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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법칙*생존법/우주개벽 메시지

전 지구적인 위험이 커지고 있다.

by 바로요거 2008. 11. 28.

서울대 이재열 교수 특별기고

국제테러·쓰나미·기상이변… 時·空·사회적 경계 무너뜨려
과학 기술문명 진전 될수록 ‘통제할 수 없는 위험’ 키워

 

 이재열 교수

 

독일 철학자 아도르노는 2차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9년 ‘아우슈비츠 이후 시를 쓸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리고 52년 후 21세기 인류들은 ‘9·11 이후 영화를 만들 수 있는가’라고 물어야 했다.


눈 앞의 현실, 실제로 일어난 파국이 그동안 영화들이 보여준 상상력을 단번에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서울대 이재열<사진> 교수는 사회학적 입장에서 21세기 ‘재앙’의 징후들을 읽어내고 영화평론가 심영섭씨는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재앙영화의 현주소를 진단한다.


최근의 설문조사들에 따르면, 우리 국민들은 과거에 비해 현재의 불안감이 더 커졌다고 느낄 뿐 아니라, 앞으로도 불안감이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외환위기를 경험한 후, 한국 사회에서는 실업과 가난에 대한 불안감이 크게 증가하였고, 젊은 전문직 여성들을 중심으로 결혼, 출산, 육아와 같은 생애 단계조차 통과하기를 꺼린다.


일본에만 120만명에 달한다고 하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는 일상적 사회생활조차 감당하기 어려워진 정보화 세대의 황폐한 내면불안의 심각성을 암시한다.


반면에 파국적이고 종말론적인 불안은 전 지구적 위험에 기인한다. 달 위로 떠오르는 청록색 ‘지구별’ 사진만큼 지구가 유한한 생태자원임을 절실하게 보여주는 증거도 없다. 이 작은 별 위에서 65억, 아니 앞으로 더 늘어날 인구가 얼마나 오랫동안 생태계를 오염시키고 다른 생물종들을 소멸시키는 지금과 같은 삶의 방식을 유지할 수 있을까.

 

▲ 영화 ‘딥 임팩트’에서 해일이 거대도시를 덮치는 장면(위), 그리고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가 물에 잠기는 가상도(왼쪽 아래), 쓰나미로 파괴되고있는 해변도시의 사진(오른쪽 아래) 등을 합성한 그래픽. 현실에서는 언제나 인간의 상상을 능가하는 끔찍한 자연재앙들이 일어났다.


일찍이 로마클럽의 미래 보고서가 그려냈듯이, 인간특례주의(人間特例主義)적 (human exceptionalism) 태도와 생활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인류는 파국적인 종말을 피하기 어렵다.

역사적으로 재앙 체험은 집단적이고 격렬한 반응을 낳았다는 점에서 ‘재난의 해석학’을 필요로 한다. 구약성서에 기록된 지진과 가뭄, 메뚜기 떼 등의 재난은 인간의 죄악에 대한 야훼의 무서운 심판으로 해석되었다.


16세기를 전후한 소빙기(小氷期)에 빈번하였던 천변지이(天變地異)에 대한 조선의 반응은 우주를 지배하는 성리학적 원리에서 어긋난 데 대한 반성으로 승화되어, 위로는 왕의 부덕(不德)에 대한 힐난과 상소를, 아래로는 백성들에 대한 금주령과 검소한 생활에 대한 강조를 낳곤 했다.


반면에 같은 시기 천재지변과 전염병에 대한 유럽인들의 반응은 악마의 사주를 받은 마녀에 대한 광기 어린 사냥으로 나타났다. 1920년대 일본의 간토 대지진이 조선인 학살로 이어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재앙의 경험이 회개와 주술의 강화로 내연(內燃)하거나, 희생양을 찾아 외파(外破)했지만, 근대 이전 시기 재앙에 대한 주된 반응은 종교적이라는 데서는 공통적이다.


반면에 서구적 근대의 형성은 재난에 대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대응과 궤를 같이한다. 위험을 예측하고 통제하려는 노력은 과학기술과 의술의 발전뿐 아니라 보험산업의 성장과 복지국가적 위험관리체계로 구현되었으며, 통계학은 국가학과 동일한 지위에 오르게 된 것이다.

보통사람들은 체험한 사고(事故)에서 얻은 기억의 프리즘을 통해 다가올 위험의 전조(前兆)를 느낀다. 반면에 전문가들은 현상의 이면에 자리 잡은 구조와 원리에 대한 통찰을 통해 다가올 재난을 예감하고 그 피해에 대해 전율한다.


그러한 점에서 독일의 사회학자 벡이 주창한 ‘위험사회론’은 공간적, 시간적, 사회적 차원에서 전통적인 경계가 소멸된 새로운 형태의 위험의 도래에 대해 날카로운 직관을 제공하고 있다. 가시적인 위험의 통제를 의도한 근대적 과학기술문명은 진전이 될수록 ‘통제할 수 없는 위험’을 키워왔다는 것이다.


새로운 위험은 국민국가라는 공간적 경계를 무력화한다. 환경오염과 지구적 기상이변, 대규모 지진해일(쓰나미)은 국경의 존재를 무색케 한다. 따라서 그 해결책도 한 나라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시간적 경계의 소멸로 인해 위험의 원인과 그 효과 사이의 시간적 간격은 점점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중금속이나 유전자 변형식품 등은 상당기간 체내에 누적되었다가 임계점을 넘으면 뒤늦게 질병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아예 다음 세대에 기형아를 낳기도 한다.


사회적 경계의 소멸은 고도의 분화된 분업체계에서 책임의 소재를 명확히 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모든 사람들은 위험의 원인제공자이자 피해자가 되어 서로 얽히게 된다.


문명의 발달이 가져온 딜레마는 자연재난을 훨씬 위협적으로 만들었으며, 아울러 인적, 기술적 재난의 가능성을 크게 높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가능성을 페로우는 정상사고(normal accident)의 개념을 이용해 설명한다.


예를 들면 현재 인류가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의 수가 많아지면, 아무리 방공망 관리체계가 복잡하고 정교해져도 의도치 않은 사고를 당했을 때의 피해가 파국적이 되고, 결국 우리는 재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논리이다.

페로우의 직관은 최근 물리학을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는 복잡계 이론과 결합해 볼 때 신종 재난의 구조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인터넷이나 전력망, 항공망, 혹은 인간관계의 네트워크는 모두 소수의 행위자나 거점을 통해 연결거리가 짧아지는 멱함수 분포를 한다. 그런데 이처럼 몇 단계 거치면 모두가 서로 연결되는 “좁은 세상”에서는 매우 짧은 시간에 위험의 요소가 전체로 파급되는 “네트워크 도미노”도 발생하기 좋은 구조가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2003년의 북미 동부지역을 암흑으로 만든 정전사태는 나이아가라 폭포에 떨어진 벼락에 의해 촉발되었으며, 같은 해 전 세계적인 인터넷 대란은 간단한 웜바이러스에 의해 촉발되었다. 섭씨 100도 근처에서 액체상태의 물이 갑자기 기체인 수증기로 질적 전환을 하듯이, 임계점을 넘으면 안전하던 시스템이 갑자기 붕괴하는 파국이 현실화하는 것이다.


인류가 만들어낸 기술 진보만으로 재앙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해 보인다.
삶의 양식과 해석체계가 달라지지 않는 한 위험의 문제는 냉전이 사라진 세계에서 끊임없는 새로운 갈등의 원천이 될 전망이다. 위험의 분배는 카트리나 피해에서 드러났듯이 인종 간, 계층 간, 그리고 국가 간 불평등과 긴밀히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난의 해석학’은 여전히 유효하다.

서울대 사회학과 이재열 교수

 

출처:개벽실제상황 http://gaebyeok.jsd.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