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신지녹도 전자 해독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이래 글들의 참고 자료 이다)
21.신지녹도문자 해독 후기 (베일에 가려진 우리 상고사를 추정한다.)
*** 베일에 가려진 우리 상고사를 추정한다. * 우리의 고대 역사는 중국에 의하여...또 족하인 단종에게 왕위를 찬탈하고 중국으로 부터 승인을 받아야 하는 세조와 그뒤 오직 치마폭에 휩싸였던 허수아비왕 예종 성종에 이어지는 구서령(救書令) 에 의하여 쓸만한 우리의 고대 역사가 모조리 불태워 지고 그나마 남았던 것은 일제의 침략으로 완전 소실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러지 안았다 하더라도 우리 상고사는 부실 할 수 밖에 없다. 그 이유는 우리 선비들이 인정하고 써 왔던 글자는 삼국초 중국인들이 그들 말과 마추어 발전된 한자가 들어온 때 부터였고 종이도 고구려 중기나 되서야 중국으로 부터 들어왔기 때문에 그 전의 우리 기록은 그저 죽간에 써진 가림토나 구전되 오는 말들 뿐이었을 것이다. 이 죽간의 가림토나 구전은 다시 한자로 쓰는 과정에서 왜곡 될 수 밖에 없고 글 쓰는이와 의사가 맞지 안으면 자연 가필과 윤색이 되기 때문이다. 이 미약한 우리 상고사를 다시 복원하자면 그나마 남아있는 고전과 유물, 그리고 책 ' 책 천부인과 천부경의 비밀' 에서 제시한 ㄱ ㄴ ㄷ ..ㅎ 속의 뜻으로 우리 뿌리말을 찾아야 한다. 이 베일에 가려진 우리 상고사는 여러 문헌을 통하여 독자들과 다 함께 추정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 이 글을 쓰는 취지 이다. 여기서 환단고기나 삼국유사 등의 글을 인용 하는데 이들의 책들은 매우 귀중한 내용도 많지만 여러 차례의 필사과정(筆寫課程)을 통하여 조상을 위대하게 보려는 가필(加筆)도 너무 심하다고 생각 되므로 오히려 원전을 해치는 부분이 많아 의심스러운 부분은 인용하질 않았다. 또 지금 중국의 청동기 에서 발견되는 금문(金文)과도 비교 분석된다. .............................................................................................................................. * 지금으로 부터 대략 5-6천년전...신석기 문명이 끝나고 청동기 문명이 시작될 무렵 지금 바이칼호 부근은 지금과는 달리 매우 온화한 날씨였슴이 맘모스등 유해로 확인 되는데.. 여기에는 한 무리의 몽골리안 부족이 오랜 유랑생활을 멈추고 드디어 유목과 농사일을 시작 하게 되었다. 이 무리의 지도자는 그 정신세계가 우주의 섭리와 환하에 통하여 그를 환한님 이라 불렀고 이 환한님이 > 화나님 > 하나님 > 으로 불리우면서 우리 애국가의 하느님이 되었다. 한편 하느님은 그냥 "환님" 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나중에 한자가 생기자 이를 환인(桓因)이라고 기록 되기도 했다. 오직 자연의 섭리대로 에덴 동산 같은 곳에서 살던 환한 부족들은 인구가 늘면서 먹거리 등 문제가 발생하자 그 무리 아드님(庶子 - 결혼 제도가 없었으니 첩의 아들이 아닌 그냥 환한 무리의 아들...) (신지녹도문자 해독 풀이 참조) 환숫님(나중에 한자가 생기자 桓雄으로 기록) 께서는 하느님으로 부터 천부인(天符印)이라는 보물 세 개를 받아 가지고 3천명의 백성과 함께 지금 대략 고구려나 발해 등의 요동 땅에 내려오셔서 마치 짐승과 같던 그 땅 토착민인 곰족을 천부인을 상징하는 마들과 쑥으로 동굴 속에서 풍토병을 치료하고 하늘과 땅과 사람은 일체라는 사상을 가리킨 다음 그들과 피를 섞고 동화하여 우리 민족을 세우신다. 그리하여 곰족 여인과의 사이에서 밝달(倍達로 전음)나라를 세우실 밝달임금을 낳으시는데 이 밝달 임금은 그후 한자가 생기자 단군( 檀君)으로 기록된다. 즉 천신족(天神族)인 환숫께서는 지신족(地神族) 인 곰 여인과 인신(人神)인 밝달임금을 낳으셨다는 이야기 이다. 밝달 임금님 때만 해도 결혼제도는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무리들이나 형제 숙질 간들이 역시 자매나 고모와 질녀와의 집단 결혼 제도 였고 그들은 산과 골짜기에 두루 퍼져 살며 옷은 누에를 키우기 시작한 시기 였으니 특수층 말고는 풀이나 나뭇잎 을 걸친것에 불과 했고 신발도 특수층 아니면 맨발로 다녔다. 근거 문헌 檀君世記民遍居山谷草衣跣足 다음 환숫님 께서는 하느님의 선물 천부인(天符印)으로 우리 말과 우리 한글을 만들 기초를 세우시고 그 아드님인 밝달 임금님께 전수 하시는데... 밝달임금(檀君)께서는 우선 그 천부인을 사용하여 삼한(三韓)을 만드시는데 이 천부인 이란 원래 우리 한민족 이라는 "한" 이고 이를 쪼개면 天地人 세 개가 되나 합치면 원래대로 "한"이 되므로 ("한"의 뜻은 신지녹도전자 해독과 천부경 풀이 "하나의 뜻풀이" 4.를 참조, 一析三劇無盡本) 이것이 바로 하님의 뜻을 받드는 일이었다. 이렇게 통치권을 독식하지 않고 분배 하였던 것은 그래야만 하느님의 홍익인간의 뜻이 널리 백성에게 골고루 펼쳐질 것이니 이것이 바로 홍익인간이 두번재 이 지상에 펼쳐진 위대한 모습이다. 이 나누어진 삼한(三韓)은 밝한, 마한, 선한 인데 이는 나중에 한자가 들어오면서 변한(卞韓) 마한(馬韓) 진한(秦韓) 등으로 기록 된다. (단재 신채호는 변한을 "불한" 이라고 해야 한다고 했는데 원래 고어에서 밝과 붉 은 같은 말이나 "붉"은 빨간색 즉 赤色이 되고 여기서 변형된 "불"은 불(火)가 연상되어 원래 "환한민족" , "밝은 민족" 이라는 "밝"의 의미가 변질 되기 때문이다) 그럼 여기서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가를 설명 한다. * 밝한 - 먼저 "밝"은 하늘의 주인은 태양 이니 이는 밝은 것이고 "한"은 먼저 말한 천부인 세개를 합친 "한"이며 우리 한민족의 "한" 인데 ... 이 "밝"은 한편"붉" 이라도 발음된다. 이는 우리 원시 말은 몇 마디 되지 않는데다가...모음이 혼동 되어... 예를 들면 검둥이와 감둥이가 같고 파랏 파랏 퍼릇 퍼릇 포릇 포릇 푸릇 푸릇등이 같은 뜻의 말이드시 원시어에는 모음이 혼동 되므로 ... 위 "밝다" 와 "붉다"가 같은 말이다. 예 : 지금 동대문 시장이 밝고개 였는데 이 밝이 붉다로도 쓰여 지므로 한자로는 적현(赤峴)이라고 전음 된것과 같이... 한편 원시 우리말을 그 몇 천년 후에 한자가 생기자 한자로 기록하고 이 기록을 다시 몇 번씩이나 필사(筆寫)한것이 현재 우리가 보는 한자 기록인데 이 과정에서 밝한, 또는 붉한이 변한(卞韓), 변한(弁韓)또는 번한(番韓)으로 기록 된다. 그런데 이 밝한이 애초 있었던 자리는 지금 중국의 산동반도 부근 에서 지금의 만리장성 까지로 추정 된다. 그러나 후에 나라가 망하자 그 유민들이 배를 타고 한반도로 건너와 세운 나라가 백제(百濟)로 본다. 이런 추정을 하는 이유는 아래에서 상세히 말하겠지만 삼국유사 최치원의 말처럼 백제의 전신은 변한(卞韓)이고 또 백제(百濟)라는 이름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즉 원시 한자에 백(百)은 바로 백(白) 이었고 白은 힌것 즉 태양으로 "밝"과 같은 뜻이고 濟는 건널제 이다. 그러니까 백제(白濟)란 힌것이 ...밝은 것이 건너왔다는 뜻이다. * 마한 - 두 번째 천부인 즉 높은 땅을 뜻하는 "ㅁ" 은 '말' 을 사징하는데 말 아란 위말 아랫 말 하는 마을도 되지만 마라, 즉 머리도 된다. 이 말한을 한자로 쓰는 과정에서 말을 뜻하는 마한(馬韓)이 된 것이고 그 영토는 고구려가 있던 요동 반도의 동쪽으로 본다. 추정 근거는 아래에 있다. * 선한 - 먼저 말했듯이 "선"은 서있는 동물 즉 사람을 의미 하므로 선한 인데 이를 한자로 기록 하면서 신한(辰韓), 진한(秦韓) 이 되고 이 진(秦)은 또 글자가 비슷하니 주(奏)가 되기도 하니 辰韓이 奏辰이 되기고도 하여 후세 인들이 하느님이 "주신"나라가 우리 나라라고 헛소리도 한다. 이 선한이 있던 자리는 지금의 만리 장성으로 부터 동쪽 고구려 변방까지... * 이상 삼한이 천지인 원방각 즉 "ㅇ", "ㅁ", "△" 으로 만들어 졌다는 근거 사진 즉 밝한, 붉한 (변한)의 유민들이 세운 백제왕 무덤에서는 다음과 같은 불꽃무늬의 왕관과 하늘과 태양을 상징하는 동경 만이 나온다. * 불꽃무늬 백제 금관 사진
백제(百濟) 국보(國寶) 161호 * 마한의 유민이 세운 고구려 왕능에서 보이는 천마도
사람 천부인 △이 비파형 동검이나 삼지창으로 변형되어 제례 의식이나 실 생활에 사용되고 있었다고 추정하는 이유는 환웅님의 고향이고 하느님(桓因)이 사시던 현재 바이칼호 부근의 하느님 부족의 유전학상 직계 손인(우리 민족은 곰 부족과 혼혈되다)에벤키족 역사박물관에 그들의 조상이 입었던 옷과 장신구가 있는데 그 모자에 山에 자루가 달린, 즉 삼지창 모형의 사슴뿔 장식이 있고 (사진 추후 계제) 또 신라의 벼슬 중에 가장 높은 벼슬 즉 영의정이 각간(角干)인데 이것을 우리말로 하면 角은 뿔 이고 干은 "큰" 자를 한자로 쓸수 없으니까 干을 빌린 것이다, 이는 신라의 왕 마립간(麻立干) 도 마찬 가지 인데 여기서 마립은 마리 즉 머리를 말하고 간은 큰 것으로 큰 우두머리란 뜻이며 징기그칸의 칸도 역시 우리말 큰 이다. 그러니까 각간의 우리말은 "뿔큰" 이고 이 말은 지금까지 남아 주먹을 뿔큰 쥐었다 할때 쓰기도 한다. 그래서 각간의 관모는 山자 모양의 큰 뿔 하나가 달린 모자를 썻고 왕은 山자 형의 뿔이 여러 개 겹친 出자 모양의 왕관을 썻다.
청동검(靑銅劍) *** 여기서 3 , 4, 5 가 고조선 유적지에서 많이 출토되는 "비파형 청동검" 이다. 그러니까 불꽃무늬 왕관이나 동경은 꼭 변한(卞韓)의 유민인 백제의 왕릉에서만 출토되고 천마도는 마한(馬韓)의 유민인 고구려 왕릉에서만 나오며 위 삼지창 모양의 왕관은 유독 신라왕관에서만 나오는 이유는 바로 이들이 밝한 마한 선한 의 유민 이었다는 것과 애초 밝달임금은 원방각 천부인 으로 삼한을 만들었다는 것을 입증 하고 있다. 또 밝달 임금 즉 단군의 진한(秦韓)이 선다(立)는 "선한" 이었다는 증거는 우선 檀자를 옥편에서 찾아 보면 이는 밝달나무 단 자 이면서도 반절음 으로 時戰切이라 하여 "선"의 발음도 있다. 또 단우(禪于)라 적어놓고 선우라 읽는 흉노족(중국인이 호칭하는 우리 환족)왕의 호칭이나 禪의 古字가 檀인점, 그리고 지금 대종교의 예배 의식을 단의식(檀儀式)이라고 써놓고는 읽기는 "선의식" 이라고 읽는 점으로 보아 단군이 다스리던 나라는 분명 우리말인 "선한" 일 것이고 이 "선"은 먼저 말했드시 당시 한자가 제대로 성립 되기 전이니 우리말 "일어 선다"의 선(立)일 것이다. * 이상과 같이 밝달임금께서 삼한으로 나누어 통치 하셨다는 증거는 다음 기록에서도 증명 된다. * 桓檀古記 太白逸史 三韓菅境本記 ...遂與三韓分土而治辰韓天王自爲也 立都阿斯達開國號朝鮮 是爲一世檀君... (환단고기 태백일사 삼한관경 본기 ...드디어 삼한으로 나누시니 진한(秦韓)은 천왕께서 스스로 다스리 시며 도읍을 아사달에 세우시고 국호를 조선이라 하시니 이를 일세 단군이라 한다.) * 여기서 단군이 변한(卞韓, 番韓))의 왕을 선발하여 정권을 맛기는 과정이 문헌에 있다. 太白逸史/ 三韓管境本記蚩頭男蚩尤天王之後也以勇智著聞於世檀君乃召見而奇之卽拜爲番韓兼 帶監虞之政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치두남은 치우천왕의 후손으로 지혜와 용기가 뛰어나 세상에 알려 졌다. 단군은 곧 불러 보시더니 이를 기이하게 여기고 곧 그를 번한(番韓)으로 임명하고 겸직하여 우(虞)의 정치를 감독하게 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매우 중요한 대목이 있으니 유의해볼 필요가 이다. 즉 제 일대 밝달임금께서 다스린 천제국은 하늘의 태양을 상징하는 밝한 즉 변한(卞韓) 일것이고 나머지 두 한은 그 제후국 일 것 같은데 밝달천제가 즉접 다스린 나라는 선한 즉 진한 이다. 이는 다음 글귀를 보자 天一 地一 太一中太一最上貴 ( 천일 지일 태일중 태일이 최 상귀) 여기서 태일(太一)은 인일(人一)과 같다. 설문에 의하면 大字象人形 즉 大자는 사람이 양팔과 양다리를 펼치고 있는 모습이고 太자는 그 생식기까지 붙어 있으니 太는 곧 사람 이다. 그러니까 하늘과 땅과 사람 중에 사람이 가장 귀하다는 사상은 우리의 철학이 얼마나 인본(人本) 적인것을 말해주는가를 생각 하게 된다. 즉 하느님이 천부인 세 개와 함께 내리셨던 교훈 천부경을 신지녹도 문자를 해독해 본바에 의하면 우리의 숫자 하나 둘 셋 ...열 이고 최치원은 이것을 해독하여 다시 시첩( 詩帖)으로 만든 것인데 (신지녹도문자 해독 참조) 이 하나 둘 셋은 바로 최치원이 그의 81자 시첩에서 말했듯이 하늘과 땅이 사람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하늘과 땅 즉 우주의 정신과 물질의 목적은 오직 사람을 만들기 위함 이었다는 것으로 실로 인본주의의 정수 이다. 즉 기독교는 사람은 신의 피조물로써 신의 종에 불과한 신본주의(神本主義)이고 불교는 유심소조(唯心所造)라 하여 오직 마음만이 우주의 주체 인데 반하여 우리 하느님 사상은 사람이 하늘과 땅의 목적이므로 인본주의 이고 따라서 天地人중에 사람이 가장 귀한 것이다. 이는 사람에게 하늘인 정신만 있고 물질인 육신이 없다면 이는 귀신에 불과 하고 정신이 없고 물질인 육신만 있다면 이는 시체에 불과 하다. 따라서 이 인본주의 사상을 전수 받아 홍익인간을 펼치신 환숫님이나 이 인본주의 사상대로 삼한을 나누시되 선한을 우선 천제국으로 택하신 밝달임금의 뜻을 짐작할수 있는 것이다. 이상 천부인 세 개로 삼한을 만들었다는 근거를 제시 했다. * 따라서 이 초대 밝달임금의 위대한 뜻은 그 대로 이어져 3세 단군인 가륵(嘉勒)때는 우리의 위대한 원시한글 가림토(加臨多)를 만드는데 이것이 제 3차 홍익인간이 펼쳐진 위대한 모습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천 년이 흐른 다음 제 22대 색불루(索弗婁)때 와서는 단군천제가 다스리던 선한도 통치자가 따로 있었으며 이 삼한들이 잘 살지 못하거나 말을 잘 듣지 않는 고로 천제 깨서는 이를 도와주고 무마 시킨다. * 근거 문헌 * 檀君世記 22世 檀君 索弗婁在位 48年 ...遷卞民于淮垈之地 使之畜農國威大振... (단군세기 22세 단군 색불루 재위 48년 ...변한의 백성들을 회대의 땅으로 옮겨 그들로 하여금 가축을 기르고 농사를 짖게 하니 나라의 위세가 떨쳤다....) 그러나 이 삼한들은 그대로 말을 안듣고 문제가 많으므로 이번엔 아예 정복해버리고 제도를 크게 개선 한다. * 근거 문헌 * 三韓管境本記 馬韓世家 下 ...檀君索弗婁承父功手握重兵辰韓自潰二韓亦末一勝而敗滅... (삼한관경본기 마한세가 하 ...단군색불루가 아버지께서 이루어 놓으신 힘을 계승하여 대병을 장악 하시니 진한은 스스로 무너졌고 나머지 두 한도 이길수 없어 패해 버렸다...) * 馬韓世家 下 ...檀君索弗婁初幷三韓大改國制 (마한세가 하 단군 색불루는 처음 삼하을 합치더니 나라의 제도를 크게 개혁 하였다.) * 다시 세월이 흘러 결국 번한의 왕 준(準)때 와서는 위만(魏滿)에게 공격을 당해 위만조선(魏滿朝鮮)이 되는 과정을 보자 * 여기에 대한 근거 문헌 * 箕丕薨庚辰子箕準立丁未爲流賊衛滿所誘敗遂入海而不還 (番韓世家下) (기비(箕丕)가 죽으니 아들 기준(箕準)이 즉위 했는데 정미년(BC146)에 떠돌이 도적 위만의 유혹에 빠져 패하고 마침내 바다로 들어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과연 바다로 빠져 죽었을까? 힌것이 건넜다는 백제를 상기하자. 그러니까 변한 왕 기준은 위만의 공격을 받아 나라가 망하자 그 측근들과 한반도로 건너 오고 그 유민들일 부는 각기 헤터져 살다가 결국 연(燕)나라 제(齊)라 등 중국의 춘추열국시대 (春秋列國時代)로 흘러가게 되었고 결국 진시황(秦始皇)의 진(秦) 나라 백성이 되더니 결국 진나라도 망하자 각자 헤터져 한반도로 오게 된 것으로 본다. * 이 근거 기록을 이번엔 삼국 유사 에서 보자 三國遺史 馬韓 * 魏志云 魏(衛)滿擊朝鮮朝鮮王準率宮人左右越海而南至韓地 開國號馬韓 甄萱 上太祖書云昔馬韓先起 赫世勃興 於是百濟開國於金馬山 崔致遠云 馬韓麗也 辰韓羅也 (삼국유사 마한) 위지(魏志)에 이런 말이 있다. 위만이 조선(번한)을 치니 조선왕 준(箕準)은 궁인과 좌우에서 모시는 가까운 신하들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갔다. 남쪽으로 가 한의 땅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고 마한이라 했다. 견훤이 고려태조에게 올린 글에는 옛적에 마한이 먼저 일어나고 혁거세가 일어나더니 이에 백제는 金馬山에서 나라를 세웠다고 했다. 최치원(崔致遠)은 마한은 고구려고 진한은 신라라 했다.) * 위 글에서 準은 바로 번한 (변한)의 기준(箕準)일 것이고 그렇다면 바다를 건너가 나라는 세운 나라는 마한인 고구려가 아니라 백제(白濟 > 百濟) 일 것이다. ** 이번엔 환단고기 단군 세기에서 조선( 선한 천제국) 이 망한 과정을 보자 第 47世 檀君 古列加 ...系亥五十八年제仁柔不斷令多不行諸將特勇禍亂頻起國用不수民氣益衰三月祭千之夕乃與五加議曰 昔我列聖極垂統種德廣遠永世爲法令王道衰微諸汗爭强惟朕凉德不能理無策招撫百姓離散惟爾五加 擇賢以薦大開獄門放還死囚以下諸부虜翌日遂棄位入算修道登仙於是五加共治國事六年 先是宗室大解慕漱密與須臾約襲據故都白岳山稱爲天王郞四境之內皆爲聽命於是封諸將降須臾侯箕 丕爲番朝鮮王往守上下雲障蓋北夫餘之興始此而高句麗乃解慕漱之生鄕也故亦稱高句麗也. (제 47세단군 고열가 계해58년BC238) (계해58년 단제께서는 어질고 순하기만 하고 결단력이 없었으니 명령을 여러 번 내렸어도 이행되지 않는 일이 많았고 여러 장수들은 용맹만을 믿고 쉽게 난동을 부리기 때문에 나라살림은 날이 갈수록 쇠락해 졌다. 삼월 제천의식이 있던 날 저녁 마침내 오가(五加- 벼슬이름)들과 상의하여 가로데 "옛 우리 선조 열성들 께서는 나라를 여시고 대통을 이어 가실 때 그 덕이 넓고 멀리까지 미친 고로 오랫동안 잘 다스렸으나 이제 천제의 왕도는 쇠약하여 여러 왕들이 다투고 있도다. 짐은 덕이 없고 겁이 많아 능히 다스리지 못하니 현명한 이를 불러서 무마시킬 방책도 없고 백성들도 흩어지니 생각건대 그대들 오가 들이여 어질고 좋은 사람을 찾아 추대하도록 하라 " 하시고 옥문을 크게 열어 사형수 이하 모든 죄수들을 석방토록 하였다. 다음날 마침내 제위를 버리시고 입산수도 하시어 신선이 되시니 이에 오가가 6년간이나 국사를 함께 돌보았다. 이에 앞서 종실의 대 해모수는 몰래 수유(須臾)와 약속하고 옛 서울 백악산을 습격하여 점령하고는 자칭 천왕낭 (天王郎)이라 했다. 수유 후(侯, 제후)가 기비(箕丕)를 권하여 번조선(番朝鮮- 番韓) 왕으로 삼고 나아가 상하의 운장을 지키게 하였다. 무릇 북부여의 시작이 이에서 비롯되니 고구려는 해모수의 태어난 고향 이기에 역시 고구려라 칭한다. * 다음은 북한 저명한 학자의 말이다. 서울=연합뉴스) 김두환 기자= 북한의 한 역사학자가 역사적 사실 등을 들어 고 △건국단계 △황제국으로서 대국의 지위 △대외관계 자주권 고수 등 세 부문으로 나눠 설명 했다. * 이상의 글들을 보면 고구려의 전신인 북부여나 고구려는 중국에게 망하여 중국에 흡수 되고 또 진나라의 망한 유민이 흘러 들어와 세운 나라도 아니라는 이야기 이다. 즉 진나라가 세워진 것은 BC 221 년이고 고구려가 세워진것은 BC277으로 56년이나 빠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아주 중요한것은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은 이유는 흉노족( 匈奴族)을 막기 위함 이었는데 이 흉노족을 우리 사학을 연구 하는 분들조차 아주 흉악(凶惡)한 어떤 족속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당시 통일된 진나라를 동쪽에서 위협할만한 세력이란 우리 삼한중의 하나인 마한 즉 환민족(桓民族) 이었을 가능성 밖에 없고 이 "환"이 흉(匈)으로 변했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는 지금 헝가리의 선조가 "훈족" 이라는 것도 마찬가지 이다. 그러니까 애초 환한민족 이라는 환족(桓族)이 중국인들의 기록에 의해서 흉족(匈族) 도 되고 헝가리의 "훈족"도 된 것이라고 본다.) * 이상 마한의 기록은 초대 단군천제로부터 대략 2300년...그리고 22세 색불루 천제로 부터 대략 1000년후 조선이 북부여를 통하여 고구려로 이어지는 기록인데 그렇다면 우리 민족은 고구려 후 발해때 까지는 그 광활한 요동땅을 잃지 않았다는 이야기 이다. 다만 고구려 변방으로부터 만리장성 까지 있던 진한이나 ...그리고 만리장성 으로부터 산동반도 에 까지 있었던 변한(卞韓, 番韓) 은 중국 기록과 같이 춘추제국과 진나라 진시황에게 흡수되어 배를 타고 한반도로 건너와 백제가 되거나 신라가 됬을수도 있다. 이는 앞으로 더 연구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 다음 다시 삼국유사 * 卞韓 百濟 新羅始祖赫居世卽位十九年任午 卞韓人以國來降 新舊唐書云 卞韓苗裔在樂浪之地 後漢書云卞韓在南 馬韓在西 辰韓在東 崔致遠云 卞韓百濟也 (변한 백제 - 또는 남부여 라고도 하니 곧 사비성이다.) 신라시조 혁거세19년 임오 (BC 39) 卞韓(弁韓)사람이 나라를 들어와서 황복하였다. 신당서(新唐書), 구당서(舊唐書)에는 변한의 후손들이 낙랑땅에 있었다.하고 후한서(後漢書)에는 변한은 남쪽에 있고 마한은 서쪽에 있고 진한은 동쪽에 있었다고 햇으며 최치원은 변한은 백제라 했다. * 三國遺史 秦韓 *後漢書云秦韓耆老自言秦之亡人內적韓國而馬韓割東界地以與地 相呼爲徒有似秦語故或名之爲秦韓 (삼국유사 진한(秦韓) (후한서에 이런 말이 있다.진한의 원로들은 스스로 말하길 진(秦)에서 망명한 이들이 한국에 오니 마한이 동쪽의 땅을 베어주어 그들에게 주고 서로 부르기를 도(徒)라 하며 진나라 말에 가까운 까닭으로 혹은 진한(秦韓)이라고 했다" 고 한다.) * 중국의 기록도 이렇고 이것은 금문(金文)으로 기록 되었다는 것인데 이 금문의 해독은 중국의 금문 전문학자 락빈기 가 번역해 썼다는 것이다. * 우선 금문이 무엇인가 부터 말한다. 금문이란 청동기 시절 원시 상형문자를 청동기 그릇이나 특히 사직에서 제사 때 쓰는 술잔, 그리고 청동 검이나 농기구 등에 새겨진 그림 문자 이다. 이 그림 글자들은 애초 역사를 적으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 누가 사직에 제사 지내던 것을 누가 이어 받아 제사를 지냈다는 것 등을 술잔에 그려 놓은 그림인데 이 그림 글자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한자가 되고 역사가 되므로 신화에 불과한 상고사에 실증이 될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자료 이다. 그러나 이 수많은 상형 문자들은 그 해석이 구구 각각 이어서 난해한 글자들인데 이 난해한 이유 중에서 하나가 바로 이 상형문자를 기록한 청동기 들은 주로 고조선의 옛터에서 나왔고 또 중국어로 해독 하면 말의 성립이 되지 않으므로 그 해독을 중국어가 아닌 우리 말로 풀어야 풀리는 것이다. 즉 이 상형문자를 중국의 역사를 통하여 그간 공자님을 비롯한 어문학자들이 해독해 보고 풀이해 놓았으나 잘 풀리지 않고 그나마 푼 것도 잘못 되었다는 것을 바로 얼마 전에 작고한 낙빈기 선생인데 그분의 해독마저 만 여건의 금석문 중 불과 천여 개에 불과 하고 해독된 글자도 그 뜻이 애매 모호 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이 금문 해석을 우리말로 푼 것이 아니라 한문의 상식으로 풀었는데 이는 예를 들면 "ㅣ" 이 하늘이며 생명이며 사람 이며 남근 이라는 것 까지는 좋은데 그래서 남근이 우리말로 "자지" 가 되었다는... 즉 순수한 우리말이 한자의 뜻인 "스스로 갖는 것" 이라는 "自持" 가 되었다는 것이며 "ㅡ" 이 땅이며 누이인 여자 라는 것은 좋은데 이것을 결국은 우리말 保持등의 말을 만든 근거를 말하고 또 "ㅡ" 이 누에 인 것은 좋은데 격국 龍자가 되기도 하고 우리 삼신할미가 된다는 것 등은 삼신할미의 뜻을 완전히 착각하는 것이고 특히 우리말 "앗달" 이 한자 표기로 阿斯達이 되고 "앗선"이 朝鮮이 되는 과정을 우리말의 뜻풀이로 하지 않고 한자의 뜻풀이로 한 금문 해독은 정말로 웃기는 뚱딴지 캐먹는 일이라고 생각 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금문에 나타나는 기록을 한자 뜻이 아닌 우리말로 풀어보면 이는 신비에 가렸던 우리 상고사의 실증이 되기도 한다. 필자가 보기로는 위 남녀 생식기 이름이 우리 말로 된 것은 한자의 뜻 때문이 아니며 천부인으로 만든 우리 말과 글자 때문이고 (책 "ㅅ, ㅈ, ㅂ "부 상세 설명) 그래서 우리말 "앗선"朝鮮이 된 것은 이 홈페지에서도 수없이 밝혀 놓았다. 그런데 이 금문의 해석에서 무엇보다도 아주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이는 1796년 정조 20년 경주에서 밭 갈던 농부가 발견한 문무대왕릉 비분 내용이다. 문무대왕릉은 잘 알다시피 동해안 앞바다에 있는데 그 바다에 능을 세운 이유와 함께 써진 비문의 내용이 바로 중국상고사회와 신비에 싸인 고조선의 역사적 실증을 증거 할수 있는 근거가 나타난 것이다. 이 비문에서 아직도 아무도 풀지 못하는 암호 같은 말들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화관지후(火官之后) 라는 중요한 말이다. 그러니까 문무대왕은 화관지후의 후손이라는 말인데 그럼 화관지후가 누구일까? 화관(火官)이란 불의 관모라고 할 수 있고 후(后)는 임금을 말하니 불꽃 임금 ...불 임금 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불은 바로 밝과 같아서 지금 동대문 시장인 밝고개 가 한자로는 적현(赤峴)이라고 쓴다 즉 모음이 혼동된 전에는 밝이나 붉이 같은 말이었다. 그렇다면 불 임금은 바로 밝 임금이고 그는 바로 밝은땅 입금 이라는 단군(檀君)이 된다. 위 어느 금문을 해석 한다는 싸이트에서 단군을 완전한 허상인 도깨비로 보았지만 실은 한자의 뜻을 우리말로 해석해 보지 않은 결과 이다. 다음 염제신농(炎帝神農)의 염제 역시 불 임금이다. 그리고 불 임금은 바로 위에서 말한 밝달 임금이고 또 환웅은 배달 나라를 세웠다 하는데 배달은 바로 밝달의 전음 이다. 그렇다면 염제나 화관지후는 모두 밝달로 조선의 밝달임금 즉 단군을 세우려한 환웅이나 그 밝달 임금인 단군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염제 신농은 중국의 삼황오제에 들어가는 황제와 동 새대 사람이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추리가 가능해 진다. 염제신농이 바고 환웅이며 황제와 탁록에서 싸운 치우 역시 그 환웅이 아닌가 한다. 여기의 상세한 이론은 좀더 연구 하여 " 문무대왕능의 비밀" 이란 제목으로 독자 토론 난에 올릴 예정이다. 그러니까 필자의 결론은 우리 민족은 애초 환인 하느님의 후손으로 환웅을 통하여 단군때 삼한이 되었던 우리 민족이 단군의 조선과 변한은 망하여 춘추열국 시대에 편입 되었다가 위 금문에서 말하듯 결국 통일된 진나라에 흡수 되고 이 진나라 마져 망하자 그 유민이 한반도로 와 신라와 백제를 세우고 다만 마한인 고구려 만이 그대로 삼국시대로 이어 졌을 가능성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금문의 해석대로 환인 천제 나 환웅 단군이 허상 이라면 위 사진에서 나타나는 유물들 처럼 단군천제가 천지인 삼한으로 통치 했다는 이유를 댈수 없고 특히 밝은 땅 이라는 뜻의 배달(倍達)이나 처음, 새로, 또 아침 해를 뜻하는 조선(朝鮮) 그리고 밝은땅 임금 이라는 뜻의 檀君을 설명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렇게 주장 하는 금문 해석은 우리 말의 뿌리 보다 완전히 해독되지도 않고 또 그것을 한자의 뜻대로만 해석 하려는 금문만을 신봉하는 사람들 이라고 밖에 할수 없다. 이 금문의 해독은 반드시 우리 말의 뜻을 알아 그것으로 풀면 이는 매우 용이 한데 그 키는 바로 책에 써진 ㄱ ㄴ ㄷ..ㅎ 속에 있는 뜻 들이다. 필자는 이 금문을 풀어 우리의 상고사를 밝히고 싶으나 이 금문의 양이 너무 방대 하고 또 팔자는 나이 등이 있어 어디까지 될지 모르나 하다못해 이정표 라도 세울 예정이니 젊은 학자들의 많은 참여를 바란다. *** 삼국시대 이후의 역사 기록은 많이 살아있으니 여기서 재론할 필요는 없다.
청동제방격규구신수문경(靑銅製方格規矩神獸文鏡)
* 신라 금관 사진.
구려가 우리 민족의 주권국가였다면서 중국 정부의 고구려 사 왜곡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북한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강세권 연구사(연구원)는 5일 인터넷 사이트 `우리
민족끼리""에 게재한 `조선민족의 당당한 주권국가-고구려""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고구려의 역사는 조선민족의 강대성의 상징으로 되고 있다"며 그 근거로
강 연구사는 고구려가 성립 초기부터 독자성을 견지한 주권국가로 역사무대에 등장한 점을 강조했다.
그는 "고구려는 B.C 277년에 부여출신인 고주몽(동명왕)에 의해 우리 나라 고대
국가의 하나였던 구려국의 판도에서 우리 나라 역사상 첫 봉건국가로서 건국되었다"
며 고구려가 건국 초기에 대국이었다는 사실은 B.C 221년에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가
고조선, 고구려를 비롯해 중국을 위협하던 여러 나라 종족들의 진출을 막기 위해 만 리 장성을 쌓은 사실에서도 잘 나타난다고 말했다.
출처 : | 천부인과 천부경의 비밀 | 글쓴이 : 우리 원글보기 |
'한민족 역사문화 > 한민족 神敎文化'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지녹도 문자가 전래 비교된 북한 평안도 영변군지 (0) | 2006.12.29 |
---|---|
20.신지녹도문자 해독 결론과 가림토는 이렇게 쓰던 글자였다. (0) | 2006.12.29 |
22.계연수의 극적인 천부경원문 발견 기록(참고자료) (0) | 2006.12.29 |
23.1899 己亥10월 撰. 묘향산에서 최치원의 천부경을 최초로 탁본해온 운초 계연수의 천부경 요해. (참고 자료) (0) | 2006.12.29 |
최치원이 천부경 81자를 짓기전 괴로워 한 시 秋夜雨中 (참고문헌) 30. (0) | 2006.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