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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역사문화/대한민국&한민족

아리랑에 대하여

by 바로요거 2009. 10. 8.

아리랑에 대하여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꽃씨와도 같다. 우리 민족이 가는 곳이면 어디서나 꽃을 피운다. 그리고 그곳 의 토양에 맞게 다양한 내용의 노랫말에 녹아든다. 하지만 아리랑에는 늘 '아리랑 고개'가 등장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라는 능동형이 있는가 하면,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라는 수동형도 있다. 도대체 우리 민족에게 아리랑 고개는 무엇일까.

고개는 산을 모태로 한다. 산이 유달리 많은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산을 신성시하고 산에 대한 믿음 또한 강했다. 단군이 내려온 곳을 묘향산 또는 구월산이라 하고, 산 곳곳에 국사봉을 두어 산을 신성 시하기도 했다. 또 기우제(祈雨祭)도 산에서 지낼 만큼 산은 절대적이고 신성한 곳이었다. 교통이 수월해지기 전까지 사람들은 신성한 산을 넘어 다니지 않으면 안되었다. 마을과 마을을 질러 갈 수 있는 산을 '고개'라고 해서 부르고 산의 일부로 여겼다. 고개는 인적자원이나 물자가 넘나들고 군사적 관문 구실을 했기에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던 곳이기도 했다.

고개는 그 너머의 다른 미지의 세계로 가는 통로이기에 언제나 두려움과 기대감이 교차하는 곳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고개 마루에 서낭당을 세워 신성시했고, 장승을 세우거나 돌탑을 쌓아 마을의 경계이자 수호 신으로 여기며 넘어갈 때마다 안녕을 빌곤 했다.

우리나라의 고개는 꼬불꼬불한 굽이가 많다. 그래서인지 고개를 이야기 할 때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뜻인 아홉수를 써 아홉 굽이, 아흔아홉 굽이, 열두 고개라는 상징적인 수가 따른다.

아리랑 고개는 열두나 고갠데
넘어 갈 적 넘어 올 적 눈물이 나네

우리 조상들은 고개를 오르내리는 것을 인생에 비유했다. 아리랑 고개를 열두 고개로 표현하는 것도 시련과 고난의 연속인 인생을 표현한 것이다. 12수는 12지(十二支)와 일년 열두 달을 상징하는 수로, 우리 민족이 저승에 이르기 위해 지나야 하는 열 두 대문을 상징하기도 한다. 열 두 대문은 지날 때마 다 갖가지 시련이 있으며, 통과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으로 여겼다.

아리랑 고개는 왠 고갠가
넘어갈 적 넘어올 적 눈물이 난다 〈해주아리랑〉

괴나리봇짐을 짊어지고서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월강곡〉

울며 넘던 피눈물의 아리랑 고개
한번가면 다시 못올 탄식의 고개 〈기쁨의 아리랑〉

아리아리랑 아리랑 고개는 혁명의 고개 〈혁명의 아리랑〉

쓰라린 가슴을 움켜쥐고서
백두산 고개를 넘어 간다 〈영일 아리랑〉

우리 민족의 삶 속에서 아리랑 고개는 좌절과 시련의 역사, 그리고 이를 극복한 역사를 드러내주고 있다. 아리랑 고개는 괴나리봇짐을 짊어지고 넘던 고개였고, 눈물을 뿌리며 넘던 고개이기도 했다. 백두산을 넘나들며, 두만강과 압록강을 넘어 일제와 싸우는 투사들에게는 혁명의 고개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는 실존의 고개이든 상징의 고개이든지 아리랑 고개가 많다. 또 일제강점기 때는 이를 주제로 한 영화가 만들어져 민족의 염원을 상징적으로 그리기도 했다.

아리랑 고개는 슬픔에서 기쁨으로, 좌절에서 극복으로, 어둠에서 밝음으로 넘어가는 인생의 분수령 이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아리랑 가사를 보아도 "아리랑 고개로(를) 넘어간다"고 했지, 넘어보니 어떻더라는 내용은 없다. 우리 민족의 삶 속에서의 아리랑 고개는 결국 자신들이 처한 삶 속에서 꼭 넘 어서야만 하는 현실과도 같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가거라

아리랑고개는 이전의 슬픔이나 탄식을 넘어 새로운 세계를 추구하는 약동의 분수령이기도 하다. 오늘의 삶 속에서도 아리랑 고개는 미지의 세계이자 불멸의 세계로 자리하고 있다.
 
 
<아리랑>은 이 땅의 노래이며, 여기에 살았고 또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노래다. 민중과 생활 사이에 어우러진 상호 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 민중과 과거 민중의 끊임없는 대화다. 또한, 그것은 민중에게 남겨진 무형의 재산, 항상 역행에 역행하지 않는 방향성을 가진 노래다. 아리랑은 민중 문화의 대변인 격으로 파악된다. 문화적 변동기에 지식인들의 고심이 지극히 나약하고 오만방자한 면을 보였던 것과는 달리 민중의 의식은 아리랑을 통하여 구체적 이데올로기의 형성을 실현했다. 여러 개인의 단순한 집합체이거나 이해 관계에 의해 결속된 이익사회적 가치가 아니라, 일정한 가치나 신념에 의해 서로 얽혀 사는 공동체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 민요의 하나인 아리랑은 '아리랑 ' 또는 '아라리 ' 및 이들의 변이를 여음(후렴 또는 앞소리)으로 지니고 있는 일군의 민요로, 아리랑이라는 명칭은 이들 여음에서 비롯하고 있다. 아리랑은 전국에 고루 분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널리 퍼져 있어서 이른바 [독립군아리랑]을 비롯하여 [연변아리랑] 등의 이름이 쓰이고 있을 정도이며, 멀리 러시아의 카자크스탄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교포들의 아리랑도 전하여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확인할 수 있는 가요들을 토대로 하여 주로 강원도 일대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정선아리랑], 호남 지역의 [진도아리랑], 그리고 경남 일원의 [밀양아리랑]을 엮어서 3대 아리랑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들 세 아리랑은 각 지역 민요의 기본적 음악 언어를 간직하고 있는, 지역 내의 자생적인 전통 민요이다. 밀양아리랑은 씩씩하고, 진도아리랑은 구성지고, 정선아리랑은 유장하다. 그것은 각 지방에서 자생한 민요조와 결합하면서 생긴 현상으로 진도아리랑은 육자배기조, 밀양아리랑은 정자소리조, 정선아리랑은 메나리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들 중 가장 충실한 음악 언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정선아리랑이다. 누구든 배운 바 없이 듣기만 하여도 금방 따라부를 수 있는 이 정겨운 민요 가락은 평범한 강물결에 짙은 역사성과 예술성, 인간적 정취가 물씬거린다. 이른바 [경기아리랑] 또는 [서울아리랑]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은 특정인의 창의적인 윤색을 거쳐 인위적으로 변이된 것으로 「신민요아리랑]으로 분류함으로써 「전통아리랑]과 구별한다.

 

아리랑은 전통 민요이다. 아리랑은 전국에 고루 퍼져 있는 민족의 노래이며 한민족의 동질성을 확보하고 있는 언어이다. 따라서, 구술과 암기에 의한 전승, 자연적 습득 등과 같은 민속성 이외에 지역 공동체의 소산이라는 민속성을 가지게 되고, 그 집단성은 시대성과 사회성을 내포하게 된다.

 

 

"쓰라린 가슴을 움켜쥐고 백두산 고개로 넘어간다."

 

"감발을 하고서 백두산 넘어 북간도 벌판을 헤매인다."

 

"이천만 동포야 어데 있느냐 삼천리 강산만 살아 있네."

 

"지금은 압록강 건너는 유랑객이요 삼천리 강산도 잃었구나."

 

"삼십육년간 피지 못하던 무궁화꽃은 을유년 팔월 십오일에 만발하였네."

 

"사발 그릇 깨어지면 두세 쪽이 나는데 삼팔선이 깨어지면 한덩어리로 뭉친다."

 

 

위의 몇 가지의 노랫말만 보더라도 아리랑이 근세의 민족사를 반영하고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뗏목꾼은 뗏목꾼대로, 광부들은 광부들대로, 심마니는 또 그들대로 각기 그들 생활의 애환의 순간순간을 아리랑에 담고 있다. 직업 공동체나 사회 공동체의 이른바 문화적 독자성이 아리랑에 담겨 있는 것이다. 민족이 위기에 처한 시대에 아리랑은 민족적 동질성을 지탱하는 소리였다. 아리랑은 거시적으로 볼 때 민족의 독자성에 이바지하였으며, 미시적으로 볼 때 작은 규모의 지역 공동체이며 이익 공동체의 독자성에 기여한 것이다. 아리랑은 공동체의 휘장(徽章) 내지 민중의 휘장 노릇을 수행하였던 것이다.

 

아리랑의 집단성은 앞소리와 뒷소리, 매김소리와 받음소리 등으로 나뉘어 부르는 형식에도 잘 드러난다. 한데 어울려 일하고 놀이하는 사람들이 그 소리의 가름을 따라 제창이나 윤창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아리랑이 그 집단성만 지니는 것은 아니다. 아리랑은 집단성과 아울러 개인성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아리랑은 주관적인 감정을 자연스럽게 토로하는 서정시이면서 원한과 아픔을 풀이하는 넋두리나 푸념이기도 하였다. 유사 대화체나 독백체가 이 속성을 뒷받침한다. 아리랑은 '떼소리' 또는 '무리소리'이면서 '혼자소리'이기도 하다. 절로 한숨짓듯이, 더운 숨결을 토하듯이, 혹은 메인 중치를 터놓듯이 혼자소리로 부르는 것이 아리랑이다. 소리꾼은 그 혼자소리로 삶을 달래고 애간장을 삭이면서 한많은 삶을 승화하면서 살았던 것이다. 이런 혼자소리 아리랑은 '삭임의 소리', '푸는 소리' 구실을 한 것이다.

 

이와 같은 집단성과 개인성은 아리랑이 지닌 또다른 원심력과 구심력이지만, 이러한 양면성이 아리랑이 지닌 복합성이다. 아리랑은 역사의 변화와 사회의 변화 속에서도 살아남는 강한 적응력의 소유자들[民草]이 향유했던 것이다. 과거의 단순한 화석으로 전해진 것이 아니라, 근대의 흐름 속에서 그때그때 새로이 새 생명을 얻으며 살아남은 민중들의 삶의 흔적이 흠뻑 배어 흐르는 소리이다. 또, 아리랑은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일할 때나 놀 때나, 언제 어디서나 무엇이든지 담아 부를 수 있는 '열린 장르'의 노래이다. 희로애락애오욕을 애정으로 감싸 부르는 소망의 노래이다. 그 밑바닥에는 한(恨)과 원(怨)의 소리가 카타르시스의 역학으로 기능하고 있다.

 

한국의 문학사와 예술사에서 단일한 민요 중에서 아리랑만큼 질기고 굵은 맥을 지켜온 보기를 달리 구할 수 없다.

 

<정선아리랑>은 원래 <아라리>로 일컬어지던 노래이다. 정선을 비롯해서 이웃의 영월과 평창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아라리>는 이 지역의 민요적 음악 언어를 가장 충실하게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태백산맥의 동서를 따라 길게 설정될 수 있는 이른바 '메나리토리권'에서 <메나리>(또는 메노리)의 음악 언어와 가장 밀착된 노래로서 <정선아라리>가 평가될 때, 메나리야말로 가장 전통성 짙은 민요이면서 동시에 그 지역의 민요적 음악 언어의 기층성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물론, 메나리 → 어산영(경상도 지역) → 산아지(호남 지방)의 연계를 고려한다면 <정선아라리>의 전통성은 보다 더 넓은 지역에 걸쳐 논란될 수 있을 것이다. 아리랑 가운데서 <정선아라리>가 유일하게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유는 바로 이 점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강원도 영동 영서 일대에서는 <정선아라리> 이외에 <강원아리랑> 또는 <자진아리>로 일컬어지고 있는 또다른 아리랑이 있다. <정선아라리>에 비하여 훨씬 장단이 빠르고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아리 고개로 넘어간다."라는 여음을 지닌 이 자진아리는 영서 인제 지방의 <뗏목아리랑>으로도 잘 알려져 있지만, <뗏목아리랑>이 그렇듯이 일노래로서의 쓰임새를 진하게 지니고 있다. 이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정선아라리>는 놀이노래라는 성격이 강하다.

 

<정선아라리>에서는 엮음 아라리라는 특수한 형식의 아라리가 있다. 이것은 노랫말이 일반 아라리보다 훨씬 길어서, 노래의 첫머리에서 중간 정도까지 상당한 부분을 빠른 말투로 사설을 엮어가는 노래이다.

 

 

[정선 엮음 아라리]

 

이리 치구 저리 치구 행주초매 둘러치구

 

열모김치 소금 치구 오이김치 초 치구

 

칼로 물 치구 채 치구 빼치구야

 

니가 평창 칠십리를 간다더니

 

평창 십리 다 못다 가구서 왜 돌아왔나

 

 

우리 댁에 사방님은 잘났던지 못났던지

 

깎구깎구 머리 깎구 씨수씨구 모자 씨구 입구입구 양복 입구

 

치구치구 각반 치구 신구신구 구두 신구 돈 한짐 잔뜩 걸머지구

 

서울 장안 종로거리루 화투치러 갔는데

 

상하동 초군님네들 삼사오륙호 아니거들랑 내 배 타루 오게

 

 

정선아리랑에 흐르는 메나리조는 경상도와 강원도 민요나 무가에서 찾을 수 있는 독특한 선율이다. 5음계 구성이며, 주요음은 '레 도 라', '도 라 미'가 되는데, 대개 '라 미'음으로 종지한다. 느리게 부르면 매우 슬프게 들린다. <강원도아리랑>, <정선아리랑>, <한오백년>, <쾌지나칭칭나네>, <옹헤야> 등이 이 선율을 쓰고 있으며, 경기도 강원도 충북 지역의 풀피리 가락도 이 선율을 쓰고 있다. 메나리는 순수한 우리말로 '산노래'라는 의미이다.

 

옛 은자들의 무릉도원, 오지(奧地)의 산자락을 끼고 들려오는 이 소리 소리들은 단내나는 고단한 일터에서 한 잔 술이요 약이었다. 누구도 전문 소리꾼은 아니다. 그저 밭 매고 길쌈하는 아낙이며 쟁기질하는 농토 사내다. 정선아라리는 그네들의 노래, 질경이 같은 그들의 삶의 노래이다. 보탤 것도 없고 덜 것도 없이 털어놓는 푸념이며 넋두리요 신명이다. 그 땅에 사는 이가 아니면 흉내낼 수 없는 소리, 그들 몸에 절로 배어 농익은 가락, 그들의 마음 속에 녹아 흐르는 삶의 향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