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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통화시를 출발, 집안시로 향했다. 집안(集安)은 고구려의 세 번째 수도가 있던 곳으로 424년간(3∼427) 정치·문화의 중심지였던 곳이다. 4세기가 넘도록 고구려는 이 소도시(현 인구 20만 명)에서 중국의 침략을 저지하면서 대제국을 건설했는데, 국내성을 비롯한 성곽과 수많은 고분, 고분벽화들이 남아있는 군사도시이자 문화의 집산지이다. ┃광개토태왕비·태왕릉 광개토태왕릉은 광개토태왕비에서 도보로 10여분이 걸리는 가까운 거리에 자리하고 있었다. 고구려의 기단식 적석총으로 지금은 많이 내려앉아 거대한 돌무지와 흡사한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원래는 기단의 한변이 66m를 넘고 높이가 14.8m 가량 되는 장수왕릉보다도 훨씬 큰 규모의 능이었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최근 몇 년 전 왕릉 앞에서 새로이 발견된 제단(祭壇)이었다. 왕릉 전면에 집 여러채를 덮을 만큼 넓은 면적에 걸쳐 있었는데, 그 동안은 수풀에 가려져 있어 몰랐다는 것이다. 고구려 계승 의지를 표방했던 대진국(발해)도 이 능에 제를 지내며 고구려 태왕릉 보존에 힘썼던 것으로 여겨진다. 광개토태왕의 능에서 대진국시대의 기와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장수태왕릉 “국내성에서 동북쪽으로 4.5km 떨어진 이 왕릉은 일반적으로 장군총으로 불리고 있는데, 이는 약 100여년 전 현지 촌부들이 중국 변방의 한 장군의 무덤이라 여기고 불러오기 시작한 데서 유래합니다. 하지만 이 묘는 위치와 규모 등의 면에서 볼 때 장수왕의 능으로 확실시 되는데, 그렇다면 장수태왕릉으로 불러야 마땅합니다. 묘나 총, 능이 모두 무덤을 일컫는 말이자만 제왕의 무덤만을 능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국내성·환도산성 ┃오회분 5호묘 안으로 들어가 보니, 천장의 벽화를 돌벽 위에 그대로 그린 사신도가 가장 먼저 들어왔다. 동벽에는 청룡이, 서벽에는 백호를 중심으로 화염문과 연꽃무늬가 연결되어 있으며, 사이사이에는 여인상과 귀인상이 있다. 북면에는 거북과 뱀이 엉킨 현무도가 있으며, 남면에는 큰 날개를 쳐든 주작이 그려져 있다. 5호묘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천장벽화는 일월신(日月神)·신농신(神農神)·제륜신(製輪神)·수신(燧神) 등이 사방 천장벽화를 장식하고 있었다. 4일차의 마지막 일정으로 집안 박물관을 들렀다. 실로 다양하고 우수한 고구려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정교한 무기들과 장신구 등, 어떤 것들은 현대의 공예품이라 해도 손상이 없을만큼 정교한 솜씨였다. 그럼에도 마음 한켠이 불편했던 것은 박물관 설명글 곳곳에 고구려 문화를 중국 변방민족의 문화로 표현한 내용들 때문이었다.
┃오녀산성 산성을 오르는 길은 돌계단으로 잘 닦여져 있었는데, 안개비가 적당히 내려 운치를 더해주고 있었다. 해발 820미터의 오녀산 산꼭대기에 길이 1,000m, 너비 300~500m에 달하는 넓은 평지에 자리한 천혜의 요새 오녀산성. 그곳엔 소천지(小天池)라 부르는 마르지 않는 작은 못이 있었고, 궁궐터와 병사들이 거주했던 병영터 여러 개가 지금까지 남아있었다. 바닥에는 온돌을 설치했던 흔적까지 남아있어 놀라움을 더했다. 산성의 점장대 위에서 압록강의 지류인 혼강(渾江)이 태극모양으로 휘돌아가는 모습을 내려다보는 경관은 무엇보다 장관이었다. 오녀산성을 내려와 마지막 6일차의 목적지인 단동을 향해 버스로만 4시간여를 달렸다. 낮은 구릉지대로 드넓게 펼쳐진 만주벌판을 보며 이곳을 말달리며 호령했을 고구려인들 기상이 그려지는 듯 했다.
┃호산장성(박작성) “몇 년 전 일본 방송국에서 제작한 <만리장성>이란 프로에서 만리장성의 동쪽 끝을 잠깐 보여준 것이 바로 이 호산장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호산장성은 만리장성이 아닌 고구려의 박작성입니다. 역사기록을 보면 보장왕 7년(648) 당나라가 쳐들어 왔을 때 ‘박작성은 산을 이용하여 요새를 세웠고, 압록강으로 튼튼하게 막혀 있었기 때문에 함락시키지 못하였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지금까지 압록강 입구에서 발견된 고구려 성은 애하첨고성과 이 호산산성 뿐인데 애하첨고성은 평지에 쌓은 성이기 때문에, 유일한 산성인 호산산성이 바로 박작성인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몇 미터밖에 안되는 강폭을 사이에 두고 북한땅 방산마을과 마주하고 있는 일보과(一步跨). 어딘가에서 불쑥 나와 악수를 청할것만 같은 북녘땅 동포들과의 불가능한 대면을 한번쯤 상상해보며, 길고도 짧았던 답사여행의 일정은 그렇게 막을 내리고 있었다. 『개벽 실제상황』을 펴낸 대원출판은 앞으로도 일본 및 러시아로 떠나는 한민족 역사유적기행 등의 독자 이벤트를 꾸준히 이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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