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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역사문화/대한민국&한민족

하늘,땅을 부모로 섬겼던 한민족

by 바로요거 2009. 11. 2.

하늘,땅을 부모로 섬겼던 한민족

 

백제는 천자국


백제의 동성제東城帝는 북위北魏와의 싸움에서 전공을 세운 장수들에게 왕王과 후侯의 칭호를 내렸다. 왕王을 작위로서 하사했다는 사실은 황제皇帝나 천자天子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백제는 천자天子가 다스리는 제국帝國이였다.


"...정로장군(征虜將軍) : 매라왕(邁羅王) -사법명(沙法名), 안국장군(安國將軍) : 산중왕(酸中王) - 찬수류(餐首流), 무위장군(武衛將軍) : 불중후(弗中候) -해례곤(解禮昆), 광위장군(廣威將軍) : 면중후(面中侯) - 목우나(木干那)...(今假沙法名行征虜將軍邁羅王爲行安國將軍酸中王解禮昆爲行武威將軍弗中侯木干那前有軍功又拔臺舫 爲行廣威將軍面中侯  南齊書)"  

 

나는 천제天帝의 아들이다!


고구려의 시조 주몽은 동부여 금와왕의 일곱 왕자와 신하들이 자신을 죽이려 하자,

오이 마리 협보 등과 더불어 부여를 탈출하다가 엄리대수淹利大水, 즉 지금의 송화강에 다다랐다.

앞은 강물에 막히고, 뒤에서는 동부여 군사가 추격해 오는 절박한 상황!

그 때 주몽이 강의 수신水神에게 이렇게 외쳤다.


아시천제지자我是天帝之子!

나는 천제의 아들이다!


그러자 물속에서 물고기와 자라 등이 나와 다리를 놓아 무사히 건너게 하였다고 한다.

만주 집안현에 1,500년 동안 굳건히 서 있는 광개토태왕비문에도 ‘천제지자天帝之子’, ‘황천지자 皇天之子’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은 황제였다


이씨조선시대의 역사책인 안정복 선생의『동사강목』에 고려 역사를 설명하면서

"왕건은 불의로써 나라를 얻고는 외람되이 천자天子라 칭한 부류이다."라고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고려태조 왕건은 나라를 건국하면서 스스로를 `황제`로 칭하였던 것이다. 

 

고려는 천자국이다


『고려사』에는 고려의 왕이 스스로를 `짐朕`이라고 부르고 있다.

`짐朕`은 제국에서 황제가 스스로를 일컫는 말이다.

황제가 임명한 제후인 왕이 감히 쓸 수 없는 말이다.

만약 고려 임금이 `제후`였다면 스스로를 `짐朕`이라고 할 수 있었겠는가?


고려 인종때의 문신이며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은 [진삼국사표]에서 인종을 `성상폐하聖上陛下`라고 부르고 있다. 만약 고려 인종이 ‘왕’이였다면 `전하`라고 불러야 한다. 그러나 김부식은 폐하라고 불렀다.


서기 1209년(단기 3542년, 고려 고종 5년),

문신이었던 이규보가 연등회 의식을 축하하는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온 천하가 일가一家 되니 천자天子의 성스러우심이라.`


이규보는 고려 임금을 `천자天子`라고 부르고 있다.

만약 고려가 제후국이었고 고려 임금이 단지 `왕`이었다면 천재문장가였고 고려의 중신이였던 이규보가 감히 고려 임금을 `천자`라고 호칭할 수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고려의 깃발 아래 온 천하가 일가一家된다’라고는 더 더욱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고려의 황제들은 자신의 아들들을 `제왕諸王`이라 불렀다. 이는 중국 황실에서 황제의 아들을 `왕`이라고 부른 것과 똑같다. 중국에서는 임금을 `황제皇帝`라 하고 황제의 동생이나 형, 그리고 친척들을 `王`이라고 불렀다. 고려도 이런 체제였다. 고려 사람들은 송악(개성)을 황도皇都·황성皇城이라고 불렀다. 


 

고려는 천자국의 3성6부제를 사용했다


고려에서는 3성6부제도의 중앙조직을 사용했다.


3성省- 중서성中書省  문하성門下省  상서성尙書省

6부部- 이부吏部 호부戶部  예부禮部  병부兵部  형부刑部  공부工部


근데 `성省`과 `부部`자는 천자국天子國에서 쓰던 것으로 제후국에서는 함부로 쓸 수 없던 말이다.

대진국(발해)에서도 3성6부제도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스스로 중국에 사대하였던 이씨조선시대에는 `부部`라는 말을 감히 쓸 수 없다고 하여 ‘부部’를 `조曹`로 고쳐 사용했다. 이부·호부·예부·병부·형부·공부를 이조吏曹·호조戶曹·예조禮曹·병조兵曹·형조刑曹·공조工曹로 바꾸었다. 


고려의 제왕들은 신하들에게 명령을 내릴 때 `조서詔書`·`제서制書`·`칙서勅書`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조서나 제서, 칙서는 천자국의 황제만 쓸 수 있던 말이다. 제후국에서는 `교서敎書`라고 했다.  

 

금나라는 고려를 황제국이라 불렀다


제왕운기』를 쓴 이승휴는 책을 쓰면서 예전에 금(金)나라가 고려에게 보낸 조서의 한 구절을 인용하는데, 거기에 이렇게 쓰여있다.

 

大金皇帝奇書于高麗國皇帝 

대금大金 황제가 고려국 황제皇帝에게 글을 보냅니다.


고려의 기록이 아니라 금金나라가 고려에 보낸 황제의 조서에 이렇게 적혀 있다.

대외적으로도 고려를 황제국으로 인정하였던 것이다.


경기도 광주군 동부면 교산리에는 바위 벽에 약사여래불이 새겨져 있는데, 그 옆에 27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내용은 고려 경종의 만수무강을 비는 것인데 그 금석문에 `황제만세원皇帝萬歲願-황제께서 만세토록 오래오래 사시길 빕니다 라는 뜻-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백성들도 경종을 황제라고 불렀던 것이다.  

 

 황제는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올렸다


고려시대 송악의 궁궐에 원구단圓丘壇이 있었다.

이는 황제가 하늘에 계신 삼신상제님에게 천제를 올리던 제단이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권한은 天子에게만 있었다.  

 

 우리는 하늘 땅을 어버이로 섬기던 천손민족

 

후한시대의 채옹蔡邕은 ‘독단獨斷’에서 천자제도의 근원에 대해

天子, 夷狄之所稱, 父天母地故, 稱天子 (천자, 이적지소칭, 부천모지고, 칭천자)

천자는 동이족 임금의 호칭이다.

하늘을 아버지, 땅을 어머니로 섬기는 까닭에 하늘의 아들이라 한다

고 하여 천자제도가 동방족 문화로부터 시작되었음을 밝혔다. 

 

천자는 상제님(하나님)의 아들


고조선 이후 고려 말에 이르기까지 천자 칭호가 계승되어 왔다. 우리는 천자문화의 본향이다.

천자는 천제지자‘天帝之子’의 약자로서 ‘하나님의 아들’, ‘우주의 주재자이자 천상의 통치자(天帝)이신 상제님의 아들’을 칭하는 말이다. 예로부터 천자가 다스리는 나라를 천자국이라 불러왔다.

천자는 서양에서 말하는 ‘신의 아들 Son of God`과 상통하며, 신교神敎를 신앙했던 동방문화에서는 국가의 통치자를 의미한다.

천자는 본래 제정일치祭政一致시대의 통치자였다.

천자는 인간세계를 대표하여 하늘에 계신 상제님께 제사를 올렸고 제후들은 천자의 명을 받들어 사역했다. 

 

말로만 '배달민족', '단군의 자손'인가?


말로는 '반만년의 역사' 운운하고 입만 열면 '배달민족' '단군의 자손'이라 자처하면서 그 역사를 온전하게 말할 수 있는 자가 과연 몇이나 되는가?

실로 참당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 교과서 편찬자, 역사학자로부터 한국 정부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일제의 식민사관에 물든 채 너무도 안일 무도하여 제나라 역사가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됐는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역사를 훔친 민족보다 지키지 못한 민족이 더 비난받아야 한다


자신의 역사를 알지도 못하는 민족이 중국과 일본의 역사 도적질을 나무랄 수 있는가!

어떤 의미에서는 역사를 훔친 민족보다 지키지 못한 민족이 더 비난받아 마땅하다.


역사를 모르면 미래도 없다.

과거를 모르고 어떻게 현재를 알며, 현재를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고 어찌 미래의 새 역사를 열 수 있겠는가?

현재가 과거(뿌리)와 단절되어 제 정체성을 상실하였는데 어떻게 밝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겠는가. 추악하게 조작된 역사가 바로잡힐 때, 즉 진실로 ‘왜곡된 과거의 종말’이 이루어져서 과거를 바르게 보고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역사를 재구성하는 힘이 생기고 새 역사를 창조할 수 있는 지혜가 열리는 것이다.

 

조상의 뿌리와 민족의 시원 역사를 밝히는 개벽실제상황!

중국의 중화사관과 일제의 식민사관에 찌들어

대한의 혼을 상실한 한민족!

역사를 모르면 미래도 없다.

과거를 모르고 어떻게 현재를 알며,

현재를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고

어찌 새 역사를 열 수 있겠는가!

...


그대가 어떤 종교를 신앙하고

어떤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하든지,

반드시 자기 존재의 근본인 조상의 뿌리와 민족의 시원,

그리고 그들이 어떤 정신세계에서 살다 갔는가 하는

민족의 정통성을 명백하게 알아야만 한다.


그것이 자기 존재의 본질을 알고

자신을 완성시키기 위해 무엇보다 선결해야 할 요건이다.

역사의 근본을 알면 아무리 작은 개인이라도

자신이 `역사적인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제 한민족의 역사개벽을 앞두고

인류 역사의 정의를 총체적으로 바로잡아

그 원형을 되찾고 민족의 국통을 바로 세워야 한다.

...


우리는 고대사에 대한 학문적 시비를 가리기에 앞서

천지 대도의 차원에서 후손된 도리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대의 삶의 바탕에는 무수한 선령들의 희생이 있었다.

그대는 그 숱한 역사의 증거요,

그들의 꿈을 이루고 새 역사를 만드는 주인공임을 기억해야 한다.


-개벽실제상황 2부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