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마뇽인(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지금부터 약 6천만 년전에 인류의 기원인 영장류의 조상이 된 동물이 나타났다. 이 동물이 진화하여 그 중 한 갈래가 처음으로 사람과 비슷한 모습을 띠었다. 이후 지금으로 부터 3백만 년 전에 '남쪽 사람 원숭이(오스트랄로 피테쿠스)'가 나타났다. 조금은 불완전한 모습이었지만 두 발로 걸을 수 있었던 이들은 약 1백만 년 후에 완전히 지구 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그리고 약 2백만 년 전에는 이들보다 더욱 진화된 '손쓴 사람 (호모 하빌리스)'이 나타났다.
그보다 늦은 시기인 1백50만 년 전에는 추운 기후에도 잘 적응하여 살았던 '곧선 사람(호모 에렉투스)'이 나타났다. 유명한 자바 원인, 하이델베르크 원인, 베이징 원인 등이 이에 속한다.
이들은 네 발로 기던 짐승과 같은 상태에서 벗어나 불완전하나마 두 발로 서게 된다. 이에 따라 인류는 손과 발의 기능이 나누어지고 똑바로 서서 걸을 수 있게 진화되어, 짐승 상태에서 벗어나는 큰 전환점이 되었다.
손은 먹이를 구할 뿐 아니라, 다른 동물과의 싸움에서 중요한 무기가 되었다. 다른 동물들이 힘과 이빨로 먹이를 구하고 자신을 방어할 때에, 인간은 손을 사용해 자신을 보호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무디던 감각은 예민해져 갔고, 신체의 각 부분은 저마다의 쓰임새에 따라 점차 변화되어 갔다.
인간은 이런 변화 속에서 다른 동물들과 달리 대뇌가 발달해 갔다. 이윽고 돌멩이나 나뭇가지 등을 도구로 쓸 줄 알게 되었다. 더욱 좋은 도구를 구하게 되면서 스스로 도구를 만들기에 이르른 인간은 지상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주인으로서 서서히 성장해 나갔다.
인류의 조상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생활과 문화의 첫발을 내딛기 시작한 것은 도구를 스스로 만들어 쓰게 된 이후이다. 누군가가 우연히 돌과 돌을 부딪쳐 석기를 만들게 되면서, 인류는 이 후 60만~70만 년 동안 눈부시게 발전해 갔다.
불의 이용도 인류를 크게 발전시켰다. 인간도 처음에는 다른 동물들처럼 산불이나 벼락을 보고 불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동물들은 불을 두려워했지만 인간은 불을 겁내지 않았다. 그리고 불을 보존할 줄도, 불을 만들 줄도 알게 되었다. 언제든지 불을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불은 열과 빛으로 인간의 생활을 윤택하게 해주었다. 불을 이용해 맹수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었고, 고기와 나물을 익혀 먹게도 되었다. 불을 이용한 좋은 영양 섭취는 몸을 튼튼하게 해주었고, 두뇌의 발달을 촉진시켰다. 두뇌의 발달로 마침내 인간은 나름대로의 언어를 만들어 자신들의 의사를 표한하고 전달했다.
도구의 사용, 불과 언어의 사용은 인류가 다른 동물들과 뚜렷이 구별되는 위대한 혁신이었다. 또한 인류의 생활은 날로 발전해 결코 제자리에 머무는 일이 없었다.
인류의 진화는 계속되어 약 20만 년 전에는 이전의 인류보다 두뇌가 발달된 '슬기 사람(호모 사피엔스)'이 나타났다.
1857년, 독일의 네안데르탈 협곡의 한 동굴에서 인류 조상의 화석이 발견되었다. 즉, 네안데르탈인이다. 이들은 대뇌가 발전하여 이전의 원시인과는 달리 지능이 높았다. 이들 인류는 자연 상태의 돌을 깨거나 떼어 내 만든 '뗀석기(타제 석기)'를 만드는 기술이 발달되어 있었다. 이들은 돌로 만든 창으로 사냥했다. 그리고 사냥한 짐승의 가죽으로 몸을 가리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옷의 기원이다.
또한 이들은 불을 사용했으며, 스스로 불을 만들어 낼 줄도 았았다. 이들은 30~40명 정도의 작은 무리를 지어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생활을 했다. 이러한 무리는 자연 발생적이고 대개 혈연적인 관계로 이루어졌다. 이것이 인류가 최초로 만든 사회 형태인 무리 사회이다. 언어 또한 한결 복잡해졌으며, 현동의 중요성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죽은 자를 일정한 장소에 묻을 줄도 알았는데, 이 때 석기나 뼈연모 등을 부장품으로 무던에 넣어 주기도 했다. 이는 죽은 뒤 사후의 세계와 영혼의 존재를 믿었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중요!!!!*
1868년, 프랑스 도르도뉴 부근 크로마뇽 동굴에서 색다른 원시인의 유골이 4구나 발견되었다. 앞서 살았던 구인보다 지능이 더 높았고 몸집이 가늘고 두뇌 용적과 모양이 지금의 우리 인간과 거의 비슷하여 현생인류인 '슬기 슬기 사람(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이라고 하며, 크로마뇽인이라고 부른다.
여기에서 더욱 놀랍고 신기한 것은 이미 이 때부터 피부의 색깔이 각기 달라졌다는 점이다. 크로마뇽 동굴의 것은 백인종의 특색을 지녔고, 같은 프랑스이지만 상술라드에서 나온 것은 황인종인 에스키모인의 특색을 지니고 있었다. 또 프랑스와 이탈리아 국경 근처인 그리말디에서 발견된 것은 흑인종의 것이었다 이들은 아프리카 북부 해안에 널리 퍼져 살았는데, 아프리카 흑인종의 조상이라 할 수있다.
이들이 나타나 약 1만 년 전까지 이룩해 온 문화를 '후기 구석기 문화'라 부른다. 이들의 석기의 제작 기술도 훨씬 발달되어 보다 더 정교한 도구를 만들어 냈다. 물론 도구의 종류도 많아졌다.
뗀석기의 종류는 크게 세 가지 였다.
첫째, 자갈을 사용한 돌도끼 - 주로 남아시아에서 발견된다.
둘째, 돌의 양쪽을 깎아 사용한 돌곡괭이 - 주로 식물의 채집에 사용했으며 따뜻한 삼림 지대에서 많이 발견된다.
섯째, 뼈 등을 갉는 데 사용한 돌칼 - 깨어진 돌 조각을 이용한 것으로 사냥이 중심이 추운 지방에서 많이 발견된다.
한반도를 비롯한 동부 아시아에선 주로 돌도끼가 많이 발견 되고 있다.- _-);
그들은 석기뿐 아니라 짐승의 뼈와 힘즐을 이용해 도구를 만들 줄도 알았다. 즉, 뼈를 갈아 바늘을 만들었고, 그 뼈바늘로 짐승의 가죽을 꿰매어 옷을 만들기도 했다. 게다가 짐승의 가죽이나 흙, 돌 ,나뭇가지, 풀 등을 엮어, 바람을 막고 비를 피할 움막집도 지을 줄 알았따.
집단 생활도 그 규모가 커지자 우두머리가 생겨났고, 우두머리의 명령과 통솔에 따라 생활하는 단체 생활의 질서가 생겼다. 또한 한 곳에 정착하는 기간이 길어졌으며, 남녀의 일이 구별되었다. 남자는 주로 사냥을 하고 여자는 채집 등으로 일이 나누어진 것이다. 이들은 장식을 위해 장신구를 만들었고, 조각을 할 줄도 알았으며,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들의 문화 발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1879년, 스페인 북부 알타미라 동굴에서 발견된 벽화이다. 뚜렷한 선과 아름답고 강렬한 색채로 그려진 이 들소와 멧돼지 벽화는 인류 최초의 위대한 예술 작품이 할 수 있다.
또한 그들은 죽은 자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렀으며, 생전에 사용하던 장신구 등의 물건을 함께 묻어 주었다. 이런 장례문화와 더불어 점을 치고 기원하는 주술도 매우 성행했다. 구석기 시대가 끝날 무렵 (약 1만 년 전)에는 화가, 주술사 등이 한 직업으로 전문화되기에 이르렀다.
한반도에도 두만강 어귀인 웅기의 굴포리와 종구의 석장리에서 구석기 유적이 발견되어 크로마뇽인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빙하가 내려오지 않았던 한반도는 이들의 평화스러운 보금자리였을 것이다.
멋지다!!! 크로마뇽인!!!! ^ㅡ^);
*참고 문헌*
이야기 한국역사
이야기 한국역사 편집위원회
도서출판 풀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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