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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역사문화/한민족사 바로알기

일본, 러·일 전쟁때 독도 편입 만행

by 바로요거 2008. 8. 4.
[독도를 알자] <5>일본, 러·일 전쟁때 영토 편입 만행

 

독도를 울릉도의 관할 구역으로 포함시킨다는 내용이 담긴 대한 제국 칙령 제41호와 그 내용.

 

일본은 러ㆍ일 전쟁이 한창이던 1905년 1월 28일 내각 회의를 통해 독도를 자신들의 영토로 편입(編入)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그 4 주 뒤인 2월 22일 이 같은 내용을 시마네 현의 현보에 실린 고시 40호로 알렸다. 즉 독도 대신 ‘다케시마(죽도)’라는 엉뚱한 이름을 붙이고, 오키도사의 소관으로 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 나라(대한 제국)에는 전혀 통보하지 않았다. 이런 행위가 알려지면 자신들의 영토 침탈이 명백히 ‘도둑질’로 들어날 것을 염려했던 까닭이다.

일본이 우리의 독도를 탐낸 것은 경제적, 군사적인 이유 때문이다. 독도 둘레의 바다는 당시 바다 사자를 비롯해 각종 어류가 잡히는 황금 어장일 뿐 아니라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물자 보급을 위한 군사적 가치 또한 엄청났다.

실제로 당시 일본인들이 울릉도에 들어와 나무를 마구 베고, 인근 바다에서 닥치는대로 함부로 고기잡이를 하는 바람에 우리 정부는 골머리를 앓았던 것으로 여러 문서에 나타나 있다.

1900년 10월 25일자 고종 칙령 제41호를 통해 ‘울릉도를 울도군으로 하고, 그 관할 구역에 석도(독도)까지 포함시킨다.’는 내용을 발표, 울릉도 일대의 관할권을 강화하고자 했다.

또 1906년 4월 울도군수 심흥택의 보고에서도 ‘본국 소속 독도가 외양 백여 리 밖에 있는데…….’라고 드러나 있다.

이들 문서는 특히, 독도가 1900년 전까지 ‘임자 없는 땅’(무주지)이었으므로 자기들 땅으로 삼았다는 일본의 억지가 말 그대로 생떼임을 증명하는 뚜렸한 근거가 된다.

우리의 칙령과 심흥택의 보고서에 드러나듯 독도는 1900년 대에도 이미 울릉도와 함께 분명히 우리 영토에 속해 있었다.


윤석빈 기자 binys@snhk.co.kr

입력시간 : 2008-08-03 1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