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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역사문화/한민족의 역사문화

한민족으로서 한민족의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

by 바로요거 2009. 12. 17.

한민족으로서 한민족의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


"조선의 역사는 무정신의 역사다!" 단재 선생의 '독사신론'에 나오는 이 한마디는,

역사의 뿌리를 통째로 잃어버리고도 뚜렷한 문제의식이 없는, 우리 한민족을 질책하는 금언이다.


1) 역사는 자아인식을 목적으로 한다.


영국의 외교관이며 정치학, 역사학 교수였던 E. H. 카(1892∼1982)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가 곧 역사라 하여, 역사는 과거의 지나간 사실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살아 생동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민족과 국가의 발전은 올바른 과거 역사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출발한다.


만해 한용운도 [조선독립의 서]에서 "월조(越鳥)는 남지(南枝)를 생각하고 호마(胡馬)는 북풍(北風)을 그리워 우나니 이는 다 그 근본을 잊지 아니함이라."고 하였다. 또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 하여 여우도 죽을 때가 되면 머리를 자기가 태어난 굴을 향하고 죽는다고 하니 근본을 저버리지 않는 것은 미물이나 동물에게도 나타나는 진리라고 하겠다.


한민족으로 태어나서 자신의 역사와 전통을 공부하고 체득하는 것은 인류의 새 시대, 21세기를 한민족이 열어 나가는데 있어 필수불가결한 사항이라 할 수 있다.


고려 공민왕 12년(1363년) 행촌(杏村) 이암(李嵒) 선생이 지은 [단군세기(檀君世紀) 서(序)] 앞부분에 이런 말이 있다.

爲國之道(위국지도)가 莫先於士氣(막선어사기)하고 莫急於史學(막급어사학)은 何也(하야)오.


나라를 위하는 길이 민족지도자들(국민)의 기상을 높이는 것보다 먼저 할 게 없고, 역사를 바로세우는 것보다 급한 것이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史學(사학)이 不明則士氣(불명즉사기)가 不振(부진)하고 士氣(사기)가 不振則國本(부진즉국본)이 搖矣(요의)오 政法(정법)이 岐矣(기의)니라.


사학(史學)이 분명하지 못하면 사기(士氣)를 진작시킬 수 없고, 사기가 진작되지 못하면 국가의 근본이 흔들리며 나라를 다스리는 법도가 분열됨이라.


嗚呼(오호)라 "정유기(政猶器)하고 인유도(人猶道)하니 기가리도이존호(器可離道而存乎)며 국유형(國猶形)하고 사유혼(史猶魂)하니형가실혼이보호(形可失魂而保乎)아. 병수도기자아야(竝修道器者我也)며 구연형혼자역아야(俱衍形魂者亦我也)라. 고(故)로 천하만사(天下萬事)가 선재지아야(先在知我也).


"오호라! 정치는 그릇(器)과 같고 사람은 도(道)와 같으니, 그릇이 도를 떠나서 어찌 존재할 수 있으며, 나라는 형체(形)와 같고 역사는 혼(魂)과 같으니,형체가 그 혼을 잃고서 어찌 보존될 수 있으리오.

도와 그릇을 같이 닦는 자도 나요, 형체와 혼을 아울러 발전시키는 자도 나로다. 그러므로 천하만사 가운데 먼저 할 일은 나를 아는 것이다.

그러한즉 나를 알려면 무엇으로부터 시작해야 하겠는가?

사학(史學)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라고 하셨다.


백범 김구 선생은 "철학도, 정치·경제의 학설도 일시적인 것이지만 민족의 혈통만은 영원하다."고 하였다.

민족의식과 민족정신은민족단합의 근원이며, 민족자존의 원동력이며 민족발전의 추진력이다.

 

우리는 일제에 의해 왜곡된 역사만을 배워왔기 때문에 우리 민족의 정신과 혼이 배여 있는 고유한 종교와 사상은 잊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 민족은 '민족은 있으되 역사는 없고, 아니 역사는 있으되 이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민족의 역사는 어렴풋이 알되 우리 민족의 정신세계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2) 애국심은 역사의 올바른 인식으로부터


민족이란 무엇인가?


첫째, 민족이란 언어, 문자, 풍속, 관습, 생활, 사상, 그 밖의 문물일체를 공동 소유하고 있는 짙은 혈연의 사회적 집단이며 또한 운명공동체, 역사공동체, 문화공동체이다.


둘째, 나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받고 명예와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은 세계주의가 아니라 민족주의에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민족은 국통의 단절됨이 없이 단일민족으로서 지속되어 온 세계에서 유일한 민족이라 할 수 있다.

민족의 부흥은 애국심이 충만할 때 이루어지는 것인데, 애국심의 고양은 역사의 올바르고 자랑스러운 인식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리하여 단재 신채호 선생도 [역사와 애국심의 관계]라는 글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 2,000만 동포의 귀에 애국이란 말이 생생하게 울려 퍼지게 할 것인가?

오직 역사로 할 뿐이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 2,000만 동포의 눈에 국(國)이란 글자가 배회하게 할 것인가?

오직 역사로 할 뿐이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 2,000만 동포의 손이 항상 나라를 위하여 봉사케 할 것인가?

오직 역사로 할 뿐이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 2,000만 동포의 발이 항상 나라를 위하여 뛰게 할 것인가?

오직 역사로 할 뿐이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 2,000만 동포의 목구멍이 항상 나라를 찬양하게 할 것인가?

오직 역사로 할 뿐이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 2,000만 동포의 뇌가 항상 나라만을 생각케 할 것인가?

오직 역사로 할 뿐이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 2,000만 동포의 머리털이 항상 나라를 위하여 뜨겁게 솟구치게 할 것인가?

오직 역사로 할 뿐이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 2,000만 동포의 혈혈누누(血血淚淚)가 나라를 위하여 솟구치게 할 것인가?

오직 역사로 할 뿐이니라.

대저 역사가 무엇이기에 그 공효의 신성함이 이와 같은가. 역사라는 것은 그 나라 국민의 변천 소장한 실적(實蹟)이니 역사가 있으면 그 나라가 반드시 흥기하니라.“고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단군세기 서]에 국유형(國猶形) 사유혼(史猶魂)이라는 말이 있다.

국가라는 것은 우리의 몸뚱아리와 같고, 역사는 우리 몸속에 있는 혼과 같다는 말이다. 바꾸어 말하면,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이나 국가는 혼 빠지고 얼빠진 사람과 다름이 없다고 해석할 수 있다.


역사가 비록 있더라도 후세들의 기를 펴주고 자부심을 불어넣어 주는 역사교육을 실시하지 않으면 역사 없는 민족과 진배없다.

엄하게 기르되 기(氣)는 죽이지 말라는 속담이 있지만, 지금의 역사 교육은 학생들과 우리 민족의 기(氣)를 살리기보다 죽이는 교육이라 할 수 있다.


<학생들과 민족의 기(氣)를 죽이는 교육의  실례>

 

(1) 한국사는 아시아 대륙의 한끝에 붙어있는 조그마한 반도의 역사다.

(이기백 저, [한국사 신론] 서문)

(2) 우리 겨레가 처음 어디서 살았는지 분명치 않으나 단군신화가 말하는 고조선이 대동강 평양 근처에 세워진 것만은 사실이다. (국정교과서의 한 대목)

(3) 대동강변에 설치된 한사군은 원시적 국가 형태로 볼 것이나 韓민족은 漢나라의 식민지로부터 선진문물을 받아들여 고대국가의 기틀을 잡는 변칙적인 과정을 밟았다. (김철준·한우근 저, [한국사 개론])

(4) 한국사는 반도의 태반을 한족(漢族)에게 빼앗김으로써 상고(上古)에 있어서 외래 족에게 굴복하는 선례를 남겼다. (이병도 저, [한국사 대관])


석주 이상룡 선생은 "노예역사의 교육은 노예국민을 만든다." 라고 하였고,

단재 신채호 선생은

"무정신의 역사는 무정신의 민족을 낳고, 무정신의 민족은 무정신의 국가를 만든다." 라고 하였다.

역사의 실례를 들어 보더라도 민족의 역사와 주체성이 확립되었던 고구려, 백제, 대진국 등은

나라가 망한 후에도 민족의 부흥 운동이 일어났었지만,

외래 종교와 사대주의에 물들었던 신라에서는 부흥운동이 일어나지 않았다.

 

"영토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있어도 역사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는 생생한 교훈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단군 왕검이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조선을 개국한 것이 BC 2333년인데, 그로부터 삼국시대 전까지의 중간역사는 통째로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리고 2002년 6월 한일월드컵 때 한반도를 굽이친 붉은 악마 깃발 속의 치우천황은 도대체 어느 시대 인물일까?

그 당시의 역사기록은 정말 없는 것일까?

 

 남아있는 한민족 역사의 뿌리와 국통의 맥(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