고 다녔다. 그런데 얼마 안가서 외제 승용차로 바꾸었다.
그 이유를 물으니 저 조그만 승용차는 자신의 신분에 걸맞지 않는다는 것 이었다.
즉 가든 갈비 집을 가더라도 차를 정리하는 종업원이 처다도 보지 않는다는 것 이었다.
그래서 외제 승용차로 바꾸고 보니 그 종업원 허리가 구십 도로 경례하며 주차 안내를 한다는 것이다.
옷도 마찬가지 이다. 최고의 패션을 입어야만 남들이 우러러 볼 것 이라 하고 집도 마찬가지이다.
집도 그 져 편히 잠을 자는 장소가 아니라 호텔보다 더 호화로운 이태리 대리석을 붙이고 가능하면 수도 꼭지도 금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람의 신분에 걸 맞는다. 지금 졸부 들이나 고관들 생각은 거의 그렇다.
이런 사람들은 거리에서 어떤 차와 동행을 하거나 순간적으로 마주쳐 가는 차가 만약 보잘것 없는 작은 차거나 유행이 지난 옷을 입고 간다면...또는 어떤 집을 방문 했는데 그 집이 초라하다면 그 사람들을 아예 인격까지 무시 해 버리고 만다.
이것 역시 그 사람은 그 과시욕의 감옥 속에서 사는 것이다.
* 물질의 감옥
이상 수많은 감옥살이 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요즘 가장 보편적 이고 흔한 게 물질에 대한 감옥이다. 먼저 누차 말했듯이 물질의 본질은 허공과 같고 정말로 있는 것은 자연의 섭리와 생명력의 정수인 인성이 이다.
그러나 지금은 서구 물질문명으로 인하여 오히려 이 인성이 물질의 감옥에 가치어 물질만이 자기 자신인줄 안다.
** 자 다시 우리 하느님의 교훈으로 가자 절대로 하느님과 같이 할수있는 천국은 절이나 교회에 돈을 될 수 있는 한 많이 퍼다 주고 '주여! 주여!' 외치거나 '나무아미타불' 을 찾는다고 갈수 있는 것이 아니다.
* 무위자연 (無爲自然) 속에 참나(眞我)가 있다.
무위자연 이란 노자(老者)의 도덕경(道德經)의 핵심 이다.
인위적으로 뭘 가해서 만드는 것이 아닌 자연상태 그대로가 바로 우리의 고향이고 이 자연상태에 흡수 되는 것만이 극궁적인 도 란 말이다.
위에서 열거한 인위적인 감옥에서 벗어나 자연의 섭리대로 사는 것이 우리 하느님의 교훈 바로 자아를 열고 나가는 것이다.
즉 우리가 무엇인가 하나씩 이룰 때 손가락을 하나씩 꼬부리게 되는데 결국 열에 가서는 이 손가락을 모두 열어 빈 손바닥에 된다. 이 빈 손바닥이 대 자유 이다.
이와 같이 자기 완성을 한 다음 열어 결국은 무소유가 되고 그래야만 대 자유인이 되어 결코 죽을수 없는 하느님과 영생 한다는 것이다.
*** 이제 나를 열고 나아가 무아(無我)가 됬을때의 공덕을 말한다.
* 엄마가 귀여운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아기는 엄마 품에서 안기어 젖을 먹으며 무한히 행복해 한다.
이때 엄마는 자기가 엄마인지 아기 인지를 잊는다. 즉 아기와 엄마가 자타일체가 되어 엄마 자신은 사라지고 동시 엄청난 희열과 행복의 파도가 밀려 든다.
* 남녀가 진정한 사랑을 나눈다.
이때 두 남녀에게 자신의 존재를 인식 한다면 이건 사랑이 아니라 거래 이다.
진정한 사랑을 하면 자타 일체가 되어 자신은 사라지고 엄청난 행복과 희열이 몰려 온다.
* 열심히 일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그 일과 책에 몰두하여 자신을 잊을때 엄청난 희열이 몰려 온다.
* 산에 올랐다.
정상에 올랐다. 구슬땀을 흘리며 고생스럽게 올랐다. 그러나 일단 정상에 올라 발 아래 구름에 휩싸인 산봉우리들을 보는 순간 자신과 자연이 일체가 되어 자신을 잊고 엄청난 희열에 빠진다.
* 신아 일체(神我一切)가 되었다. 물론 자신은 없다.
신은 물론 대생명(大生命)이다. 죽을래야 죽을 수 없는 ...언제나 내 곁에... 아니 모든 개체 생명들은 그 대 생명의 바다에 거품처럼 떠다니지 않는가? 마치 태평양에 떠 있던 거품 처럼...
그러나 그 거품이 자신이 아니고 태평양의 바닷물이 자신인 것을 알게 되어 바닷물과 일체가 된다면 위와 같이 엄청난 희열 즉 불가에서 말하는 해탈을 하면 영원한 희열과 생명이 신과 같이 할 것이다. 영원히 영원히....
** 그럼 다시 신지문자 '열' 을 보자
* 우선 이 '열'의 신비한 신지녹도문자 그림부터 보자.
도대체 이는 무슨 그림일까?
다음 그림을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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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자신을 구속하고 있던 새장을 열고 나라 오르는 새
이상을 보면 왜 천부경이 다른 종교의 경전보다 현실적이고 우월 하며 인간을 위한 경전인지 알것이다.
즉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까지는 신의 섭리이니 인간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일곱 부터 아홉 까지는 인간이 부자를 일구어 완성하는 부자 되는 길 이며 천부경의 수행 방법이고 인간이 살아가야할 길 이며 열은 인간이 해탈 하는 길이다.
이 보물을 우리는 아지껏 묻어 놓고 살아 있는 사람의 길이 아닌 외래 종교에 미처 돌고 있었던 것이니 동감하시는 독자는 이 천부경 사상을 우리는 물론 전 세계고 전파 시키자!
이신지녹도 전자 천부경과 최치원 81 풀이는 이방 37 번 "신지녹도전자 천부경 해독과 최치원 81자 풀이 요약편"과 이방 끝 부분 87 번에 있으니 마음대로 퍼 가셔서 다른 카페에 올리시라!
출처 : | 천부인과 천부경의 비밀 | 글쓴이 : 우리 원글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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