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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역사문화/한민족의 역사문화

남아있는 한민족 뿌리역사와 국통의 맥(脈)

by 바로요거 2009. 12. 17.

 

남아있는 한민족 뿌리역사와 국통의 맥(脈)

 

 

 다행스럽게도, 국사 교과서에는 아예 빠져 있거나 피상적으로 언급된, 우리 민족의 뿌리 역사 즉 환인-환웅-단군으로 이어지는 삼성조 시대에 대한 기록이 번연히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것은 신교문화의 역사관을 담고 있는 우리 민족의 고유의 전통 도가사서들이다. 

 대표적인 것이 대조영의 동생 대야발이 쓴 『단기고사』(檀奇古史, 792년 지음), 북애노인이 쓴 『규원사화』(揆園史話, 1675년 지음), 그리고 계연수가 엮은 『환단고기』(桓檀古記, 1911년)에 수록된 「삼성기」, 「단군세기」 등이다.

 

 그러나 일제의 식민사관에 물든 강단사학계에서는 아직도 이러한 기록들을 위서(僞書) 운운하며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있다.

물론 『환단고기』 등의 일부 기록에 근대문화 이후의 술어가 등장하는 등 문제가 있다고는 하나, 그들 기록이 전하고 있는 고대사의 기본 틀 전체를 부정하고, 기록 일체를 아예 위서로 몰아붙이는 것은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삼성기, 단군세기, 단기고사, 규원사화 등의 역사기록을 통해, 우리 민족의 시원 사(始原史)와 국통(國統)을 알 수 있다.


<한민족 역사의 뿌리 - 환국, 배달국, 단군조선>


1, 환국시대(7대 환인천제)과 배달국(18대 환웅천황)

 

 『환단고기』 「삼성기」 하편에 의하면 “옛날에 환국(桓國)이 있었는데, 남북이 5만리, 동서가 2만리 되는 대제국으로서 바이칼호를 중심으로 나라를 이루고 있었고, 비리국, 양운국, 구막한국, 우루국, 수밀이국, 구다천국, 구모액국, 사납아국, 객현한국, 매구여국, 구막한국, 일군국 등 12환국으로 되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환국의 통치자를 환인(桓仁)이라 불렀으며, 초대 환인인 안파견 환인으로부터 7대 지위리 환인까지 7명의 환인이 있어, 그 역년이 BC 7199~BC 3898년까지 총 3,301년간 지속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도가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환국 말기에 이르러 마지막 환인인 7대 지위리 환인께서 환국의 환웅에게 천부인(天符印)을 주고 풍백(風伯)과 우사(雨師), 운사(雲師)와 제세핵랑군 3천명을 주어 동방으로 보냈다. 

 이에 환웅은 태백산(백두산) 아래(천평)에서 세계 최초의 도시 국가인 신시(神市)를 건설하고 나라를 세우니 이로부터 배달국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그리고 백두산의 박달나무 아래에서 제단을 만들고 천제를 올렸다.

배달국시대는 초대 거발환 환웅으로부터 18대 거불단 환웅까지, BC 3898~BC 2333년까지 1,565년 동안 지속되었다.

 

 흔히 우리 민족을 ‘배달민족’, ‘배달겨레’ 라 부르는데, 이 배달의 유래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이 배달환웅시대가 후기 신석기시대에 해당되는데, 사회신분과 경제상의 계층분화가 이루어지면서 실질적인 국가 형태를 갖추게 된다.

이 배달국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문화영웅들이 출세하여 인류문명의 새장을 연다. 그 시작이 바로 팔괘를 그려 역학의 기초를 세운 태호 복희 씨(배달국의 5세 태우의 환웅천황의 12번째 아들 )로부터 비롯된다.

그리고 농사짓는 법을 최초로 가르치고, 수많은 약초의 약성을 구분하여 의학의 기초를 세운 신농씨도 8대 안부연 환웅시대의 인물이며, 월드컵 붉은악마 깃발의 주인공인 치우천황은 바로 14대 자오지 환웅천황이시다.

 

 이처럼 배달환웅시대 우리 선조들의 업적들이 오늘날 우리 문화를 형성한 바탕이 되어 지금까지도 면면히 전해내려 오고 있는데, 그 역사를 어찌 신화로 치부해 버릴 수 있겠는가.

 

 따라서 짧게 잡아도 우리 민족의 역사는 배달환웅시대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실질적인 개천절 또한 단군의 조선개국일이 아니라 환웅천황의 신시개천이 진정한 개천절인 것이다.  

 

 2, 단군 조선시대(47대 단군성조)


 배달국시대가 1,565년간 이어져 내려오는 동안 환웅천황은 그 지역의 원주민인 곰을 토템으로 하는 곰종족과는 융화하고 통혼을 하였고, 범을 토템으로 하는 범종족은 무력으로 정복하기도 했다.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곰과 호랑이는 사실 곰족과 호족을 지칭한 것이다.

 

 배달국의 마지막 18대 거불단(居弗檀) 환웅천황이 웅씨의 왕녀와 결혼하여 신묘(辛卯)년 5월 2일 인시(寅時)에 아들을 출산하니, 그가 바로 단군조선을 개국한 초대 단군왕검이시다.  

 단군왕검은 14살 때, 웅씨국의 비왕(裨王, 임금을 보좌하는 으뜸가는 벼슬)으로 봉해졌다가 38세 때, 구환국을 다시 통일하여 도읍을 송화강 부근의 아사달(하얼빈)에 세우고 나라를 세웠다.

개천 1,565년(BC 2333년) 10월 3일, 초대 단군왕검은 삼신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고 나라이름을 ‘조선’이라 했다.이때 중국에서는 요임금이 즉위를 하였는데, 초대 단군왕검과 동시대를 이룬다.

 단군왕검(檀君王儉, 본래는 단군임검檀君壬儉인데 ‘임금’을 이두식으로 ‘왕검’이라 표기한 것이다)에서 ‘단군’은 소도제천을 주관하던 제사장으로 천군(天君)이라고도 하며, ‘왕검’은 통치자(임금)를 뜻한다. 따라서 ‘단군왕검’은 제정일치사회의 최고통치자를 의미한다.  

 우리나라 강화도 마리산에 가면 참성단(塹城壇)이 있는데, 그것이 초대 단군왕검이 88세 되던 해에 마리산에 제천단을 쌓고, 91세에 친히 하늘에 계신 상제님께 천제를 올렸던 곳이다.  

 그리고 초대 단군왕검 재위 시, 중국에서 큰 홍수가 일어났다. 이에 단군왕검은 네 아들 중 맏아들인 부루태자우(禹)에게 보내어 선진문물인 ‘오행치수법’을 전수시킴으로써 중국의 9년 홍수를 다스리게 했다.  

 이 단군조선(고조선)은 BC 2333년 ~ BC 238년까지 2,096년 동안 47대의 왕위가 이어졌다. 고고학에서 한반도와 만주지역의 청동기 문화의 시작을 BC 2400년경으로 보고 있는데, 이 시기가 바로 고조선 왕국의 건국시점인 것이다.

 

 단군왕검은 전국을 삼한(三韓)으로 나누어 통치했다. 아사달(하얼빈)을 수도로 한 진한(辰韓)은 단군왕검이 직접 통치했고, 당산시를 중심으로 한 번한(番韓)과 평양을 중심으로 한 마한(馬韓)은부단군을 두어 통치하게 했다. 이러한 통치제도를 삼한관경제(三韓管境制)라 하는데 이는 애국지사 단재 신채호 선생이 밝힌 바 있다.  

 단군조선시대는 3단계로 구분한다.

초대 단군왕검부터 21세 소태단군까지(BC 2333~BC 1286) 1048년간을 ‘송화강 아사달 시대’라 부른다.

이후 22세 색불루단군부터 43세 물리단군까지(BC 1285~BC 426) 860년간을 ‘백악산 아사달시대’, 44세 구물단군부터 47세 고열가단군까지(BC 425~BC 238)를 ‘장당경 아사달시대’라 한다.  

 이렇게 47대를 이어온 단군조선이 말기에 이르러 통치기능을 상실하면서 고조선의 많은 제후국들이 각기 독립된 정치세력을 이루기 시작했다. 중국도 이때 봉건제국가인 서주(西周)가 통치력을 잃어가면서 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들었는데, 한국사와 유사한 시대상을 보였다.



<북부여(6대 단군성조)와 열국, 사국시대>


 고조선 말기 여러 제후국들이 독립 세력으로 등장했던 이 시대를 ‘열국시대’라 일컫는데, 가장 유력했던 나라가 북부여, 옥저, 동예, 낙랑국, 원시 고구려(고리국), 남삼한(진한, 마한, 번한) 등이다. 

 이때는 명분상 가장 강한 나라가 고조선 왕실을 계승한 패자(영도국)로 군림했는데, 맨 처음 패자로 등장한 나라가 북부여였다.  

 북부여는 BC 239년에 ‘해모수’에 의해 건국되었다. 해모수는 BC 195년까지 통치를 했으며, 북부여는 BC 58년에 고구려가 건국될 때까지 6명의 단군이 재위를 했다.  

 해모수는 중국의 진시황과 동시대인데, 당시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은 것은 흉노 뿐 아니라 북부여를 막기 위해서였다. 즉 만리장성 동쪽은 전부 우리 동방민족의 세력권이었던 것이다.

 

 북부여의 여섯 번째 단군인 고무서 단군에게는 아들이 없고 ‘소서노’라는 딸있었다. 소서노와 결혼 사람이 바로 고구려를 건국한 고주몽성제다.  

 고주몽성제는 북부여를 계승해 오다가BC 37년 ‘고구려’라고 국호를 바꾼다.『삼국사기』에 보면 고구려 건국이 BC 37년, 백제는 BC18년, 신라는 BC 57년이라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본래 고구려 건국은 BC 58년이며 처음에는 ‘다물’이라는 연호를 썼다. BC 37년에 국호를 ‘고구려’로 바꾸고 ‘평락’ 이라는 연호를 쓰게 되면서 이때부터를 고구려 건국으로 잡은 것이다.  

 열국시대를 지나 사국시대로 넘어가는데, 부여, 옥저, 동예는 고구려에 귀속되고, 남삼한 중 마한은 백제에, 진한은 신라에, 번한은 후에 가락국(가야)에 귀속된다. 그리하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사국시대(삼국시대가 아님)가 열려 중국의 전국시대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게 된다.



 <대진국(발해)과 통일신라의 남북국시대>


 사국시대 이후 시대를 우리는 통일신라라고 배웠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통일신라가 아니라 남(통일신라)과 북(발해)의 ‘남북국시대’로 이어진다.

신라의 통일은 사실상 대동강 이남으로 한반도의 2/3밖에 차지하지 못한 불완전한 통일이었다.

반면 압록강 이북의 넓은 고구려의 고토(古土)에는 고구려의 계승자인 대진국(大震國: 발해渤海, 669~926)이 건립되었다.

 

 AD 668년에 고구려의 수도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함락되었지만 압록강 북쪽에는 항복하지 않은 고구려의 11개 성과 고구려 군으로 참전한 말갈족이 여전히 항거하고 있었다.

고구려의 유장 대중상(大仲象)과 대조영(大祚榮)은 고구려 유민과 말갈의 여러 부족을 거느리고 백두산 아래 송화강 유역에 새 나라를 세우고 나라 이름을 진(震, AD 669년)이라 하였으며, 신라에서는 북국(北國)이라 불렀다. 이후 국호가 발해, 해동성국으로 불리게 된 것은 다음과 같다.

 국초에는 나라의 국세가 아직 떨치지 못하여 당과 강화를 맺고자 했는데 국호를 둘러싸고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대진국은 기왕이면 대외적으로 고구려라 하고 싶었고 당은 말갈이라 부르려 했다.

옥신각신하다 서로 한발 짝 물러나 당에서 타협안을 내놓은 것이 발해(渤海)다. ‘해동(海東)은 당신들 땅이다’라는 뜻이다. 대진국은 이것을 일단 수용했으나 스스로 고구려의 후계자이자 부흥자임을 자임했다.

발해 제3대 문왕 때 일본에 보낸 국서에도 ‘고구려왕’이라고 자칭했다.

훗날 대진국이 국세를 크게 떨쳐 마침내 당을 넘보게 되자 두려워진 당은 발해라 하지 않고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는 극히 호화로운 국호를 바쳤다.

대진국은 신라와 평화적 국교는 없었지만 반도의 방파제 구실을 하며 민족사의 마지막 전성기를 구가했다.

 

 반면 신라는 백제를 차지하고, 정복한 고구려를 당에게 헌상하는 파렴치한 민족반역죄를 범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신라의 삼국통일을 ‘망국통일’이라고 부르고 또는 ‘통일이 아니다’는 과감한 주장도 한다. 또한 신라는 상고시대로부터 우리 민족이 전통적으로 믿어왔던 상제신앙을 버리고 외래종교인 불교를 국교로 받아들임으로써 민족의 전통을 무너뜨리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겸손하게도 스스로 당의 신하가 되어 자주성마저 팽개쳤다.

 

 따라서 고조선의 국통은 북부여로, 북부여는 고구려로 그리고 이후 대진국으로 이어졌다고 봄이 가하다.

 

 통일신라 말기, 한반도는 후삼국으로 다시 분리되고 이를 고려 왕건이 다시 통일(AD 936년)했다.

 

 그런데 이에 앞서 대진국은 926년 수도 상경이 거란군에게 함락되면서 발해 백성이 수차례에 걸쳐 집단적으로 고려로 망명해갔다. 그리하여 고려가 후삼국과 발해 유민까지 받아들이면서 비로소 통일을 이룩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 통일은 되었지만 요동의 옛 영토의 대부분은 남의 땅이 되어버렸다. 이것은 고려 태조 왕건이 오로지 후백제 정복에만 열을 올려 기울어가던 대진국을 돕는 데는 무심했기 때문이다.

반도통일을 달성한 뒤에 부랴부랴 북진정책을 한답시고 거란 사신을 귀양보내고 선물로 가져온 낙타는 만부교에서 굶겨 죽였으니 때늦은 후회일 뿐이다.

 

 발해가 멸망하면서 우리 한민족의 역사무대는 진(震)방에서 간(艮)방으로, 대륙사에서 반도사로 좁혀졌다.

발해가 한민족(韓民族)으로서는 대륙의 마지막 주인이었던 것이다. 이후 우리 역사는 민족수난기로 접어들어 중세의 고려·조선과 일제강점기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 한민족의 역사는 환국시대로부터 배달환웅, 단군조선, 열국시대, 사국시대, 남북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일제강점기를 거쳐 대한민국으로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그러니 과거의 국사 교과서에서 오로지 한사군, 신라 중심으로 배운 우리 국사가 얼마나 기만적이고 날조된 역사였는지를 알 수 있다.

 

지금은 우주의 여름철에서 가을철로 바뀌는 하추교역기이기 때문에 즉 가을개벽기이기 때문에 원시로 반본해야 합니다. 가을의 정신이 원시반본(原始返本)이기 때문이죠. 原始返本! 처음 근원을 돌이켜 근본으로 돌아가야 하는 자신의 근본을 찾아야 하는 때입니다.

풀어서 이야기 하면 자신의 뿌리인 부모조상, 민족의 뿌리인 환인,환웅,단군 삼성조, 그리고 진리의 뿌리인 삼신 상제님을 찾아야 하는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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