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초의 성씨는 무슨 성씨일까요?
옛 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백가성지원강百家姓之原姜이라."
인류 성씨의 시원 강씨! 강씨가 모든 성씨의 근원이다.
Founder Kang of mankind surname(百家姓之原姜)!
강씨(姜氏)는 환인천제의 직손으로 인류성씨의 시원(始原)이다.
바이칼호에서 신농의 본족이 잉태되어 중원전체는 물론 아시아 한반도를 지나 아메리카 수메르를 잇는 대장정의 역사를 치러온 것이다.
신농神農 이후 제래帝來 때까지 나타난 글자로는 미美가 있다. 이는 양대羊大의 합자合字로서 큰 염소는 살림을 풍부하게 하니 아름답다는 뜻이다. 이어 군君과 군群이 나타났는데 양들이 떼 지어 다니는 모양을 그린 것이다.
그리고 양羊은 수놈이 주인이므로 양두羊頭 즉 압군壓群과 양養과 상祥 그리고 선善과 의義 등의 글자가 모두 羊에서 나왔다.<중국 상고사회 신론>
신농씨는 <丨>를 표지로 삼았는데 이는 고마(=神) 즉 하나님으로서 세상에서 만물을 효능效能에 따라 최초로 끄집어내고 새로운 질서를 잡은 인물이기 때문이다.<설문해자>
신농에서 웅족熊族이 그리고 양족羊族과 우등족牛族이 파생이 되었고 모두 다 봉鳳과 웅熊을 신물로 삼았으며, 그 직손들인 고구려 때에 이르러 서청룡 우백호 북현무 남주작 중황웅의 오방신장으로 자리잡아 고구려를 수호하는 호국신護國神이 되었다.
출처: http://blog.daum.net/pachunwangkang/15972441
아래 기사 함께 보기
동서남북 상하좌우… 중국 성씨엔 없는게 없다
경향신문베이징/조운찬 특파원입력 2010.10.06 12:13
동(東), 서(西), 남(南), 북(北), 상(上), 하(下), 좌(左), 우(右).
이들 글짜의 공통점은? 방위를 가리키는 글자라는 점이다.
하나 더 있다. 모두 중국에서 사용되는 성(姓)이라는 사실이다.
중국 사회과학원이 최근 발간한 <중국성씨대사전>에는 동서남북, 상하좌우가 모두 오늘날 중국인이 사용하는 성씨로 올라있다. 사전에 따르면 동(東)씨 성은 중국 인구의 91%를 차지하는 한족 뿐 아니라 몽골족, 만주족, 티베트족도 사용하고 있다. 푸젠, 장쑤, 허베이성과 톈진시 등 중국의 동쪽에 주로 분포하고 있는게 특징이다. 그러나 서, 남, 북씨는 성씨와 분포지 간의 상관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 서씨는 광둥, 랴오닝성에, 남씨는 허난, 간쑤, 산시, 랴오닝, 허베이, 저장성에 비교적 많다. 상대적으로 수가 적은 북씨 성을 가진 사람들은 주로 네이멍구 바오터우, 산시 펀양, 허베이 청더시 등에 거주하고 있다.
<중국성씨대사전>은 역대 중국에서 사용되어온 성씨는 2만3813개라고 밝혔다. 이 가운데 오늘날 사용중인 중국 성씨는 7000여개으로 역대 성씨의 3분의 1 정도다. 중국의 성씨 가운데 한 글자 성은 6931개, 복성은 9012개, 세 글자 성은 4850개, 네 글자성은 2274개이다. 5~9개 글자를 사용하는 성씨도 수백개에 달한다. 가장 긴 성씨는 한자 10개 글자로 이뤄진 티베트 성씨 '후어얼추안자무쑤타얼즈두어'다. 이처럼 여러글자의 성씨가 많은 것은 티베트, 위구르인 등 소수민족의 성씨를 한자로 옮겼기 때문이다.
중국의 7000개의 성씨를 보면 웬만한 한자는 모두 성씨로 쓰임을 알 수 있다. 중국인들은 '문 열면 7가지 일이 있다'(開門七件事)라는 말로 장작, 쌀, 기름, 소금, 장, 차 등 7가지를 생활필수품으로 꼽는데 시(柴), 미(米), 유(油), 염(鹽), 장(醬), 초(醋), 차(茶) 또한 모두 중국의 성으로 사용되고 있다. 중국의 성씨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은 (李), 왕(王), 장(張)으로 각각 1억명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이 3개 성을 포함해 100대 성씨가 중국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85%에 달한다. 또 중국 성에서 글자 획수가 가장 적은 것은 '일(一)', 가장 획수가 많은 글자는 30획으로 이뤄진 '천'(부뚜막 천)으로 확인됐다
고대 중국의 성씨는 성과 씨가 나뉘어 있었다. 고문헌 기록에 따르면 중국 최초의 성은 풍(風)이고, 최초의 씨는 복희씨 신농씨 여와씨 등이다. 성과 씨나 하나로 합해진 것은 진한(秦漢)시대에 들어와서다.
중국 성씨 연구가 위안이다(袁義達)는 아버지의 성을 따르고, 환경·기후·질병과 관련된 글자에서는 성씨를 취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중국 성씨의 특징으로 꼽았다. 위안이다는 "성씨는 인류사회 진화과정의 문화유산이자 혈연관계의 부호"라고 말했다. 성씨를 보면 나라와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베이징/조운찬 특파원 sidol@kyunghyang.com>
-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아래 기사 함께 보기
- 동이조상 치우(蚩尤)와 ‘붉은악마’
- 염제신농, 황제헌원 등 우리 조상...남아공월드컵 치우 환생
- 2010년 06월 11일 (금)
-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강씨(姜氏)성을 가진 치우가 있었다”, “치우는 구여(九黎)의 임금이다”했고, 상서(尙書)에는 “구여는 치우의 백성이다”고 말했다. 왕동령(王桐齡)은 ‘중국민족사’에서 “묘족(苗族)의 나라이름이 구여요, 그 임금을 치우라 했다”고 전한다. 북애자(北崖子, 조선조 숙종원년, 1675년)는 ‘규원사화(揆園史話)’에서 “치우는 동이겨레의 한 갈레인 풍이(風夷)의 사람이다”고 했다.
그런데 중국에서 삼황오제 가운데 한 인물인 태호복희(太皥伏羲)의 성이 풍씨다. 뒤 이은 소전(少典)의 후손인 염제신농(炎帝神農)은 지금의 협서성 기산현 강수(姜水= 岐水)가에서 자라난 까닭에 성을 ‘강(姜)’씨라 했다. 그가 불의 덕으로 임금이 된 까닭에 염제(炎帝, 불 임금)라고 했다.(綱鑑金丹, 中國古今地名大辭典) 또한 밭 갈고 밭 메는 일 등 처음 농사법을 가르쳐 준 까닭에 그를 신농(神農, 신기한 농사꾼)이라 했다고 전한다.
‘사기’에 “강씨 성을 가진 제후인 치우가 있었다”고 했고 “염제신농의 후손으로 황제헌원(黃帝軒轅)이 일어났다”고 했다.(사기 ‘보사기’ 삼황본기) 염제, 황제 모두 동이족 소전의 자손이다. 산해경(山海經)에 태호복희, 염제신농, 황제헌원이 모두 숙신나라(동이겨레의 땅)에서 일어났다고 했고, ‘제계사기(帝繫史記)’에선 “황제가 밝겨레(白民)에서 났으니…자신이 동이사람이다” 했다.(黃帝生白民…自屬東夷) 모두가 동이족에 속한다.
근세 중국학자 서욱생(徐旭生)의 ‘중국고대사적전통시대(中國古代史的傳統時代)’나 당나라 장수절(張守節)의 ‘사기정의(史記正義)’ 등 역사 기록들이 치우에 대해 하나 같이 “치우가 묘족을 포함한 동이족의 임금이다”고 밝혔다. 옛적 중원천지는 우리 동이조상들의 무대였던 것이다.
중국의 역사문헌들 치우를 왜곡
‘한단고기(桓檀古記, 삼성기 하편, 신시역대기)’에 “신시에 도읍한 배달나라 제14세 임금이 자오지한웅(慈烏支桓雄)인데 세상에서는 치우천왕이라 하며 청구국(靑邱國)으로 도읍을 옮겨서 재위 109년에 151세까지 사셨다”고 전하고 있다. “그에겐 친형제와 일가형제 81인이 있었고, 짐승의 몸에 사람의 말을 하며 구리로 된 머리와 쇠로된 이마(銅頭鐵額), 모래와 돌을 씹어 삼키고 창과 칼, 큰 쇠뇌(太弩)를 만들었다. 슬기와 용맹이 남달랐으며, 능히 안개를 일으키고, 아홉 군데의 야금 소(九冶)에서 광석을 캐고 철을 주조, 병기를 만드니 천하가 모두 두려워했다.
치우란 우뢰와 비를 크게 일으켜 산하를 바꾼다는 뜻이다. 치우는 여산의 금속을 받아 다섯 군대(五兵)을 만들었다.”(한단고기, 司馬貞의 ‘史記索隱’, 太平御覽, 揆園史話 등) 치우로 대표되는 세력이 금속문명을 소유했음을 보여준다. 반면에 헌원으로 대표되는 세력은 그때 까지만 해도 금속문명이 없었다는 말이 된다.
“치우는 천도에 밝았다”(‘管子’ 도행 편), “천문을 보아 중토(中土, 중국)의 왕성한 기운을 알고, 쓸데없이 죄 없는 백성을 죽일 수 없다며 돌아왔다”(‘규원사화’ 태시기). 이러한 기록을 보아서도 치우는 당시의 무기와 도술과 전략으로 헌원과 10년 동안 70여회나 싸워 모두 이겼으면서도 천도를 알고 적을 완전히 궤멸시키지 않는 포용력도 보여 주고 있다.
한데, 한국과 중국의 사서가 탁록(涿鹿)에서의 전쟁 결과를 각각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탁록 전투에서 치우가 헌원에게 잡혀 죽었다”고 했다. 규원사화는 이를 부인한다. “이때 치우의 부장(部將)이 불행하게도 공을 서둘러 세우려 하다가 진(陣) 안에서 죽었는데 사마천이 ‘사기’에 ‘드디어 치우씨를 사로잡았다’고 한 것은 이것을 말한 것이다”고 했다. 부장 한사람이 진중에서 죽었는데 이를 중국 측이 곡해한 것이며 사실은 치우측이 이겼다는 것이다.
한단고기는 “황제헌원을 사로잡아 신하로 삼았다”고 했다. 여러 역사기록이 치우의 천하무적의 용맹과 강대함, 치우의 승리를 기록했는데 사마천의 사기는 거꾸로 치우의 패배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전통적으로 염제신농과 황제헌원을 한족(漢族)의 조상으로 추앙했으나 치우는 제외됐다. 그런데 요즘와선 치우도 자기네 조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탁록의 황제성이라는 곳에 ‘근본으로 돌아가는 사원’이란 뜻의 ‘귀근원(歸根苑)’이라는 사원을 세웠다. ‘탁록중화삼조문화연구회’란 단체서 세웠다지만 알고 보면 정부차원이다. 안에는 세 조상을 모시는 사당이란 뜻의 ‘삼조당(三祖堂)’이 있다.
이는 중화삼조(中華三祖) 즉, 염제신농, 황제헌원, 치우천황을 뜻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삼조 모두 우리 동이조상이지 결코 중국 한족(漢族)의 조상이 될 수 없다. 헌원과 맞서 싸운 우리 조상 치우마저 자기네 조상이라니. 남의 조상을 사당에 모신 짓은 환부역조(換父逆祖)가 아닌가.
이는 역사적 측면에서도 억지일 뿐 아니라 정치적 의도가 짙다. 서남공정에서 의도하는 남부 묘족의 영토와 동북공정에서 의도하는 동북부 동이족의 영토를 중국의 역사, 중국의 영토로 편입하기 위한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한편, 도대체 자기 조상마저 남에게 빼앗길 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뼛속 깊은 자아성찰이 요구된다.
승리의 함성에 천하무적 치우 환생
남아공 월드컵 대회가 개막됐다. 우리나라 태극전사들의 선전이 기대된다. 벌써부터 승리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선수들 못지않게 ‘대~한민국’을 외치는 ‘붉은악마’들의 응원열기가 뜨겁다. ‘2002 월드컵’ 때부터 세계에 이름을 떨친 붉은악마를 상징하는 깃발에 그려 넣은 백전백승의 치우상이 눈에 띈다. 당시 응원기를 디자인한 장부다씨는 ‘겨레의 군신 치우를 상징해서 그렸다’고 했다.
치우의 상징색은 붉은 색이다. “해주에 염택이 있는데, 그 색이 정말로 붉어… 세상에서는 치우혈(蚩尤血)이라고 한다.”(‘몽계필담’ 권3. 치우학회 제2호) “사람들이 10월이면 제사를 모시는데 붉은 기운이 비단필 처럼 펼쳐졌다. 세상에서는 이를 치우기라고 이름 붙였다,”(‘황람’ 총묘기. 치우학회 제2호) 동지에 붉은 팥죽을 쑤어 대문간에 뿌리듯 붉은색은 악귀나 재액을 쫓는 색으로 믿어왔다.
치우는 지붕의 치미에 올리는 귀면와(鬼面瓦)나 도깨비 같은 수호신적 성격으로 나타나고 있다. 치우부적, 치우투구, 치우깃발, 기우제신 등도 모두 치우로부터 유래되는 민속이다. 서울 용산의 전쟁기념관 입구의 천정에 도철문 모양의 치우천황 형상이 그려져 있다. 치우는 전쟁 신, 군신, 승리의 신으로 표상된다. 유비나 이순신장군도 출전에 앞서 치우를 모신 사당에서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여기서 붉은악마의 ‘악마’는 ‘악바리’, ‘악물다’, ‘악착같다’ 등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쓰는 애칭이라 봄이 좋겠다. 이번에 또다시 온통 붉은색으로 세상을 놀라게 할 ‘붉은악마’는 흔히 말하는 ‘악마(惡魔)’가 아니기 때문이다. 적과 악은 물리치되 무고한 백성은 해치지 않았고, 약자를 도와주고 선과 도의와 정의의 편에 섰던 수퍼맨 치우장군, 백전백승 천하무적의 치우장군. 그가 오늘 ‘붉은악마’와 함께 외치는 온 국민의 함성 속에 다시 환생할 것 같다. [김주호 국립 몽골대학교 철학박사]
원본 기사 보기:환타임스 -
-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만 될 정보가 담긴 책들!*^^*◀
☞친절안내 뾰족한수 이용진 ☎010-9088-7565
★여기에 있는 한 권의 책이 소중한 당신님과 당신님 가족의 행복한 미래를 보장해 드릴 것이며,
세상을 살면서 궁금하셨던 많은 의문점들을 풀어드릴 것입니다!^^★
(1)기초 소책자,CD(분야별 관심사항) 무료신청하기 ☞클릭!^^
(2)고급수준 체계적인 내용 공부하는 책 무료대여 신청하기☞클릭!^^
'한민족 역사문화 > 환단고기*韓의뿌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환단고기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 속의 삼신상제님과 개벽 (0) | 2011.11.02 |
---|---|
桓檀古記.(환단고기) 소개 및 구성-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 (0) | 2011.11.02 |
환단고기 속의 <단군세기 서문> 강독 말씀 내용 (0) | 2011.10.28 |
철학자 하이데거도 환단고기(桓檀古記)를 배우고 싶어했다??? (0) | 2011.10.28 |
환단고기(桓檀古記) 삼성기(三聖記) 上, 下 강독 (0) | 2011.1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