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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번 신지녹도문자 해독 결론
*** 이상 신지녹도 문자를 해독 해본 결과 대략 6천년 당시의 모든 국가 관이나 일상 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 이글은 사실 책 "천부인과 천부경의 비밀" 과 한 쌍이 되는 내용이다.
그래서 이 글은 책의 독자들을 위해서 쓴 것인데..
좀 아쉬운 것은 책을 읽지 않으신 독자 깨서는 우리말... 특히 ㄱ ㄴ ㄷ ...ㅎ 의 뜻에 대해서 책 에 있는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지 못해 이해 하는데 좀 생소한 부분이 많았으리라고 생각 된다.
그렇다고 그 방대한 책 내용 모두를 수록 할 수도 없어서 책의 내용을 간략하게 인용 하였을 뿐이니 이점 양해 바란다.
또 쓴 내용이 조상의 생활에 대하여 너무 불경스럽게 표현한 부분도 많았다.
그러나 아무리 우리의 조상 이라고 하더라도 무조건 신성시 하면 사실을 왜곡하게 된다.
그러므로 대략 6천년 전에 쓰여진 신지녹도 문자 해독은 인류 문화 발달사나 현재 오지 인들의 생활을 참작하여 원시 그들 세계의 생활과 의식으로 돌아가 그들이 쓴 글자를 해독하여 쓴 것이다.
따라서 이 신석기 문명이 긑나고 청동기 문화가 시작 될 무렵 원시 조상의 생활상태를 미개한 듯 하게 썼다고 나무라지는 말아야 한다.
누차 말하지만 인간의 본질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물질문명에 찌든 현대 인간이 인간의 본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마 창세기 에서 말하듯 벌거벗고 살아도 부끄러움이 없었던 선악과 이전의 사람이 참 인간 이었다고 본다. 이런 관점으로 볼 때 우리는 불과 500년간 이조의 유교의 풍습에 물든 인간관을 가지고 원시조상들의 도덕률이 난잡 했다고 할 수도 없다.
* 지금까지 써진 신지녹도 전자 천부경 해독은 어디까지나 우리말의 뿌리와 얼마 않되는 상고사 중 가필 부분을 가리고 또 최치원의 시첩 81잘를 풀어본 결과로 쓴 것이며 이것을 검정하기 위하여 평양 법수교아래 비석 고천문 해독과 지금 산동성 백수현에 있는 창성 조적서 비문까지 해독해 보고 그 읽은 방법과 시대 생활상이 일치 하기에 자신 있게 쓴 것이다.
여기서 그 소득은 평양법수교 아래의 비석 문에도 역시 환웅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었으며 지금 중국인들이 그렇게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한자의 창시자 창성 조적서 마저도 실은 우리 배달국을 세우는 과정을 지켜보고 쓴 견문록 이라는 것을 볼때 지금 그들의 동북공정 운운이 얼마나 허망된 헛소리 인가도 판명 된다.
** 지금까지 쓴 내용을 정리하여 간추린 6천년 전 우리 조상들의 사고와 생활 상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몽골로이드의 정체
학계에서는 인류가 대략 1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것으로 보고 있고 그들은 열사의 사막을 지나 지금 터키 부근에서 유럽과 아시아 쪽으로 퍼지면서 각자 그 지방의 기후에 적응, 여러 형태의 민족으로 분화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한민족은 어디서 왔을까?
다음은 SBS에서 심혈을 기우려 제작한 문화대탐험 ‘몽골리안 루트를 가다’에서 그 요점을 발췌한 내용이다.
*충북대 고고 미술사학과 박선주 교수에 의하면 현재 한반도에서 발견된 구석기 인의 두개골과 현재 한국인의 두 개골은 엄청나게 다르지만 신석기 인과는 거의 일치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반도에 있었던 구석기인과 신석기 인간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불과 1만 5천년 전후로 추정되는 구석기인과 신석기인의 모습이 그렇게 다른 것은 새로운 유전자의 도입으로 보고 있다.
즉 한반도 내에 후기 구석기인이 살고 있었는데 1만5천년 전후 빙하가 녹으면서 그 구석기인들은 황해나 동해 때문에 한반도 남북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길 밖엔 그곳에서 고립될 수밖에 없는데 그들에게 어떤 딴 종족이 북으로부터 내려오면서 유전자를 교환하여 신석기인 즉 우리 같은 종족을 만든 것으로 추정한다.
즉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구석기 말기에 커다란 지형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차츰 빙하가 녹으면서 대륙과 붙어있던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 쌓이게 되었다. 그로 인해 대륙과의 통로는 오직 북쪽 루투 밖에 없었고 이 북쪽 루트를 통해 다수의 신석기인 들이 들어와 한국인의 조상이 되었다고 본다.
그렇다면 북방에서 들어와 우리를 만든 종족은 어떤 종족인가 ?
인류 한자들은 그를 ‘몽골로이드’라 하고 그 근원지를 바이칼호 부근으로 보는데 그 이유는 이 부근에서 그들의 두 개골과 유물이 수없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또 이를 뒷받침 할 근거를 더 찾아보자
* 바이칼호 동남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 목서훈 300가구에 1300명 주민이 대부분 부리야트인 이들은 칭기스칸의 몽골 족이 자신들의 뿌리로 믿고 있다.
그러나 실은 이들은 칭기스칸이 있기 무척 오래전부터 이 땅에 살았던 토착민.
얼마 전 일본 법의학자에 의해 이 부리야트인 유전학적 정체성이 밝혀졌다.
그는 일본내 친자감정의 일인자로 알려진 오사카 의과대학 마스모토 히데오 박사의 ‘일본인은 어디로부터 왔는가?’ 라는 연구결과에서 밝혀졌다.
그는 지난 30여 년간 세계 여러 민족의 혈액을 채취해 인종간의 유전적 혈연의 관계를 규명해 내는데 몰두한 결과였다.
그 결과 인체 내 면역 글로블린의 일종인 GM 유전자가 인종과 민족간에 각기 다른 배열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특히 노란색으로 나타나는 ab3st 유전자가 결정적인 비밀을 안고 있었다.
그는 말한다. “여러 집단을 조사하다 보니 ab3st유전자는 몽골로이드 만이 가지고 있는 유전자인데 몽골로이드 중에도 북방 몽골로이드만이 가지고 있는 유전자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이 유전자가 많이 나타나는 지역이 부리야트 지역으로 이 지역에서 북방 몽골로이드 특징이 가장 많이 남아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이칼호 부근의 부리야트 사람들이 북방 몽골로이드의 원류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유전자가 큰 이동을 하게 되는데 그 이동은 남쪽으로 내려와 한반도에 이르고 일본까지 이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유전자를 통해 우리 한국인이 북방 몽골로이드의 한 갈래임을 분명하게 확인하게 되고 한국인과 가장 많이 닮은 민족이 바로 부리야트 민족이라는 것이다.
* 북방 몽골로이드의 유전자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는 부리야트족의 유전자를 비롯해 몽골족과 울치족 축치족과 아메리카 인디언, 멕시코나 에콰도르 또는 와라니 나체족등 약 백여개의 혈액쌤풀을 채취 고려대 의대 법의학 교실에서 미터콘드리아 DNA를 구성하고 있는 총 735개의 염기의 배열을 상호 비교 했다.
이는 배열상태가 일치 할수록 유전적으로 가까운 것이 되는데 분석해본 결과 부리야트족을 100으로 봤을 때 한국인은 98.91%로 부리야트 족과 가장 가까웠으며 축치족은 98.65%, 울치족은 98.76%, 으로 한국인과 거의 가까웠고 북미 인디언이 98.39, 멕시코 인디오가 98.43 으로 그 수치가 약간 떨어지다가 나체의 와라니 족은 97.94로 약2%의 차이가 났다.
그러나 비교된 8개의 종족은 유전적으로 매우 유사한 종족으로 판명되었고 이는 동일한 조상으로부터 분화되어 진화해 왔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이상을 보더라도 환한부족 3천명과 함께 내려오신 환웅이 토착민인 곰 족과 결혼해서 단군을 낳았다는 우리의 단군신화는 신화가 아닌 사실역사임이 입증되는 것이다.
* 환인 하느님 시대의 국가나 부족 형태
본문에서도 설명 했지만 아직 국가라고 할만한 근거는 없다. 국가를 경영 하기에는 글자도 없었고 말 또한 몇 마디 되지 않았다.
그저 신선과 같은 몽골리안 부족 무리 엿다고 본다.
* 당시의 옷
단군 시대 때도 풀이나 나뭇잎으로 두르고 살았으니 하느님, 환웅때에는 여름철에는 벌거 벗었거나 풀로 둘렀을 것이며 겨울에는 짐승 가죽을 둘렀을 것이다. 아직 누에를 쳐 비단옷을 입었을 가능성도 적다.
근거 문헌 檀君世記民遍居山谷草衣跣足
* 당시의 먹거리
벼는 지금 충북 소로리 등에서 세계 가장 오래된 벼씨가 발견 되므로 야생 벼 등이나 피 등 먹을 수 있는 풀 씨를 경작 했을 것이고 산에서 도토리 등 열매와 작은 짐승이나 개울에서 고기를 잡아 먹었을 것이다.
* 당시의 집
신지녹도문자 해독 다섯 에서 풀이 했듯이 겨울에는 산비탈에 땅굴을 파고 사다리를 놓고 살았을 것이며 여름에는 원두막 같은 엉성한 집을 짖고 살았을 것이다.
* 당시의 종교
여섯 에서 설명 했듯이 빛을 숭상하여 해로서 神을 삼고 하늘로써 조상을 삼았을 것이다. 근거문헌 다시 제시 * 桓國本紀 - 朝代紀曰古俗崇尙光明以日爲神以天爲組萬方之民信之不相疑朝夕敬拜以爲桓式 (환국본기-조대기에 말하되 옛 풍습은 빛을 숭상하여 해로서 神을삼고 하늘로써 조상을 삼았으니 만방의 백성들이 믿고 의심치 않아 환나라(환한무리) 방식으로 조석으로 경배하였다.)
* 당시의 결혼 형태
결혼 형태는 아직 없었고 따라서 네 여자 내 여자도 없으며 내 자식 네 자식도 없다고 본다. 우리 씨름 이란 말의 뿌리는 씨놀음 인데 씨 놀음이란 어떤 경기를 통해서 이긴 자가 씨를 뿌리는 것이다. 즉 씨 놀음 이란 지금처럼 심심해서 하는 놀이가 아니다. 황소 한 마리 타자고 하는 놀음도 아니다. 만약 황소를 타자고 한 노름 이라면 황소노름 이라고 했어야 한다. 그렇다면 무리아들(庶子) 들이 씨노름(씨름)을 해서 이기는 자가 그 강인한 씨를 여러 여자의 밭에 뿌리고 그로 인하여 후손에게 그 유전자를 전달 시켰을 것으로 본다.
* 당시 인들의 성생활
대개 후방위 교접 이었을 것이다. 키스도 애무도 없었을 것이고 지금처럼 쾌락을 위한 성생활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는 본문에도 기재 했듯이 지금 오지의 미개인들의 성생활을 보면 알 수 있다. 오직 후손을 두기 위한 성생활 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여성의 유방은 지금처럼 성기의 일종으로 보지도 않았고 오 지인들처럼 그저 아기들을 먹이는 생식수단 이었을 것이다. 우리도 6.25때 까지만 해도 시장바닥이나 시아버지 앞에서도 젊은 여성이 유방을 내놓고 아기들에게 젖을 먹이었으나 조금도 흉이 되질 않았다.(여섯 참조)
* 곰족의 정체
곰은 우리 원시어로 곰 굼 감 검 과 같은 말이고 이의 뜻은 땅 작다 검다 구멍 여음 등 이었으므로 우선 작고 검은 토착민 ...즉 중국에서 남만(南蠻)으로 불리는 사람들로 지금 중국의 남부인이나 동남아아 인으로 본다. (자세한 설명 은 책이나 이 카페 이 게시판 " 15-18 곰의 정체 참조 ) 현재 우리의 피 속에는 이 동남 아세아 인의 유전자도 흐르고 있다.
* 호랑이의 정체
호랑이의 우리 옛말은 "웜"이고 이는 그 울음소리로 짛은 이름인데 이는 나중에 "범"이 된다 그러나 한편 한앙이 > 하랑이 > 호랑이가 됬는데 "한앙이"의 뜻은..."한"은 히다 크다 이고 "앙이"는 지금"앵이","옹이"로 어떤 뭉침을 말한다. 즉 환웅 단군은 모두 "환앵이" 인데 이는 이는 "화랭이"가 되어 무당을 말하는데 이것이 나중에 화랑이 된 것과 같다. (이 역시 책에 상세한 내용이 있다.)
그러니까 곰앵이(꼬맹이 > 고양이 는 작은데 비하여 한앵이 > 호랑이는 히고 큰 종족으로 당시 바이칼호 부근에 있던 백계 러시안으로 본다.
참고로 격암유록의 남북통일 예언에서 "백호가 잠들어야 통일이 된다"는 의미의 백호는 백인종 즉 미국을 말하는 것이다.
* 홍익 인간이란?
하느님의 교훈 천부경은 하나 둘 셋 ...열 이고 이중 홍익인간은 아홉 열 이라 했다. 이 하느님 교훈을 지금 아무렇게나 해석하여 현재 우리 교육법 제 일조에도 홍익인간 이야기가 나오는데 홍익인간을 즉접 말한 이는 하느님 밖에 없고 그 기록은 신지녹도 전자 밖에 없다. 이 하느님 말씀을 함부로 해석 하는 것은 크나큰 잘못이다. 여기의 자세한 이야기는 독자 토론마당 52번을...
* 홍익인간이 첫 번째 펼쳐진 위대한 세상.
미국인은 인디언이 평화롭게 살던 남의 땅에 처 들어가 원주민을 모조리 살육하고 그들의 나라를 세웠다. 이에 반해 홍익인간의 교훈을 받은 환웅 깨서는 토착민 곰족과 호랑이 족이 사는 땅에 들어가 마치 그들의 풍토병을 마늘과 쑥으로 치료하고 천부경 사상으로 그들을 사람을 만들어 보려 했으나 그들이 이 지독한 마늘과 쑥을 먹으려 하지 않자 환웅을 사모하던 곰녀와 호녀를 통하여 시범을 보이려 했다.
그러나 호녀는 참지 못하고 도망가고 곰녀만이 성공...그를 통하여 단군을 낳자 전 곰족은 쑥과 마늘을 먹게 되고 결국은 그들과 피를 섞어 우리 민족이 탄생 했으니 이와 같은 위대한 일이 이 세상에 또 있었겠는가? 여기의 자세한 이야기는 독자 토론마당 82번을...
* 약
마늘과 쑥을 먹는 민족과 그 이유
중국은 예자 지금이나 풍토병이 심했다.
그러나 그때는 물론 페니실링등 약이 있을리 없다. 신농씨 등이 풀잎을 맛보아 한방의 시초가 되었다 하나 이는 한참 후의 일이다.
그런데 마늘 속에는 엄청난 약효가 있다. 즉 상처난대 짓 저서 발라도 낳고 먹으면 강력한 강장제라 심지어 피라밑을 쌓을 때 그 인부들이 지치어 매일 죽어 나가나 이 마늘을 먹은 노동자는 죽지를 않았다.
그래서 노동자 들을 강제로 입을 버리게 하고 마늘을 갈아 퍼 먹이기 까지 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마늘은 엄청난 정력제여서 지금 마늘 정력제가 시중에 얼마던지 있다. 지난번 중국에서 싸스가 유행할 때 이 우리는 이 싸스에 감염되지 않은 이유도 바로 마늘 덕분이다.
쑥은 피로 회복과 피부 미용에 그만이다.
전에 여성들의 냉병은 이 쑥으로 치료 했고 지금도 쑥 싸우나를 한다.
이 쑥과 마늘을 먹는 민족은 세계에서 우리밖에 없는 이유도 모두 환웅님 때문이다.
* 인류 최초의 문자
인류 최초의 문자가 만들어 지는 과정 환웅 천제때 대대로 천제의 말씀을 전달하는 신지(神誌) 벼슬의 혁덕(赫德) 이란 사람이 천제의 명을 받고 입과 입으로 전달되는 천부경의 말씀이나 또는 천제의 명령을 조금도 다르거나 손실 없이 그대로 보관하는 방법을 고심하여 찾던 중 하루는 사냥을 나가게 되었고 산언덕을 넘어 한 마리의 암 사슴을 발견한 신지는 활을 당겨 쏘려 했으나 놓치고 말았다.
이에 사방을 수색하며 산과 들을 지나 편편한 모래가 있는 곳에 이르렀는데 여기서 사슴의 발자국을 발견하고 도망간 방향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고개를 숙이고 발자국을 살피던 신지는 크게 깨닫고 외치기를
“말 을 보관하는 방법도 이와 같이 하면 된다. 이와 같이 하면 된다”
라고 하고 그날 사냥을 마치고 돌아와 반복 생각하고 세상 만물을 넓게 살핀 후 오래지 않아 문자 만드는 법을 깨닫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옛 글자의 시초라는 것이다.
이 부분을 북애자(北崖子)의 규원사화(揆圓史話)에서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神誌氏世掌主命之職專管出納獻替之務而只憑喉舌曾無文字設存之法一日出行狩獵忽驚起一隻牝鹿滿弓欲射施失其踵乃四處搜探至平沙處始見足印亂鑽向方自明府首沈吟旋復猛省曰記存之法惟如斯而己夫如斯而己夫是日罷獵卽歸反復審思廣察萬象不多日悟得刱成文字是爲文字之始矣)
* 하느님의 선물 천부인으로 만든 물건
세종도 미처 몰랐던 ㄱ ㄴ ...ㅎ 속의 뜻
(이는 단군이래 처음 있는 학설이니 다소 생소할 것이다) 지금 우리 한글은 물론 세종대왕이 창제 했다. 그러나 세종대왕은 전연 무에서 한글을 창제한 것이 이니라 그 뿌리는 원시 한글인 가림토를 토대로 만든 것으로 보며 (字倣古篆) 이 가림토는 하느님(환인)이 환웅에게.... 아니 우리 민족에게 하사하신 천하의 보물 천부인 세 개로 만들었는데 이 천부인 으로는 글자뿐 아니라 우리의 말도 동시에 만들었다는 증거를 제시 한다.
현재 우리는 한글의 ㄱ ㄴ ㄷ ...ㅎ 의 자음은 알파벳의 자모처럼 아무런 개체적 의미가 없는 단순한 음운으로서의 기능만 가지고 있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한글 자음 하나 하나에는 개체적인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 의미는 지금 우리는 물론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조차 몰랐던 것으로 본다.
그 개체적 의미를 밝힌다.
세종실록과 최만리 상소문 등을 보면 세종은 옛 글자를 모방하여(字倣古篆) 한글을 만들었다고 했고 훈민정음 해례본에도 옛 글자의 형상을 모방했다는 것이다(相形而字倣古篆).
그 옛 글자란 어떤 글자인가?
이는 분명 원시한글(기림토로 추정) 이었을 것이고 세종은 이 원시한글의 모형을 토대로 훈민정음을 만들었을 것이다.(이 가림토가 어떻게 쓰여졌던 글자였는지는 다음 독자들과 토론한 내용을 보자.
..................................................................................
*** 원시한글 가림토는 이렇게 쓰던 글자였다.
( 한류열풍 사랑에 올라온 글입니다. 해부루 라는 사림이 쓴 글과 반론)
(여기서 검은 글씨는 해부르 님의 원문이고 파란글씨 는 필자의 반론이다. 이 글을 쓴 분은 한자 번역에 있어서 좀 아는 사람 같아 반론할 가치가 있는 듯 하다.)
그들이 가림토를 주장하기 위해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기록들이 있습니다.
세종실록과 훈민정음해례의 정인지서문, 그리고 실록에 기록된 최만리 상소문입니다.
그곳에는 공통적으로 언문(한글)이 옛글자인 전(篆)의 모양을 본떴다는 기록들이 있습니다.
한 번 살펴볼까요.
세종실록 102권 42장
是月上親制諺文二十八字其字倣古篆
이달에 임금이 몸소 언문 스물 여덟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는 옛글자인 전(篆)을 모방하였고
훈민정음해례의 정인지서문
癸亥冬. 我殿下創制正音二十八字 略揭例義以示之 名曰訓民正音.
象形而字倣古篆
계해년 겨울에 우리 전하께서 비로소 정음 28자를 창제하시고, 간략하게 예의(例義)를 들어 보이시고 이름을 훈민정음이라 지으셨다.
이 글자는 상형해서 만들되 글자 모양은 옛글자인 전(篆)을 본떴고,
최만리 상소문
曰 諺文皆本古字 非新字也 則字形雖倣古之篆文
혹시 말하기를 언문은 모두 옛글자를 근본으로 삼은 것으로 새로운자가 아니라고 하신다면 곧 자형(字形)은 비록 옛날의 전문(篆文)을 모방하였더라도
어떻습니까?
모르는 상태에서 이 기록을 본 후 그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정말 그럴듯합니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친히 지은 것이 아니라 예부터 전해온 전(篆)이라는 글자를 모방한 것에 불과했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세종대왕도 거짓말쟁이이고 창제원리를 밝힌 훈민정음해례도 거짓이며 우리는 4200년전 청동기시대에 이미 표음문자이자 문자역사에서 가장 발달된 형태라는 음소문자를 가진 자랑스런 민족이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이 가림토란 문자로부터 일본의 신대문자, 인도의 산스크리트문자, 몽고의 파스파문자, 중국의 갑골문, 슈메르의 쐐기문자(그들은 슈메르가 수밀이국이며 단군조선의 식민지라고 주장하지요)들이 나왔으니 그야말로 우리민족은 인류문자의 祖宗이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쁘고 자랑스러우십니까? 아니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성을 되찾아 차근차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하지요.
그리고 저 위의 기록들은 너무 단편적이니 그 문장의 앞뒤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세종실록 102권 42장입니다.
是月上親制諺文二十八字 其字倣古篆
分爲初中終聲 合之然後乃成字 凡于文字及本國俚語 皆可得而書 字雖簡要 轉換無窮 是謂訓民正音 이달에 임금이 몸소 언문 스물 여덟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는 고전을 모방하였고, 첫소리•가운데소리•끝소리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룬다. 무릇 문자에 관한 것과 우리 말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되었지마는 전환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이라고 이른다
우선 이분은 가림토가 어떻게 구성됐는지 전연 연구한바 가 없는 분이 자기의 단편적 사고로 글을 쓴 모양이다.
가림토는 지금 한글처럼 완전한 소리글자가 아니라 물건의 형태를 모방하는 일종의 상형문자 이면서도 소리글의 성질도 가지고 있다.
이 가림토가 어떤 글자이며 어떻게 쓰여졌는가의 연구는 가림토가 생긴 이래 필자가 처음 제시하는 것이므로 이 글을 처음 보는 독자들은 다소 생소할 것이고 당황도 하겠기에 좀 자세히 쓴다.
** 책 천부인과 천부경의 비밀에서 인용한다.
지금 우리가 쓰는 한글의 원 모양은 세종이 전연 무에서 창작이 아니라 대락 6 천년전 하느님( 여호아가 아닌 우리 애국가에 나오는 지금 바이칼 호수 부근에 사시던 북방계 몽골이안 일족의 지도자)께서 개국을 하시려는 그 아드님 환웅께...아니 우리 민족에게 주시는 선물 천부인세개, 즉 天地人 에서 나왔고 이 기호는 圓方角, 즉 ㅇ, ㅁ, △ .이었으며 이 것으로 가림토는 물론 우리 한글까지 만들었다는 증거를 제시 한다.
우선 천부인 세 개중 하늘을 의미하는 글자는 ㅇ 이고 ㅎ은 이 ㅇ 세서 나왔으며 땅을 의미하는 ㅁ 에서는 ㄱ,ㄴ,ㄷ,ㄹ, ㅂ 이 나왔고 사람을 의미하는 △에서 ㅅ, ㅈ, ㅊ 이 나왔다.
따라서 지금 우리 한글의 자음 속에는 모두 각자마다 독특한 뜻이 들어있는데 그 뿌리를 찾아보면 모두 이 하늘과 땅과 사람 의 뜻이 된다.
그래서 ㅇ 이나 ㅎ ( 꼭지이응과 여린히읏은 ㅇ 과 ㅎ 사이의 중간 발음 이므로 생략) 으로 발음되는 글자는 모두 하늘을 닮아 원융무애(圓融無碍) 하거나 형이상학적(形而上學) 적인 말에만 쓰이고 땅 성질이나 사람 성질에 쓰이는 말은 없다.
다음 땅 성질이 있는 ㅁ 에서 나온 말이나 여기서 분해되어나 온 ㄱ ㄴ ㄷ ㄹ ㅁ ㅂ 도 땅 성질만 있고 하늘 의 뜻이나 사람의 뜻은 없다.
마지막 사람 천부인에서 나온 ㅅ이나 여기서 덧붙여진 ㅈ ㅊ 등은 그 △ 모양대로 서거나 솟거나 뾰죽한 뜻의 말 만 있고 이것을 잠시 유보시키는 ㅈ 과 같은 뜻만 있지 하늘이나 땅의 뜻 이 있는 말은 없다.
그러니까 이것들은 절대 남이 영역을 침범 하거나 혼동되지 안는다.
여기서 ㅁ 이 분해되어 만들어진 ㄱ 을 가지고 예를 든다.
ㄱ 은 애초 세상, 즉 지표면의 만물을 가리키는 말이 되고 이 ㄱ 의 첫 발음인 '가' 는 가장자리 라는 뜻으로 쓰여진다.
(여기의 자세한 이론은 지면상 생략, 상세한 것은 필자 홈피
http://cafe.daum.net/chunbuinnet 에 ...)
이 가장자리는 강가니 바다 가니 하는 '가' 가 되고 여기서 서고 세우는, 즉 성립을 뜻하는 ㅅ 이 붙으면 가장자리의 뜻이 완전 성립되어 '갓'이 된다.
이 '갓'이 지표상의 물건들, 즉 세상 만물이라는 증거는 세종 후 백년후에 만들어진 한자사전 訓蒙字會 에도 物은 갓物 자로 나온다.
그래서 ㄱ 으로 시작되는 우리말은 거의 이 가장자리의 뜻밖에 없는데 그외 ㄱ 으로 시작됐지만 가장자리의 뜻이 없는 것 같은 말도 결국 그 뿌리를 추적하면 결국 가장자리가 된다.
즉 말은 진화한다. 애초 대략 6 천년전 자연과 더불어 신선들 같이 이심 전심으로 사시던 우리 하느님 시대에는 우리말 이라고는 대략 20 여 개 단어 밖에 되지 안는데 그 증거는 우리말의 뿌리를 추적해 가면 우리말에 같은 발음으로 되는 것들이 많다 (예 雪도 눈, 目도 눈, 風도 바람, 바람을 막는 壁도 바람벽자)
그리고 대략 천 년이 흐른 단군 초기에도 우리 말은 불과 160 여 개 단어밖에 없었다는 증거가 나온다.
이렇게 적은 말을 가지고 사시던 선조들은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말도 늘어나게 되어 지금 우리의 국어사전에는 무려 20 만 어휘가 실려 있다.
또 우리 원시한글 가림토 등의 모음, 즉 ㅏ ㅓ ㅗ ㅜ 은 무시되거나 혼동되기 때문에 우리 말에 감둥이 검둥이가 같은 말이고 봄에 풀이 나면 파릇 파릇 퍼릇 퍼릇 포릇 포릇 푸릇 푸릇 등이 말들이 지금 20 만 어휘의 말을 쓰는 우리에겐는 그 의미가 미묘하게 다를지 모르나 사실 같은 말이다.
그 이유는 모음은 천부인으로 만들어진 글자가 아니기 때문에 ㄱ ㄴ 등 자음처럼 중요하지 안았기 때문이다.
다음은 이 원시한글 자음들이 어떻게 쓰여졌는지 알아 보자.
우선 땅의 성질을 가진 'ㅁ'에서 분해된 ㄱ 이 가장자리란 우리말의 몇 가지 예를 든다.
가 - 강가 바다가 등
* 가시 - 여자 ( 북한의 장인 장모는 가시어머니 가시 아버지, 경상도 방언 가시내)
여자가 가시인 이유는 남자는 주체이고 여자는 객체가 아니고 말이란 강력한 자극에 의하여 만들어 지고 그 강력한 자극이란 바로 생식 행위 인데 우리 말은 거의 생식행위에서 만들어 졌으므로 성기 결합 시 男根은 알맹이 女陰은 그 가장자리. 여기서 가장자리 다음에 ㅅ 이 붙어 가시가 되는 것은 ㅅ 은 서는 뜻의 사람이란 뜻이 붙어 '가장자리'인 사람이 '가시' 이다.
* 가시(나무 가시) - 먼저 여자인 가시와 같은 음 이지만 그 뜻은 전연 다르다. 즉 나무의 가시는 나무 줄기에 뾰죽한것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 즉 ㅅ 은 그 끝이 뾰죽하느므로 서고 솟는 뜻 이외에 뾰죽한뜻도 있다.
* 가지 - 나뭇가지도 원 줄기의 가장자리 ( ㅈ 은 ㅅ 에 '-' 의 이불을 덮어 ㅅ 을 유보 시키는 글자 )
* 가죽 - 가죽 皮 등 ( 몸둥아리의 가장자리)
* 거죽 (물건의 가장자리, 거죽과 가죽은 사실 같은말)
* 겉 - 거죽이 단축된말 (겉은 맞춤법이 잘못된 말, '겆' 이라 해야 함, 겉 이라고 한다면 거죽이 아니라 거툭에 되며 가죽이 아니라 가툭이 됨)
* 겨 - 보리겨 왕겨, 왕겨등 알곡의 껍질
* 겨집 -세종때 까지 쓰던 계집 (女)
* 깁 - 누에 꼬치, 번데기의 가장자리, 비단 ( ㅂ 은 받는 그릇, 싸는 보자기의 뜻이 있음)
이하 생략 (좀더 알려면 필자 홈피)
이상 세종은 우리글자는 만들었으나 우리말은 만들지 못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가장자리 라는 뜻의 말을 할 때는 반드시 ㄱ 을 쓰게 만들었을까?
이는 바로 ㄱ 으로 표시되는 어군(語群)은 가장자리라는 뜻이 이미 세종 이전에 있었기 때문이다.
* 그러나 말은 시대에 따라 진화하면서 그 진화한 말은 처음 말과 다른 뜻을 가진 듯 하지만 그 뿌리를 추적해보면 결국 같은 뜻이 되고 만다.
한가지 예를 든다.
기름 (油)은 가장자리와 전연 관계가 없는 듯 하다.그러나 한번 그 뿌리를 추적해 보자.
가장자리인 ㄱ 으로 시작되는 깃 (巢) 은 새 털이다. 이것도 새 몸통의 가장자리 이다. 그런데 이 깃은 새들의 집으로 진화하여 깃 이라 하여 새가 깃든다 한다. 그러니까 깃은 새 집도 된다. 그런데 이 집은 새 집뿐 아니라 원시에 사람의 여름집도 역시 깃 이었다. (근거문헌 冬卽窟夏卽巢 - 東夷 列傳)
즉 원시 사람은 겨울에는 굴속에서 살았고 여름에는 새들처럼 나뭇가지 사이에 새 깃 처럼 나무를 얽어 살았다는 것인데 이 깃은 혼자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반드시 길(道) 이 있어야 한다. 즉 사냥을 하러 다니건 물을 기르러 다니건...그런데 이 길은 고속도로가 아닌 구불 부불, 꼭 개울물 흐르는 것 같았으므로 흐르는 뜻이 있는 'ㄹ' 이 붙어 '길'이 된다.
그런데 이 길은 짧은 것이 아니다. 매우 길수 밖에 없다. 그래서 여기서 길음, 길다(長) 이라는 말이 생긴다.
다음 사람이건 식물이건 길게 하려면 이 기름 이 필요 하므로 '기름' 이란 말은 기름지다는 기름(油) 가 된 것이니 돌 기름인 석유(石油)가 왜 가장자리 이냐고 따진다면 우선 그 말들의 진화과정을 살펴 봐야 한다.
** 다음 ㄴ ㄷ ㄹ ㅁ ㅂ 은 지면상 생략하고 가림토가 왜 상형문자이며 뜻 글인지를 설명한다.
* 사람 천부인은 △ 이기 때문에 그 모양이 서 있고 또 솟는 모양이며 그 끝이 뾰죽하다.
여기서 ㅅ ㅈ ㅊ 이 나왔다고 했다.
** 서거나 솟는 모양으로 된 말
* 서다,세우다 (立)
* 사람 -
* 사내(丁) - 사내의 원 의미는 장정의 남근을 말하므로 서 있는 것이다.
* 솟다 -
* 숫 - 남근(男根)
* 솟대(山象雄常) - 생명의 핵심인 남근상을 상징하는 서낭나무의 원조로 신단수(神壇樹)
* 소도(蘇塗) - 솟대가 모셔진 성소 솟터
* 서울 - 섯벌 (徐羅伐) > 서벌 > 서블 > 서울
* 새벌(新羅) - 새로 선 벌 (섯벌 > 서라벌)
* 스승, 스님 - 학문등이 서 있는 사람
(이하 생락)
** 한편 우리 원시한글의 자음은 상형문자의 일종이었으므로 그 형상을 닮아서 만들어 진 것이 많다.
* 서까래 - ㅅ 처럼 대들보에 걸친 것
* 쑥 - 그 잎 모양
* 삼 ( 麻, 蔘)- 그 잎 모양
* 손 - 손가락 사이
* 삿 (사타구니) - 다리 사이
(이하 생략 )
** 한편 △ 은 그 끝이 뾰죽 하고 뾰죽 한 것은 가늘고 좁다.
* 솔 - 소나무
* 솔 - 부추
* 솔기 - 옷솔기동 가늘다.
* (오)솔길 - 좁고 가는 길
(이하 생략)
위 ㅅ 으로 된 말들 역시 세종이 만든 말들이 아니다. 그런데 이 말들을 쓸려면 반드시 ㅅ 을 써야 한다.
이 역시 위와 같이 세종 전에 이미 ㅅ 을 써야만 말할 수 있는 ㅅ 의 어군이 있었다는 증거이다.
이상이 가림토의 성질이니 가림토는 물건의 모양을 본따 만들어진 상형문자이며 뜻글이며 그 어군이 있어 ㅅ 같은 물건이나 말을 쓸려면 ㅅ 을 써야 하니 소리 글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가림토는 완전한 소리 글이 아니라 ㅇ ㅁ △ 분야에서 서로를 침범할 수 없는 제한된소리 글 이다.
즉 세종의 한글처럼 아무 소리나 다 적을 수 있는 글자가 아니라 그 어군이 다르면 적을 수 없고 따라서 모화사상에 젖어 중국글자만을 즐겨 쓰던 한자의 발음도 적을 수 없는데 이는 예를 등면 ㅅ 으로 발음 되더라도 事件 史記 司法 등에는 쓸 수 없는 문자이니 한자로 만들어진 용어만을 좋아하는 선비들에게는 완전 무용지물 이었다.
이것도 가람토가 없어진 증거의 하나 이다.
그러니 이것을 지금 세종의 완전한 소리 글과 같이 봐서는 안 된다.
그러나 한편 이 가림토의 ㄱ ㄴ ㄷ ..ㅎ 등에 들어있는 뜻이 왜 중요한가 하면 어느 유물 보다도 더 중요한 우리 말의 뿌리를 찾아 우리 미약한 상고사를 밝히고 그 출처 없이 변질 되가는 현재 우리말과 잘못된 맞춤법 등을 교정 하는 데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상으로 볼 때 위 해부르 님이 가림토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가림토가 어떤 글인지 전연 연구도 해보지 안은 모르는 상태에서 그 비판부터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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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르 님의 다음글
이달에 임금이 몸소 언문 스물 여덟 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는 고전을 모방하였고, 첫소리•가운뎃소리•끝소리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룬다. ...
해부르 님은 가림토가 있었다면 가림토도 훈민정음 처럼 그러했으리라는 가정하에 쓴 글이다.
그러나 위에서 보았듯이 원시 한글은 일종의 상형문자인 뜻글 이었으며 소리 글이기도 한데 그 모음도 혼동되어 지금 한글처럼 체계화 하지 못했다.
즉 뜻 글도 아니고 소리 글도 아니기 때문에 말이 몇 마디 되지 안던 원시에는 이것이 복잡했을 수도 있고 반면에 그림글자인 원시한자는 오히려 간단하고 알아보기 쉽기 때문에 이 한자에 눌리었다고도 보여 지지만 한편 또 한가지 이유는 우리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대 사상이 너무 심하여 지금 소위 학자 교수 작가 언론인들은 영어가 아니면 말을 못하듯이 옛날선비들도 일부러 그간 복잡하게 변한 한자가 아니면 쓰질 안았다고 보여진다.
또 한가지 이유는 지금 학자나 옛날 선비들은 정보의 독점욕 때문에 일반 평민이 모르는 글자를 쓰고 싶어 한다.
그런데 문자의 발달과 보존은 일반 평민이 아니라 선비나 학자에 의하여 전해 진다.
그러니 원시한글이 있다 해도 이는 최만리 상소문이 말하는 촌것들(鄕里)이나 주먹구구 식으로 쓰는 문자로 전락했다.
이렇게 우리것을 천시하여 잡초처럼 버려졌던 원시한글을 세종이 첫소리•가운뎃소리•끝소리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 아무나 쓸 수 있는 완전한 소리글 체계로 재 창조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아무나 쓰게 한 이유 때문에 촌것들(鄕里)이나 쓰는 언문 이라는 말과 여자들만 쓰는 암클 등으로 불리워 오다가 훈민정음이 창제된 지 500 년 후인 6.25 후에나 제대로 쓰는가 했더니 불과 50 년도 되지 안아 다시 영어에 눌리게 됐다.
글자란, 특히 우리 글자란 편리하다고 유행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위에 해부르 님의 글은 이런 것도 전연 연구되지 안은 모르는 상태에서 가볍게 써진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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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글
왜 親制라는 말을 썼을까요? 단순한 모방인데 임금이 친히 지었다고 하는것은 뭔가 이상하군요. 조선시대의 사관들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고 배웠는데.
필자는 세종은 자동차 페차장에서 고물들을 주어무아 새 차를 만들었다고 했다.
지금 우리가 타고 다니는 모든 자동차도 알고보면 달구지 에서 나왔고 지금 해외 여행할 때 우리가 타고 다니는 보잉 747 기도 그 원조는 라이트 형제의 30 초짜리 비행기에서 나왔다.
이 보잉 747기를 만들어 특허를 낼때 특허청에서 "당신들은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를 모방 했으니 특허 감이 아니다" 할텐가?
특허는 바로 모방만이 아닌 다르게 창제 했을 때만 나온다. 따라서 세종도 그 모양만은 원시한글인 가림토를 모방 하였으나 그 소리 쓰는 것이나 글자 조립이 옛 것과 다른 창제를 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위에 글을 쓴 해부르 님은 창제의 뜻 조차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순진하게 글을 쓴 것이다.
다음글
그리고 저 위의 篆이라는 글자는 정말 가림토를 가리킬까요? 그렇다면 가림토라 하지않고 굳이 篆이라 쓴 이유는 무엇일까요? 서예에서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할때의 그 전서(篆書) 와 햇갈리게 해 놓은 이유는 과연 뭘까요? 조금 이상하지만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이 역시 전서 (篆書) 의 뜻도 잘 모르면서 전서 소리를 했다.
전서란 도장 새길 때 쓰는 꼬불 꼬불한 글자체를 말한다.
그 원형은 신지녹도전자(神誌鹿圖篆字)에서 나오고 그것이 발달하여 가림토가 되고 이것이 발달하여 지금 한글이 된다. 그러니까 전서라는 말은 바로 신지녹도전자 에서 나왔고
그러니까 지금 한글도 그 뿌리는 신지녹도 전자이니 가림토가 전서 가 아닐 수 없다.
다음 해부르 님의 글
정인지서문
癸亥冬. 我殿下創制正音二十八字 略揭例義以示之 名曰訓民正音.
象形而字倣古篆 因聲而音犀七調. 三極之義 二氣之妙 莫不該括
以二十八字而轉換無窮 簡而要 精而通. 故智者不終朝而會 愚者可浹旬而學 以是解書 可以知其義. 以是聽訟 可以得其情.
계해년 겨울에 우리 전하께서 비로소 정음 28자를 창제하시고, 간략하게 예의(例義)를 들어 보이시고 이름을 훈민정음이라고 지으셨다.
이 글자는 상형해서 만들되 글자 모양은 고전(古篆)을 본떴고, 소리의 원리를 바탕으로 하였으므로 음은 칠조에 맞고, 삼재의 뜻과 이기(二氣,陰陽)의 묘가 다 포함되지 않은 것이 없다.
여기서 원문의 번역이 약간 잘못됐다.
象形而字倣古篆 이란 그 모양은 옛 전자를 모방했고... 라고 번역해야 한다.
그러나 그건 좋다. 이 말은 분명 세종은 옛 전자의 모양을 본떴다는 말이다.
다음 글들은 위 글과 비슷하고 별 뜻이 없으니 생략한다.
다음글
점점 더 이상해지는데 최만리의 상소도 한 번 살펴보도록 하지요.
최만리의 상소문
我朝自祖宗以來至誠事大 一遵華制 今當同文同軌之時 創作諺文 有駭觀聽 曰 諺文皆本古字 非新字也 則字形雖倣古之篆文 用音合字 盡反於古 實無所據 若流中國 或有非議之者豈不有愧於事大慕華
....이럴 때 혹시 말하기를 언문은 모두 옛글자를 근본으로 삼은 것으로 새로운 자가 아니라고 하신다면 곧 자형(字形)은 비록 옛날의 전문(篆文)을 모방하였더라도 용음(用音)과 합자(合字)가 옛 것과 반대되는 일이며, 실로 근거할 바가 없는 바입니다. 만약 중국에 흘러가서 혹시 옳지 못함을 의논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어찌 사대모화(事大慕華)에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정말 읽고 있자니 사대주의의 극치를 보는 것 같습니다. 기분 나쁘군요. 그렇지만 우리의 목적은 그게 아니니까 일단 넘어가겠습니다. 해석을 자세히 살펴보죠.
이 번역을 그대로 쓸 만 합니다.
다음글
...훈민정음이 모양은 옛 글자인 篆文을 모방했는데 용음(소리를 표현하는 방법)과 합자(초성,중성,종성을 합하여 소리가 이루어 짐을 의미)는 옛 글과 전혀 관계가 없으니 실로 근거가 없다고 세종대왕께 개기고 있습니다.
최만리는 없는 말을 한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필자가 말해온 글자 모양은 옛 전문을 표방 했으나 그 모음 등의 쓰임새나 조합 내용이 가림토와 다르다는 말이 여기서 나타난다. 그런데 이것도 모르는 사람이 최만리가 세종한테 개기고 있다니...
다음글
우리는 가림토를 주장하는 사람들로부터 4200년 전의 가림토는 표음문자이며 문자사상 가장 발달된 형태의 음소문자라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나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있다면 이 역시 가림토 연구를 해보지도 안은 사람이다.
다음글
...당연히 古篆 즉 가림토의 모양이나 음가(音價) 그리고 초.중.종성을 합하여 소리를 형성하는 음소문자의 특질 이런 것들을 모방하여 만들어진 훈민정음은 최만리의 상소에서 이렇게 나타나야 하지 않을까요? ...
언문은 그 모양은 고전을 본떴고 용음과 합자 역시 고전과 일치하니 이는 중국의 한자와 전혀 달라서 이를 이제 사용하려 함은 사대모화에 위배되니 이 어찌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최만리가 제정신이라면 위와 같이 말해야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참 웃기는 말씀이네 정인지 서문에 분명 像形而字倣古篆 즉 " 모양은 옛 글자를 본받았다" 라고 자기도 써 놓고 뭐 지금 음가(音價) 그리고 초.중.종성을 합하여 소리를 형성하는 음소문자의 특질 이런 것들을 모방하여 까지도 본받아야 한다고? 이렇게 술 취한 사람처럼 이랬다 저랬다 해 가지고는 토론 상대가 되질 안는데 ...
다음글
이제까지 살펴보았지만 실록을 쓴 사관이나 정인지나 최만리나 모두 제정신이 아닌 것 같군요. 정말 그럴까요? 물론 그렇지 않다는 것을 다 아시겠지요.
하하 제정신이 아닌 사람은 최만리 등이 아니라 바로 해부르님 같은 분이네...
조선조의 역사기록에 나타난 옛글자인 전(古篆)은 가림토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가림토란 말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록중에서 오직 한군데 1979년 이유립이란 사람이 발표한 환단고기란 책 속에만 존재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 어떤 역사기록에도 그 어떤 유적이나 유물 속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그 글자로 쓰여진 어떠한 유물이나 유적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종이 한 조각 돌 맹이 하나도 없습니다.
먼저 말했듯이 우리는 우리 글은 촌 것들이나 쓰다 없어지고 기록으로 남는 선비들의 한자만만 남았다.
이것을 이렇게 비유해 보자.
지금 우리는 우리 말과 글자를 버리고 지식층일 수록 앞다투어 영어쓰기에 혈안이 되어있다고 했다. 그 결과는 거리의 간판서부터 심지어 아주 어린이도 아파트 열쇠, 자동차 열쇠 하면 몰라도 키 하면 알아 듣는다. 또 갓 젖 떨어진 아이도 통닭이라면 몰라도 치킨 이라면 알아 듣는다.
또 아이들은 하나님 하면 당연히 여호아 인줄 안다.
옛날 선비들은 중국의 요순우탕의 서적은 중요시 했어도 하느님, 단군 서적은 잡서 취급을 했다. 이와 같이 앞으로는 미국 조지워싱턴의 할아비 족보는 시험문제에 나와도 하느님이나 단군 소리는 시험문제는 그만두고 누가 그 이야기만 해도 사이비 신도라고 몰매를 맞는다.
우리는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단기를 썼다. 그러나 지금 단기라 하면 아이들은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른다. 단기를 버리고 서기를 쓰는 이유는 세계화 때문이다. 이건 비단 우리나라 뿐 아니라 온 세계가 그렇다.
따라서 이대로 간다면 영어가 세계 공용문자가 된다는 건 시간 문제다.
이렇게 영어가 세계 공용어에 공용 문자가 된다면 지식층은 고기가 물을 만난 듯이 기뻐할 것이니 우리 말과 글자는 어떻게 되겠는가?
지금 우리말과 글을 쓸려면 한자를 빼면 말이 안 된다. 따라서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 100년..아니 10년 후에도 영어를 빼면 말과 글이 되지 안는다.
그대로 한 500 년만 흘러가 보자. 우리말과 한글은 완전 무식한 촌 것들이나 암암리에 쓰게 될 것이고 천년, 3 천년, 5천 년이 흐르면 그 촌 것들이 썼던 기록은 찾을 수가 없게 된다.
거기다가 우리 풍토는 습기가 많아 타임캡슐에 보관하지 안는 한 왼만한 글자는 모두 사라지게 될 텐데 촌 것들이 쓰던 한글이 보관될 것 같은가?
그때 세종 같은 분이 나타나면 그때는 영어화된 우리말을 적자니 지금 한글로는 되지 안는다.
그래서 한글의 모양은 모방하되 풀어 쓰기 등 그 용음 합자는 달리 해야 한다.
그런 때에 그때 한글의 기록은 이미 없어 졌다.
이것이 바로 가림토가 한글이 되는 과정이고 가림토가 남아 있지 안은 이유 이다.
그러나 그 가림토의 흔적은 미약하나마 지금도 남아 있다.
해부르 님이 유적이나 유물을 찾아 볼 생각도 하지 안은 채 없다고만 하는데 그럼 다음 글과 그림은 어떻게 생각 하는지?
* 부산일보 2003/03/13일자 038면-
13일 경북 경산시 와촌면 강! 학리 명마산(鳴馬山) 중턱에 자리한 바위(가로 1.8m,세로 3.4m)에서 가림토로 추정되는 문자 다수가 새겨진 것이 발견됐다. 이 바위에는 상형문자에 가까운 글꼴이나,ㅅ ㅈ ㄴ ㅠ 등 한글 자모가 뚜렷이 각인돼 있다.
재야 사학자인 예대원(62·경북 경산시 사동)씨는 '훈민정음 창제의 모태이자 기반이 된 것으로 알려진 가림토 문자가 확실하다'고 단언했다.
위 부산일보가 없는 보도를 했다고 할 텐가?
( 신문에는 비석 사진도 있었다. 보기를 희망하면 위 부산일보를 보실 것)
* (산동성 환대(山東省 桓臺)시에서 발굴된 가림토문자(加臨土文字:옛 한글))
- 길림시 송호상 교수의 증언 - "동이민족 논설중 일부"
“산동성 환대(山東省 桓臺)시에서 발굴된 가림토문자{加臨土文字(옛 한글)}는
조선의 한글이 세종대왕의 발명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으며,
지하 6m 깊이에서 발굴된 녹각에 새겨진 ㅅ ㅈ × ㅜ 등의 가림토문자는
C14 측정결과 거금 3850년 전의 것으로 확인하였으니, 환단고기의 '가림토 문자가 4000년 전에 있었다'고 하는 내용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가림토 사진) 이 글자의 핵독은 책에 추가할글과 보관할글 227 번에...
소위 학자라는 분이 발표한 이것들을 모두 위작이라 할 것인가?
* 일본 신사에 있는 신대문자 사진 (KBS 방영)
이 글자들은 분명 KBS 에서 훈민정음 보다 700 년이나 앞서 써진 글자들 이라고 보도 했고 이는 가림토로 추정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KBS 보도도 가짜이고 그렇다면 세종은 일본 문자를 모방하여 한글을 만들었다고 할 텐가?
* 현재 인도 구자라트 지방에 통용되는 부라미 문자 사진 ( 상가 간판. KBS 방영)
이는 현재 인도에 가보면 그대로 이다. 의심이 가면 가 보라. 왜 이런 글자들이 여기에 써 있는지?
* 결국 공룡 하나의 발자국 하나만 이라도 발견되면 이는 공룡이 살았다는 증거이다. 많은 것이 필요 없다. 왜냐하면 하나만 발견되면 앞으로 얼마던지 더 발견될 수 있다는 말이고 따라서 가림토의 흔적이 아직 적긴 하나 이는 한민족이 살던 땅은 사막등과 달라서 유물이 오래가지 안는 지역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 우리 글자가 없었다면 우리 민족은 하느님 이래 세종 때 까지 대략 5 천년 동안 글자 하나 만들 실력이 없어 중국의 한자나 빌려 쓰는 바보 민족 이었었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안는데 과연 중국 대륙을 호령하던 우리 민족이 그렇게 바보였을까?
결론은 서울도 가보지 안은 넘이 남대문 문턱이 소나무네 밤나무네 우기는 것 같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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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세종은 단지 그 원시 글자들의 모양만 본떠 만들었을까?
그 글자가 어떤 말에 쓰이는지 즉 그 글자의 음도 취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아주 아쉬운 것은 세종은 그 글자의 모형과 음은 취했어도 그 글자들이 가지는 개체적 의미는 생각지 못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ㄱ" 은 가, 거, 겨, 구 등등의 말을 쓸 수 있는 글자지만 이들이 가지는 공통적 의미는 생각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ㄱ"은 가장자리(邊)라는 뜻이 있기 때문에 "가"는 "ㄱ"이며 가죽(皮) 또는 거죽 역시 알맹이가 아닌 알맹이의 가장자리이기 때문에 "ㄱ"이고 거죽이기에 알맹이가 아닌 껍질인 겨(왕겨등)등도 "ㄱ"이고 또 알맹이가 없는 구무(구멍 여음)등도 "ㄱ"이다. 이외 "ㄱ"으로 시작되는 모든 말도 이와 같다. 그러므로 "ㄱ" 이 가지는 뜻은 "가장자리" 라는 개체적 의미가 있고 이는 한치의 오차도 없어서 "ㄱ" 으로 발음되는 말은 모두 "가"(邊)에서 진화한 말이고 절대 혼동되지 않는다.
다른 글자도 마찬가지이다.
"ㄴ"은 눞는 뜻이 있어 눈(雪)도 "ㄴ"이고 눈(目)도 "ㄴ" 이며 내(川)도 "ㄴ", 누에(蠶)도 "ㄴ", 누이(性器)도 "ㄴ"....
"ㄷ"의 뜻은 음(陰)이어서 땅(地), 달(月),.딸(女) 등이 모두 "ㄷ"...
"ㅁ"은 높은 땅으로 모가 져 있어 뫼(山), 마님, 못됐다 모질다 등등
"ㅂ"은 받거나 받게 하는 뜻이 있어 밭(田)도 "ㅂ", 비(雨)도 "ㅂ" 이며 사내의 씨를 받는 여음도 "ㅂ" 이다
"ㅅ" 은 남근을 의미하므로 숫(雄)도 "ㅅ" 이며 남근(男根)은 서는 것, 솟은 것을 의미 하기 때문에 여기에 모두 "ㅅ" 을 쓴다.
이외 다른 글자들도 모두 이와 같으며 절대 서로 혼동되거나 남의 글자 영역에 들어가지 않고 다만 거기서 진화했을 뿐이다.
또 원시 한글에서 우리 선조 들은 그 사물의 모양을 본떠 글자를 만들고 사물의 이름을 지었다는 점이다
이는 예를 들면 손(手.가락사이)이나 사태(사타구니) 그리고 쑥이나 삼(蔘)이나 서까래 의 모양이 전부 "ㅅ"같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시 한글을 만든 우리 선조들은 분명 사물의 모양을 본따 글자를 만들었는데 그것도 우리의 말과 동시에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종이 글자를 만들었다 하더라도 그전부터 있던 사물의 이름이나 말은 만들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ㅅ" 같이 생긴 사물의 이름은 세종이 만든 것이 아닌데 왜 꼭 모두 "ㅅ" 만을 써야 그 이름을 부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선조들은 "ㅅ"으로 발음되는 사물의 이름을 그 후 사람인 세종이 만든 "ㅅ" 글자를 보고 만들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원시한글은 애초 만들 때부터 표음문자 이전에 상형문자 이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세종은 원시한글의 글자 모양과 그 음만을 취해 만들었다는 것이고 그 자음들이 갖는 개체적 의미는 생각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만약 세종이 그 글자가 갖는 개체적 의미까지 알았다면 이 중요한 사항이 세종실록이나 다른 문헌에 나타나야 하는데 이에 관한 별도의 언급이 없고 오히려 그 창제원리를 밝히는 훈민정음 해례 본에서 하나를 예로 들면 ㅇ의 형상은 목구멍의 형태(象喉形)라는 것뿐이다.
우리의 뿌리 하님이 주신 천부인의 글자 풀이로 볼 때 ㅇ 은 하늘의 형상을 본떠 만들었고 그 개체적 의미도 하늘이기에 하늘에 관계된 말만 할 때 이 ㅇ 을 쓰고 땅이나 다른 사물을 말할 때는 이 글자를 쓸 수가 없다 이 어찌 겨우 목구멍만 닮았단 말인가?
이는 ㄱ ㄴ ㄷ...ㅎ의 모든 글자가 이와 같다. 그러므로 세종은 마치 잡초처럼 버려진 원시한글을 재 조합해 한글을 만들기는 했으나(체계적으로 정리했지만) 그 글자들이 가지고 있는 개체적 의미는 생각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욕심이다 필자는 "천부인과 천부경"을 연구 하다 보니 고조선 어를 연구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우리 한글 자음에는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것과 그 의미들을 해독하는 데만도 무려 10 여년의 세월이 걸렸으니 세종 한 생애에서 우리 글을 재정리 완성시킨 것 하나만도 대단한데 더 이상 무엇을 바란다는 것은 과욕일 것이다.
이상으로 한글은 원시한글을 본떠서 만들었던 것이 입증되고 세계학계에서 아직도 의문으로 남아 있는, 특히 일본의 신대문자 연구가 샤지요시코가 말했드시 "세계 최고 글자인 한글이 한 명의 국왕 밑에서 단 몇 년만에 만들어진다는 것은 문화와 문자의 역사 규칙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한글은 전부터 일본에 있었던 신대문자(神代文字)를 본떠 만든 것이다" 라고 하는데 여기서 그는 그 신대문자가 바로 원시한글 이란 사실은 모르고 하는 말이지만 그의 말은 맞는 말이고 따라서 세계 학계의 의문이 풀린다.
책 "천부인과 천부경의 비밀"에서는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무려 책의 절반 이상을 할애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의 현재 대통령 갈릴 때마다 바뀌는 맞츰법과 언어의 일부까지도 교정해야 되고 아직도 그 뿌리를 모르는 괜찮다나 아리랑 그리고 지금 어문학 박사들이 풀이한 감쪽같다가 꼿감쪽 같다는 등 엉터리 해설을 바로 잡아야 함은 물론 현재 그 해설이 모호하게 되 있는 우리 헌법이나 민 형사법의 해설까지도 새롭게 해야 하는 중대사이고 또 원 한글의 창제를 600년 전이 아닌 5000년 전 고조선 시대로 끌어올리는 일로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는 문제가 생긴다.
그러므로 이는 우리 어문학을 뿌리째 흔드는 중대한 사건으로 어문학자 들의 많은 연구를 요한다.
* 천부경으로 만든 우리의 숫자 먼저 설명한것을 주요하니 다시 한번 말한다.
우리가 지금 세고 있는 "하나 둘 셋 ...열" 의 숫자는 숫자이기 이전에 하나의 경문 이라고 했다.
즉 지금으로 부터 대략 5-6 천년전 신석기 문명이 끝나고 청동기 문명이 시직될 무렵... 지금의 비이칼호 부근은 사슴이 뛰어 노는 따스한 날씨였음이 밝혀졌다.
하나님(桓因)은 개국을 하려는 그 아드님 환웅에게...아니 우리 한민족에게 천부인 세 개를 주시며 이 천부인(天符印)이 무엇이며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교훈을 내려 주셨는데 이것이 바로 천부경(天符經)이다.
이 천부경을 환웅의 신하 신지가 글자를 만들어 바위에 새겨 놓았고 그후 대락 4-5천년이 지난 신라 말 어문학의 성자인 고운 최치원은 그 신지녹도전자를 보고 一始無始一로 시작하여 一始無終一로 끝나는 한문 81자로 번역 하고 다시 문서첩으로 만들어 놓는데 이 최치원의 81자는 하느님 말씀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 진짜 하느님 말씀인 "하나 둘 셋 ...열" 의 해설서 이며 이것이 숫자 이외에 진짜천부경 이라는 것은 당시만 해도 최치원 이외에는 아무도 몰랐던 것으로 본다.
최치원 의 천부경 81자는 그후 수만은 사람들이 그 뜻을 풀려 하였으나 아무도 그 81자 의 뜻을 풀지 못하였으니 그 이유는 그 81자가 한자로 쓰여져 있다 하여 우리말이 아닌 한자와 숫자로만 풀려 했기 때문인 것이다. 즉 한자의 一 二 三을 단순하게 하나 둘 셋 이라고만 풀려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 둘 셋 등 우리 숫자는 숫자이기 전에 우리말로 다른 뜻이 있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한번 "하나 둘 셋"의 뜻만을 소개한다.
하나는 "한" 으로써 우리 한민족이라는 "한" 이며 이 "한"의 뜻은 정신적이며 생명의 빛 즉 하느님이어서 한은 바로 밝다, 만다, 크다 이고 그래서 한길이 큰길이며 대전이 한밭이다.
"둘"은 음달 양달 하는 달과 같은 땅, 즉 물질로써 "두른다" 라는 뜻이 있고
"셋"은 사람이라는 뜻이 있어서 결국 "하나 둘 셋"은 " 정신이 물질에 둘리어 사람을 만들고...즉 하늘과 땅이 사람을 만들었다는 것으로 우주의 주인을 사람으로 보는 사상이다.
그러니까 땅 즉 물질(육신)만 있고 정신(하늘)이 없으면 이는 시체 이고 정신만 있고 육신이 없다면 이는 귀신이라는 말로 사람이란 정신을 육신이 두르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며 따라서 하늘과 땅 이 존재하는 이유는 오직 사람을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그래서 사람이 우주의 주인이고 사람 가운데는 하늘과 땅이 들어 있어서 나도 하늘과 땅이요 너도 하늘과 땅이라는 사상이 바로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사상이다.
다시 말하면 여호아를 우주의 주인으로 하고 인간은 그 종으로 보는 기독교의 신본주의(神本主義)나 일체유심소조(一切唯心所造)라 고하는 불교의 심본주의(心本主義)와 다른 인본주의(人本主義)사상이다.
그러므로 하나 둘 셋...열의 뜻은 바로 나와 너를 동시에 살릴 수 있는 홍익인간의 핵심으로써 물질문명에 인성이 죽어가는 현대인들...세계의 현대인들을 살릴 수 있는 인류의 마지막 경문인 것이다.
그러니까 절에 가서 반야심경을 외거나 교회에 가서 주기도문을 외는 것도 좋지만 우선 그전에 하나 둘 셋 ....열. 우리의 숫자를 세어보고 우리의 하느님이 주신 천부경을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자신과 남이 얼마나 큰 하늘과 땅의 은혜이며 사람이 얼마나 귀중한 존재임을 알게 되고 따라서 자기 수양과 기도의 효과가 배가 됨을 알 것이다.
책 "천부인과 천분경의 비밀" 에서는 천부인의 원리를 완전 해독 하여 우리 말과 한글의 창제원리를 밝히다 보니 우리의 숫자 "하나 둘 셋 ....열"의 의미를 완전 해석,
이것이 그냥 숫자 이외에 하느님의 구전지서인 천부경 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 이상으로 대략적 신지전자 해독 강의를 마친다.
출처 : | 천부인과 천부경의 비밀 | 글쓴이 : 우리 원글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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