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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특수부대] 북한 특수부대에 대한 분석자료

by 바로요거 2011. 6. 7.

[북한 특수부대] 북한 특수부대에 대한 분석자료

 

글 번 호: 147620

작 성 자: 군사고문관

제     목: 北韓 特殊部隊 分析 (북한 특수부대 분석)

 

 

당시 제 8 특수군단 직속 총참모국 소속 특수부대원들의 모습 (후에 경보도 지도국 소속으로 바뀜) 

 

북한의 특수부대는 규모면에서 세계 최대를 자랑하며 개개인의 전투능력역시 여러 평가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보면 세계 제일로 생각되는 부대입니다.

 

과거 96년도에 있었던 강릉 잠수함 공비 침투 사건 당시에 북한의 특수 부대에 대한 각 언론사들이나 군 기관들의 관심이 상당히 많았고, 이에 대한 자료 수집은 그 사건을 기점으로 많은 부분이 추가되고 새로 기록될 정도 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북한의 특수부대에 대한 정확한 규모와 그 위력에 대해서는 한국군 특수부대와 비교해 보았을 때 장비의 노후화, 부대 운영의 열악한 상황등을 비추어 그 영향력이 과거에 비해 많이 축소 및 줄어들었을 것이란 분석도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분석이 가능한 이유는 우선 북한의 외부로의 군사정보가 유출될 여지가 그다지 높지 않다는 폐쇄성에 기인하기도 합니다. 물론 북한의 고위 군관계자와 특수 부대원을 생포 및 귀순을 통한 개별 취조를 통해 군사 정보를 얻기도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자료로 평가하기에는 개인의 의견적 첨부를 가지는 성격이 많고, 귀순자의 의견 역시 상대적으로 한국의 특수 부대의 장비와 훈련 정도를 제대로 분석하지 않고 비교할 수 없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이러한 자료를 얻어 비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비교적 소수에 지나지 않으며, 이러한 상황으로 외부에 북한 특수 부대에 대한 구체적 자료와 확실한 정보 분석이 공개되질 여지를 가지고 있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현재 국내외에 있는 여러 정보 중에 상당히 신빙성을 가지고 있는 정보를 중심으로 북한 특수부대에 대해 설명을 해 보고자 합니다.

 

현재 한국군과 미군이 평가하고 있는 북한의 특수부대의 규모는 북한군 평시 병력의 약 15% 정도인 18만에서 20만명 사이로 이는 약 10개 이상의 보병 사단 규모로 세계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 전투능력역시 최강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특수 부대가 이러한 거대한 편재를 이루고 있는 이유들 중의 한 가지는 주로 미군의 분류를 따랐기 때문으로 미군과 한국군이 분류하는 특수부대란 비정규전(Irregular Warfare)을 주전공으로 하는 북한군의 각종부대를 총합적으로 설명한 것으로 다른 호칭인 특수목적부대 또는 특수부대로 호칭이 됩니다.

 

 

 

북한군내에서 특수부대로 분류되는 부대는 경보병부대, 공정부대, 저격병, 정찰부대, 양륙전부대가 이에 해당하며 북한군은 이들 부대를 이용하여 여러 비정규전을 시행하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비정규전(Irregular Warfare, special warfare, 特殊戰, 비정규전 )이란 게릴라전(guerrilla warfare), 적진에 대한 잠입, 탈출 활동, 사보타지(sabotage) 활동, 특수전을 통칭하며 이외에 전선에서 정규전을 제외한 모든 군사, 정치적 활동을 의미합니다. 

 

 

북한은 6.25 전쟁 직전 중앙의 비정규전 부대개편정책에 따라 특수전을 시행할 해병부대가 탄생하게 됩니다. 이 해병부대는 1949년 7월 원산에서 제 766, 945 연대로서 활동하게 됩니다. 

 

 동해안에 기습 상륙하려는 북한의 어뢰정      그 당시 사용된 북한 어뢰정

 

이 부대는 1950년 6월 24일 766 연대와 해군 육전대 소속 945 연대의 일부가 동해안을 통하여 상륙하여 북한의 5 보병사단의 선도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 부대는 곧이어 부산동북부에 600명의 병력으로 상륙활동을 개시하려 했지만 한국군의 구축함에 의해서 저지당하였고 이어 실패하였습니다.

 

 이 때의 북한의 특수부대 주요 작전은 주요 전투사단을 앞서 주요 통로를 개척하고 한국군에 대한 정보활동을 중요임무로 하고 있었으며 상당히 우수한 활동을 하여 호평받았다고 합니다.

 

 이 부대는 후에 증강되어 766부대는 12사단으로, 945부대는 24여단으로 증편되게 됩니다.

 

북한은 이러한 주요 전투사단이외에도 남한내의 일명 남부군(南部軍)이라는 군사조직을 이용하여 지리산 일대와 소백산 일대에서 게릴라전을 전개하게 하였습니다.

 

 

이현상 남부군 총사령관, 빨치산 대장 (1905~1953)

 

* 빨치산 - 파르티잔 이라는 외래어(프랑스어, 노어)의 한국말 - 수정부분 -

 

 이 남부군을 이루는 요원들은 한반도 남부까지 온 후 퇴로가 막혀 북한으로 올라가지 못한 북한의 잔류부대와 당시 남한 내의 남로당의 주요인물들이 중심으로 되어 이루어 졌으며 상당히 오랫동안 저항하였습니다. 

 

 

1952년 3월 광주 빨치산 포로수용소를 방문한 이승만 전 대통령

 

6.25 때의 한국군 특수전활동을 보면 해군에 의해 급히 편성된 해병대를 이용한 통영상륙작전을 통하여 북한군의 주요 거점을 함락시키고 통영을 지켜내었으며

 

 

 

켈로부대, 팔미도 부근

 

북한내부의 켈로부대(Korea Liasion Office :주한 첩보연락처)와 같은 특수 부대가 존재하여 많은 활약을 하였습니다. 이외에도 조직적이지는 못했지만 북한의 여러 곳에서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많은 민병들이 활동하기도 하였습니다. 

 

한국전쟁 시에 북한의 통제를 받는 남부군의 활동은 한국군에게 게릴라전에 대한 많은 교훈을 남겨주게 되었던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게릴라 부대에 대한 대항책과 진압방법은 사실상 이 때에 대부분 만들어지고 발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북한 특수부대가 한국과 세계를 대상으로 저지른 비군사적 사건은 상당히 많은 편이지만, 현재로서는 한국내를 대상으로 남침한 사건을 바탕으로 분석할 수 있는 자료가 유효하므로 대표적인 사건을 2건 나열해 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 청와대 침투 사건

 

이 사건은 1968년 1월 5일 제 124 육군 부대 31명은 사리원에서 비밀 임무의 수행을 위한 강도 높은 훈련을 개시하여 8일간의 집중 훈련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훈련의 종결 후 평산에 위치한 124 부대에 속했던 제 6 기지에서 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들의 임무는 청와대를 기습 공격하여 박정희 전 대통령 및 청와대 중요 참모 요인들을 암살하여 한국 내부의 불안조성을 목적으로 출발하여 1월 17일에 개성에서 이동을 시작하여 한국육군 26사단의 전투복으로 위장한 후 경비가 가장 허술하다고 판단되었던 미육군 제 2사단의 경계지역을 통하여 밤에 남측으로 침투하였습니다.

 

그 후 전원이 효과적으로 미군의 방어망을 통과함은 물론 미군의 사단사령부를 통과하여 남하하던 중 우연히 나무를 하던 민간인 3명에게 포착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들에게 발각된 침투부대는 자신을 동계 작전 중인 한국군으로 설명하면서 민간인에게 몇가지 취식물을 주면서 돌려보냈으나 이들이 전부 한국에서 군복무를 마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민간인 3명 모두 이들이 북한의 침투요원이라는 사실을 알고 인근 경찰에 신고함으로써 이들에 대한 저지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북한군의 우수한 기동능력을 몰랐던 군과 경찰은 이론적으로 인간이 낼 수 있었던 도보 속도를 기준으로 한 포위망을 형성하였으나 북한의 특수부대는 한국군의 상상을 넘는 속도로 3차례에 걸친 포위망을 통과하여 결국 1월 21일, 청와대 800m 근방에서 경관의 검문에 걸려 진압되고 말았습니다.

 

 

 

생포되었던 김신조씨

 

 이때 침투인원 31명 중 28명이 전사하고 2명이 행방불명되었으며 이때 유일하게 김신조만 살아남아서 당시의 진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 2 북악스카이웨이 (김신조 루트)

 

이 때의 교전으로 민간인과 군인의 사망자가 68명, 부상자가 66명이나 발생하여 북한군의 우수성을 증명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의 교훈으로 휴전선에 대한 전체적인 방어가 강화되었으며 청와대 근방에 육군의 대규모 정규부대가 주둔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때부터 가장 고생을 시작한 것이 한국의 특수부대로서 북한의 특수부대가 보여주었던 엄청난 이동능력을 본받아 천리행군을 시작되었으며 부대의 시간당 이동속도가 급격히 빨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이때 김신조를 통하여 북한특수부대의 우수한 능력이 공개된 후 한국특수부대도 북한의 특수부대와 거의 비슷한 수준의 훈련을 하게 되었습니다.

 

 

 

* 97년 강릉무장공비 침투 사건

 

아직까지 사용되는 주요 게릴라 토벌 작전으로 슬래치 해머 작전이 있습니다.

이를 우리말로 풀어서 해석하면 상,하방 압박 수색작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용어를 주로 일명 「토끼몰이」 작전이라고 합니다.

 

 

이 작전은 우선 게릴라가 숨어있는 산밑을 포위한 후 산정상에도 공격부대를 배치하여 동시에 게릴라를 압박하는 작전을 말하는 것입니다.

 

 

 

97년에 발생하였던 강릉 잠수함 무장공비 침투 사건에서도 이러한 공비 토벌 작전이 tv 에서도 방송되어 설명되어 졌는데, 기본 전술의 틀은 산 밑을 보병부대로 포위한 다음 산 위에 헬리콥터를 이용, 특수부대를 레펠링 방식으로 투하하여 배치한 후 산위와 산 밑에 특수부대를 이용하여 동시에 수색하는 작전으로 이 작전은 이미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이 사용하여 우수한 효과를 발휘하였었습니다.

 

 

 

 

작전의 개요는 우선 산정의 거점을 확보하여 보병을 이용한 산허리에 포위망을 형성하고 헬리콥터를 이용하여 산정에 토벌부대를 투하시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4명~6명의 소총 분대를 편성하여 게릴라 잠복지역에 집중 투입하여 게릴라의 아지트 등을 찾아내어 철저히 파괴하는 방법입니다.

 

 

세 번째는 도주한 게릴라가 재집결할 것으로 예측되는 지점에 매복하여 게릴라의 퇴로를 차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1960 년대 부터 모선에서 분리된 자선격인 반잠수정을 이용해 해안침투를 시도하던 북한은 1990년대로 들어서면서 침투수단을 잠수함으로 바꾸었습니다. 북한 정찰총국이 판단하기로는 당시 남한의 해안경계는 큰 문제가 아닌것으로 판단하였습니다. 97년 당시 발각된 350t짜리 상어급은 인민무력부 정찰국 해상처에서 지원을 받는 승선장비였습니다.)

 

이러한 작전은 지난 97년 강릉 무장공비침투 시에도 한국군은 이와 같은 작전을 시행하여 많은 전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 제기된 문제점으로 산위로 부대를 투입할 때 이러한 상황이 적에게 노출되어 아군이 저격을 받아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으며 무장공비의 효과적인 아지트(safe house) 이용으로 발견하기가 용의하지 않았다는 점과

 

강원도 칠성산 부근

 

한국의 산악지형의 특성상 특별히 험난한 곳이 없기 때문에 무장 공비의 탈출루트의 매복이 곤란했다는 교훈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96년 당시 한국군에 의해 노획된 북한 무장공비가 사용한 무기

 

 

이에 한국군도 일부를 포로로 잡아 그들의 실력을 평가하고 싶어했지만 전부 자살(독약앰플을 물고)하거나 사살되어 실패하였습니다.

 

 

우리 군에 의해 사살된 무장공비, 오른쪽 위의 인물은 생포된 이광수씨

 

북한의 이러한 침투는 민간인들에게 상당한 곤욕이었으며 많은 경제적 손실을 가져다 주었지만 군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전술을 시행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며, 침투작전 후의 교훈은 한국군의 공비토벌작전의 효율성을 한 단계 높인 매우 좋은 기회였다고 평가되었습니다.

 

물론 당시 언론으로부터 많은 비난을 면치 못한 것도 사실이었으나 여기에는 당시 언론들의 군사 작전에 대한 비전문성에서 기인하는 잘못된 비판도 많았습니다. 당시 작전에서 한국군의 새로운 전술 사상과 통신 장비를 이용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동안 북한무장공비들이 손쉽게 한국군 포위망을 빠져나갈 수 있었던 원인이 한국군 통신의 도청을 막기 위해서 새로 배치된 주파수 도약 무전기를 이용한 암호화 통신을 이용하여 북한공비의 도청을 차단하였으며 북한군이 남한에서 한국군과 대치중인 공비와의 교신을 막기 위하여 북한에 대한 도청 및 전파방해를 시행함으로써 북한군과 공비와의 연락을 차단하고 북한군이 공비의 무사귀환을 위한 북한군의 휴전선 무력 도발도 차단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외에도 최초로 한국군의 헬기를 이용한 독자적인 공중 기습작전을 시행할 수 있었으며 그당시 우려되었던 신세대 장병들의 전투 의지를 확인 할 수 있었던 황금과 같은 기회였습니다. 

 

 

* 북한 특수 부대의 모병 조건

 

우선 북한 내에서 정치적 신뢰도를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통상 4~7년간 전투병과에서 복무한 사람

하사관이상의 상등교육을 받은 사람

소학교와 중학교 이상을 졸업한 사람

지휘관의 근무성적평가에서 우수한 자로 평가되어 추천받은 사람

신체적으로 이상이 없는 사람

 

등의 조건을 토대로 대부분을 만족한 우수한 부대원만이 북한의 특수부대로 선출되며 선출된 요원은 훈련부대에서 3~6개월 이상의 기간동안 기본 교육을 받게 되고 이 기간중에 본인의 기량과 특수부대원으로 채용여부를 시험받게 됩니다.

 

이렇게 선발된 인원의 근무연한은 11년에서 12년으로 일반부대의 8년 ~ 10년 보다 더 긴 근무를 하게 되며 선발된 인원을 각 특수 군단 산하의 공정· 공중기동부대, 양육전부대 등의 여러부대로 배속하여 여기에서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 북한 특수부대의 훈련

 

북한 특수부대의 훈련수준은 질과 양 모두 세계 제일級의 엄격한 훈련을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수부대의 훈련 내용은 어느 국가나 극비로 정해져 있으며 북한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북한의 특수부대의 정확한 훈련 방법이나 방식에 대한 자료는 공식적으로 나온 것은 없으나 주로 탈북,귀순한 전직 북한 특수부대원들의 증언에 의해서 간간히 밝혀진 바는 있습니다. 이들에 의해 대체로 공개된 정보는 상당히 포괄적인데..

 

기본 훈련 요건은 40kg의 군장을 착용하고 24시간동안 50km의 산지를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북한군 1개 분대의 도로상의 이동능력은 기계화 보병 1개 대대의 기동력과 비슷할 정도로 우수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2011-01-31 02:14:40

출처: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nbrd/gallery/view.html?b_bbs_id=10044&num=147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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