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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역사문화/한민족의 역사문화

북부여 시조 해모수와 고주몽의 북부여 계승

by 바로요거 2009. 5. 23.

4.북부여 시조 해모수와 고주몽의 북부여 계승

 

    임술 진시시     신인대  해모수        기어웅심산

壬戌 秦始時에 神人大角羊慕潄가 起於熊心山하시고

    정미 한혜시      연추위만     절거서비일우

丁未 漢惠時에 燕酋衛滿이 窃居西鄙一隅할새

    번한 준     위전부적         입해이망

番韓 準이 爲戰不敵하여 入海而亡하니

    자차     삼한소솔지중     태천민어한수지남

自此로 三韓所率之衆이 殆遷民於漢水之南하고

    일시 군웅     경병어요해지동

一時 群雄이 競兵於遼海之東이러니

    지계유 한무시      한    이병        멸우거

至癸酉 漢武時에 漢이 移兵하여 滅右渠하니라.

   서압록인 고두막한       창의흥병         역칭단군

西鴨綠人 高豆莫汗이 倡義興兵하여 亦稱檀君하고

    을미 한소시      진거부여고도

乙未 漢昭時에 進據夫餘故都하여

    칭국동명             시내신라고양야

稱國東明하시니 是乃新羅故壤也라.


임술진시시에 자 삼성기전 상편은 크게 네 부분으로 되어있는데 마지막 네 번째 해모수의 북부여 건국과 고주몽성제의 그 북부여의 적통 계승에 대한 얘기입니다. 여기가 아주 우리 민족사의 블랙박스에요. 이게 잃어버린 미싱링크입니다. 연결이 안 된 부분인데 이 짧은 부분에 많은 내용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임술년 진시시에 “BC239년 진나라 시황제 때에” 진나라 시황제가 BC247년에서부터 BC210년까지 있었으니까 고 사이죠.

신인대해모수 자 우리 단군왕검에게도 신인이라는 호칭을 썼었는데 해모수에게도 신인이란 호칭을 썼어요. 기어웅심산하시고 “(신인 대해모수께서) 웅심산에서 일어나셨습니다.” 웅심산은 지금의 길림성 사란현 장춘에서 동쪽으로 주욱 가면 서란면이 있는데 그곳으로 지금 알려져 있습니다.

정미한혜시에 “BC194년 (한고조 유방의 아들인) 한나라 혜제 때에” 연추위만이 “연나라의 추장, 우두머리였던 위만이” 이 위만은 연왕 노관의 부하입니다.

절거서비일우할새 ‘도둑질할 절’ 자에요. 위만을 “절거일우, 즉 서쪽변방의 한 모퉁이를 도둑질해서 거했던 인물이다.”라고 환단고기에서는 위만에 대해 분명하게 선을 그었습니다. 도둑놈이다 이거에요.

번한준이 여기선 “번한의 임금인 준왕 기준”이라는 분이죠. 기준이란 번한 74대 마지막 임금입니다.

위전부적하야 이 위만을 BC195년에 귀순을 했어요. 그래서 땅을 쫌 띄어주고서 살라고 했더니 고 다음해인 BC194년에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어준 기준 왕에게 칼을 돌려대가지고 쫓아냅니다. 배은망덕한 놈이죠. “전쟁을 해서 대적할 수가 없었어요.” 힘이 딸렸다는 거죠. 적이라는 것은 대적할 적자입니다.

입해이망하니 “바다에 들어가서 소식이 끊겼어요.” 망하니, 도망을 하니. 일본으로 갔다는 얘기도 있고 여러 설이 있습니다.

자차로 “이로부터” 삼한소솔지중이 자 이 삼한은 “전 삼한”을 얘기해요. 고조선의 진한,마한,번한 삼조선을 얘기하는 겁니다. “거느린 바의 백성들이”

태천민어한수지남하고 “거의 백성을 한수의 남쪽으로 옮겼어요.” 한수라는 것은 이것이 우리의 한강, 한강은 원래 은한, 은하수에서 온 말입니다. 한수의 남쪽은 서울을 관통하는 한강 남쪽, 그쪽으로 전부 이주해요. 그래서 저 본래 진한 땅에 살던 사람들은 경주에 와서 진한이라 그래, 또 마한 땅에 살던 사람들은 저 익산에 와서 또 마한이라 그래요. 그리고 저 번한에 살던 사람들은 김해 땅에 와서 정착을 해서 역시 번한이라고, 변한이라고 호칭을 합니다. 그 호칭은 저 대륙에서 그대로 가져가는 겁니다. 우리가 그걸 중삼한이라고 얘길 하지요.

일시에 군웅이 “한때에 군웅들이” 경병어요해지동이러니 군사를 다퉜어요. 요하와 발해의 동쪽에서 요하는 시대에 따라서 다릅니다. 지금은 요나라때 정착된 양허강 동요하 서요하를 말하는데 옛날의 요하는 지금의 난하라고 봐야 됩니다. “요해의 동쪽에서 군사를 다투었더니”

지계유한무시에 “기유년 BC108년 한나라 무제 때에 이르러” 한이병멸우거하니 “한무제가 군사를 옮겨서 우거왕을 멸했어요.” 위만의 손자인 우거왕을 멸했어요. 그러니까 BC194년에서부터 BC108년까지 86년 동안 또는 플러스 1을 하면 87년 동안, 위만조선은 우리나라 땅이 아닌 저쪽 그 천진이라든가 난하 하북성 그 난하 근처에 있었던 것입니다.

서압록인고두막한이 자 동압록이 있고 서압록강이 있어요. 동압록강은 지금의 압록강입니다. 서압록강은 서요하를 얘기합니다. “서요하 사람인 고두막한이라는 분이” 하늘임금이라는 뜻이에요.

창의흥병하야 “의를 부르짖고 군사를 일으켜서” 역칭단군하고.(편집자주 ; 또한 단군이라 칭하고) BC108년에 고두막한이 군사를 일으켜가지고 을미한소시에 “BC86년 한나라 소제 때에”

진거부여고도하야 “진격해서 부여의 고도에 웅거를 했어요.” 이 부여 고도는 농안 장춘지방 백악산 아사달지역으로 보고 있습니다.

칭국동명하시니 “나라를 동명이라고 일컬었어요.” 동명부여. 그니까 고두막한을 동명왕이라고 하기도 하고, 고두막한이 세운 부여를 동명부여라고 하기도 합니다. 지금 역사학자들은 고주몽성제를 전부 동명왕이라고 얘기하는데 그것이 역사를 왜곡하고 역사의 본질을 못 보는 어리석음입니다. 이 동명왕은 고두막한입니다. 고주몽이 아니라.

시내신라고양야라 바로 그 부여 고도인 농안 장춘지방 백악산 아사달지방이 지금 경주에 이주해 와있는 신라 사람들의 본래의 고향땅이었다, 이거에요. 신라. “(경주에 있는) 신라의 원 옛 땅이니라,” 진한의 본 땅이었다. 이거에요.


    지계해동시월         고추모

至癸亥冬十月하여 高鄒牟가

   역이천제지자       계북부여이흥

亦以天帝之子로 繼北夫餘而興하사

     복단군구장           사해모수             위태조

復檀君舊章하시고 祠角羊慕潄하여 爲太祖하시고

    시건원         위다물            시위고구려시조야

始建元하여 爲多勿하시니 是爲高句麗始祖也시니라.


지계해 지계해에 춘정월이 아닙니다. 이건 BC158년인데요. 고두막한의 아드님인 고무서 단군이 돌아가시고, 동시월에 제붕(편집자주 ; 황제께서 돌아가시다.)이라고 되 있어요. 그러니까 고무서 단군이 돌아가시고 고주몽성제가 북부여의 7대 단군으로 등극하신 것은 춘정월이 아니라 동시월입니다.(편집자주 ; BC 158년 계해년 동시월에 이르러)

고추모가 “고주몽성제가” 역이천제지자로 “또한 천제의 아드님으로서” 해모수 단군의 고손자 아닙니까?

계북부여이흥하사 “북부여를 이어서 일어나사” 복단군구장하시고 복은 ‘회복할 복’자라 그랬죠? “단군의 옛법을 회복하시고” 사해모수하야 “해모수의 사당을 지어서 제사를 지내서” 위태조하시고 “고구려의 시조로 해모수를 삼았다는 거에요.” 시건원하야 “처음으로 연호를 세워서”

위다물하시니 다물이라는 것은 복구토, 옛 땅을 회복하자, 환웅시대의 옛 땅을, 치우천황이 회복했던 옛 땅을 회복하자, 그런 배달국의 옛 영토, 고조선의 옛 영토를 회복하자는 것이 다물입니다. 이것은 고구려의 국시이면서 고구려 사람들의 의지를 표현한 말입니다. “(연호를) 다물이라 하시니”

시위고구려시조야시니라 “이분이 고구려 시조가 되느니라.” 삼성이신 환인-환웅-단군에 대한 얘기와 해모수에 대한 얘기와 고구려의 건국자인 고주몽성제까지가 전부가 언급돼서 삼성기상은 빠진 것은 없는 것 같아요. 자 그런데 저도 빨리한다고 했는데 삼성기 이제 상이 끝났습니다. 그런데 삼성기하는 한 장이 더 많아요. 그래도 한번 빨리 한번 훑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전대학교 한의학장 윤창렬 교수님 강의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