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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역사문화/대한민국&한민족

놋다리의 뜻과 놋다리밟기 놀이

by 바로요거 2009. 6. 11.

 

놋다리의 뜻과 놋다리밟기

 

1, 놋다리의 뜻 

다음 국어사전 내용

-놋다리밟기에서 공주로 뽑힌 여자가 밟고 가도록 부녀자들이 허리를 굽혀 만든 다리.

                       동교(銅橋), 놋다리밟기는 놋다리와 같은 말.

2, 놋다리 밟기

-안동지방에 전승되어오는 여성놀이.

경상북도 여러 지방에서는 예로부터 정월 작은보름(14일)에 부녀자들의 놋다리놀이가 성행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안동지방에서 성행했다. 대보름이나 작은보름날 밤에 명절 옷을 차려 입은 부녀자들이 일렬종대로 허리를 굽히고 앞사람의 허리를 두 팔로 껴안아 긴 다리를 만드는데 이것을 놋다리라고 한다. 그 위에 처녀아이를 올려 걸어가게 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밤새도록 즐긴다.

노는 방법은 지방에 따라 약간씩 달랐다. 어떤 곳에서는 놋다리를 만든 다음 뒤꼬리에 있는 사람부터 1명씩 순서로 놋다리 위를 건너게 하여, 다 건너 앞에 이르면 내려서 그 자리에 허리를 굽히고 한 사람이 서서 다시 놋다리를 이룬다. 건너는 사람의 물음에 대답하는 것은 어느 곳에서나 같다. 놀이방법은 둥둥데미·실감기·놋다리 등으로 이루어진다. 의성을 비롯한 일부지방에서는 놋다리놀이(허리를 굽힌 모양이 휘어진 골기와 같다는 비유에서 온 말)를 기와밟기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부녀자들이 남북 양편으로 갈라져서 위와 같은 방법으로 다리를 빨리 건너기 내기를 한다. 다리를 건너는 것은 처녀아이를 시킨다. 이 경기가 끝나면 처녀아이를 목마에 태워서 밀고 넘기기 내기를 하면서 밤이 깊도록 노래를 부르며 놀았다.

 

 

3, 놋다리밟기의 유래
 본문
놀이의 유래에 대해 크게 두 가지의 설이 있다. 하나는 공민왕(恭愍王)의 파천(播遷)과 연관된 민간에 전하는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상고시대의 원무에서 그 기원을 찾는 것이다.
먼저 안동지방 민간에 전하는 이야기로, 지금부터 6백여 년 전 고려 31대 공민왕(恭愍王)이 왕비인 노국공주(魯國公主)와 함께 안동지방에 피난 갔을 때, 마침 개울을 건너게 되었는데 젊은 부녀자들이 나와 그 개울 위에 일렬로 엎드려 사람다리를 놓아 노국공주를 지나가게 하였다고 한다. 그 후 이 고을 부녀자들은 당시를 기념하기 위하여 새해 명절인 정월 대보름날 밤을 택하여 이 놀이를 했고, 그 후 하나의 연중행사가 되었다고 한다.
다른 주장은, 보름날 달밤에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노래 부르고 춤추는 일은 어느 특정 지역이나 민족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류 공통의 원초적인 놀이로, 원시사회의 풍요를 기원하는 주술적인 행위에서 비롯된 놀이라는 것이다.
그밖에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정월조(正月條)〉에는 당시의 놀이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당시의 모습과 오늘날의 모습이 흡사하여 흥미롭다.
“안동(安東)의 풍속을 보면 시골 여인들 중 늙고 약한 여인들이 떼를 지어 성 밖으로 나와서, 밤이 되면 마치 물고기를 길게 꿰맨 형상으로 앞뒤로 길게 엎드려 눕는다. 그런 후 한 어린 계집애가 여인들이 엎드린 그 위를 걸어갈 때 좌우에서 부축하여 준다. 계집애는 그 위를 왕래하며 마치 다리 위를 걷는 것 같다. 그리고 그 계집애는 말하기를 ‘여기가 무슨 다리인고·’라고 먼저 노래를 부르면, 엎드려 있던 여인들도 일제히 ‘청계산의 동교’라고 노래부른다. 이와 같이 큰길을 거닐 듯이 동서남북 자유로이 왕래하며 밤을 지새운다. 이 놀이는 밤이 깊어서야 끝난다.

 

4, 놋다리밟기의 놀이 방법
 본문

다른 지역의 놀이방법보다 놋다리밟기의 대표적인 전승지역인 안동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성 안의 놋다리’는 한 줄로 길게 늘어서서 이동하는 가운데 진행된 ‘행렬형 놋다리’였다고 한다. 그리고 ‘성 밖의 놋다리’는 행렬형과 아울러 쭉 둘러서서 원을 이루고 양편의 공주가 마주치는 지점에서 서로 싸우기도 하는 ‘원무형’과, 두 줄로 늘어서서 경쟁을 하는 일종의 ‘경합형’ 등이 결합된 형태로 놀았다고 한다.
성 밖의 놋다리는 ‘동부’와 ‘서부’의 두 패로 나뉘어 저녁을 먹은 다음 동부는 현 옥정동에 소재했던 ‘초당집 마당’에 모여들고, 서부는 현 법상동에 소재하는 ‘잿집 마당’에 모여 총명한 소녀를 공주로 뽑았다고 한다. 어느 정도 사람들이 모이게 되면 원무인 〈둥둥데미 노래〉에 맞추어 놀다가, 이어 ‘실감기’와 ‘실풀기’가 이어지면서 일행 모두가 원 안쪽을 향하여 허리를 구부려 사람다리를 만든다. 이것이 ‘웅굴놋다리’가 되는데, 이때부터 공주가 양쪽 시녀의 부축을 받으며 다리를 밟게 된다. 공주가 웅굴놋다리를 한두 바퀴 돌고 나면 놋다리의 선두는 원형에서 벗어나 시가지 대로를 향하여 나아가는데, 이른바 ‘줄놋다리’가 시작된다. 동·서부의 놋다리가 행진 끝에 천리천 서문 둑에서 만나게 되면, 서로 길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싸우기도 하고 서로 비켜가기도 한다. 또 사이 좋게 하나로 합쳐져서 공주도 한사람만 세워 놋다리를 계속하기도 했다. 놋다리밟기를 해야 그 해 풍년이 든다고 해서 집안 어른들이 권장하기도 했으니, 양반집 처녀와 새댁들도 모두 다 참가했으며 성 밖의 놋다리는 성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했다고 한다.
성 안의 놋다리는 ‘삼웃들파’와 ‘관아앞파’로 나뉘어져 진행되었다고 한다. 삼웃들파는 저녁을 먹은 후 노래를 잘 부르는 노인들이 먼저 놋다리 노래를 부르며 골목을 다니면, 젊은 부녀자들이 모인다. 그러면 놋다리를 구성하여 넓은 길을 따라 성안을 두루 돌았는데, 공주라는 명칭은 쓰지 않고 17~18세의 소녀를 뽑아 놋다리를 밟게 했다. 관아앞파는 별다른 앞놀이 없이 관아 앞에 모여 줄놋다리를 구성한다. 앞사람의 허리를 안고 머리를 앞사람의 오른쪽으로 돌려 붙인다. 이 성 안의 놋다리도 역시 다른 파와 마주치면 길을 뺏기지 않으려고 싸웠으며, 밤늦게까지 놀았다고 한다.
구체적인 놀이방법은 아래와 같다.

1) 둥둥데미

① 부녀자들이 모이기 시작하면 서로 손을 잡기 시작하는데, 둥둥데미에 들어가기 위한 대형을 만들기 위해 일렬로 길게 늘어설 때까지 계속해서 연결한다.
② 일단 일렬로 정돈되면 모두 왼쪽 무릎을 세우고 앉은 다음, 선두가 〈둥둥데미 노래〉에 맞추어 일어서면 나머지 일행은 놓았던 손을 다시 잡고 선두로부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손을 타넘으면서 오른쪽(시계방향)으로 감아 돈다.
③ 이때 앉아 있는 사람은 서서 도는 사람이 잡은 오른손을 어깨 위에서 뒤로 한 바퀴 돌려 자기 차례가 되었을 때 일어선다. 처음엔 한 사람씩 타 넘던 것이 원이 커지면서 여러 명씩 건너뛰게 된다.
④ 둥둥데미가 끝날 때까지 노래는 계속 반복되고, 일행은 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
⑤ 이때 부르는 노래는 아래와 같다.
“어화유리 둥둥데미 / 둥둥데미 어화유리 / 저달봤나 난도봤다 / 저별봤나 난도봤다 / 저길봤나 난도봤다.”(반복)

2) 실감기

둥둥데미가 끝나면 곧 노래꾼의 〈실감기 노래〉에 맞추어 원이 풀어진다. 가장 가운데 위치하는 선두가 그대로 손을 잡고 나선형으로 겹겹이 감겨 있는 원 사이의 길을 찾아 나온다. 이때 풀리는 원 끝 부분에서 S자로 구부러져 안쪽으로 방향을 바꾸면, 하나의 큰 원형을 이루게 된다. 이때 부르는 노래는 아래와 같다.
“집실로 감아라 / 당대실로 풀어라.”(반복)

3) 웅굴놋다리

① 겹겹이 만든 원을 풀어 큰 원이 되면 앞뒤의 맨 앞사람이 빠져나와 한 명은 원 안에, 한 명은 원 밖에 선다. ② 나머지는 모두가 손을 잡은 채 원 안쪽을 향하여 허리를 구부리며, 서로의 어깨가 맞닿을 때까지 좁혀 들어간다.
③ 이리하여 웅굴놋다리를 시작할 대형이 되면 잡은 손을 놓고, 각각 놓은 손을 허벅지에 고정시켜 공주가 지나갈 때 흔들리지 않게 하고 고개는 숙인다. 이때 치마를 어깨 위까지 걷어올려 뒤집어써서 저고리가 더러워지지 않게 한다.
④ 원을 이루어 구부린 사람은 주로 아랫것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원형을 둘러싸고 서서 〈놋다리 노래〉를 부른다. 패를 둘로 갈라서 교환 창을 하는데 한쪽에서 “어느 윤의 놋다리야·”하면, 다른 쪽에서 “청계산의 놋다릴세.”하는 식으로 문창(問唱)과 답창(答唱)이 이어진다. 구부린 사람들은 물론 공주와 시녀는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⑤ 이때 부르는 노래는 조금씩 다른데 한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어느 윤의 놋다리야 / 청계산의 놋다릴세 / 귀어데서 손이왔노 / 경상도서 손이 왔소 / 이땅은 누땅이로 / 나라임의 옥당이요 / 이 군사는 누 군사로 / 나라임의 옥군사요 / 청계산아 청계산아 / 개똥밭에 청계산아 / 무슨 말을 타고 왔도 / 백대마를 타고 왔대 / 워디다가 말을 맸소 / 마르낭게 말을 맸소.”<

<그적세 옷을 또 입어야지>
“무슨 옷을 입고 왔도 / 당대옷을 입고 왔소 / 당대옷을 벗구나마 / 무슨옷을 입었더냐 / 무명지타래바지 입구 왔고 / 무슨 저고리 입고 왔소 / 무명지쪽 저구리 입고 왔고 / 무슨 도포 입고 왔소 / 금양도포 입구 왔도 / 무슨 보선 신고 왔도 / 삼신보선 신고 왔대 / 무슨 신을 신고 왔소 / 육날매틀 신구 왔대 / 무슨 토시 찌구 왔도 / 털토시 찌구 왔대 / 무슨 갓을 쓰고 왔도 / 통영갓을 쓰고 왔대 / 무슨 동정 찔러왔도 / 외오리동정 찔러왔대 / 무슨 망건 씨고 왔도 / 외올 망건 씨고 왔대 / 무슨 풍잠 달고 왔도 / 호박풍잠 달고 왔소.

<밥대접 해이지>
“무슨 판에 채려주도 / 도리도리 재피상에 / 은절놓고 놋절놓고//
무슨 반찬 하여 주대 / 문에 전복 채려놓고 / 한이 없이 잘먹었소.“

노래의 내용은 입고·띠고·쓰고·신고·달고·꼽고·끼고 한 손님의 모습을 묘사하고, 또 온전히 대접받은 상황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4) 줄놋다리
① 공주가 웅굴놋다리를 한두 바퀴 걸어 돌고 나면 놋다리의 선두는 원형에서 벗어나 시가지 대로를 향하여 나아가기 시작하는데, 공주가 등을 밟고 지나가면 다시 앞으로 나가 열을 짓는다. 이때에 허리를 펴거나 고개를 들지 않고 다소곳한 자세에서 종종걸음으로 자리를 옮긴다.
② 공주의 뒤쪽에서 노래를 부르던 사람들은 대열을 따라가며 노래를 부른다.
③ 성 안의 놋다리밟기에서는 줄놋다리를 성 밖과는 다르게 대형을 만든다. 즉 앞사람의 허리를 안고 머리를 앞사람의 오른쪽으로 돌려 붙여 길게 대형을 만든다. 공주가 밟고 지나가면 일어서서 다시 앞에 가서 다리를 만드는 것은 성 밖의 줄놋다리와 같다.

5) 고깨싸움

① 줄놋다리가 진행되다가 동부·서부 양대의 놋다리가 서문 둑 다리를 향해 행진하여 마침내 거기서 부딪치게 된다. 이때 마찰 없이 서로 비켜가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는데, 이를 고깨싸움이라 한다. 성 안의 놋다리밟기에서도 고깨싸움을 하기도 한다. 아이들을 어깨 위에 올리는 것을 이 고장에서는 ‘고깨’라고 하기 때문에 ‘고깨싸움’이라고 하는데, ‘무동싸움’이라고 하면 쉽다.
② 몸집이 크고 힘센 부녀자가 가벼운 처녀를 어깨에 올리고 뒤에는 물받이 셋이 처녀를 떨어뜨리지 않도록 받치며, 앞에는 물부리 넷을 세워서 상대편의 공격을 막는 구실을 한다.
③ 동서부가 서로 겨루어 고깨 위에 탄 처녀를 먼저 끌어내리는 쪽이 이긴다. 따라서 고깨꾼은 키가 크고 억세야 하며, 고깨를 타는 무동은 강단지고 영악해서 약빨라야 한다.
④ ‘동채싸움’처럼 앞머리꾼들이 고깨꾼의 앞쪽에서 고깨를 주로 보호하며 상대 고깨를 공격한다. 한편 다른 부녀자들은 고깨 둘레를 겹겹이 둘러싸서 바람들어갈 틈도 없는 사람의 장막을 만들어 상대편의 공격을 차단한다. 앞머리꾼의 밀백이가 승부를 가르는 중요한 힘싸움인데, 힘에 밀려 앞머리가 터지면 승부가 난다. 동부 고깨가 이기면 풍년이 든다고 한다.

7) 청어장사

① 사람들을 기다릴 때나 놀이 중간에 간간히 하는 놀이이다. 부녀자들이 두 패로 나뉘어서 한 편은 장사꾼 노릇을 하고 한 편은 손님 노릇을 하는데, 옆에서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고 마주서서 노래를 주고받으며 앞뒤로 나아갔다 물러섰다 한다.
② 먼저 장사꾼이 “청어 사소, 청어 사소.”하고 나아가면 손님들이 뒤로 물러선다. 이번엔 손님들이 나아가면서 “청어 값이 몇 냥이로·”하면 장사꾼이 물러서서 “은도 닷 냥, 돈도 닷 냥.”하고 응답한다. 다시 손님들이 “연에 닷 냥 제값일세.”하며 나서면, 이어 장사꾼들은 청어 사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같은 방식의 놀이를 거듭한다.

8) 콩심기

‘청어장사’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기다릴 때나 놀이 중간 또는 끝에 하는 놀이이다.
① 먼저 두 편으로 나뉘어 앉아서 각 편에 한 사람씩 술래를 뽑는다.
② 두 술래는 먼저 가위바위보로 차례를 정한 다음, 마당의 작은 돌멩이를 콩으로 삼아 상대편 몰래 콩을 심는 흉내를 내며 돌을 자기편 사람들의 치마폭에 숨긴다. 이때 콩밭 노릇을 하는 다른 부녀자들은 손뼉을 치면서 “한오래 한오래, 두오래 두오래“하며 노래를 부른다.
③ 콩을 심고 나면 상대편 술래가 어디에 숨겼는지 찾아내기 시작한다. 찾는 사람은 앉아 있는 사람 눈앞에 대고 손뼉을 쳐 보이거나 상대방의 코를 간질여 보며, 그 표정의 변화를 관찰하여 치마폭의 콩을 찾아낸다. 찾아내면 “찾았다, 찾았다.”하면서 이긴 편으로 나서서 춤을 춘다. 찾으면 심고 찾는 역할을 바꾸어 계속한다.

 

출처: 다음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