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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韓中日) 역사의 진실과, 미래의 대변혁 소식을 대도의 가르침으로 전하는 『개벽 실제상황』! 이 책을 발간한 대원출판은 얼마전 독자들을 위한 특별한 이벤트를 마련했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독도침탈로 한·중·일 삼국의 역사전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이 때에, 우리 선조들의 기상이 서린 옛 고구려땅으로 독자들을 초대하는 뜻깊은 행사를 준비한 것이다.
이번 답사의 주무대는 우리나라와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중국 만주 일대. 흔히 동북3성(요녕성·길림성·흑룡강성)이라 불리는 이 지역은 고대국가 형성기부터 우리 조상들의 활동 무대였고, 고구려의 영토였던 곳이다. 현재에도 이 지역에는 우리 민족의 피가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으며, 소중한 민족의 문화유산이 적지않게 남아 있어 역사적인 가치가 매우 큰 곳이기도 하다. 또한 고구려 유적지 외에도, 민족의 성산 백두산 천지와 일제시대 항일운동 유적지 등을 답사하는 코스가 더해져 이벤트의 의미는 더욱 배가되었다.
┃심양고궁·북릉공원 “누루하치가 세운 후금은 옛 금(金)나라를 계승한다는 뜻에서 지어진 국호입니다. 그런데 《금사(金史)》에 의하면 금 태조 아구타의 선조가 함보(函普)라는 인물로 그가 신라인 마의태자였다는 것이 거의 정설화되어 있습니다. 누루하치가 애신각라(愛新覺羅, 신라를 사랑하고 잊지 말자)라는 성(姓)을 썼던 것에서도 알 수 있듯 만주족은 우리와 같은 피가 흐르던 한민족의 한갈래였던 것입니다.” 가이드는 이어 좌우익왕과 팔수령 제도 등이 단군조선시대부터 있었으며 우리 한민족 고유의 삼신오제사상과 음양팔괘에서 유래한 것임을 설명하고, 대정전 계단난간에 새겨진 삼태극 무늬 등에서는 신교의 삼신사상의 자취가 남아있음을 일깨워 주었다.
┃일송정·해란강 용정(龍井)은 겨레의 희망과 한이 서린 항일독립운동의 요람지로, 3·13만세운동이 일어난 용정중앙소학교를 비롯해 시인 윤동주의 시비와 선구자에 나오는 일송정, 해란강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다. 용정으로 가는 길목에 차창밖으로 멀리 일송정(一松亭)이 보였다. ┃용정중학교
┃백두산 천지 백두산 산문(山門)에서 천지 아래까지는 별도 운행하는 전용버스를 타고 30여분을 더 올라가야 했는데, 꼬불길을 올라가면서 차즘 백두의 정상이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조금씩 탄성이 터져나왔다. 정말 말 그대로 흰머리산이었다. 정상부가 흰색을 띄는 것은 알고 보니 그럴만한 까닭이 있었다. 천지 주변 반경 70㎞내에는 백색의 부석(浮石)이 뒤덮혀 있어서 마치 눈이 내린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다시 천지가 위치한 곳까지 30여분 이상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해발 2,744m 백두산 정상에 위치한 천지(天池). 산정에 가까워질수록 구름과 강수일수가 높아 일기를 예측하기 힘들며, 천지 주위가 맑은 날씨는 연중 40일 정도라고 한다. 답사단 일행이 천지에 오른 그날, 날씨는 너무도 청명했다. 천지물을 바라보는 눈이 시릴 정도다. 옆에서 근 오십번 가까이 천지를 올랐다는 현지 가이드가 이렇게 청명한 날은 지금껏 본적이 없다고 감탄할만큼 그렇게 좋은 날씨였다. 답사단 일행은 천지를 청수삼아 사배심고를 올리고 태을주를 낭랑히 읽었다. 버스를 타고 백두산 중턱을 내려오는 길에 잠시 들른 곳은 금강대협곡. 천지의 용암분출이 만들어낸 동양의 절경이다. 깊이가 100m에 달하는 그 협곡을 보면서 자연의 손길에 경이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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