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여
인상여(藺相如)는 관적과 생몰연대가 모두 미상이다. 그는 처음에는 조(趙)나라의 환관 우두머리 무현(繆賢)의 가신이었으나 나중에는 전국시기 조나라의 유명한 재상으로 이름을 날렸다.
☞ 완벽(完璧)에 대한 이야기
BC 283년 조나라 혜문왕(惠文王)이 초(楚)나라의 보석 화씨벽(和氏璧)을 얻었다. 이 보석은 춘추시기 초나라 사람 변화(卞和)가 산속에서 발견한 것으로 원래는 다듬지 않은 옥돌 덩어리(보옥을 함유한 돌)였다. 그는 그것을 여왕(厉王)·무왕(武王)에게 차례로 바쳤지만 옥공들이 모두 그것을 평범한 돌멩이라고 말하자 국왕은 크게 노하여 변화의 두 다리를 잘랐다.
초 문왕(文王)이 즉위한 후 변화는 그 옥돌을 안고 산속에서 슬피 울었다. 문왕이 그러한 사실을 알고 그 옥돌을 가져와서 자르게 하니 과연 거기에는 세상에 보기드문 진귀한 미옥(美玉)이 있었다. 그리하여 그것은 "화씨벽"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진(秦)나라 소왕(昭王)은 조나라의 왕이 그 보석의 새주인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대단히 가지고 싶어 했다. 그래서 진 소왕은 조 혜문왕에게 편지를 보내어 그 보석을 진나라의 15개 성과 바꾸고 싶다는 뜻을 전달했다. 혜문왕은 소왕의 편지를 읽고 매우 불안하고 곤혹스러워 대장군 염파(廉頗)와 다른 대신들을 불러서 대책을 강구했다. 화씨벽을 진나라에 주자니 진나라가 15개의 성을 정말로 내주지는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그것을 진나라에 주지 않자니 진나라가 그것을 빌미로 조나라를 공격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조나라에서는 진나라에 사신을 파견하여 그 일을 교섭하도록 하자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으나 그러한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인물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이때 환관 우두머리 무현이 진왕에게 자신의 가신 인상여를 천거하였다. 조왕은 인상여를 불러오게 하여 그에게 물었다.
진나라가 15개의 성과 화씨벽을 바꾸자고 하는데 조나라가 그것을 승낙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쪽에서 부당한 것이고, 진나라는 바로 그것을 빌미로 조나라를 공격할 것입니다. 조나라가 화씨벽을 진나라에 주었는데 진나라가 약속대로 성을 조나라에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나라쪽이 부당한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진나라의 요구에 응하는 것이 가장 좋을 듯 합니다. 화씨벽을 먼저 진나라에 준 다음 진나라에게 그 책임을 지게 해야 합니다."
인상여는 잠깐 쉬었다가 다시 계속해서 말하였다.
"대왕께서 아직 적당한 인물을 선정하지 못하신 것 같으니 저를 진나라로 보내주십시오. 진나라가 정말로 성을 조나라에 준다면 화씨벽을 진나라에 두고 올 것이고, 진나라가 성을 주지 않는다면 반드시 그 보석을 온전하게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그리하여 조 혜문왕은 인상여를 사신으로 임명하여 화씨벽을 가지고 진나라를 방문하게 하였다.
진 소왕은 장대(章台: 궁궐 이름. 유적지는 지금의 섬서성 西安市 서쪽에 있음)에서 인상여를 접견하였다. 인상여는 두손으로 화씨벽을 받들어 진왕에게 바쳤다. 천하에 보기드문 진귀한 보석을 손에 넣은 진왕은 그것을 비빈과 문무대신, 시종들에게 보이면서 매우 기뻐하였으며 사람들은 모두 진왕을 축하하였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록 진왕은 성을 주겠다는 말을 입밖에 꺼내지 않았다. 인상여는 진왕이 성과 화씨벽을 바꿀 의향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꾀를 하나 생각해내어 진왕에게 말하였다.
"이 보석은 매우 훌륭하기는 하지만 약간의 결함이 있으니 제가 그것을 대왕께 보여드리겠습니다."
진왕은 인상여의 말을 듣고 화씨벽을 그에게 주었다. 인상여는 화씨벽을 받자마자 재빨리 몇걸음 뒤로 물러나서는 몸을 기둥에 기댄채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아 올라 엄숙하면서도 예리하게 진왕에게 말했다.
"대왕께서는 이 미옥을 원하신다는 편지를 조왕에게 보내면서 그것을 15개의 성과 바꾸자는 제안을 하였습니다. 당시에 조왕은 문무대신들을 소집하여 그 일에 대해서 논의를 하였는데, 모두들 진나라는 탐욕이 많아 자신의 세력만 믿고 거짓말을 하여 조나라의 보석을 사취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이 보석을 진나라에 주지 말자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이 친구를 사귀는데 있어서도 서로 속이는 법이 없거늘 하물며 진나라 같은 당당한 강대국이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다시 말씀드리자면 옥돌 하나 때문에 두 나라의 우의가 손상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조왕은 저의 의견을 받아들여 5일간 재계하고 편지를 쓴 후에 저에게 이 미옥을 가지고 진나라로 가게 하였습니다. 조왕의 태도는 그토록 공손한데도 대왕께서는 오히려 평범한 별궁에서 저를 접견하시면서 태도가 이토록 거만하십니까! 대왕께서 이 귀중한 보석을 궁녀와 시종들에게 마구 보이신 것은 분명 저를 희롱한 것일 뿐만 아니라 조나라를 존중하지 않은 처사입니다. 제가 보기에 대왕께서는 성과 화씨벽을 바꿀 마음이 없으신 것 같으니 저는 이것을 가지고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만약 대왕께서 저에게 강압을 행사하신다면, 저는 이 보석을 기둥에 대고 머리통으로 들이받아 가루로 만들어 버릴 것입니다."
이렇게 말을 마친 인상여는 화씨벽을 들어 기둥을 쳐다보면서 때려부술 자세를 취하였다. 화씨벽이 망가질 것을 염려한 진왕은 급히 잘못을 사과하여 인상여의 행동을 만류한 다음, 그에게 지도를 보여주면서 조나라에 주려고 하는 15개 성의 범위를 지정해주었다. 인상여는 그러한 진왕의 태도가 여전히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다시 진왕에게 말하였다.
"이 화씨벽은 천하에 공인된 보석으로 조왕이 대단히 아끼는 것이지만, 진나라의 세력이 두려워 진왕께 바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조왕은 이 보석을 주기 전에 5일간 재계를 하고 조정에서 성대한 의식을 거행하였습니다. 그러니 지금 이 보석을 받으시려면 당연히 5일간 재계를 한 다음에 조정에서 성대한 의식을 거행하십시오. 그러면 이 보석을 대왕께 바치겠습니다."
진왕은 화씨벽이 인상여의 수중에 있어서 그것을 강제로 빼앗을 수도 없었던지라5일간 재계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그를 숙소로 돌려보냈다. 숙소로 돌아온 인상여는 진왕이 비록 5일간 재계하겠다는 약속을 하였지만 결코 성을 조나라에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에 그는 유능한 시종을 한명 선발하여 남루한 옷을 입히고 평범한 백성으로 변장시킨 다음, 그에게 화씨벽을 가지고 밤중에 몰래 조나라로 돌아가도록 하였다. 진왕은 5일간의 재계를 대충 마치고 조정에 성대한 의식을 마련하였다. 양쪽에 문무대신들이 늘어선 가운데 진왕은 인상여가 보석을 바치기만 기다렸다. 인상여는 진나라 조정에서 진왕에게 예를 올리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진나라는 목공(穆公) 이래로 스무 한 분의 군왕이 있었지만 신용을 중시하지 않은 분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저는 대왕께 속아 조나라에 폐를 끼칠까 염려되어 벌써 화씨벽을 조나라로 보냈습니다. 아마도 지금쯤이면 이미 조나라에 도착하였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진왕은 크게 분노하였지만, 인상여는 여전히 침착한 어조로 말하였다.
"지금의 형세는 진나라가 강하고 조나라가 약합니다. 따라서 대왕께서 사자를 조나라에 보내어 화씨벽을 다시 요구하신다면 조나라는 거절하지 못할 것입니다. 당장 저를 보내주시면 그 보석을 가지고 되돌아오겠습니다. 지금 진나라가 15개 성을 조나라에 내주고 화씨벽과 바꾸고자 하는데, 조나라가 어찌 진나라의 성읍을 차지하고서 대왕께 죄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 대왕을 속인 죄는 천만번 죽어 마땅합니다. 저는 이미 살아서 조나라로 돌아가겠다는 희망을 버렸으니, 지금 대왕께서는 저를 기름솥에 넣어 삶아 죽이십시오. 그리하면 제후들은 진나라가 벽옥 하나 때문에 조나라의 사신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며, 이로써 대왕의 명성도 사방에 전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진왕은 음모가 전부 밝혀진 마당에 더 이상 변명을 늘어놓을 수도 없었던지라 쓴웃음만 지을 수밖에 없었다. 진나라 대신들은 인상여를 죽일 것을 건의하였지만 진왕을 그것을 가로막았다.
"지금 인상여를 죽인다면, 화씨벽을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진·조 양국의 우의는 물론 진나라의 명예까지 훼손된다. 그러니 그를 잘 접대하였다가 적당한 때를 봐서 조나라로 돌려보내는 편이 낫겠다."
이렇게 말한 진왕은 관례대로 조정에 성대한 의식을 마련하여 인상여를 융성히 접대한 다음, 그를 공손하게 조나라로 돌려보냈다. 그후 진나라는 15개 성을 조나라에 주지 않았으며, 조나라도 당연히 화씨벽을 진나라에 주지 않았다. 여기에서 "빌어왔던 물건을 전부 온전히 돌려보낸다"는 의미로 "완벽(完璧)"이라는 말이 유래되었다.
☞ 민지(?池)의 회맹
BC 282년 진나라는 대장 백기(白起)를 보내어 조나라의 간(簡: 지금의 산서성 離石縣 서쪽)과 기(祁: 지금의 산서성 祁縣)를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그 이듬해에 진나라는 다시 조나라의 석성(石城: 지금의 하남성 朴縣 서남)을 점령하고, 그 이듬해에 다시 조나라를 공격하였다. 양국의 교전으로 조나라는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BC 279년 진 소왕은 초나라를 집중적으로 공격하기 위하여 조나라와 강화를 맺고자 하였다. 이에 사신을 조나라에 파견하여 조왕과 서하(西河)의 밖에 있는 민지(지금의 하남성 민지현 경내)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다. 조왕은 두려워서 가지 않으려고 했다. 대장군 염파(廉頗)와 상대부 인상여는 조왕이 거기에 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고 조왕을 설득하였다.
"진왕이 회의를 약속했는데 만약 대왕께서 가지 않으신다면 조나라의 나약함을 내보이는 것이니 아무래도 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조왕은 두 사람의 건의를 받아들였으며, 인상여가 조왕을 따라서 함께 가기로 하였다. 염파는 대군을 이끌고 국경까지 가서 조왕을 전송하고 이별하면서 조왕에게 말하였다.
"이번에 대왕께서 민지가시는 것은 왕복 시간과 회견 시간을 합하여 줄잡아 30일이 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이 기간이 지나도 대왕께서 돌아오지 않으시면 태자에게 왕위를 계승토록 윤허해주십시오. 그러면 진나라는 대왕을 억류하여 조나라를 협박할 생각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조왕은 그것을 허락하였다. 염파는 국경에 대규모 병력을 배치하고 진나라의 공격에 대비하였다. 민지에 도착한 조왕은 진왕을 만나 서로 의식을 끝낸 다음 바로 연회에 들어갔다. 연회석상에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술잔이 돌자 진왕이 조왕에게 말하였다.
"내가 듣기에 당신은 금(琴)을 좋아한다고 하던데 여기에 금이 있으니 한 곡 연주하여 흥을 돋워주시죠!"
조왕은 감이 사양하지 못하고 금을 한곡 연주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진나라의 어사(御史)가 다가와서 죽간위에 "모년 모월 모일에 진왕과 조왕이 민지에서 연회를 하다가 진왕이 조왕에게 금을 연주하도록 명령하였다."라고 썼다. 이것을 본 인상여는 불쾌감을 느끼고 앞으로 나아가서 진왕에게 말하였다.
"조왕은 진왕께서 질장구(缶)를 잘 치신다고 듣고 있는데 여기에 질장구가 있으니 한번 치셔서 모두를 기쁘게 해 주십시오."
진왕은 이 말을 듣고 벌컥 화를 내며 응하지 않으려고 했다. 인상여는 다시 질장구를 들고 가서 진왕에게 바쳤으나 진왕은 여전히 그것을 치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인상여가 말했다.
"지금 저는 대왕과 다섯 걸음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만약 대왕께서 응하지 않으신다면 저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대왕의 몸에 피를 튀게 하겠습니다."
진왕의 호위병은 진왕이 협박을 받고 있는 것을 보고 황급히 검을 뽑아서 인상여를 죽이려고 하였다. 인상여가 두 눈을 부릅뜨고 큰 소리로 호통치자 호위병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진왕은 마음이 매우 불쾌하였지만 억지로라도 질장구를 몇 번 두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인상여는 머리를 돌려 조나라 어사(御史)를 불러서 이 일에 대하여, "모년 모월 모일에 조왕과 진왕이 민지에서 연회를 하다가 조왕이 진왕에게 질장구를 쳐서 흥을 돋우도록 명령하였다."라고 쓰게 하였다. 진나라 대신들은 진왕이 불리해진 것을 보고는, "조왕께서는 15개의 성을 바쳐 진왕께 축복을 올리십시오!"라고 했다. 그러자 인상여도 전혀 굽히지 않고, "진왕께서는 함양(咸陽, 지금의 섬서성 함양현 동쪽)을 바쳐서 조왕께 축복을 드리십시오!"라고 했다.
주연이 끝날 때까지 인상여는 국가의 존엄성을 수호하기 위하여 진나라 군신들을 상대하면서 재치와 용맹을 발휘하여 진나라의 음모를 분쇄하였다. 진나라는 염파석이 대군을 이끌고 국경에 주둔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터이라 어쩌지도 못하고 조나라 군신들을 공손히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그후 진나라와 조나라는 일시적으로 전쟁을 중단하였다.
인상여는 민지에서 세운 공으로 상경(上卿)에 임명되었다. 이때 노장 염파는 자기보다 후배인 인상여가 변설만의 활동으로 자기보다 상위에 임명된데 불만을 품고, 기회가 되면 인상여에게 모욕을 안겨주고 말겠다고 큰소리치고 다녔다. 그것을 알아차린 인상여는 대의를 위해서 가는 곳마다 염파에게 모든 것을 양보하였다. 인상여의 식객들은 그러한 인상여의 행동에 불만을 품고 그를 떠나고자 했다. 인상여는 그들을 가지 말라고 붙잡으면서 말했다.
"여러분들이 보시기에 염장군과 진왕 중에서 누구의 세력이 더 큽니까?"
사람들은 당연히 진왕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인상여는 다시 말하였다.
"여러분, 잘 생각해 보십시오. 진왕이 그렇게 사나워도 저는 그 앞에서 감히 진왕을 꾸짖을 수 있었는데, 설마 제가 염장군을 두려워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진나라가 우리 나라를 침범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저와 염장군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저와 염장군이 사적으로 서로 싸운다면 반드시 어느 한쪽은 다치고 말 것입다. 제가 이렇게 처세하는 까닭은 개인의 은원보다 국가의 위난을 우선시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전해들은 염파는 크게 뉘우치고 부끄러워하면서 즉시 웃통을 벗고 인상여를 찾아가 사죄하였다. 그후 인상여와 염파가 건재하는 동안 조나라는 조금도 타국의 괄시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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