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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역사문화/한민족사 바로알기

한민족 역사 광복운동이 시작된다!

by 바로요거 2012. 8. 9.

한민족 역사 광복운동이 시작된다!

2012년 8월 15일은 일제로부터 해방된 광복절! 하지만 더욱 중요한 일대 사건이 있습니다. 

2012년 8월 15일은 한민족 역사를 되찾는 역사 광복 운동의 출발점! 한민족 역사 광복절!

드디어 한민족의 역사 광복 운동의 신호탄이 될 "환단고기 역주본(완간본)"이 시중에 전격 출시됩니다!

일제로부터 국권은 회복되었지만 아직까지도 한민족 역사의 광복은 이루어지지 않고, 식민사관에 여전히 놀아나고 있는 한민족의 역사의식은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문득 이상화 시인이 쓴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詩가 생각이 나는군요~

일제에 빼앗긴 나라에 살면서 통한의 슬픔을 느끼며, 더불어 국권 상실에 대한 울분...

그리고 국권 회복에 대한 열망이 담겨 있는 시...

 

역사를 잃으면 나라도 잃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아야 합니다.

민족의 정신이 살아나야 나라도 부강해지고 강국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민족의 정신을 일깨우는 것은 역사 밖에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외세와 우리 스스로 잘라 버린 한민족 역사의 뿌리를 찾아 나서는 역사 광복 운동을 펼쳐 나갈 때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오직 2012년 8월 15일 시중에 전격 출시되는 "환단고기 역주본(완역본)"으로서만 이루어 낼 수 있습니다.

 

 

아래의 내용은 "환단고기 역주본(완역본)"에 해제 부분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환단고기 역주본(완역본) 해제 부분 18쪽~40쪽 내용>

1. 우리 역사, 새로 써야 한다


1) 역사와 문화를 잃어버린 한민족

 1988년 일본에서 나라 박람회가 열리던 때, 필자는 큐슈[九州]의 문화 유적을 둘러보고 나라 국립공원에 갔다. 그곳에서 ‘동북아 역사부도’라는 홍보용 책자를 하나 구입하여 펼쳐 보면서 우리 역사부터 찾아보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역사 연표 어디에도 대한민국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쭉 훑어보니 어이없게도 중국 역사 연표 끝자락에 조그맣게 한국사 연표가 붙어 있었다. 거기에 황화문명권에 속한 나라로, 실제와는 달리 겨우 2천2백 년의 역사를 가진 보잘 것 없는 나라로 표기되어 있었다. 이를 본 순간 필자는 철저히 거세된 한국사에 큰 충격을 받음과 동시에 마치 소중한 그 무엇을 잃어버린 듯한 상실감에 사로잡혔다. 동북아 역사부도 속에 그려진 초라한 한민족사의 실상을 보면서 ‘우리 모두가 각성해서 잃어버린 한민족의 역사를 되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가슴 속에서 불끈 솟아올랐다.

자신의 시원 역사와 문화를 잃어버리고 사는 혼 빠진 한민족!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본 모습이다. 하지만 이제는 한민족의 역사에 대해서 그 진실을 알고 살아야 할 때가 되었다. 한국의 과거에 관한 진실을 알게 될 때 오늘날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모순을 근원적으로 성찰하고, 나아가 미래를 창조하기 위한 등불을 환히 밝힐 수 있다.


2) 한국사 왜 이렇게 파괴되었나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한민족의 역사 체계가 이토록 망가지게 되었는가? 여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그 중에서도 한국사 상실의 핵심 요인인 우리 사서의 잘못된 기록과 중국과 일본에 의한 한국사 왜곡을 우선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 손으로 파괴한 우리 역사

 지금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역사서로 학계에서 인정하고 가르치는 대표적인 사서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2권이다. 왜 이 사서들만 남게 되었는가? 김부식과 일연은 우리 고대사를 대표하는 두 역사서인 『삼국사기』의 편찬자이자 『삼국유사』의 저자이다. 그들은 그때까지 남아있던 사서들을 토대로 각자 자신이 위치한 입장(사관)에 따라 역사를 기술하면서 다른 자료들을 정리해버렸던 것이다. 김부식이 전형적인 유학자라면 일연은 대표적인 불교 승려다. 두 사람은 똑같이 역사를 기록했지만, 그들이 선 입장은 확연히 달랐다.

 『삼국사기』는 1145년(고려 인종 23)에 김부식이 왕명을 받아 편찬한 책으로, 삼국 시대를 기록한 正史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김부식은 고려 중기의 유학자로 삼국의 역사를 파악하는데 중국적 유교질서의 구현을 내세운 중화주의와 사대주의 사관을 바탕으로 『삼국사기』를 편찬하였다. 때문에 북방을 다스리며 중국을 제압하던 고구려를 “秦漢 이후로 중국의 동북 모퉁이에 끼어 있었던” 나라로 정의하고 ‘중구그이 국경을 침범하여 중국을 한민족의 원수로 만든’ 적대국으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신라 귀족의 후손인 김부식은 멸망한 신라를 한국사의 정통 계승자로 만들기 위해, 신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대진(발해)의 역사를 단 한 줄도 기록하지 않았다. 이처럼 대진 역사를 기록하지 않은 사실에 대하여 신채호는 “동, 북 양 부여사를 빼 버려 조선 문화의 근원을 진흙 속에 묻어 버리고, 발해를 버려서 삼국 이래 結晶된 문명을 짚더미에 내던져 버렸다.”라고 통탄했다.

 신채호의 말 그대로, 김부식은 한민족의 상고 역사를 한반도에 국한된 반 토막 역사로 축소시켜버린 인물이다. 고조선과 부여를 비롯한 상고사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 없이 삼국 시대만을 기록한 사서가 어찌 한국을 대표하는 사서가 될 수 있는가!

 『삼국사기』가 유교적 시각에서 비합리적인 것으로 생각되는 역사기록을 대부분 제외해 버렸다면, 1281년(고려 충렬왕 7)경에 승려 一然이 편찬한 『삼국유사』는 野史의 성격을 띠고 있다. 때문에 이 책에는 역사뿐 아니라 『삼국사기』가 소홀히 한 전래설화, 민간신앙 그리고 비문 등도 실려 있어 문화유산의 보고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일연은 불교적 세계관을 지녀, 지나치게 저자 개인의 관점에서 자유로운 형식으로 역사를 기술하여 버렸다. 『삼국유사』에는 고조선 이후 신라 말기에 이르기까지 각 왕조의 흥망성쇠 및 신화나 전설 등에 관련된 신이한 내용을 기록한 『紀異』편이 있다. ⌜기이⌟라 명명한 이유에 대해 일연은 서문에서 “삼국의 시조가 모두 신기하고 이상한 가운데서 나온 것이 어찌 괴이하다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하지만 ’신이한 것을 기록한다.‘는 의미의 제목 「기이」는 고조선 역사를 단순히 신화 속의 이야기로 치부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고조선 조를 보면, 아버지 환인의 허락을 받아 백두산으로 내려온 환웅이 신시를 열어 세상을 다스렸는데, 그때 ‘곰 한 마리一熊’와 ‘호랑이 한 마리一虎’가 사람이 되고자 환웅을 찾아왔으며, 그 중 백 일 시험 기간을 무사히 통과한 곰이 여자가 되어 환웅과 혼인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단군왕검으로서 고조선을 세워 약 1,900년 동안 다스리다가 산신이 되었다고 한다.

 이 기록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환국, 배달, 옛(古) 조선이라는 7천 년에 달하는 우리 상고사를 환인, 환웅, 단군 3대에 걸친 인물사로 잘못 기록한 것이다. 그리고 ‘배달의 백성으로 귀화하고자 한 두 부족’인 웅족과 호족을 ‘사람 되기를 갈망한 두 마리 동물’로 묘사하였다.

 뿐만 아니라 『삼국유사』는 불교사관으로 덧칠이 되어 있다. 불교 관점에서 역사를 기록하고 주석을 남긴 일연은 ‘현 인류 문명의 최초 나라’인 환국을 불교 신화 속의 나라로 변질시켰다. 『古記』를 인용하여 “옛날에 환국이 있었다[昔有桓國]” 라고 전하면서, “이는 제석을 말한다[謂帝釋也]” 라는 주석을 붙였다. 환국을 불교 제석신의 나라로 풀이한 것이다. 이러한 일연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그전까지 분명히 실존한 나라로 기록된 환국사가 부정되었다. 요컨대 『삼국유사』에서 일연은 한국인의 시원 역사를 신화 속 이야기로 전락시키는 중대한 오류를 범하였다.

 만일 『삼국사기』와『삼국유사』가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한국의 고대사에 대해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역사 해석의 푯대가 되는 이 두 권의 사서가 한민족의 정통 사관이 아니라 사대주의 사관과 유교, 불교라는 외래 종교의 관점에서 쓰여지는 바람에 우리 문화와 역사의 참모습을 알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중국이 왜곡한 한민족사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한국사의 실상을 기록하지 않은 것이 우리 손으로 자행된 역사 파괴라면, 중국과 일본이 저지른 역사 침탈과 왜곡은 외세에 의한 한국사 파괴이다.

 “洛陽은 天下之中”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은 예로부터 낙양, 북경, 남경, 서안(장안) 같은 자기네 도읍지를 천하의 중심이라 칭하였다. 중국은 세계의 중심이므로 중화라는 것이다. 이러한 중화주의 사관에 따라 한국 역사를 자신들에게 예속된 속국의 역사로 축소, 왜곡하였다.

 그 대표적인 기록이 한나라 때 사마천이 쓴 『史記』의 제후 역사 편인 ⌜世家⌟에 나오는 “봉기자어조선封箕子於朝鮮(기자를 조선에 봉하다)”이다. 사마천은 주나라 무왕이 상나라의 성인이었던 箕子를 조선이란 곳의 왕으로 봉함으로써 조선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기록하였다. 간단히 말해서 주나라의 보살핌으로 약 3,100여 년 전, 조선이란 나라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봉기자어조선’, 이 여섯 글자는 조선의 역사를 그 출발부터 중국의 속국사로 전락시켰다.

 중국은 한나라 이후로도 계속 역사를 왜곡하였다. 중국 25사 가운데 무려 6권에 달하는 사서를 편찬한 당 태종 때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 태종은 고구려 정벌을 도모하다가 결국 패망해 버린 수나라의 뼈아픈 과거를 알면서도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구려 정벌에 나섰다. 하지만 안시성 전투에서 양만춘 장군의 화살에 눈알을 잃는 치욕을 당하고 되돌아갔다. 당나라로 돌아간 당 태종은 고구려와의 전쟁 후유증을 수습하지 못하고 멸망한 수나라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전대에 대한 역사서를 편찬하였다. 위진남북조시대 晋, 양, 북제, 북주, 陳의 역사를 기록한 『晋書』,『梁書』,『北齊書』,『周書』,『陳書』 그리고 수나라의 정사인 『隋書』 등 총 6권을 편찬하였다. 그러나 이 6권 어디에도 수나라의 패배를 비롯하여 중국이 한민족에게 당한 굴욕의 역사는 보이지 않는다.

 『사기』를 비롯한 대부분의 중국사서는 고대 한국의 존재를 부정함과 동시에 한민족을 야만인 집단으로 비하하기 위해 정식 국호를 표기하지 않고 별칭으로 대신하였다.


동북공정은 역사 왜곡 말살 공작

 중국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사 파괴 공작을 계속하고 있다. 동북공정이 바로 그것이다. 동북공정은 중국이 현재의 중국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과거 역사를 자기네 것으로 만들 목적으로 2002년 이래 야심차게 진행시키고 있는 역사 왜곡 공작이다. 이 작업에 韓, 中 고대사 전문가를 총동원한 중국은 고조선에서 부여, 고구려, 대진(발해)에 이르는 역사를 모두 자국의 역사로 집어 삼켰다. 그 결과 요사이 발행되는 중국 고대사 지도는 당나라와 당당하게 맞서 한반도의 북방 영토를 수호했던 大震을 당나라 영역 안에 존재한 지방정권으로 표시하고 있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 얻고자 하는 최종 목표는 후일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다시 점령하게 될 경우 세계 언론으로 하여금 이를 묵인하게 하려는 것이다. 때문에 동북공정은 단순한 과거사 침탈에 그치지 않는 영토 침탈이며 한국의 앞날을 위협하는 무서운 역사공작이다. 장래의 여론 조장을 위하여 중국은 동북공정의 결과물을 국제 사회에 지속적으로 퍼뜨리고 있다. 동북아를 완전 점령하여 지구촌의 覇者가 되고자 하는 중국의 야욕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역사와 미래를 지킬 것인가?


한민족사의 밑뿌리를 통째로 잘라 낸 일본

 그렇다면 일본의 한국사 파괴 공작은 언제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19세기 중반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를 시작한 일본은 세계 제패의 꿈을 키우면서 한국을 대륙진출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 식민주의 사관을 확립하였다. 식민주의 사관은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 침략과 식민통치를 합리화하기 위해 조작한 역사관이다. 조선인을 예로부터 다른 나라의 식민지 백성으로 살아온 열등감과 자기 비하에 빠진 민족으로 묘사하여 조선을 영원히 지배하겠다는 것이 일제 식민사관의 요지이다.

 이러한 식민사관의 정립과 실현을 위하여 일제는 조선침략을 군사적으로 준비함과 동시에 자국의 쟁쟁한 사학자들을 독려하여 한국사를 연구하게 하였다. 일본의 한국사 연구는 주로 정치적 필요에 따라 진행된 것으로 결국 한반도 지배를 위한 학문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일본의 대학에는 ‘조선사 강좌’가 설치되고 논문과 저서가 속속 간행되었다. 일본인이 한국사를 이른바 근대 역사학의 방법론을 내세워 주관적으로 서술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사 연구를 반석에 올려놓은 식민 사학자는 하야시 다이스케(1854~1922), 시라토리 구라키치(1865~1942), 후쿠다 도쿠조(1874~1930) 등이다. 이 세 사람은 독일에 직접 유학을 하거나 일본 내 대학을 다니면서 실증주의 사학을 공부하였다. 실증주의 사학은 조상이 무덤과 집터를 파헤쳐 꺼낸 유골과 유물을 과학적으로 검증함으로써 문헌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을 고증하려한다. 그리고 고증되지 않은 기록은 모두 불신한다. 이러한 실증사학의 정신에 따라 식민주의 사학자들은 태곳적 환단 시대를 고증되지 않은 신화시대로 만들어 버리고, 그 대신 ‘위만조선과 한사군’ 시대를 한민족의 태고 시대라 정의 하였다. 이후 그들은 滿鐵조사부를 세워 만주와 한반도의 역사와 지리에 관한 조사를 하였는데, 그 목적은 한국인의 뿌리 역사를 말살하고 그 자리를 ‘중국과 일본의 식민지’로 채우는 데에 있었다.

 마침내 1910년에 한국을 강제 병탄한 일제는 자국의 식민주의 사학자를 대거 조선으로 데려와 조선사편수회를 조직하고, 조선 역사를 본격적으로 변조하여 조선 역사는 중국과 일본의 식민지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하였다. 한반도의 북쪽은 ‘한사군’이라는 중국의 식민지였고, 남쪽은 ‘임나일본부’라는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것이다. 또한 상고 이래의 한일교섭사 중에 일본에 불리한 사실은 모두 은폐하였다. 임진왜란을 마치 일본이 승전한 것처럼 기술하고, 광개토대왕비의 비문과 칠지도 명문을 조작하는 등 우리 역사와 문화재에 손대지 않은 부분이 없다.

 일본이 왜곡한 사례 중에서 한국인이라면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한민족사의 밑뿌리를 송두리째 뽑아버린 것으로,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조작한 “석유환인昔有桓因”이다. 1903년 동경제국대 대학원에서 한국사를 전공한 후 조선에 파견된 이마니시는 조선 역사를 일본에 미치지 못하는 역사로 깎아 내리기 위해 고심하던 중 마침내 조선의 한 사서에서 실마리를 찾아냈다. 그 사서가 바로 앞서 말한 『삼국유사』이다.

 그는 조선 중중 1512(임신)년에 간행된 『삼국유사』임신본에 적힌  “석유환국昔有桓国”의 ‘国’ 자를 ‘因’ 자로 변조시켰다. ‘국’ 자와 ‘인’ 자는 서로 모양이 비슷하여 변조하기가 쉽기도 하지만, 일연이 붙인 ‘제석을 말한다’는 주석에 힘입어 석유환국을 석유환인으로 과감히 변조한 것이다. 이리하여 환국을 불교 신화에 나오는 나라로 둔갑시키고, 환국을 계승한 배달과 고조선도 허구의 나라로 만들었다.

 이것은 실로 한국 고대사이 핵을 도려낸 사건이다. 이로써 한국사의 영혼이 뽑히게 되었다. 일제의 만행으로 7천 년 상고사가 통째로 잘려 나간 것도 통탄스럽지만, 해방 이후 한국 사학계가 식민사학을 추종하며 환인, 환웅, 단군을 신화의 인물로 전락시킨 것은 더욱 가슴 아픈 일이다.


아직도 살아있는 식민사관

 한민족은 1945년에 일제의 압박에서 벗어나 광복을 맞았지만, 이 땅의 사학은 여전히 식민사학의 잔재를 떨쳐 내지 못하였다. 지금까지도 이 땅의 역사 광복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해방 후 한국 사학계가 조선사편수회에 몸담고 식민사학의 주구 노릇을 하던 몇몇 학자와 그 후예에게 잠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역사상 가장 반인륜적이고 파괴적인 역사관으로, 8백만 이상의 동포를 참살한 일본 제국주의가 주장한 식민사관을 실증사학이라는 가면 아래 교묘히 숨겨 그대로 수용하였다.

 이들은 더 나아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식민사관을 옹호하고 변론하였다. 이것은 자국의 역사를 자국민이 파괴하는 해괴한 행위로, 세계인들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는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 단적인 예가 바로 ‘한사군 在한반도설’이다. 일제는 대동강 유역에서 점제현신사비라는 유물을 조작하고, 그 비석을 한사군 유물로 내세우면서 한사군의 위치를 한반도로 정하였다. 그런데 한국 사학계는 그 조작설 그대로 따랐다. 최근 그 비석의 화강암 재질을 분석한 결과 위조된 유물임이 드러났지만, 한국인들은 한반도 내 평양 주변에 한사군이 있었다고 배우고, ‘낙랑, 임둔, 진번, 현도’라는 이름을 반세기가 넘도록 열심히 외우고 다녔다.

 그리고 일제가 내세운 한사군설을 그대로 따라 우리 역사학자들의 손으로 한반도에 한사군을 설정한 것이 빌미가 되어 우리는 지금 다시 중국에게 역사를 빼앗기고 있다. 중국은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설을 동북공정에 적극 활용하여 2,100여 년 전 한나라 때의 중국 영토를 한강 이북까지 확장하였다. 중국의 이 허황한 주장이 서양의 세계사 교과서에 그대로 실려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무너뜨리려면 일제 식민사학의 잔재부터 청산해야 한다. 일제의 식민사관과 중국의 동북공정이 한 덩어리가 되어 한국사의 뿌리를 뽑기 때문이다. 중국의 중화주의 사관과 일본의 식민사관은 남의 역사를 강도질하는 패악의 근원이다.

 초, 중, 고 교과서에서 우리는 일제가 꾸민 역사 사기극의 잔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환국과 배달의 역사는 전혀 보이지 않고 단지 족장이 다스리던 부족사회가 있었다고 서술한다.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는 고조선의 출현에 대해 “족장사회에서 가장 먼저 국가로 발전한 것은 고조선이다”라고 하면서 “『삼국유사』와『동국통감』의 기록에 따르면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라고 서술한다.

 얼핏 보아도 너무나 싱거운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라는 이 서술은 우리역사를 찾으려는 뜻있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2009년에야 어렵사리 개정된 내용이다. 그 전까지는 “건국되었다고 한다” 또는 “건국하였다고 한다”라고 하여 남의 나라 역사를 말하듯이, 설사 우리 역사라 해도 완전히 신뢰할 수 없다는 듯 서술하였다.

 그런데 비단 학교 교과서뿐 아니라 국가공무원 수험서, 육. 해. 공군의 역사 교재, 아동용 역사책에 이르기까지 이 땅의 모든 역사책에는 일제가 조작한 역사가 들어있다. 그 결과 식민사학의 여독이 모든 한국인의 뼈 속 깊이 배어있게 되었다.


3) 한, 중, 일의 서로 다른 조선관


 중국과 일본에 의한 역사 왜곡의 결과, 한국. 중국. 일본은 서로 다른 朝鮮觀을 가지게 되어 고조선의 실체에 대해 서로 다르게 해석을 한다. 한국은 단군왕검이 세운 ‘단군조선’을 말하는 반면, 중국은 기자가 세운 ‘기자조선’을, 일본은 위만이 세운 ‘위만조선’을 말한다. 동북아 삼국이 말하는 세 조선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중국이 주장하는 조선, 기자조선

 중국인들은 漢代 이래 기자조선을 역사적 사실로 믿어 왔다. 이러한 중국의 주장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1973년, 요령성 객좌현에서 箕候라는 명문이 새겨진 청동 솥[方鼎]이 발굴되었다. 이 유물은 기자가 살던 상말. 주초에 해당하는 BCE 12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보다 앞서 1951년에는 산동성 황현에서 8점의 箕器가, 1969년에는 산동성 연대시에서 箕候鼎이 출토되었다. 이것들은 기자가 죽고 수백 년이 지난 주나라 후기, 춘추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발견된 유물의 수준으로 볼 때, 기자와 그 후손들은 상당한 재력과 정치적 영향력을 가졌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기자는 중국이 주장하듯 과연 조선이란 나라의 왕이었을까? 『史記索隱』에서는 기자를 상나라의 왕족이라 하면서 “箕子의 箕는 國名이고 子는 작위의 명칭이며 기자의 이름은 胥餘이다”라고 하였다. 이로 볼 때, 기자는 箕國의 통치계급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윤내현의 해석에 의하면, 기국은 상나라의 제후국이었고 기자는 그 기국의 지배 계급이었다. 최고의 지배자였다면 기자는 기국의 왕이었을 것이다.

 발견된 유물과 중국사서의 기록을 종합하면, 기자는 제후 수준의 지배 계급에 속하는 상나라 말기의 왕족이다. 하지만 『史記』의 기록을 보충설명한 주석서인 『史記索隱』은 사마천이 말한 ‘봉기자어조선’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이 점은 기자조선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한다. 기자가 설사 왕이었다 하더라도 기국을 다스린 왕이었을지언정 고조선을 다스린 왕은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史記』가 말한 기자조선은 그후 중국 역사서에서 역사적 사실로 굳어졌다. 예를 들면 3세기 晉나라 때 陳壽(233~297)가 쓴 『삼국지』는 『魏略』을 인용하여 고조선 말기에 위만에게 왕위를 빼앗긴 箕準을 기자의 후예로 기술하였다. 여기에는 고조선은 망할 때까지 기자조선으로 존재했다고 보는 중국인의 의식이 엿보인다.

 고려와 조선의 사대주의자들은 중국이 날조한 기자조선을 한민족사의 뿌리로 여기고 기자를 은인으로 받들었다. 기자는 고조선의 서쪽 변두리를 맴돌았을 뿐 한반도 지역으로 넘어 온 적이 없건만, 고려 때 송나라 사신이 “그대 나라에 기자묘가 어디 있는가”라고 묻자 황급히 서경(평양)에 가짜 기자묘와 기자사당을 만들었다. 또한 서경의 반듯한 도로 흔적을 기자가 만들었다는 井田制의 증거로 간주하였다.

 하지만 1960년대 북한 역사학계에서 기자 정전 터로 주장되던 곳과 평양 을밀대 북쪽에 있던 기자묘를 조사하면서 그 허구가 밝혀졌다. 기자 정전 터는 고구려 시대에 도시를 구획한 흔적으로 판명되었고, 그곳에서는 사기 파편과 벽돌조각만 나왔다. 요즘 국내 사학계에서는 기자조선을 중화주의 사상에 빠진 중국이 지어낸 것으로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한번 잘못 쓴 역사 기록의 폐해는 쉽게 걷히지 않는 법이다.


일본이 주장하는 조선, 위만조선

 일본은 왜 기자조선이 아닌 제3의 또 다른 조선을 만든 것일까? 중국의 기자조선은 상나라가 망하고 주나라가 들어서던 BCE 12세기를 시대 배경으로 한다. 중국의 제후국이라 하더라도 BCE 12세기부터 조선이 존재했다는 것을 일본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때는 아직 일본이란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던 때로서 조선을 일본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로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1910년 한일병탄 후, 일본은 BCE 2세기 때 인물인 연나라 사람 위만을 조선의 창시자로 앉혔다. 위만은 원래 盧綰의 부하였다. 燕王 노관은 한고조 유방과 동향이자 같은 날 같은 시에 때어난 인물로 한고조가 나라를 개창하는 것을 도와 공을 세운 개국공신이다. BCE 195년 노관이 呂太后의 숙청을 피하여 흉노 땅으로 도망가자, 위만은 고조선 땅으로 피신하였다. 위만은 조선인으로 변장하여 당시 고조선의 서쪽 강토인 번조선으로 넘어왔다. 번조선 왕 기준은 위만을 불쌍히 여겨 국경의 수비대장으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이듬해에 위만은 은혜를 배신하고 모반을 일으켰다. 급습을 당해 의관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도망한 준왕을 대신하여 위만은 번조선의 왕이 되었다(BCE 194) 위만정권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그 후 손자 右渠가 한무제에게 망할(BCE 108) 때까지 약 90년간 존속한 이 위만정권을 일본은 위만조선으로 격상시키고 이것을 조선 역사의 시작으로 정하였다. 게다가 일본은 위만조선의 위치를 요동반도가 아니라 한반도의 평양 이북으로 비정하였다. 이리하여 조선은 일본보다 짧은 역사를 가진 나라가 되었다.

 일본은 위만조선이 망한 후의 한국사도 뜯어고쳤다. 우거를 멸하여 위만조선을 무너뜨린 한무제가 그곳에 漢四郡을 설치하여 조선인을 식민통치한 것으로 기술하였다. 위만조선에 한사군 설이 결합되면서 고대 조선은 결국 중국이 세운 나라로, 나아가 중국의 식민지로 왜곡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일제에서 해방되어 대한민국이 된 지금 위만조선의 망령은 깨끗이 사라진 것일까? 마땅히 그러해야 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위만조선의 망령은 한국 교과서에 여전히 살아있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거의 모든 역사 교과서가 위만을 말하고, 위만을 언급한 역사 교과서 전부가 ‘위만이 고조선 말기에 조선의 왕이 되었다’고 하여 위만을 조선인의 구세주로까지 묘사한다. 그러면서도 위만이 연나라 출신이란 점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이 없다. ‘기원전 2세기경 위만이 집권하였다’고 하거나 ‘유이민 집단 중에 위만이 무리를 이끌고 고조선으로 왔다’고만 한다. 조선의 한쪽 변방을 강탈한 도적이며 침략자에 불과한 위만에 관한 이러한 기록은 반드시 역사 정의에 따라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진정한 조선, 단군조선

한국인의 진정한 조선은 국조인 단군왕검이 고유문화인 신교의 가르침을 받들어서 세운 단군조선이다. 그런데 불구하고 정작 단군조선의 실체를 제대로 모르고 있다. 단군조선의 역사를 오롯이 전하는 유일한 사서인 『환단고기』에 따르면, 단군조선은 2,096년에 걸쳐 마흔일곱 분 단군이 다스린 나라이다. 초대 단군왕검은 신교의 三神사상에 따라 하나의 나라 조선을 셋으로 나누어 다스렸다. 三韓管境制라는 이 독특한 제도에 따라, 대단군이 중앙의 辰韓을 다스리고 두 명의 부단군이 대단군의 통솔 아래 番韓과 馬韓을 각기 맡아 다스렸다.

단군조선은 삼한관경제의 흥망성쇠와 그 운명을 같이하였다. 초대 단군 때부터 시작된 삼한관경제는 무력으로 정권을 잡은 22세 색불루단군 때 크게 흔들리게 되었다. 遷都와 더불어 단군조선의 삼한체제가 삼조선체제로 바뀌었기(BCE 1285) 때문이다. 그러다가 삼한관경제는 44세 구물단군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대단군만 가지던 병권을 부단군들도 동등하게 가지게 되어 삼조선은 독립적인 세 나라가 되었기(BCE 425) 때문이다. 이때 구물단군은 국호를 조선에서 대부여로 고치고 국가 재건을 도모하였으나 그 후 2백 년을 넘기지 못하고 47세 고열가단군을 마지막으로 역사의 막을 내리게 된다.

 그런데 이 땅의 역사교과서는 하나같이 단군조선의 건국 사실만 말할 뿐 마흔일곱 분 단군의 치세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초대단군인 단군왕검, 고조선 말기 번조선의 준왕, 그리고 준왕을 쫓아낸 위만, 이 세 사람만 고조선의 왕으로 거론된다. 광복 70년이 다 되도록 우리는 아직 빈껍데기 역사만을 가르치고 배울 따름이다.

유교사관으로 쓴 국내 사서들은 한민족의 국통 맥을 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으로 이야기한다. 그에 따라서 한국의 교과서는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을 우리역사의 정통 맥으로 잡고 있다. 이러한 교과서를 만들고 가르치는 강단사학자들은 한국사의 계보가 단군조선에서 기자조선으로, 기자조선에서 위만조선으로, 위만조선에서 한사군으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그 한사군의 꼬리에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를 붙여 말한다. 이것이 한국 고대사 교육의 현실이다.

 오늘의 한국인은 한국의 역사를 모르고 있다. 한국사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모르고 있다. 이 얼마나 엄청난 문제인가! 이제까지 우리가 듣고 배운 한국역사는 모두 뿌리가 거세된 역사, 왜곡된 역사이다. 그런데도 이러한 그릇된 한국사를 대부분의 한국인은 진실된 것으로 믿고 있다. 학문적으로 한 번 굳어지고 나면 이것이 회복되는데 100년, 200년이 걸린다고 한다. 식민사학의 도그마에 빠져 역사의 진실을 제대로 볼 수 없는 현실이니, 민족사의 혼령이 통곡할 지경이다. 때문에 오늘날 한국사가 안고 있는 대명제는 무엇보다 먼저 왜곡된 한국사의 면모를 바로잡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의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민족인지 바르게 알아야 한다. 그 길을 우리는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4) 한국사와 인류사를 바로잡는 새 역사관


지금은 제3의 역사학이 필요하다

 지금은 이성주의 문화가 지배하는 시대이다. 이성주의란 이성이 진리의 유일한 판단 기준이라 생각하는 사상이다. 이성주의 문화 덕분에 사람이 달나라를 갔다 오는 과학문명이 만개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합리주의에 젖어 들어 영혼의 눈을 잃어버렸다. 태곳적 광명문화를 다 잃어버린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그저 즐겁고 건강하게 보람있게 살다 가면 그만’이라는 현세주의자가 되어가고 있다.

 인간만 병든 것이 아니다. 인간의 탐욕이 초래한 과도한 개발 때문에 대자연도 병들어 이상기후가 전 지구촌에 홍수, 지진, 가뭄, 해일 같은 천재지변을 끊임없이 일으키고 있다. 마실 물이 부족하고, 숨 쉴 공기조차 오염되었다. 인류는 지금까지 과학의 힘으로 전염병을 하나씩 정복해 왔으나, 이제 사스, 조류독감, 광우병, 신종플루 같은 낯선 질병의 공격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인간의 탐욕으로 부의 양극화가 심화되어 세계 경제도 대공황을 향한 위태로운 항해를 하고 있다.

 하지만 종교가, 정치가, 철학자 그 누구도 인류가 안고 있는 총체적 위기의 본질 문제에 대해 올바른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역사가 또한 지엽말단적인 문제에 매달려 이 시대의 과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인간과 자연과 문명의 총체적 위기를 해결해 줄 제3의 역사학이 필요한 때이다.


구사학과 신사학을 넘어서

 여기서 잠깐 역사학의 발전사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근대 역사학은 19세기 초에 등장한 구사학(old hitory)에서 20세기에 전개된 신사학(new history)으로 발전하였다. 19세기는 계몽주의 시대로 인간 이성에 대한 믿음이 지배하던 시대이다. 역사학자들 또한 문헌과 유물의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과거 사실을 찾아내고 객관적인 역사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믿었다. 이렇게 시작된 구사학은 실증주의 사학으로서 ‘지식의 절대주의’를 주장하였다. ‘본래 있었던 그대로(Wie es eigenrlich gewesen ist)'라 외친 랑케의 구호가 구사학의 모든 것을 대변한다.

 하지만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역사학에도 커다란 전환점을 가져왔다. 역사는 매순간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역사를 객관적으로 서술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역사가의 적극적인 해석이 중요하다는 신사학이 대두한 것이다.

 시대사조의 필연적 소산으로 시작된 신사학은 역사학을 더욱 넓은 지적 광장으로 이끌었다. 그 결과 역사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접근법이 생겨나고, 역사학의 분야가 매우 세분화되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세분화되다 보니 같은 사건을 놓고 상충하는 해석이 속출하여 ‘지식의 상대주의’가 초래되었다. ‘나는 나의 눈으로, 너는 너의 눈으로’ 역사를 보게 된 것이다. 이렇게 갈기갈기 찢기다 보니 신사학 또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게 되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1980년대 이후로 역사학에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났다. 역사의 본질과 전체상을 파악하려는 운동이 생겨난 것이다. 인간을 생태계의 한 구성 요소로 파악하고 인간과 생태계의 상호관계 속에서 역사를 보려는 시도가 그 한 예이다.


신교사관(神敎史觀)

 그러나 오늘의 역사학은 여전히 실증주의 사학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 신사학마저 ‘잔재 실증주의’라 불릴 정도이다. 실증사학은 철저한 문헌고증학의 입장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었으나, 과거 사실의 고증 이상의 뜻은 이루지 못하였다. 과거를 현재와 연결된 종합적 개념으로 파악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역사에 흐르는 인류 정신사의 맥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리하여 정신문화가 물질문화보다 찬란하게 빛났던 태곳적 인류의 시원역사를 밝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구사학과 신사학을 넘어 오늘날 역사학의 한계를 극복하고 한민족과 인류의 시원역사를 밝히기 위해서는 동양과 서양, 과거와 미래를 소통시키는 ‘대통일의 역사학’이 필요한 것이다. 동서양의 인종, 종교, 경제 갈등을 해결하고, 지구가 본래 하나이듯이 온 인류가 한가족으로 살 수 있는 ‘제3의 새로운 역사학’이 절실하다.

 제3의 역사학은 무엇으로 열 것인가? 대통일의 역사학을 열 새로운 역사관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9천년의 역사를 가진 ‘인류 공통의 문화인 신교의 눈’으로 역사를 보는 ‘신교사관’과, 지구촌 인류를 큰 하나의 가족으로 보는 대한의 의식으로 역사를 보는 ‘대한사관’이다.

 21세기 한국인은 신교라는 이름조차 모른다. 설사 이름을 안다 하더라도 한민족의 역사, 문화, 종교, 철학 등이 모두 뿌리로 두고 있는 신교에서 말하는 三神觀을 먼저 알아야 한다. 

 삼신은 무궁한 조화의 경계에 계시는 절대자이고 무형의 신이다. 이 삼신이 현실계에 자기를 드러낸 것이 바로 ‘하늘과 땅과 인간’이다. 조물주 하나님은 그 창조성이 만물 속에 세 가지 손길로 나타나기 때문에 삼신이라 한다. 만물을 창조하는 조화의 손길, 진리를 열어 만물을 가르치고 성숙시키는 교화의 손길, 질서를 바로 잡아 만물을 다스리는 치화의 손길로 작용한다. 그래서 하늘에는 조화신, 교화신, 치화신이라는 삼신이 있다.

 그리고 삼신이 현현한 또 다른 존재인 땅에서도 삼신의 세 손길이 작용한다. 그래서 고조선 시대에 삼한이 있었다. 고조선의 진한, 번한, 마한은 신교의 삼신사상에 따라 필연적으로 탄생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간 몸 속에 삼신의 손길이 작용하여 성, 명, 정 삼진이 되었다. 하늘에는 삼신, 땅에는 삼한, 인간에게는 삼진이 있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하늘, 땅, 인간은 삼신이 현현한 존재로서 동일한 가치를 가진다. 이렇게 천지인을 삼위 일체적 존재로 인식하고 그 틀에서 인간 역사를 해석하는 것이 바로 신교사관이다. ‘역사를 과학화 한다’는 미명 아래 지구촌 모든 민족과 나라의 상고 역사를 단지 생활 도구의 수준에 따라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로 구분하는 실증주의 사관과는 역사 해석의 잣대가 전혀 다르다. 역사를 집터, 무덤, 토기, 장신구 같은 유물과 유적으로만 따지는 실증사학에는 인류의 정신문화가 결여되어 있어 인간의 냄새를 맡을 수 없다.

 하지만 신교사관에서는 인간을 천지로부터 대광명의 성령 기운을 받아 사물을 보고 느끼고 판단하는 천지와 하나 되어 사는 성령적 존재로 본다. 나아가 인간을 ‘太一’이라 하여 천지의 꿈과 이상을 실현하는 천지보다 더 큰 광명의 존재로 인식한다. 인간의 위격과 가치에 대한 파천황적인 선언, 이것이 신교사관의 출발점이다.

 그렇다면 역사는 단지 인간에 의해서만 펼쳐지는 것인가? 역사의 주인공은 인간이지만, 역사는 천지인을 근본 요소로 해서 구성되고 발전한다. 인간이 천지의 품안에서 천지 변화의 법칙에 따라 역사를 만들어 나간다. 여기에 신교의 인간관, 우주관, 역사관이 다 담겨 있다. 이러한 신교사관으로 한국사와 인류사를 다시 해석할 때, 하늘과 땅과 인간이 한데 어우러져 펼쳐가는 우주사 차원의 새 역사, 새 문명을 열 수 있는 것이다.


대한사관(大韓史觀)

 한국이 속한 동북아는 역사상 가장 심각한 역사 왜곡과 말살이 벌어지고 역사 논쟁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역이다. 국제사회는 세계화의 기치 아래 화해와 공동번영으로 가고 있지만, 동북아는 장차 끔찍한 비극이 초래될지도 모를 심각한 역사 갈등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동북아의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어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역사관이 필요하다. 그 역사관이 바로 대한사관이다.

 대한사관이란 소한사관에 반대되는 말로서 ‘작은 한(小韓)’이 아니라 ‘큰 한(大韓)’의 의식으로 우리 역사를 해석하는 사관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 역사를 한반도 남부 땅에 있었던 작은 삼한의 역사의식으로 보는 것이 小韓사관이고, 대륙을 호령하던 큰 삼한의 의식으로 보는 것이 大韓사관이다.

 동북아는 원래 한민족이 그 구심점이었던 ‘큰 하나’, 대한의 문명권이었다. 하지만 식민사관과 중화사관에 의해 한민족사가 대륙의 역사를 잃어버리고 반도의 역사로 축소되면서 동북아는 그 구심점을 잃었다. 이러한 동북아 본연의 모습을 밝히고 그 시원역사의 진실을 드러내는 길이 대한사관에 있다.

 동북아는 현 인류문명의 시원 발상지이다. 따라서 동북아의 역사문제 해결은 곧 인류문명의 시원역사를 바로잡는 일이다. 그러므로 대한사관으로 동북아 역사를 재해석하는 것은 인류역사 전체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 된다.

 한국인의 뿌리역사를 맑히기 위해 중국과 만주의 광야를 헤매고 다닌 신채호는 4,300년 전 단군조선 때 대륙에 있던 삼한을 북삼한이라 하여 한반도 남부에 있었던 남삼한과 구별하였다. 남삼한이란 백제의 전신인 馬韓, 신라의 전신인 辰韓, 가야의 전신인 弁韓을 말한다. 이 남삼한의 원 뿌리가 바로 북삼한이다. 다시 말해서 단군조선의 북삼한이 망하고 남하한 유민들이 옛 국호를 따서 세운 것이 남삼한이다.

 안타깝게도 지금 한국 사람들은 한강 이남의 작은 삼한밖에 모른다. 북삼한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것은 일반 대중이건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이건 별반 차이가 없다. 중국의 중화주의 사관, 일본의 식민주의 사관, 고려와 조선의 사대주의 사관이 초래한 역사 왜곡의 병독이 깊어 고조선사를 보는 관점을 근본적으로 잘못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민족 본연의 사관은 남삼한에서 연유한 소한사관이 아니라 북삼한을 근거로 한 대한사관이다. 지금까지는 한민족의 웅대한 역사 혼을 축소시켜 버린 소한사관에 갇혀 살아왔지만, 이제는 대한사관으로 우리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여 북삼한의 역사를 되찾아야 할 것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 인류 문명의 발상지인 동북아의 태고 역사를 밝혀 한민족과 인류의 시원역사를 되찾아야 할 것이다.


대한으로 하나 되는 온 인류

 ‘大韓’이라 할 때, 韓이란 무엇인가?

韓은 桓檀에서 나온 말이다. 桓은 天光明 즉 하늘 광명이요, 檀은 地光明 즉 땅 광명이므로, 桓檀은 天地光明이다. 그런데 천지의 열매가 인간이다. 그 인간 속에 내재한 桓檀, 天地光明이 바로 韓이다. 다시 말해 人光明이 韓이다.

 인간은 하늘땅의 광명, 대자연의 성령이 깃든 천지의 열매이다. 따라서 인간은 이 땅 위에 이상세계를 건설하라는 준엄한 천지의 뜻을 실현하는 역사적 주체이다. 한은 인간을 위대한 역사적 존재로 자리매김하는 말이다.

 그리고 70억 전 인류는 누구나 예외 없이 ‘큰 한’, 즉 대한으로 하나이다. “지도 위에는 국경선이 있지만 지구에는 국경선이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입니다”라는 그리스 출신 음악가 야니Yanni의 말처럼, 개개인은 하나의 한이지만 인류는 대한으로 하나이다.

 그래서 대한사관은 지구촌 온 가족을 대한으로 보는 인류 보편의 역사관이다. 때문에 대한사관으로 인류 역사를 재정립할 때, 동서양의 모든 갈등을 해결하고 인류가 안고 있는 숱한 난제를 풀어 새 시대를 맞이할 수 있다. 온 인류가 진정으로 하나 되고, 다 함께 상생의 삶을 누리는 새로운 통일 문명사회를 열 수 있다.


5) 한민족의 역사를 찾아 줄 유일한 사서 『환단고기』


 역사를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역사를 잃으면 그 민족 고유의 정신을 잃어버려 민족혼이 사라지고, 종국에는 가치관이 무너져 국가와 민족의 존립 자체가 위험에 처하고 만다. 한국인의 잃어버린 역사, 사라진 민족혼, 무너진 가치관, 이것을 되찾아 줄 수 있는 사서가 바로 『환단고기』이다. 『환단고기』는 한국사의 진실을 밝히고, 파괴된 한국사의 원형을 복구시켜 줄 유일한 역사책이다.

 또한 『환단고기』는 한국의 뿌리 역사가 왜곡되면서 똑같이 역사의 근원을 잃어버린 중국과 일본의 시원역사까지 되찾아 준다. 왜냐하면 상고시대 동북아의 정치, 경제, 종교, 지리, 풍속, 언어, 음악, 건축, 국제관계 등에 대한 폭넓은 기록을 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환단고기』는 동북아 삼국이 모두 읽고 연구해야 할 소중한 역사서인 것이다.

 최근 인류문화가 중국, 일본, 동남아를 비롯하여 유럽까지 퍼져 나가고 있다. 젊은이들은 한류문화를 인기 있는 연예인들이 춤추고 노래 부르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대한민국 사절단이 세계에 보여주는 한류문화는 김치와 막걸리, 한글, 한복, 한국영화 정도에 머물러 있다. 먹고 입는 생활문화, 놀고 즐기는 대중문화가 한류의 모든 것인 양 굴절되어 있다.

 하지만 진정으로 중요한 한류문화의 핵심은 이 모든 것의 근원이 되는 정신문화이다. 고대 동북아의 구심점이자 주역이었던 한국의 장구한 역사 속에 면면히 전해 온 정신문화를 드러낼 때, 우리는 진정한 한류를 개척할 수 있다. 그 정신문화의 원형인 신교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기록한 사서가 다름 아닌 『환단고기』이다.

 동북아 삼국의 창세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진정한 한류문화를 열어 줄 『환단고기』는 또한 ‘신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역사란 무엇인가, 우주는 어떻게 생겨난 것인가’라는 의문, 곧 궁극의 진리 명제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환단고기』가 밝혀주는 놀라운 내용은 ‘어떻게 하면 인간이 하늘과 땅의 광명을 온전히 체득해서 하늘땅과 일체로 살 수 있는가’ 하는 데 그 근원을 두고 있다. 『환단고기』는 천지광명 속에 계신 삼신이 하늘 땅 인간 삼재와 혼연일체가 되어 연주한 우주 역사의 교향곡이다.

 그러면 이제 『환단고기』는 과연 어떤 책인지, 『환단고기』역사관의 참 면목이 무엇인지, 그 구체적인 내용을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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