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인류의 역사는 각종 재해와의 전쟁사였다. 첫째는 자연재해와의 전쟁이다. 1970년 남아시아의 사이클론으로 100만명이 사망했으며, 지난해 중국 쓰촨 지역의 대지진으로 8만6000여명이 숨졌다. 둘째는 질병과의 전쟁이다. 14세기 유라시아 흑사병으로 7500만명, 스페인독감으로 2164만명이 사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류가 겪었던 최악의 재앙은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낸’ 전쟁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1500만명,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5000만 이상의 인명이 살상됐다. 최근 노르웨이 과학연구원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창세 이래 전쟁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람은 30억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대재앙을 가져올 전쟁 바이러스는 지구촌 곳곳에서 창궐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가장 극성을 부리고 있는 곳이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분단돼 있는 한반도, 가장 비이성적이고, 가장 믿을 수 없는 북한의 김정일 정권, 세계 4개 강국에 둘러싸여 있으면서 그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돼 있는 동북아시아의 화약고, 이 화약고의 지붕 위에 핵무기를 들고 올라가 여차하면 집어던지겠다고 위협하고 있는 김정일. 이것들이 바로 한반도에 전쟁을 불러올 악성 바이러스다.
그런데도 정작 핵폭풍의 중심부에 살고 있는 우리 국민은 너무도 태연하다. 국가 안위에 무한책임을 지고 있는 정치인들은 당리당략에 빠져 안보를 돌볼 여유가 없다. 명백한 간첩들이 시민단체의 가면을 쓰고 국내에서 활거하면서 우리 안보의 핵심 지원군인 미군더러 나가라고 큰소리 치고 있다. 자주국방하겠단다, 국민의 자존심을 세우겠단다…. 가관이다.
국내 사망자가 1명도 없는 신종플루에는 기겁을 하면서도 수백만, 수천만 동족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한반도의 전쟁 바이러스에는 무감각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이제라도 강력한 전쟁 바이러스 백신을 준비해야 한다. 최우선의 백신은 군의 확고부동한 방위태세다.
첫째, 장비의 현대화가 급선무다. 오직 정신력만으로 전쟁하던 시대는 지났다. 군사비는 보험료와 같다. 평시에 적은 돈으로 유사시 큰 손실을 막는 보험료를 아까워해서는 안된다. 국방개혁 2020의 차질없는 추진이 요구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둘째, 한미동맹의 원상복구다. 한반도에서 강력한 전쟁 억지력으로 작용했던 한미동맹이 이완되고 있는 것은 적지 않은 걱정거리다. 전시작전권 조기 전환과 한미연합사 해체 문제는 재검토하는 게 마땅하다. 제2차 핵실험을 강행하는 등 북한의 위협이 전작권 전환 문제를 거론할 당시보다 훨씬 더 위중해진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셋째,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국민의 상무정신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전쟁터에 뛰어들겠다는 대학생이 4명 중 1명에 불과하다. 소총 한자루 들고 전장으로 뛰어들었던 학도병 선배들에게 정말이지 면목이 없다. 전쟁은 전쟁을 싫어하는 사람을 피해가는 게 아니다. 오직 전쟁을 각오하고,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을 피해 간다. 이것은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자 준엄한 경고다.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의 참화가 없도록 막는 것, 그리고 오늘의 이 나라를 있게 한 전쟁 영웅들을 호국의 일등 공신으로 받드는 것, 이것이 살아 남은 자들의 당연한 책무이자 먼저 가신 분들에 대한 도리 아니겠는가. 59년 전 6·25 전쟁을 한번의 실수라 친다면, 또다시 반복되는 실수는 용서받을 수 없는 실패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되겠다. 총성이 멎은 지 60년도 안돼, 시민단체의 가면을 쓴 간첩들이 기소되는 모습을 보면서 맞고 보낸 2009년 6·25였다.(konas)
박세직(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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