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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꼭 알아야 할 유용하고 세상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차원 높은 정보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본 블로그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을 잘 간파하셔서 끊임없이
우주법칙*생존법/태을주,수행,영성

태을주와 율려도수

by 바로요거 2009. 8. 27.

 

태을주와 율려도수

 

 

 

 

강의를 시작하며

첫째, 율려도수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둘째, 마음 닦는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마음은 실체가 아니다
현실의 삶을 바탕으로 마음을 닦아야

셋째, 태을천 상원군님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태을은 율려의 신도적 표현
태을천 상원군은 조화의 근원자리에 계신 인격신
원시반본의 섭리, 태을주를 읽어야 산다
태을신은 16신을 거느리고 다니신다
안내성 성도에게 붙이신 태을주 율려도수
삼팔도수도 율려도수
역사 속에 나타난 율려도수의 흔적

넷째, 태을주 수행을 통해 얻는 은혜는 무엇입니까?

다섯째, 태을주와 숙구지 도수의 상관관계를 알고 싶습니다
숙구지 도수는 상제님 대행자 도수
숙구지 도수의 완성, 새울도수
태을주로 시작해서 태을주로 매듭짓는다
태을주에 대해 크게 깨져야

 첫째, 율려도수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율려란 무엇인가?
 우주 만물은 천지의 음양의 변화 속에서 태어나 살아가고 있다. 그 음양의 변화를 다른 말로 동정動靜이라고 하는데, 동정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율동律動과 여정呂靜이다.
 본래 율려는 천지와 인간, 신명계, 나아가 살아있는 모든 우주만물이 태어나는 생명의 근원, 창조정신의 근원을 말한다. 모든 생명은 이 율려 속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것이다. 즉 만물이 살아 움직이도록 양의 운동을 하게 하는 힘의 근원이 율이고, 휴식하여 생명의 수렴운동을 하게 하는 것이 려다. 율려는 천지의 순수 음양, 천지의 조화정신이다.
 이 율려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태을주의 태을이다.
 왜 율려가 태을이 되는가?
 본래 태을은 철학적으로 태일이라고 한다. 하늘이 생겨난 자리나 땅이 생겨난 자리나 인간이 생겨난 그 조화의 근원은 동일하다. 그것을 ‘근원’이란 의미를 갖고 있는 ‘일’ 자를 붙여 천일天一, 지일地一, 태일太一이라고 한다. 곧 ‘하늘과 땅과 인간이 생겨난 바탕은 하나’라는 의미로 일 자를 붙이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천지의 열매로서 천지의 이상을 성취하는 주역이다. 그래서 인일이라고 하지 않고 태일이라고 한다.
 따라서 태일천지의 주인인 인간 생명의 근원자리를 말하는 것이면서, 실제로는 천지와 인간과 신명이 태어난 본래 생명의 근원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태일영적, 신도적인 경계로 말할 때 태을이라고 한다. 콩깍지를 열어보면, 거기에 새 을乙 자처럼 생긴 콩의 싹, 생명의 핵이 있잖은가. 곧 생명이 처음 태생되어 일어나는 근원, 그 핵을 태을이라고 한다.
 을이란 본래 동방의 만물탄생 기운인 ‘갑甲·을乙’ 가운데 을을 말하는 것이다. 을은 만물을 낳는 창조의 음기운을 상징한다!
 따라서 태을은 천지자연과 인간과 신명이 태어난 근원인 우주의 순수음양 조화기운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율려도수란 무엇인가?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우리 인간의 몸이 지닌 율려는, 천지의 조화 율려와 일체가 되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천지의 율려에 미치지 못하는 율려 도수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천지정신과 인간정신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모든 만물은 천지의 순수 조화정신과 온전히 하나가 될 때, 천지와 더불어 영원히 살아가는 존재로 태어나게 된다. 따라서 상제님 율려도수에는 인간의 몸 속에 천지의 조화력을 온전히 회복해야 한다는 당위적 명제가 담겨있다.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 바로 태을주 공부, 태을주 수행이다.

 

둘째, 마음을 닦는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마음은 실체가 아니다
 
 마음을 닦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마음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 마음의 세계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마음이라는 게 실제로 있는 것인가?
 우리는 생활 속에서 종종 마음을 언급하고 있다.
 “난 지금 마음이 언짢아.” “그 사람은 마음이 넓어.”
 상제님께서 “대장부는 뒷구멍이 넓어야 된다.”고 하시며, 마음의 변화무쌍한 경계를 여러 번 지적해 주셨다.
 그렇다면 마음이 실제로 있는가?
 마음은 어떤 실체로 있는 게 아니다. 우리 몸 속 어디에 마음이 있는가? 머리에 있는가? 심장에 있는가?
 마음은 어떤 구체적인 형체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마음이란 무엇인가?
 상제님은 “사람 마음이 천층 만층 구만층이다.”, “마음 얕은 것이 가장 큰 한이 되리라.”고 하신다.
 또한 “앞으로는 마음을 완전히 열고 온 우주와 하나된 경계에서 새 역사를 여는 신문명이 태어나는데, 그걸 도술문명이라고 한다. 구체적으로 ‘지심대도술’의 세계다.” “백성까지도 제 마음을 다 알아 분수를 넘지 않는다.” 등등 여러 말씀이 있다.
 “사람 마음이 천층 만층 구만층이다.”
 이 말씀은 어떤 열려있는 의식의 경계를 이르는 것이다. 마음은 어떤 실체로서 “꼭 요것이다.”라고 꼬집어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현실의 삶을 바탕으로 마음을 닦아야
 
 본래 우주가 태어난 조화세계를 신이다, 도다, 하나님이다, 부처다 등 여러 가지로 얘기한다. 그것을 우리 순수한 한글세계에서는 ‘알’이라고 한다. 태초에 우주가 태어난 생명의 ‘알’이 있었다. 그런데 그 ‘알’에서 마음이 나왔다는 것이다.
 “내 마음이 아프다.” “내 마음이 기쁘다.” 할 때 ‘맘’이란 우주가 태어난 생명의 근원자리 ‘알’에서 왔다. 그러므로 마음은 온 우주가 태어난 생명의 근원이다.
 그런데 그 마음에 무슨 문제가 있어서 닦는다는 것인가?
 닦는다는 것은 이미 더러워진 걸 깨끗하게 씻어낸다는 뜻 아닌가.
 우리의 생명을 움직이게 하는, 우리의 생명을 끌고 나가는 주인이 마음이다. 그런데 그 주인의 깨어있는 경계가 시시각각 다르다. 잘 때와 일할 때가 다르고, 무엇에 집중할 때와 흐리멍덩하게 딴 생각할 때가 다르다. 밥 먹으면서 재미있는 뉴스를 듣는다든가 좋은 영화를 본다든가 할 땐, 뭘 먹고 있는지조차도 잊어버린다. 보는 쪽으로만 정신이 가 있기 때문에 감각이 마비되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 몸 속에서 사물을 느끼고 터득하고, 뭘 배우고 아는 인식 작용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인간의 감각 작용은 너무도 변화무쌍하다.
 태모님께서는 “‘마음 심(心)’자가 무슨 뜻인 줄 아느냐? 이 점 세 개는 유불선이고, 아래로 둥글게 두른 것은 땅이다.”라고 하셨다. 참 멋진 해석이다.
 그러니 마음을 닦으려면, 이 땅에서 현실의 삶을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바탕으로, 불가, 선가, 유가의 가르침을 알아야 된다.
 서양 명언에 이런 말이 있다.
 “나우 앤 히어(Now and here.지금 그리고 여기)”
 생명, 진리, 깨달음, 고통, 자유, 구원, 그 모든 삶의 궁극적인 명제는 지금, 여기를 떠나서는 성립될 수 없다. 곧 인생은 지금 여기서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라는 말이다.
 
 
 감각에 따른 마음의 작용
 
 불가의 유식학唯識學에서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마나식 그리고 알라야식을 얘기한다.
 일반적으로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이 오식五識이다.
 안식은 눈으로 보고 아는 것이고, 이식은 귀로 들어 아는 것, 비식은 코로 냄새 맡아서 아는 것, 설식은 혓바닥으로 맛을 봐서 아는 것, 신식은 온몸으로 느껴서 아는 것이다.
 그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주는 것이 첫 번째 안식眼識이다. 눈으로 강력한 게 들어오면, 그것이 장애물이 되어 끊임없이 괴롭힌다. 주문 읽을 때 집중 못 하고 자꾸 딴 생각으로 빠져버린다. 신유神癒를 하고 신유를 받아보면 그걸 안다. 가장 큰 문제가 음란한 생각, 음기를 품는 것이다. 상제님께서 “무엇을 보되 마음에 두지 말라.”고 하셨다. 무얼 본 게 마음에 걸려있으면, 마치 오장에 음식이 걸려있는 것과 같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온몸으로 느끼는 안이비설신 다섯 가지 감각을 통해 사물이 우리 의식에 들어오는데, 그것이 정상적으로 순화되어 내 생명을 기쁘게 하고, 내 마음을 밝게 해주고, 나를 깨어있게 하고,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경우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그게 전부 마장魔障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오식 다음에 의식이 있고, 일곱 번째 마나식이 있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연결해주는 중간 고리가 마나식이다.
 그리고 제8식이 인간의식의 바탕, 생명 의식의 창고 역할을 하는 알라야식이다. 그걸 장식藏識이라고도 하는데, 장이란 저장한다는 의미다. 우리가 우주에서 태어나 살아온 삶의 전 과정이 의식의 바다인 장식, 무의식에 전부 그대로 기록돼 있다.
 그것을 어떻게 아는가?
 수행을 하다보면 어릴 때 생각이 그대로 다 난다. 어릴 때 수행해서 광명통이 터진 사람은, 호연이 상제님과 다니면서 들은 말씀, 본 것을 기억하듯이, 어릴 때 일을 모두 기억한다. 사진이 찍히듯 순수의식에 기록되어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비록 어려서 말은 못해도,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 문득 자연과 하나가 됐었다면, 그 때의 장면이 평생토록 잊혀지지 않는다.
 
 
 마음 닦는다는 것의 의미
 
  1) 사물에 대한 인식능력을 높이는 것
 마음 닦는다는 것은, 첫째 사물에 대한 인식 능력을 높이는 것이다. 수행을 통해, 몸의 기운이 수승화강의 과정을 거쳐 정화된다.
 생리학적으로 우리 몸의 기능은 삼초三焦로 나누어진다. 폐, 심장, 머리가 상초上焦이고, 비위 중심의 소화기관이 중초中焦, 방광, 신장 등 배설, 생식하는 기관이 하초下焦다.
 즉 상초에는 신神이 작용하고, 하초에는 신이 생성되는 힘의 근원, 내 몸이 생명활동을 하는 에너지의 근원인 정精이 자리잡고 있다. 그게 내 몸 속의 천지다. 정은 곧 땅이요, 신은 곧 하늘이다. 정신! 인간은 몸 속에 하늘과 땅을 지니고 사는 것이다.
 수행을 통해 우리 몸의 천지 기운이 밝아지면, 사람을 바르게 보고, 사물의 내면과 본성을 보기 시작한다.
 
  2) 본성을 회복하는 것
 둘째, 수행을 하면 모든 생명의 본성인 신성(divinity)을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이 열린다.
 마음은 체와 용으로 나누어 말할 수 있다.
 체란 무엇을 보고 듣고 말하는 등, 주변의 사물과 관계를 맺고 마음이 작용하기 전 단계, 근원 마음이다. 그것을 , 본성이라고 한다.
 “야~, 그래도 걔는 바탕은 착해. 본래 마음은 그런 애가 아니야. 본성은 착해.”
 이런 말에서처럼, 본성이란 ‘본래 성품’이다.
 그런데 모든 생명의 본래 성품은 같은 경계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늘이나, 땅이나, 사람이나, 짐승들이나, 돌멩이나, 흙덩어리나, 흐르는 물이나, 타오르는 불이나, 저 태양과 달, 은하계 별들이나, 그 본성은 모두 똑같다는 말이다.
 본성은 열려있는 우주생명 의식이다. 대우주와 완전히 하나가 돼 있는 환한 불덩어리, 그러면서도 아주 시원하고 의식이 평온해지는 대광명의 경계다. 거기 보면 우주 만유가 다 살아 있다. 천지만물과 하나가 된 일심 경계, 그런 절대 평등의 경계, 절대 순수 의식에 돌아가 머물러야 한다. 이것이 선후천을 막론하고 모든 종교의 핵심 가르침이다.
 이러한 본성에 머무르려면, 그 동안 살아오면서 저지른 모든 죄업을 정화해 나가야 한다. 누군가를 억울하게 했거나 죄를 지었으면, 청수 떠놓고 빌면서 모든 걸 풀어야 한다. 상제님 진리는 해원의 도 아닌가. 해원의 도란 무엇인가? 우주만물의 마음세계를 정화하는 생명정화의 도요 궁극의 자유의 도다. 상제님의 해원의 도를 통해 상생으로 가는 것이다.
 마음 닦는다는 것은, 바로 자기의 죄업을 풀고, 자기의 후천적인 성품 -그걸 기질이라고 하든, 성격이라고 하든, 환경적인 요인 등 여러 구조적인 문제 속에서 형성된 지금의 ‘나’라는 독립된 개체가 갖고 있는 것 - 가운데 문제되는 것을 정화해서, 천지율려의 조화 속에 일체를 이루는 본래의 자기 생명의 모습, 즉 본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 경계를 불가에서는 불성이라고 한다.
 그 다음, 하나의 개체로서 구체적인 의식활동을 하는 것,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 느끼는 걸 정(情, emotion)이라고 하는데, 마음은 동하기 전의 본래의 근원 모습인 본성과, 구체적으로 사물에 동화되어 작용할 때의 감정 둘 다를 포괄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가에서는 “심통성정心統性情”, 즉 “마음은 성과 정을 통섭한다.”고 말한다.
 
  3) 내 몸의 기운을 정화하여 의식의 경계를 넓히는 것
 앞서도 말했듯이, 불가의 유식설에서 말하는 인간의 감정활동에는 오식五識과 의식, 그 다음 의식과 무의식을 연결해주는 통로로서 제7식 마나식, 그리고 내 생명 의식의 거대한 바다와도 같은 바탕인 장식藏識, 알라야식이 있다.
 나무로 얘기하면, 잔가지들이 오식(안이비설신)이고, 잔가지들 아래로 뻗은 줄기가 의식, 의식의 줄기와 뿌리를 연결하는 가운데 큰 줄기가 마나식, 그 다음 뿌리가 알라야식이다.
 뿌리에서 모든 게 뻗어나가는 것처럼, 인간의 말이나 행동, 습관들은 그 사람이 과거에 행해 온 모든 것이 바탕이 되어, 저도 모르게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마음을 닦으려면 자기의 과거 인생사, 더 나아가 전생부터의 어둠까지 모두 씻어내고, 잘못한 것, 죄 지은 것을 정화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도 기초 작업에 불과하다. 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수행을 통해 내 몸 자체를 정화해서 의식의 경계를 넓혀야 하는 것이다.
 수행하려고 눈을 감으면, 처음에는 아무 것도 안 보인다. 안식이 막혀 있기 때문이다. 또 몇 미터 이상만 떨어져 있어도 소리를 듣지 못한다. 냄새도 일정한 거리 이상이 되면 맡지 못한다. 이것이 보통 세속 중생들의 몸이다.
 그런데 수행을 통해 수승화강이 되면서, 내 몸의 음양 기운이 개벽되어 율려도수를 회복하기 시작하면, 혼탁한 음양이 순수음양으로 정화된다.
 그렇게 되면, 눈을 감아도 영적인 신도 경계가 환히 보인다. 또 깊은 밤 주문을 읽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귀에서 뚝 소리가 난다. 귓밥이 스스로 파헤쳐져서 떨어져 버리는 것이다. 또 아주 먼 곳에서부터 소리가 들린다. 히말라야, 알프스 산에 있는 나무들이 바람에 춤추면서 자기들끼리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히말라야, 알프스 산이 여기서 얼마나 먼가. 그뿐이 아니다. 천상 신도세계의 수도원에서 신명들이 주문을 읽으면서 왔다갔다 하는 소리까지 들린다.
 수행한다는 것은 바로 내 의식의 경계가 천지의 대생명과 하나가 되어, 내 생명이 온 천지의 생명 자체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체득하게 되는 경계가 있다.
 정신이 확 깨져서 수도를 잘 하면, 어느 순간 내 몸이 없어진다. 내 몸뚱아리가 온 우주 생명 자체라는 열려있는 의식의 경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 첫 경험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렇게 되면 수행을 하지 말라고 해도 하게 된다.

 

셋째, 태을천 상원군님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태을은 율려의 신도적 표현
 
 그러면 태을천은 어떤 하늘인가?
 조금 전에 태을이 곧 율려라고 했다.
 율려는 만물이 태어나 살아가는 생명 근원의 집, 조화의 집을 말한다.
 이 우주는 어떻게 해서 태어나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영원을 향해 지속적으로 순환, 변화해 가는가? 그 조화의 근원이 바로 율려다. 하늘과 땅, 인간과 신명, 모래알 하나까지도 율려 속에서 태어나 율려의 힘을 받아 순간순간 살아간다.
 율려는 다른 말로 태을이라고 한다. 곧 천지의 조화정신이 실체로 작용하는 걸 율려라 하고, 신도적, 영적 차원에서는 태을이라고 하는 것이다.
 
 
 태을천 상원군은 조화의 근원자리에 계신 인격신
 상제님께서는 신도적 차원에서 볼 때 이 우주가 33천으로 구성돼 있다고 하셨다. 정미년 음력 12월 25일, 상제님이 이십여 명의 성도들을 데리고 고부 경무청에 들어가 앞으로 선천세상을 마무리짓는 대개벽 공사를 행하실 때, 33천을 말씀하신 것이다.
 불가나 도가에서도 33천을 얘기한다.
 크게 동서남북 사방위에 여덟 천씩 있다. 그래서 4 곱하기 8 하면 32천이고, 그것을 주재하는 중앙천, 즉 온 우주 하늘을 통치하는 가장 높은 하늘 대라천大羅天이 있다. 큰 대 자, 벌릴 라 자 대라천은 이 우주에서 가장 넓은 하늘이다. 지존의 하나님이 계신 호천금궐이 있는 하늘. 이 대라천의 하나님이 바로 온 우주를 다스리는 조화옹 하나님, 옥황 상제님이다. 인간으로 오신 우리 상제님이시다.
 그런데 상제님 말씀에 따르면, 인간의 구원, 심판, 모든 인간의 완성 등 우주 진화의 궁극 목적은 어떤 특정한 한 하늘의 신의 권능과 힘만으로 달성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이 사후에 영적으로 살아가는 하늘도 하나가 아니다.
 “하늘 위에 또 하늘이 있다.”
 “그 위에 또 있습니까?”
 “있느니라.”
 “그 위에 또 있습니까?”
 “있느니라.”
 이렇게 김송환 성도에게 아홉 번, 즉 구천이 있다고 하셨다. 영적 진화의 층을 수직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앞서 말한 33천은 수평적인 하늘이다.
 그런데 태을천에 대해서는 다른 하늘과는 상이한 독특한 창조문제, 도권道權 문제가 제기된다. 태을천은 이 우주만물의 조화의 근원인 율려의 생명과 힘을 신도 차원에서 열어주는 곳이다. 그 곳의 주신이 바로 상원군님이시다.
 제는 하나님, 곧 우주역사의 전면에서 온 우주를 다스리는 참하나님이고, 상원군님은 조화의 근원 되는 자리에 계신 분, 생명 활동의 저 깊은 배후에 계신 분이다. 직접 나서지 않기 때문에 제帝가 아니고 군君이시다.
 상제님께서 태을주의 상원군을 ‘하늘 으뜸 가는 임금’이라고 하셨다. 으뜸이란 뭔가? 그것은 근원, 첫머리란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태을천은 모든 우주의 하늘 가운데 생명의 근원 되는 하늘이다.
 아울러 ‘으뜸’이란 말씀에서 우리는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현실 역사 인식의 눈으로 볼 때, 모든 것은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시간 속에 존재한다. 태고시절 자연과 더불어 인간의 탄생이 있었으며, 그 후로 인간은 지속적으로 역사를 이루며 살아왔다. 바로 그 과정에서 생명의 근원, 뿌리 역할을 하는 자리에 계신 분, 그분이 바로 상원군님이다.
 그런 면에서 상원군님도 이 땅에서 인간의 삶을 살다 가신 분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원시반본의 섭리, 태을주를 읽어야 산다
 그런데 가을개벽기에는 왜 태을주를 읽어야 하는가? 왜 태을주를 떠나면 살 수 없는가?
 원시반본 원리가 그 해답이다.
 우리 상제님이 계신 곳은 도솔천이다. 상제님은 불가에서 말한 미륵님이다. 상제님께서 “내가 도솔천에서 내려왔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그런데 현실 우주 역사의 장구한 세월 속에서 도의 뿌리역할을 해주신 분은, 태을천에 계신 상원군님이시다.
 상제님이 아무리 지존의 보좌에 계신다 해도, 수평적으로 인간역사의 도의 근원 자리에 계신, 그 뿌리 역할을 하는 상원군님을 소홀히 할 수 없다. 또한 상제님 홀로 우주의 개벽 문제를 다 끌러내지 못하신다.
 예를 들면 우주의 바탕, 체는 한 덩어리라 해도, 하늘과 땅과 인간으로 작용하지 않는가. 그리고 인간이 죽으면 속우주 사람, 신명으로 태어나 하늘과 땅과 인간 역사를 구체적으로 재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게 인간과 신도, 인간과 자연의 삼각관계 속에서, 우주는 성숙하는 것이다. 우주의 목적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정교하게, 더욱 섬세하게 펼쳐지고 있다. 그 모든 것을 주재하시는 분이 우주의 통치자인 상제님이다.
 반면에, 모든 생명이 수평적으로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내면적으로 자기의 근원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생명의 근원 힘인 율려 도수를 조정하는 분이 태을천에 계시는, 도의 역사의 뿌리 자리에 계시는 도신道神의 근원이신 상원군님이다.
 따라서 상원군님은 율려의 주인이다. 옛날 초나라 노래에 보면 동황태일東皇太一을 노래한 게 있다. 동녘 동 자에 임금 황 자에 클 태 자, 한 일 자, 동황태일의 전설이 전해온다. 그게 중국 송나라 때까지도 있었고, 우리나라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종대왕 전후 때까지 궁을 지어놓고 태을천 상원군님, 태을신太乙神께 제를 받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태을신은 16신을 거느리고 다니신다
 
 율려도수를 구체적으로 팔음팔양八陰八陽이라고 한다.
 그것을 처음 이치적으로 드러낸 분이, 5천 6백년 전 동방족의 선왕인 태호 복희 씨다. 배달국 태우의 천황의 막내아들[季子]인 복희 씨의 팔괘는 천지가 생성 변화해 가는 창조의 율려도수이법적으로, 음양의 원리로 그려낸 것이다.
 이 팔음팔양 도수가 있어서, 태을신은 늘 팔음팔양의 십육신을 거느리고 다니신다.
 『도전』 4편을 48장을 보면, 상제님이 하루는 약방에 계시는데, 천상에서 “도용아~” 하면서 호연이를 부르며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온다. 호연이가 “누구예요?” 하고 묻자 상제님이 입을 막으시면서, “암말도 하지 말아라.” 하신다. 그 때 그분이 상제님께 뭐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이 증언된 게 있지만, 지금은 밝힐 수가 없다. 아직 우리 신도들이 그 내용을 소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벽이 되고, 어느 정도 반도통이라도 되면 ‘아~ 상원군님이 그런 분이구나.’ 하는 걸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그분이 상제님께 빨리 그 도수를 보라고 하면서 떠나시는데, 호연이 보니 머리로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백설과 같이 희더라고 했다. 수염을 길렀다고 했으니, 그분이 남성신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8수는 동방 목이다. 갑은 3목이고 을이 8목이다. 동방에서 만물이 탄생하는 봄의 천지 조화 기운을 천간으로 말할 때, 갑을이라고 한다.
 천지의 순수 음양 정신인 율려의 본성은 정 동서남북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그 중간 보좌역으로 사유위가 있어서 팔방위로 작용하는데, 상제님이 공사 보실 때 종종 천지대팔문을 말씀하셨다. 천지에 음양의 조화기운이 출입하는 여덟 문이 있다는 말씀이다. 그것이 천지대팔문 도수다. 상제님은 그 도수를 진주도수를 맡은 문공신 성도 집에 붙이셨다.
 또한 이 천지대팔문 도수를 철학적 용어로는 구궁팔풍 도수라고도 한다. 천지 여덟 방위에 중앙 토자리까지 합해서 아홉인데, 토자리는 현실 방위에서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팔풍인 것이다. 그것을 음양으로 말하면 팔음팔양이고.
 개벽기에는 태을신이 십육신을 거느리고 나타나, 이 우주의 크고 작은 변혁을 다스리고 인류를 구원해 주신다.
 
 
 안내성 성도에게 붙이신 태을주 율려도수
 
 안내성 성도는 상제님으로부터 직접 태을주를 받고 3년 동안을 읽었다.
 “내성아 너는 자리를 뜨지 말고 3년 동안 태을주를 읽어라.”
 안내성 성도는, 엉덩이가 새까맣게 타고 짓무를 정도로 한 자리에 앉아 태을주를 읽음으로써, 후천 5만년 인류문화에 태을주를 태생케 한 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상제님은 안내성 성도에게 “너는 내 도의 아내다.”라고 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 말씀이 끝나고 나서 안내성 성도의 젖이 여자처럼 늘어지고, 짜면 젖이 나와서 어린애들에게 그 젖을 먹였다고 한다. 믿기 어렵겠지만, 윤기택 씨 아내나 그 아들이 어릴 때부터 보고 들은 걸 직접 증언하고 있다.
 그런데 이 안내성 성도에게는 태을주 율려도수 때문에 팔선녀 도수가 있다. 그게 참 알기 어려운 것이다. 안내성 성도의 아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보면, 안내성 성도가 스스로 원해서 여자를 여덟 얻은 게 아니다. 상제님이 직접 “내성이 너는 선관이 되려고 팔선녀를 데리고 살려고 하는구나.”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초기 기록에는 뒤집어져 있다.
 즉 도운의 초기 『대순전경』기록을 보면, 상제님이 후천 음양 도수를 보시면서 마음에 있는 대로 점으로 아내를 표해서 올리라고 하시자 이에 안내성 성도가 여덟을 원한다고, 여덟 점을 쳐서 올렸다고 나온다. 그런데 그것이 정확한 내용이 아니라는 걸 무진년 88올림픽 때 백운동 마을에 가서 증언을 듣고 확인했다. 안내성 성도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상제님이 율려도수를 붙이셔서 그 제자들이 ‘이것은 도수이기 때문에. 필연이다.’ 해서 딸을 갖다 바쳤다는 것이다.
 그가 세상 떠날 때 마지막으로 열 여덟인가, 열 아홉 먹은 처녀를 데리고 살았다. 그게 여덟 번째 아내다. 거기서 아들딸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 답사하면서 느낀 게 있다. 만약에 안내성 성도 둘째 부인이 없었다면 지금 상제님 말씀을 증언해 주는 안정남 씨가 없었을 것 아닌가. 그러면 가장 결정적인 상제님 공사가 증언 안 되는 것 아닌가. 특히 율려도수는 안정남 씨만이 아는 것이다. 정남 씨는 둘째 부인의 외동아들인데, 올해 일흔네 살이다. 그가 증언을 해줌으로써, 태을주의 조화세계가 무엇인지 전체적으로 드러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도 상제님 진리가 성편되어 인사에 정립되게 하는 또 하나의 기적이라고 본다.
 
 
 삼팔도수도 율려도수
 
 삼팔선을 보라.
 왜 한민족의 정신이 두 동강이로 갈라졌는가.
 우리는 최후의 분단국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걸 실감하고 있다. 자유주의 사회주의 진영이, 이념의 장벽을 쳐놓고 끊임없는 긴장 속에서 죽기살기로 대결하고 있지 않은가.
 이 삼팔도수에 대해 태모님이 지적해 주고 계신다. 이것이 천지의 율려다.
 월드컵 개막식 행사를 보니, 그 주제가 “소통에서 상생으로”다. “동방으로부터(From the East)”라고 쭈욱 나오면서, 그 다음에 “모두가 하나 되고” “소통(communication)”되어 모든 것이 하나로 열린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상극의 극성을 완전히 드러내야 한다. 그것을 상징하는 선이 삼팔선이다.
 태모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삼팔목(三八木)이 들어 3·8선이 웬일인고! 천하가 동변(動變)이라. 운수(運數) 보소 운수 봐. 질병목의 운수로다.”(道典 11:165:7∼8)
 곧 천지조화의 근원인 삼팔이라는 율려도수를 온 우주에 드러내는 계기가, 분단의 마지막 상징선인 삼팔선이 제거됨으로써 주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삼팔선이 그냥 제거되는 게 아니다. 남북이 충돌해서 전쟁이 일어나도 제거되지 않는다. 실제 개벽상황인 병겁으로 상씨름의 전쟁운은 끝을 맺는다.
 지금 바로 이것 때문에 상제님 일꾼들을 기르기 위해, 구체적으로 이런 대학교 도수가 인사로 나와, 이렇게 한데 모여 정신을 깨고 있는 것이다.
 
 
 역사 속에 나타난 율려도수의 흔적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태호 복희 씨의 팔괘 사상이 중국의 마지막 제국인 청나라의 팔기군八旗軍에도 드러나 있다. 팔기군은 여진의 군대조직으로, 부족에 따라 여덟 가지 깃발로 구분했다고 한다.
 그리고 심양에 가 보면, 누루하치가 처음 청나라를 열고 지은 궁전인 대정전大政殿이 있다. 아직껏 본래 형태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데, 그 대정전 마당을 보면, 누루하치가 앉아있던 자리가 있고, 그 좌우로 조그만 누각이 두 개 있다. 이것이 삼신사상에서 유래한 것이다. 좌현왕, 우현왕이라고, 황제의 보필자로 좌우에 왕 둘을 두었다. 흉노에도 이런 제도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마당에, 좌우로 수령 자리가 네 개씩 여덟 개 있는데, 팔수령이라는 것도 바로 천지음양 율려도수를 바탕으로 해서 만든 것이다.
 

 

넷째, 태을주 수행을 통해 얻는 은혜는 무엇입니까?

 

첫째, 태을주에는 율려도수가 붙어있어서, 태을주를 읽으면 무엇보다 영이 밝아진다. 천지일월과 만물이 태어난 생명의 근원, 그 조화기운을 받아내림으로써, 읽으면 읽을수록 내 생명이 건강해진다. 또한 영원히 우주와 더불어서 살 수 있는 힘을 받는다. 영생永生을 성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태을주 읽는다는 것은, 생명의 밥을 먹는 것이다. 아무리 먹어도 체하지 않는 유일한 밥, 태을주의 밥을. 오전에 태사부님께서 “‘태을주는 생명의 주문이다.’라고 말하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잖은가.
 둘째, 태을주를 읽으면 율려도수를 받아, 천지의 율려도수와 일체 되지 않던 내 몸 속의 부족한 율려도수가 채워져 천지와 하나가 된다. 그 과정에서 무슨 일이든 다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회복된다.
 어둠이 물러나고 영이 밝아지므로, 몸이 아프던 사람도 ‘아~ 나는 나을 수 있다.’, ‘모든 병이 바로 여기서 오는 거구나.’ 하고 몸 속의 어둠, 의식의 어둠을 깨닫고 거기서 벗어나게 된다. 마음 속에서 광명과 기쁨을 회복해서 건강의 도를 되찾는 것이다.
 셋째, 태을주을 읽으면, 일체의 재난으로부터 구원받는 크나큰 은혜를 받는다. 태을천 상원군님은 예로부터 “태을구고천존”太乙求苦天尊, 즉 창생의 고통을 건져주시는, 하늘의 높은 분이기 때문이다. 도교의 경전 『도장』道藏을 보면 그런 기록이 많이 나온다.
 상원군님은 우리에게 언제 어디서나 선천 천지의 상극기운으로부터 오는 일체의 충격과 재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궁극의 자유, 큰 구원의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상제님께서 “만병통치 태을주”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넷째, 태을주는 선천 상극의 원리를 극복하게 해준다.
 선천의 창조 이법은 상극이다. 선천에는 인간이나 비금주수, 미물에 이르기까지 상극 속에서 생명을 받아 살아간다. 그 극성을 이겨가면서 성숙해 가는 것이다.
 “선천은 상극의 이치가 인간사물을 맡았으므로 모든 인사가 도의에 어그러져서 원한이 맺히고 쌓여서 삼계에 넘쳐흐르매 마침내 그 살기가 터져 나와 이 세상에 모든 참혹한 재앙을 일으킨다.”는 상제님 말씀이 있다.
 곧 선천에는 음양의 부조화로 인해 창생들이 상극에 갇혀 살아가기 때문에, 자연 재앙, 인간문명 속에서의 재앙 등 비극과 불행이 끊임없이 생겨난다.
 태을천 상원군님은, 이 천지일월 만물의 음양작용의 근원인 율려를 다스리는 분이기 때문에, 그것을 지혜롭게 극복하고, 고난의 화액을 면할 수 있게 해주신다. 곧 태을주는 선천 상극의 이법을 조화시켜줌으로써, 부조화로 인해 오는 여러 가지 재난을 제어해주는 것이다. 천지의 이법인 상극의 벽을 넘어서는, 상극의 고난을 넘어서는, 상극을 극복하는 궁극의 축복을 받는다.
 그래서 태을주를 읽으면 현실에서 반드시 기적을 체험한다. 차가 정면으로 박치기했는데도 사람이 다치질 않는다. 그렇다고 시험삼아 해보진 말아라. 신도의 미움을 산다.
 다섯째, 태을주를 읽으면 천지의 조화신인 깨비신을 본다.
 정신이 크게 깨지고, 참으로 고통을 많이 당해서 큰 일꾼으로 성숙되어 태을주를 읽으면, 도깨비신을 직접 본다. 도깨비신이 내 눈동자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그걸 보면 깜짝 놀란다. 하하하. 그만큼 인간이 천지의 조화단지로서 우주의 주목 대상인 것이다.
 여섯째, 태을주는 도의 역사, 종통을 바르게 정립케 한다.
 상제님 도의 궁극의 근원은 태을에 뿌리내리고 있다. 하늘의 근원도 태을, 땅의 근원도 태을, 인간역사의 근원도 태을, 신도세계의 근원도 태을이다. 온 우주 생명 창조의 역사가 태을에 근원을 두고 있다. 이걸 부정하는 건 자기 존재 부정이고, 자기 뿌리 부정이다. 그러면 다 죽을 수밖에 없다.
 상제님 도의 역사가 후천 5만년 인간사에 뿌리 내려가는 과정, 즉 도통맥을 바로잡는 종통사태을천으로부터 봐야 풀려나간다. 왜 그런가? 태을은 천지음양 조화의 근원자리이기 때문이다. 태을에서 팔괘, 팔음팔양으로 우주만유가 열려 나간다. 곧 태을에서 천지가 열리고 일월이 열리고 성신이 열리고, 그 열매로 천지일월의 아들딸인 인간이 태어난 것이다.
 그러면 상제님은 도통 맥을 어떻게 전수하셨는가?
 상제님은 공덕이 많거나 인물이 잘 났다 해서, 종통 맥을 임의로 전수하신 게 아니다. 상제님은 “나는 천지일월(天地日月)이다” 하시고, 하늘 아버지로서, 땅 어머니 되시는 태모님에게 수부도수로서 천지대권을 넘겨주신다. 그렇게 해서 뿌리를 내리는 분도 둘, 열매를 맺는 사람도 둘이다. 곧 천지자연법, 음양법에 바탕을 두고 도통을 전수하신 것이다.
 본래 음양은 일체이기 때문에 수평적 관계다. 하늘과 땅이 일체이고 일월도 일체다. 그래서 상제님이 태모님에게 “내가 너 되고 네가 나 되는 일이다.” “천지 만백성의 부모가 되려면 이렇게 해야 된다.”는 말씀을 하셨다.
 마찬가지로 상제님 대업을 인사로 마무리짓는 지도자 도수인 일월 도수도 그렇게 나온다. 계묘(1903)년에, 상제님이 도통문을 열어놓으신 대원사의 주지 박금곡에게 ‘용봉’龍鳳이라고, 서로 머리를 맞대게 하여 글자를 써주셨다. 누가 높고 낮고 그런 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 왼쪽 끝에는 ‘독존석가불’이라고 쓰여져 있다. 이 내용이 이번 개정판 『도전』에 실린다. ‘홀로 존귀한 석가모니’, 곧 석가모니불은 천륜을 끊고, 음양을 부정한다는 말씀이다.
 상제님 도법은 천지조화의 근원음양의 도를 바탕으로 후천 5만년 도의 뿌리를 내리고, 음양의 도로써 그것을 끝매듭 짓는다.

 

다섯째, 태을주와 숙구지도수의 상관관계를 알고 싶습니다.

 

숙구지 도수는 상제님 대행자 도수
 
 숙구지宿狗地는 잠잘 숙, 개 구, 땅 지, 문자 뜻 그대로, 잠자는 개의 형상을 한 땅이다. 아마 숙구지의 지형이 그렇게 생긴 모양이다.
 상제님은 이번에 개벽하는데, 그 천지조화 기운이 개 구 자 구구지九狗地라고 말씀하신다. 상제님이 태어나신 고부 객망리는 미륵구지이고, 상제님 세상을 추수하는 주인공의 기운은 숙구지다. 숙구지 도수는 상제님을 대행해서 후천 오만 년을 여는 주인공이 받는 도수다.
 숙구지 도수를 보면, 전태일이라는 사람이 동학 신도로서 시천주 주문을 읽는데, 하루는 어떤 노인이 와서 “네가 앞으로 살고 잘 될 곳을 가려면은 남쪽으로 20리를 가라.” 해서 상제님을 찾아온다. 이 때 박공우 성도가 그를 데리고 상제님께 가자, 상제님이 아무 말씀 없이 그에게 봉서 하나를 주신다. 그가 집에 가서 펴 보니 태을주가 써 있다.
 그래서 “훔치훔치 태을천 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 사파하.” 하고 태을주를 읽었다.
 전 날까지 그는 시천주 주문을 읽은 사람이다. 그런데 노인의 이야기를 듣고, 조선 팔도에 신인으로 소문난 상제님의 권능과 신권에 강력한 믿음의 충격을 받고 이 태을주 주문을 받아온 것이다.
 그런데 그가 하루 저녁 태을주를 읽으니 한 동네사람들이 다 따라 읽는다.
 그에 대해 상제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앞 세상 일 되는 것을 수 놓아봤다. 때가 이르니 그 기운을 걷는다.”고.
 개벽 때 상제님이 주신 의통으로 인류를 건지는데, 의통이 태을주로 구성돼 있다. 그러므로 직접 태을주를 쓰는 도운의 주재자가 개벽상황에서 얼마나 많이 사람들을 살려내는가? 또 개벽이 오기 전 마무리 도운 기간에 어느 정도 일꾼이 들어오는가?
 이 모든 것이 숙구지 도수에 들어있다.
 숙구지 도수는 거의 개벽상황에 관련된 도수다.
 그러니 이 때 누가 승리하겠는가?
 상제님 일은 대세가 틀어질 때면, 불과 몇 달 사이에 일이 돼 버린다. 앞으로 그런 큰 변혁이 일어난다. 뉴욕 쌍둥이 빌딩이 수직으로 무너졌지만, 앞으로 머지않아 옆으로 터지는 일이 일어난다. 지금 이 자리에도 태을주 읽고 그걸 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상제님 일은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급격히 마무리된다.
 따라서 그 전에 누가 씨를 많이 뿌렸는가. 누가 철저하게 준비하는가, 거기에 승패가 달려있다. 그냥 불신 속에서 무계획하게 세월 보내면 다 끝나는 것이다.
 그 다음 숙구지 도수의 뒷부분은, 천상에 있는 24장, 28장을 각 나라에 배치해서 지구촌 인종 씨 추리는 공사다. 상제님은 이 세계를 24장과 28장 합해서 52장 즉 52개 광역으로 나누신 것이다. 실제 개벽상황에 가면, 그것이 인사로 이루어진다. 문화의 관계성이나 민족 구성 등을 바탕으로 세계를 52개 광역으로 나누게 된다. 그리고 24장 28장의 신장이 응해서, 실제로 각 민족을 개벽하여 그 나라 후천선경의 인종씨 추리는, 즉 가을개벽을 집행하는 육임도꾼의 장군이 임명된다. 그 도수가 숙구지 도수다.
 
 
 숙구지 도수의 완성, 새울도수
 숙구지 도수를 완성하는 것이 바로 상제님이 나에게 붙여주신 새울도수다. 새울도수는 철야 수행하는 것이 근본이다. 태을주 읽고 도공하는 것! 상제님이 태을주 봉서를 주시고 성냥을 주신다.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 나가도록, 태을주의 불을 지피라는 것이다.
 상제님 일꾼들 의식을 무너뜨려서, 상제님의 도기를 불어넣어 일꾼들로 하여금 개벽을 똑바로 보게 하고, 사상적, 문화적 역량과 역사의식을 갖게 하는 것이, 내가 상제님으로부터 받은 천명이다.
 
 의통을 보면 태을주를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져 있다. 개벽 때 죽은 사람 살리는 해인(海印), 몸에 지니고 다니는 호신의통, 문에 붙이는 호부의통, 전부가 태을주로 구성돼 있다. 곧 선천 하나님인 시헌 이마두, 후천 오만년 새 우주를 열어주신 우리 상제님, 그리고 태을천 상원군님 이렇게 돼 있는데, 태을천 상원군님이 우주 도통의 역사의 원 뿌리 아니신가.
 상제님에게도 아버지, 어머니가 있고 조상신이 있다. 상제님은 “나도 단군의 자손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것은 역사의식을 보여주신 것이다.
 
 
 태을주로 시작해서 태을주로 매듭짓는다
 
 태사부님도 말씀하셨지만, 맨 처음 태을주로 포교한 분이 상제님이 대학교 도수를 붙이신 김경학 성도다.
 김경학 성도는 상제님 어천 후 몇 달 동안 방황하고 떠돌다가, 다음해 경술년, 도기 40년 음력 2월 집에 돌아와보니,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래서 슬피 통곡하다가 문득 마음이 밝게 열렸다. 상제님께로 마음이 돌아온 것이다. 그러자 앞으로 지구촌 창생이 다 죽어 넘어갈 때 태을주로 사람을 살린다는 상제님 말씀이 깨달아졌다.
 사실 얼마나 처절한 상황인가. 돌아가신 분이 어머니든 아버지든, 죽은 자 앞에 서면 생각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태을주를 사무치게 읽었다. 그랬더니 죽은 어머니가 살아난다. 태을주로 죽은 사람을 살린 것이다.
 김경학 성도는 상제님을 만나기 전에, 동학에서 90일 동안 시천주 기도할 때도, 천상 옥경에 가서 상제님을 직접 뵌 분이다. 아마 동학역사상 상제님을 친견한 사람은 김경학 성도 한 사람밖에 없을 것이다.
 태을주로 죽은 어머니를 살린 김경학 성도는, 장티푸스로 죽어가는 유의경을 고쳐주고, 그를 데리고 상제님 공사 보신 구릿골 약방으로 성지참배를 간다. 거기 가보니 문지방과 방바닥 한가운데 벽지 위에 열십 자 칼자국이 있다. 그것을 떼어보니 “봉명개훈奉命開訓” 넉 자가 쓰여져 있다. “명을 받들어 가르침을 열라.”는 뜻이다.
 또 아랫목 벽 위에 십자형의 칼자국이 있어 떼어보니 ‘날 일(日)’자가 쓰여 있다. 날 일 자는 광명을 뜻한다. 곧 “너는 새 우주의 광명을 여는 진리의 태양이다. 온 우주의 새 문명을 여는 주인, 대학총장이다.” 이런 말씀이다.
 이렇게 김경학 성도가 태을주로 사람을 살려서 처음 포교운이 열렸다. 이제는 태을주로 상제님 도업을 마무리짓는다. 그 마무리 도수가 바로 숙구지 도수다.
 아울러 철야수행을 통해 일꾼들에게 태을주를 체험케 하고, 태을주 정신으로 조직화하여 육임 도꾼을 짜나가는 새울도수로써 상제님 대업이 완성된다. 태을주를 읽으면서, 인류는 죽음에서 벗어나 선천우주를 문닫고 후천우주로 들어가는 것이다.
 따라서 태을주는 선천우주에서 새 우주로 걸어 들어가는 구원의 가교다.
 
 
 태을주에 대해 크게 깨져야
 
 상제님이 어천하시기 전에, 태모님에게 주신 시가 있다.
 
 吾君誓約重十山이요 踏盡高高太乙壇이라
  너와 내가 맹세한 언약
  온 세상 산보다 무겁고
  지상의 태을궁으로 인도하여
  천하창생을 건지느니라.
(道典 10:7:5~6)
 
 “나와 네가 맹세한 언약은 이 세상 온갖 산보다 무겁고, 너와 내가 손잡고 걸어 올라가니 바로 저 조화의 근원이 되는 하늘인 태을궁이로구나.”라는 말씀이다.
 
 一年月明壬戌秋요 萬里雲迷太乙宮이라
  淸音蛟舞二客簫하고 往劫烏飛三國塵이라
  한 해의 밝은 달은 임술의 가을
  저 머나먼 태을궁엔 구름만 아득하구나.
  두 나그네 퉁소 소리 도롱룡이 춤추고
  흘러간 겁액 까마귀 나니 삼국의 풍진이네.

  (道典 8:17:4~6)
 
 “구름 깊고 머나먼 저 태을궁”
 이 말씀을 보라. 상제님은 상원군님이 계신 태을궁을, 천상 아주 높은 외딴 곳에 실존하는 영적 공간으로 말씀하신다. 곧 태을천 상원군님을 인격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태을천은 천지의 궁극의 조화가 흘러나오는 도의 하늘이다. 때문에 한없이 태을주를 사랑하고, 매순간 내 생명의 근원으로 인식하고 읽어야 한다. 읽는 만큼 내 생명이 영원히 살 수 있는 천지조화 율려도수를 받는다. 그래서 상제님이 “태을주는 여의주.”라고 하신 것이다.
 “만사여의萬事如意 태을주”
 이게 깨져야 된다! 이게 안 깨져서 태을주를 안 읽는 것이다. 그러니 일이 될 수 없다.
 
 자, 오늘 그대들 모두 다시 한 번 새롭게 크게 깨져서, 상제님 도법의 결론인 태을주를 잘 받아 읽어라. 그렇게 해서 영대가 트이면, 태을주의 도력으로 포교도 많이 하고 병자도 고치고, 뭐든지 다 할 수 있다. 됐어.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