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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역사문화/한민족의 역사문화

환단고기(桓檀古記)가 위서가 아닌 이유 33가지 증거!

by 바로요거 2008. 8. 13.

환단고기(桓檀古記)가 위서가 아닌 이유 33가지 증거!

환단고기에 대하여 전면적으로 사료적 가치를 부정하는 사대식민사학자들에게 개인 이익이나 떼거리 이익에 집착하지 말고 하나의 평화세계를 향해 마음을 열어 민족국가역사를 복원할 때라는 것을 상기시키며 그들의 주장을 유지하려면 다음 33가지 실증사례에 답해야 하며, 그렇지 못할 때는 환단고기의 사료적 가치를 인정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겠다.(여기서 [! 고구려]의 저자 허성정 씨와 [천부인과 천부경의 비밀]의 저자 구길수 씨의 일부 학설을 받아들여 통합한 것임을 밝혀둔다.)

 

1.환단고기에 단군조선 13세 흘달(屹撻)단군 50년 (서기전 1733년), 다섯개의 별이 루성을 중심으로 모여 일렬로 서는 장관이 연출되었다고 하는 오성취루五星聚婁현상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을 천문학자인 서울대 박창범 교수와 라대일 박사 등에 의해 슈퍼컴퓨터를 이용한 과학적 방법으로 분석한 결과 사실임이 입증되었다. 

 

오행성 결집현상 관련 영상 vod

   

박교수는 환단고기단기고사 등에 기록된 일식 등 천문현상을 과학적 방법으로 증명했다.

 

환단고기는 고려시대 이암이 썼고, 단기고사는 발해의 대야발이 편찬했으나, 일부 사대식민사학자들은 과학적 검증 없이, 삼국사기 전인 것과 후대의 조작 흔적이 있다는 것을 내세워 무조건 위서로 몰고, 외면하여 진지하게 연구조차 하려 들지 않았다.

 

서울대학교 천문학과 박창범 교수는 이를 딱하게 여기어 두 책에 기록된 5성취루, 일식 등의 현상이 당시에 실제로 존재했었는지를 천문학적으로 연구, 검증했다.

 

박창범 교수는 특히 두 책에 모두 기록된 5성취루현상에 주목하여 추적 조사한 결과, 실제로 서기전 1734년 7월 13일 일몰 직후 금성, 목성, 토성, 화성 그리고 추가로 초승달까지 일렬지어 하늘에 나타나는 장관이 연출됐음을 확인하였다.

 

박창범 교수는 이 같은 현상을 우연히 맞출 확률은 0.007%에 불과하며, 책의 조작 여부에 관계없이 역사적인 사료로서 가치가 있다고 확인했다.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

 

이것은 우리 민족 문화사 가운데, 상고사를 실증적 규명단계로 진입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단군조선이 민족국가로서 높은 수준의 문화를 창조했음과 더불어 환단고기의 실체를 입증한 것이라 사료된다.

 

2. 환단고기 등장 이전에는 밝혀지지 않았던 발해 3대왕 문왕 대흠무의 연호가 환단고기에서는 '대흥大興'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1949년 중국 길림성 화룡현 용두산에서 출토된 정효공주 묘지 비문에서 문왕 대흠무가 자기 존호를 대흥보력효감금륜성법대왕大興寶曆孝感金輪聖法大王이라 하고 불법의 수호자로 자처한 데서 드러나, 환단고기가 사료로서 가치가 있음이 과학적으로 실증되었다.

 

정효공주묘 벽화(연변 화룡현 용두산) 3대 문왕의 딸인 정효공주묘는 당나라 양식을 다른 것이나 석실 내부의 벽에 백회를 바르고 12명의 인물을 그린 벽화는 고구려의 전통 화법을 이은 것이다.

 

 3. 고구려 유장 이정기가 중국 중동부 15개 주에 대제 (大齊, 평로치청)라는 큰 나라를 세우고 4대 58년간 다스린 기록이 환단고기 태백일사 대진국 본기에 처음 나오는데 이것도 1997년 처음으로 발간된 책 '고구려를 위하여'(김병호저, 하서출판), 그리고 KBS 역사스페셜 '중국 속에 또 다른 고구려가 있었다, 이정기 왕국(2001. 5. 16)'에서 역사적으로 확인되었다.

 

4. 강화도 마리산에 제천단인 참성단이 있어 역사적으로 각 왕조마다 해마다 천제를 지내온 바, 환단고기 단군세기편을 보면 초대 단군왕검 51년(무오년 BC 2,282년)에 쌓았다는 첫 기록이 나온다. 마리산 참성단은 지금도 의연히 그 자태를 빛내고 있으며, 88서울올림픽, 2002월드컵 축구대회 때와 전국체전 성화채취의 기본성지가 되고있으며 매년 천제를 지내고 있다. 이 밖에도 강화도에는 고조선 유물로 정족산성과 고인돌 127기가 있다.

 

5. 환단고기 속의 단군조선 실재를 보여주는 것으로 평앙도 강동현에 있는 대박산에서 단군능이 1993년 북한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여기에는 왕과 왕후로 보이는 유골까지 발견되었고 북한은 단군릉을 거대하게 개건하여 성역화하였다. 그리고 1926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모금운동을 하여 평양 강동현 단군릉을 보수하고 해마다 제사를 올리고 있다.

 

6. 환단고기 태백일사 고구려국 본기에는 장수왕이 즉위하여 건흥建興이라는 년호를 사용한 기록이 있는데, 이  건흥建興 연호는 1915년 충북 충주시 노은면에서 출토된 불상의 광배명光背銘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 고구려 불상에는 건흥오년세재병진建興五年歲在丙辰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한때 백제 불상으로 간주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광대토태황비,광개토대왕비>에 따르면 광개토태황(광개토대왕)은 임자년壬子年 412년에 붕어하게 되는데 즉위년 칭원법卽位年 稱元法에 따라 이 해를 장수왕 즉위 원년으로 보면 장수왕 즉위 5년은 바로 병진년이다. 따라서 병진년 불상 광배명과 <태백일사>를 통해 건흥建興이 장수태황(장수대왕)의 연호라는 새로운 지견을 추가할 수 있게 된다.

 

7. 환단고기 태백일사에는 <조대기朝代記>를 인용하여 연개소문의 아버지 이름은 태조太祚, 할아버지는 자유子遊, 증조부는 광廣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이 가운데 연개소문의 할아버지와 증조부의 이름은 <태백일사>를 제외한 어떠한 문헌에도 나타나지 않았었다. 그런데 1923년 중국 낙양의 북망산에서 출토된 연개소문의 아들 천남생의 묘지에서 천남생의 증조부 이름을 자유子遊로 명기하고 있어서 <태백일사>의 진가가 드러나게 되었다.

 

8. 환단고기 태백일사에는 <진역유기>를 인용하여 현재 태국에 있는 아유타국과 백제 상인이 교역한 기록이 남겨져 있다. 이는 지역적 근접성으로 보아 백제가 현재 캄보디아인 부남국扶南國과 교역했다는 <일본서기>의 기록을 뒷받침해 준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백제 해외 경영의 한 단면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이다.

 

9. 실증사학을 내세운 사대식민사학의 거두 이병도조차도 과거에는 단군을 신화로 몰다가 말년에는 친구인 재야사학자 최태영 박사와 국사찾기협의회원들(김세환, 박창암 씨 등)의 우정있는 충고를 받아들여 참회하고, 단군은 실존하는 우리 한민족의 국조이며 역대왕조가 단군성조의 제사를 지내왔으나 일제 때 끊어졌고, 삼국사기 이전의 환단고기 등 고기의 기록을 믿어야 한다고 1986년 10월 9일자 조선일보 머릿기사에 쓴 사실이 있다. 단군조선의 실재와 환단고기의 내용을 믿으라고 쓴 것이다. 사대식민사학자들은 그들 태두인 이병도의 말을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10. 환단고기가 위서라면 실증적 입장에서 깊이 연구하여 위서라는 사실을 육하원칙에 입각하여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위조했는지 명백히 밝힌 내용을 제시해야 하는 데, 이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한 학자가 현재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11. 갑골문의 귀방

 

은나라의 갑골문에서도 환단고기 단군세기의 기록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유물과 유적이 발견되었다. 즉 BC 1291년 단군조선 제21대 소태단군 재위시에 은나라 왕무정이 귀방을 쳤다는 기록이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에 남아 있는데, 과연 은나라의 갑골문 유물에서 은나라의 귀방 정복 사실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서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이다. 환단고기는 이토록 확실한 역사적 근거와 고고학적 근거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12.  비파형 동검

단군조선의 비파형동검은 단군조선이 지나와 구별되는 선진 청동문화를 가진 정치세력 집단이었음을 가장 단적으로 나타내는 대표적인 유적, 유물이다.

이 정치집단의 분포도는 환단고기가 말하고 있는 역사적 시기와 역사적 강역이 너무도 일치하는데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비파형 동검의 분포지는 만주, 한반도, 중국대륙의 동편으로 환단고기가 설명하고 있는 역사 강역과 완전히 일치하며 그 연대도 완전히 일치한다.

 

13. 고인돌

환단고기의 태백일사가 설명하고 있는 고인돌에 대한 기록 또한 환단고기의 사료가치성을 유적과 유물로 뒷받침하는 단군조선의 실증적 증거물이다. 환단고기의 태백일사에서는 배달국 신시시대의 장묘문화부터 고인돌 시대 장묘 문화와 삼국시대의 장묘문화까지를 기록하고 있다. 환단고기는 이와 같이 환국, 배달국, 단군조선의 실상을 연대기와 역사기록과 역사 강역을 정확히 표시하고 있는 인류의 시원문화와 시원역사에서부터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밝히는 대표적 역사서이다.

 

14. 중국 하북성 중산의 천자명문.

하북성 중산묘에서 BC 10 세기 것으로 보이는 청동도기가 발견되었는데 거기에는 "천자건방중산후" 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었다. 이것은 단군조선의 핵심강역인 서요하 지역에서 출토된 BC 22세기의 도자기 부호와 양식이 완전히 같은 것이었다.

이것은 BC 22세기 부터 BC 10세기 까지 북경과 하북성 일대를 다스린 것은 단군조선의 천자였음을 기록한 환단고기의 기록을 그대로 뒷받침하는 것이다. 지나인들이 최초로 천자(황제)를 참칭한 것은 BC 221년의 진시황이었다.

 

15. 요녕성의 번한 명문.

중국 요녕성 대집둔 지구에서는 환단고기가 기록하고 있는 단군조선의 제후국 번한(번조선)의 명문이 나타나 환단고기의 사실성을 증명하고 있다. 요녕성 대집둔 지구에서는 번한番汗을 나타내는 '番汗'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은 도장이 발견된 것이다. 단군조선은 개국과 동시에 진한(요하지역)과 번한(황하,하북성)과 마한(한반도,만주) 등의 삼한(삼조선)으로 나누어 다스렸다(삼한관경제)는 환단고기의 기록을 그대로 뒷받침하는 유물, 유적이 출토된 것이다.

 

16. 남녀 조각상과 곰 석상.

서요하 지역의 적봉시 나사대 지역에서는 환웅과 곰을 토템으로 하는 부족의 곰녀를 상징하는 남녀 조각상과 곰 석상이 출토되었다. 서요하 지역의 적봉시 홍산유적지에서는 갑골문의 초기형태가 발견되어 은나라의 갑골문이 홍산문화 담당자들에 의해 전해졌음을 밝히고 있다.

이 홍산문화와 나사대 문화는 대체적으로 배달국 시대(BC 3898~BC 2333년 사이)와 일치하고 있다.

 

17. 배달국의 녹도문과 창성조적비.

환단고기에는 BC 3898년 18분의 환웅 중 배달국을 건국한 제1세 거발환 환웅께서 신지에게 녹도문을 창안할 것을 명하고, 배달국의 역사기록을 담당시킨다. 그런데 이 녹도문이 한국의 평양에서도 발견되었고 산동성의 창성조적비에서도 발견되었다. 평양의 녹도문과 창성조적비의 글씨는 모양과 형태가 배달국의 녹도문임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환단고기의 사료가치성이 이렇게 높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18. 일본 '구주신가'의 가림토문 비석이나 '이세신궁'의 가림토문 청동거울은 한글 비석과 한글 청동거울이라 명명하면 딱 들어맞을 정도로 완벽한 가림토문이다. 또 스리랑카 패엽경사 발위글과 인도의 구자라트 문자 역시 그 형태와 내용이 한글(가림토문)과 흡사해 우리를 놀라게 한다.

 

19. 요하는 압록이고 난하는 요하.

환단고기 태백일사 대진국본기에는 지금의 압록강은 '동압록'이고 지금의 요하가 '압록'이고 지금의 난하가 '요수(요하)'라고 기록하고 있다.

지금의 요하가 압록이란 사실은 중국 요사지리지와 삼국유사도 정확히 기록하고 있다.

지금의 요하가 압록이고 지금의 난하가 요수임은 서토의 고지도 '지리도', '연산도', '중국삼대간룡총람지도'에도 나타나 있다. 환단고기가 얼마나 정확한 기록을 반영한 역사서인지를 증명하고 있다.

 

20. 낙랑군과 낙랑국.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와 북부여기는 낙랑군과 낙랑국에 대한 근거를 가장 명확히 설명하고 있다. 낙랑이란 지명이 나타나는 것은 BC 1767년 제13세 흘달단군, BC 1237년 제23세 아흘단군, 그리고 BC 195년에는 낙랑왕 최숭이 보물을 싣고 마한의 서울 왕검성으로 가는 장면이 적혀 있다.

이 때부터 하북성의 낙랑군과 한반도의 낙랑국이 구분되어 나타난다. 환단고기는 고대사의 비밀을 푸는 열쇠인 것이다.

 

21. 가장 오래된 금석문-가림토 순수관경비.

단군조선 12세 아한단군 때 가림토로 추정되는 순수관경비를 세워 역대 제왕의 이름을 새겼다는 내용이 환단고기 단군세기와 단기고사에 나오는데, 엄청난 시차를 두고 사항을 기록함에 위작을 했을 리 없는 것이다.

단기고사에는 아한단군과 유위자 선인의 먼 국가장래에 관한 대화 속에 사방국경에 제왕의 명호를 본국의 문자로 비석에 새겨 국문을 영원히 보전케 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환단고기 단군세기에는 아한단군 52(BC 1833) 4월 외뿔 가진 짐승이 송화강 북쪽에 나타났다.

8월 천제께서 나라 안을 순시하시고 요하 좌측에 이르러 순수관경비를 세웠는데, 여기에 역대 제왕의 명호를 새겼는데 이것이 가장 오래된 금석문이다.

 

22. 가림토加臨土와 가림다加臨多.

환단고기에 원형 한글을 같은 의미로 가림토加臨土와 가림다加臨多라고 하는 표현이 있는데 단군세기의 가림토나 태백일사의 가림다는 각기 다르게 전해져 오는 기록들 가운데 이암은 가림토(행촌,단군세기)를 이맥은 가림다(일십당 주인, 태백일사 소도경전 본훈)라는 표현을 참고한 것이다.

가림토는 가림(분별)하는 토대 즉 땅이라는 의미로 그 뜻을 택해 토()를 썼고, 가림다는 가림하는 다(,)라고 다를 썼으나 같은 뜻이다. 환단고기가 위서라면 한가지로 표현했을 것이다.

23. 환단고기의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제4 마한세기 상의 소도蘇塗가 세워지는 곳마다 산상웅상山像雄常을 보게 되었다.는 표현에 비밀이 숨어 있다.

이맥 선생이나, 안호상 박사, 환단고기를 번역한 임승국 교수도 뜻을 잘 몰랐는데, 구길수 선생이 최치원의 천부경 81자는 본 천부경 16(하나,,,,다섯,여섯,일곱,여덟,아홉,)을 풀어낸 시첩이라는 비밀을 풀어내면서, 남근상이 모셔진 소도라 풀어 산상웅상이 남근이라는 것을 밝혔다.

소도는 솟다에서 와서 솟터 솟토 소토 소도나 솟대가 되었고, 소도에 솟은 것은 처음에는 박달나무로 된 환웅상인데 그것이 여음(돌무더기로 표현)에 삽입된 남근상(힌두교의 시바 링가)이 솟아 있다는 것이다.

이는 환단고기를 쓴 이가 전해지는 말이나 책의 내용을 자신도 이해하지 못해 원저본을 그대로 썼던 것이므로, 환단고기는 위서가 아니라는 한 증거이다.

 

이상 출처: 신명나는 한국사(고준환 著 p 61~p 69)

 

24. 조선왕조의 수서령

조선 왕조실록에 조카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찬탈하고 중국으로부터 왕위를 인정 받아야 하는 세조로부터 그뒤 대비들의 치마폭에 싸였던 허수아비 왕 예종때 중국의 비위를 맞추기 위하여 중국보다 우월한 우리의 역사를 말살하는 수서령이 내려졌다.  즉 전국에 퍼져있는 우리 상고사를 가진 자가 있다면 이는 국법으로 처리한다 하였으므로 수 십만권의 우리 역사 서적이 거둬져 소각되는데 그 소각된 목록중에는 환단고기가 인용한 책들이 대부분이다. 

 *** 다음은 필자의 전공이 우리 ㄱ ㄴ ㄷ ...ㅎ 들이 가지고 있는 뜻을 찾아 우리 뿌리말과 상고사를 밝히는 일이므로 필자가 그간 찾아낸 근거들인데, 이는 사실 가림토가 위서가 아니라는 증거가 되는데 이또한 환단고기에만 써있기 때문에 환단고기도 위서가 아니라는 증거가 된다.

 

25. 가림토와 신대문자

환단고기에는 단군조선 3세 가륵단군께서 삼시랑 을보륵에게 명하여 전에 내려오던 유치한 원시한글을 수정하여 가림토를 만들게 하는데 이 가림토는 한자에 눌리어 잡초처럼 버려젔던것을 세종께서 지금의 한글로 재창제하셨는가 하면 일본에도 전해져 훈민정음보가 700년이나 앞서 만들어진 가림토가 구주 신사등에 나나난다. 즉 신대문자(神代文字)란 신들이 쓰시던 문자라는 말로 우리 조상들을 신으로 보았고 그래서 그들이 쓰던 문자를 신대문자라 한다.

 

26.  히코산의 환웅개산기록

 환단고기에 - 진(秦)때 한민족인 서불(徐巿)은 '동야현의 해상으로부터 곧바로 나패에 이르러 다네시마(種島)를 거쳐 세도나이까이를 따라 처음으로 기이(紀伊)에 이르렀다'는 말이 있는데 지금 일본 신사에는 우리말로 태백산과 같이 희고 크다는 히코산(英彦山)의 환웅 개산기록이 있다.

 

27. 구자라트 문자

환단고기에 우리 문화를 수메르 등 중동에 전해주었다고 하는데 구자라트 문자는 우리 한글과 거의 비슷하다.

 

28. 수메르의 말과 우리말의 유사성

환단고기에 12환국의 하나인 수메르의 말은 우리말과 비슷한 것이 많다.

 -펀- 수메르어와 한국어 비교.

슈메르어(발음)[ 뜻]

한국어 발음[단어 뜻]

슈메르발음[단어뜻 ]

한국어 발음[단어 뜻]

아누(Annu)[최고 신]

하느님 [하느님,上帝]

Bad 바드 [ 밭 ]

밭 (Bat) [밭, 田 ]

안 (An) [天]

하늘 (ha)?[ 하늘, 天 ]

Na 나 [나 1인칭]

나 Na [ 나,我 ]

기르(Gir)

길 (Gil) [路]

Ge 그[3인칭 ]

그 Ge [ 3인칭 ]

라 (Ra) [~ 에서 ]

로 (Ro) [ 조사 ]

이 [1 인칭 ]

이 [지시대명사]

아비 Abi [ 아버지 ]

아비 (Bo) [ 夫 ]

Uhma 움마[엄마母]

엄마 Uhma [엄마 母]

니므 Nim [ 님 任 ]

님 (Nim) [ 사람 任]

 

 

 

 

29. 스리랑카의 패엽경사

스리랑카의 패엽경사에 새겨져 있는 글자는 신대문자 구자라트 문자등 가림토와 아주 흡사하다.

 

30.  단기고사와 단군세기 기록으로 본 증거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에 12세 단군 아한때 가림토로 추정되는 우리 원시 한글이 없어질 것을 염려하여 순수관경비를 세워 역대 제왕의 이름을 새겼다는 내용과 단기고사에 역시 이같은 내용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만약 환단고기가 위서라면 단기고사 역시 환단고기를 위작한 사람이 역시 위작한 위서라고 볼 수밖에 없다.  과연 위작하는 사람들이 엄청난 시차를 오가며 무슨 이유로 위서를 썼겠는가?

 

31. 가림토와 가림다로 본 증거 

환단고기가 나온 후로 수많은 사람들이 번역을 했고 또 많은 사람들이 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원시 한글이라는 가림토(加臨土)가 왜 가림다(加臨多)라는 다른 표현도 있으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무도 생각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대한 사건으로 세종이전 원시한글 존재 유무와 환단고기 진위문제... 더 나가서 일본 신사에 있는 신대문자(神代文字)가 원시한글인 가림토라는 증거까지 나오고 따라서 일본 신사는 우리 조상을 제사지내기 위한 사당이라는 근거까지 나온다.

 加臨土가 있었다고 말한 사람은 고려 말엽 충정왕때 사람이고 가림다가 있었다고 말한 사람은 연산군때 사람이다.그들은 각자 전해오는 옛 서적을 보고 적었기 때문에 그 이름이 다른것이나 그것을 순 우리말로 풀어보면 가림은 무엇인가 대신한다는 뜻이 있고 土도 땅이며 '다'도 땅이다(다地- 훈몽자회) 따라서 가림토, 가림다는 말을 가름, 대신한다는...즉 글씨라는 순순한 우리 말이다.

이 가림토가 써 있는 기록은 환단고가 뿐인데 환단고기가 위서라면 위서가들은 가림토건 가림다건 한 목소리를 냈을 것이며 또  자신도 그것이 뭘 의미하는지도 모르는 소리를 썼겠는가?

 

32. 蘇塗와 山像雄常 으로 본 증거
대저 위서가들이 어떤 목적으로 위서를 쓰려면 독자들이 그 내용을 알 수있게 글을 쓸 것이다.  만약 어떤 독자건 아무도 알 수 없는 글을 쓴다면 그는 정신이상자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독자는 그만두고 글 쓴 사람도 무슨 소린지 모르고 글을 썼다면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蘇塗와 山像雄常의 정체가 바로 그것을 말해준다.
이것은 환단고기를 필사한 사람들이 전해지는 말이나 책의 내용을 자신도 이해할수 없어 자신이 번역이나 해설해서 쓸 수가 없으니까 그저 원전 그대로 썻다는 증거이다.

환단고기를 번역한 임승국박사는 물론 안호상박사까지 모르는 소리라는 것이다.

우선 한단고기를 번역한 임승국님의 말을 들어보자 (한단고기 201쪽 참조)

....전략 "안호상 박사는 다음과 같이 산해경의 기록을 잘라 말하였으니 참고할만 하다. 즉 '北有樹 名曰雄 常先八代帝 於此取之' 라고 雄과 常을 갈라놓고 '북에 나무가 있는데 이를 雄 이라 한다. 늘 앞서는 8대의 임금들이 여기서 이를 취해갔다'로 한 것이다... 중략 .... '산 형상의 웅상을 보게 되었다'(可見山像雄常)는 좀체로 이해하기 힘든 구절이다. 언젠가는 雄常의 참뜻이 한국학에서 밝혀질 날이 있을것으로 기대 한다" 라고 했다.
임승국박사님의 참으로 솔직한 표현에 존경이 간다.

 

 이  蘇塗와 山像雄常의 비밀은 우리 뿌리말로 풀어보면 쉽게 풀린다. 이 山像雄常의 정체에 대하여 자세한 말을 하려면 글이 너무 길어지므로 고조선 유적지에서 나온 청동기 유물 금문 내용 하나만 제시하고 생략한다

 

33. 신라 벼슬 각간(角干)의 뜻

 환단고기에 가림토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고 이것을 근거로 우리 한글자음 ㄱ ㄴ ㄷ ...ㅎ 속에 뜻이 있다는 것을 찾아 밝혀 필자는 졸저 '천부인과 천부경의 비밀'을 썼다.

이는 우리 뿌리말 뿐 아니라 극히 부족한 우리의 상고사도 어느 유물보다 더 확연히 밝혀지고 잘못 변질되고 있는 우리말이나 잘못된 맞춤법등도 바로 잡을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는 신라 벼슬인 각간의 뜻 하나만을 예로 쓴다.

 角은 뿔이고 干 은 큰 , 칸  이다. (징기스칸)

 신라때 각간이란 벼슬은 이조때 영의정 처럼 임금 다음으로 높은 벼슬이다.

그러다면 왜 각간이라고 했을까? 

 그렇다면 각간은 우리말로 " 뿔큰" 이 된다.

즉 임금은 뿔이 여러개인 出 자 모양의 왕관을 썼으나 각간을 큰 뿔 하나짜리 관모를 썼다는 증거가 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말에 " 뿔큰 " 이라는 말이 하나라도 남아 있는가?

 " 주먹을 뿔큰 쥔다" , " 화를 벌컥 낸다" 의 뿔큰과 벌컥의 뿌리말이 바로 뿔큰이다.

 

*** 이상은 그간 정리된 환단고기가 위서만은 아니라는 증거들인데 필자도 시간만 있으면 더이상의 증거도 얼마든지 찾아 낼 수 있으므로 얼마 있지 않으면 아마 100 개의 증거도 무난할 것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만 될 정보가 담긴 책들*^^*

☆여기에 있는 한 권의 책이 소중한 당신님과 가족의 행복한 미래를 보장해 드릴 것이며,

세상을 살면서 궁금하셨던 많은 의문점들을 풀어드릴 것입니다~

또한 한민족 역사를 바로 보고 대세의 안목을 틔울 수 있으며.

다가오는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길을 열어드릴 것입니다!~

▶친절안내 뾰족한수 이용진 ☎=010-9088-7565 이메일 lyou177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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