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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되찾기 운동, 대마도가 우리땅인 이유(10)

by 바로요거 2008. 8. 4.

대마도 되찾기 운동, 대마도가 우리땅인 이유(10)

2008-08-04 오후 2:41:18 [진해신문]

조선후기 대마도와 일본의 관계

 

한, 일 관계의 역학적 위치에 놓여있는 대마도는 한국과 일본의 국내사정에 따라 소위 말하는 해바라기형 습속에 젖어 있었다.

말하자면 조선의 국내 사정이 안정되고 지원이 많으면 조선쪽에 의지했다가 국력이 쇠잔할 때는 가차없이 일본에 기우러지는 현상을 보였다. 평야가 적은 대마인들로서는 양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 놓여 있었다.

일본의 무로마치 막부 시절에는 조선 속주주의 위치에서 일본으로 부터는 독립적인 지위를 누리며 조선과는 독자적인 통교를 했던 대마도는 전국시대를 통일한 토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예속화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조선건국 이후부터 왜구의 금압과 회유를 위해 당시 조선과의 교역을 원했던 대마도 왜와 본토의 왜인들과 접촉했던 조선은 대마도의 지위와 역할을 확립시켰고 조선과의 통교를 원하는 모든 일본의 세력을 통제할 수 있는 위치로 부상시켜 주었다.

그 결과 대마도주는 다원적이며 계층적인 관계를 대변하는 위치에서 조선과의 모든 통교권을 장악하게 됐는데 통교의 형태는 외교적인 형식을 갖춘 사자를 파견해서 조공무역을 취하도록 했다.

조선은 이와같이 대마도를 비롯한 통교 희망자들을 속주질서에 편입시킴으로써 왜구의 세력을 회유하고 통제하는 대일정책을 완성해 갔다. 대마도의 입지 조건과 정치,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임진왜란 후에는 반 독자적 위치로 부상해 있었다. 그렇다고 대마도가 우리정부로 부터의 속주의 형태를 벗어난 독자적인 행위의 체제는 아니었다. 반대로 전후 일본의 도쿠카와 막부는 대마도의 이용가치를 십분 활용하기 위한 대리자로서의 위상을 부각시키는데 혈안이 되어온 셈이다. 양국 관계에 있어서 대마도의 이러한 역할은 임난의 전초기지를 무위로 만든 1587년에 많은 변절을 하게됐다. 당시 대마도주는 조선의 사정을 잘 알았고 통교 관계가 대마도의 사활을 좌우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으므로 일본의 뜻을 따르지 않았는데 말하자면 먼 옛날 부터 조선의 부속도서였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대마도를 일본식 이름인 쓰시마로 부르면서 불법적으로 자신들의 전진기지로 만들려 했다.

17세기 초반에는 대마도가 일본의 막번체제에 편입되어 도주종의지가 막부로 부터 종사위하시종 대마수로 임명받는 사태까지 초래했다. 도적이 집주인을 몰아내고 그들 스스로가 주인행세를 하기위해 모종의 사악한 일을 저지른 셈이다. 또 대마도는 조선과 일본 무역에 있어 외교와 마찬가지로 무역권도 도쿠가와 막부의 정권이 장악했고 그 범위안에서 살기위해 시종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마도주는 여전히 조선정부의 수도서인으로서 조선이 보낸 세견선과 세사미두의 지원과 왜관무역을 통한 이익으로 그들의 재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대마도는 조선과는 속주의 예속관계에 있으면서 일본과는 가역의 역할을 했다.

영조 39년(1763년) 통신사행의 서기였던 원중거는 "대마도는 일본 내국과는 전혀다르다. 일본은 대마도인을 항상 오랑케라고 부르며 사람축에 끼워주지 않았다"고 적고 있다. 또 조선과 일본 양국 사이에 놓여 있는 가교적인 대마도에 대해 일본인들은 농간으로 그들의 이익을 추구한다고 했다.

이 같은 지적은 대마도와 본토를 기본적으로 구분한 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19세기-20세기 대마도에 대한 기사를 추출해 보면 고종32년(1895년)간행된 영남읍지나 순종2년(1908년)증보동국문헌비고와 같은 지리지의 내용에서 당시의 대마도 상황을 엿볼 수 있는데 본래는 우리나라 동래에 속했던 까닭에 섬안의 남자들의 언어와 부녀자들의 의복이 조선과 같았고 대마인들은 일본인들을 청할때는 반드시 일본인이라고 했고 일인들도 대마인들을 크게 차별하여 대우했으며, 대마도민 자체도 일본에 예속된 왜로 자처하지 않았다"

이는 그들의 고향이 조선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대마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표시한 지도로 소라동천, 동국조선총도, 강원도도, 경상도도에는 울릉도와 독도, 대마도가 확실하게 우리의 영토로 그려져 있음을 볼 수 있다.


-  김  홍  식  -

진해신문 대표이사, 시인

사) 경남지역신문협회장


김홍식大기자   buhogun@hanmail.net    김홍식大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등록 : 2008-08-04 오후 2:41:18